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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의 상처를 어루만지다…신선주 개인전 〈로열 블루〉
입력 2021.04.20 (08:00) 취재K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2008년 2월 10일 밤의 참람했던 기억을. 시뻘건 불길이 화면에 가득했습니다. 매캐한 연기 내음이 화면 너머로 전해오는 것만 같았죠. 정말 어이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던 그 날. 많은 이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그 날. 나중에 숭례문은 복구됐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는 숭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숭례문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은, 숭례문에서 떨어져 나와 영영 이별한 목부재들이 어느 화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1997년부터 해외 각지의 건축물을 화폭에 담아온 신선주 작가. 머나먼 나라의 이국적인 건축물들을 그려오던 작가는 우리 전통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립니다.

〈평부연 150(Flying rafter,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33×145cm, 2020〈평부연 150(Flying rafter,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33×145cm, 2020

숭례문의 목부재 가운데 하나인 평부연입니다. 부연(附椽)은 겹처마를 구성하는 처마서까래 끝에 거는 길이가 짧고 단면이 방형인 서까래의 일종인데요. 부연을 사용하면 처마를 길게 빼는 것 외에도 장식 효과를 줍니다. 평연 위에 올라간 부연은 평부연(벌부연), 선자연 위에 올라간 것은 고대부연(선자부연)으로 구분합니다. 전통건축 전문가가 아니면 좀 어렵죠.

중요한 건 작가가 이렇게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부재들을 하나하나 캔버스에 그려나갔다는 점입니다. 타다 남은 부재들의 피부에 남은 그을음까지도 검은 색조의 화면에 고스란히 되살렸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부속으로 서로를 잇고 지탱하던 힘을 놓고 수장고 선반에 쌓이고 놓인 부재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역사를, 세월을 품은 조소 작업 같았다."

 〈주간포 (Bracket set between Columns,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45×53cm, 2020 〈주간포 (Bracket set between Columns,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45×53cm, 2020

주간포(柱間包)는 말 그대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짜인 공포(栱包)입니다. 공포란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쪽을 뜻하죠. 우리 전통 건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을음에 덮여 희미하게 보이는 단청의 색이 아스라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컬러 팔레트(Color Palette)를 실험하듯 단청 색에 충실하게 컬러를 옮기려 했다. 덕분에 이전 B&W(Black & White) 작업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이 목부재는 색동저고리 형태 같다."

정물화의 소재로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숭례문의 한자리를 어엿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그러나 이제는 화마로 인한 상처를 간직한 채 수장고에 갇힌 목부재들을 향해 작가는 뜨거운 시선을 던집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 달라는 그 부재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정성을 다해 그려냄으로써 다시 살게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선 어떤 확고한 시각적 경험이 필요했죠. 그래서 작가는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때의 경험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작가가 2년의 공백을 거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만났습니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과 연생전의 밤 풍경을 담아낸 그림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작가의 설명과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블루 문(경복궁 연생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150×170cm, 20201〈블루 문(경복궁 연생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150×170cm, 20201

"이번 전시의 메인 작업, 깊고 푸른 'night blue' 아래 구름들(한 달에 가까운 새김 작업)이 일렁인다. 하지만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로 새긴 모노 톤의 처마 단청과 어울리기엔 다소 어지러워 과감하게 블루로 다시 덮어야 했다."

〈블루 클라우드(경복궁 근정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91×116.8cm, 2021〈블루 클라우드(경복궁 근정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91×116.8cm, 2021

"블루 문 작품과 다르게 맑고 푸른 밤 선명한 밤 구름의 율동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다."

신선주 작가는 2년이라는 긴 작업 공백 후 이번 전시에는 조심스럽고 어렵게 여기던 컬러를 들이며, 건축 정물화 같았던 작품은 형식적으로 더 선명한 목부재 정물화로, 다른 한 편은 다시 공간으로서 공기와 온도, 빛의 흐름을 담은 풍경으로 진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의 실마리는 늘 번뜩 떠오르고 사라지는 파편처럼 각인된다고 하죠.

"작업하면서 떠올리는 내 아이디어, 단상은 수필이나 설명서 같은 서술형이 아니다. 작품으로 그 단상의 형태나 색, 구도 재현은 파편처럼 떠올라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분산된 각각의 생각, 단어들은 작업 과정을 통해 이어지고 정리되며 엮여 이미지가 되었다."


■전시 정보
제목: 신선주 개인전 〈Maniere- noir : Royal Blue〉
기간: 2021년 5월 6일까지
장소: 서울시 용산구 갤러리비케이
작품: 회화, 입체 등 10여 점
  • 숭례문의 상처를 어루만지다…신선주 개인전 〈로열 블루〉
    • 입력 2021-04-20 08:00:50
    취재K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2008년 2월 10일 밤의 참람했던 기억을. 시뻘건 불길이 화면에 가득했습니다. 매캐한 연기 내음이 화면 너머로 전해오는 것만 같았죠. 정말 어이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던 그 날. 많은 이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그 날. 나중에 숭례문은 복구됐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는 숭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숭례문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은, 숭례문에서 떨어져 나와 영영 이별한 목부재들이 어느 화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1997년부터 해외 각지의 건축물을 화폭에 담아온 신선주 작가. 머나먼 나라의 이국적인 건축물들을 그려오던 작가는 우리 전통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립니다.

〈평부연 150(Flying rafter,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33×145cm, 2020〈평부연 150(Flying rafter,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33×145cm, 2020

숭례문의 목부재 가운데 하나인 평부연입니다. 부연(附椽)은 겹처마를 구성하는 처마서까래 끝에 거는 길이가 짧고 단면이 방형인 서까래의 일종인데요. 부연을 사용하면 처마를 길게 빼는 것 외에도 장식 효과를 줍니다. 평연 위에 올라간 부연은 평부연(벌부연), 선자연 위에 올라간 것은 고대부연(선자부연)으로 구분합니다. 전통건축 전문가가 아니면 좀 어렵죠.

중요한 건 작가가 이렇게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부재들을 하나하나 캔버스에 그려나갔다는 점입니다. 타다 남은 부재들의 피부에 남은 그을음까지도 검은 색조의 화면에 고스란히 되살렸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부속으로 서로를 잇고 지탱하던 힘을 놓고 수장고 선반에 쌓이고 놓인 부재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역사를, 세월을 품은 조소 작업 같았다."

 〈주간포 (Bracket set between Columns,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45×53cm, 2020 〈주간포 (Bracket set between Columns, 숭례문〉,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45×53cm, 2020

주간포(柱間包)는 말 그대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짜인 공포(栱包)입니다. 공포란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쪽을 뜻하죠. 우리 전통 건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을음에 덮여 희미하게 보이는 단청의 색이 아스라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컬러 팔레트(Color Palette)를 실험하듯 단청 색에 충실하게 컬러를 옮기려 했다. 덕분에 이전 B&W(Black & White) 작업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이 목부재는 색동저고리 형태 같다."

정물화의 소재로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숭례문의 한자리를 어엿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그러나 이제는 화마로 인한 상처를 간직한 채 수장고에 갇힌 목부재들을 향해 작가는 뜨거운 시선을 던집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 달라는 그 부재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정성을 다해 그려냄으로써 다시 살게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선 어떤 확고한 시각적 경험이 필요했죠. 그래서 작가는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때의 경험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작가가 2년의 공백을 거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만났습니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과 연생전의 밤 풍경을 담아낸 그림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작가의 설명과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블루 문(경복궁 연생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150×170cm, 20201〈블루 문(경복궁 연생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150×170cm, 20201

"이번 전시의 메인 작업, 깊고 푸른 'night blue' 아래 구름들(한 달에 가까운 새김 작업)이 일렁인다. 하지만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로 새긴 모노 톤의 처마 단청과 어울리기엔 다소 어지러워 과감하게 블루로 다시 덮어야 했다."

〈블루 클라우드(경복궁 근정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91×116.8cm, 2021〈블루 클라우드(경복궁 근정전)〉, 캔버스에 새김, 오일 파스텔, 아크릴릭, 91×116.8cm, 2021

"블루 문 작품과 다르게 맑고 푸른 밤 선명한 밤 구름의 율동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다."

신선주 작가는 2년이라는 긴 작업 공백 후 이번 전시에는 조심스럽고 어렵게 여기던 컬러를 들이며, 건축 정물화 같았던 작품은 형식적으로 더 선명한 목부재 정물화로, 다른 한 편은 다시 공간으로서 공기와 온도, 빛의 흐름을 담은 풍경으로 진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의 실마리는 늘 번뜩 떠오르고 사라지는 파편처럼 각인된다고 하죠.

"작업하면서 떠올리는 내 아이디어, 단상은 수필이나 설명서 같은 서술형이 아니다. 작품으로 그 단상의 형태나 색, 구도 재현은 파편처럼 떠올라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분산된 각각의 생각, 단어들은 작업 과정을 통해 이어지고 정리되며 엮여 이미지가 되었다."


■전시 정보
제목: 신선주 개인전 〈Maniere- noir : Royal Blue〉
기간: 2021년 5월 6일까지
장소: 서울시 용산구 갤러리비케이
작품: 회화, 입체 등 10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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