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들의 귀’ 수어통역사를 만나다

입력 2021.04.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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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통역사 조성현 씨(왼쪽)와 김동호 씨(오른쪽)한국수어통역사 조성현 씨(왼쪽)와 김동호 씨(오른쪽)

TV 뉴스 오른쪽 하단에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보여주는 또하나의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수어입니다. 줄여서 수어라고 부릅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농인의 언어가 됐습니다.

■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국어와 동등한 자격…"청각장애인들의 모국어"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로 인해 말까지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 들을 수 있는 청인들의 입장에서 수어는 단지 몸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인의 언어를 몸짓과 표정으로 통역하는 수어통역사들은 '수어는 농인들에게는 삶의 절실한 소통수단이고 간절히 필요한 모국어'라고 말합니다.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 " 청각장애인들 자막 아닌 수어로 정보 얻길 간절히 원해"

4월 20일 제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돼주고 있는 수어통역사 두분을 만났습니다. KBS TV는 물론 각종 행사에서 30년 가까이 수어통역을 해온 조성현 씨는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가 한국어듯이 농인(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언어는 수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청인들이 말하기를 '농인들도 한글을 배웠을 텐데 자막을 보면 되지 왜 굳이 TV에서 수어를 제공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농인들에게 한글은, 청인들에게 영어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수어는 또하나의 언어이기에 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자막이 아닌 수어 자체로 보길 간절히 원합니다."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가 지난 16일 KBS 1TV 뉴스 특보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수어통역사 조성현 씨가 지난 16일 KBS 1TV 뉴스 특보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 "토론 프로그램 통역 어려워…발언자 구별 위해 몸짓 표정까지 똑같이 따라하기도"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수어로 봐야만 청인들의 언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수어통역을 할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성현 씨는 출연자가 여러 명인 토론 프로그램 수어통역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말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하는데, 수어통역은 혼자서 합니다. 그래서 농인들이 수어통역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맞춰보는 게임같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발언자와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거나, 발언자의 표정까지 따라하면서 토론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청인의 입장에선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이었습니다. 참정권을 갖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선거를 앞둔 TV토론은 표심을 결정지을 중요한 정보의 장인데, 후보자의 정책 발표나 이견이 있을 때 벌어지는 진지한 토론을 누가 말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자의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 "수어 통역 매우 어렵고 섬세한 과정"

또 다른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를 만났습니다. KBS 뉴스를 비롯해 코로나19 관련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브리핑 수어통역을 맡고 있습니다.

20년째 수어통역을 하고 있는 김동호 씨도 역시 청인들의 언어를 농인들의 언어로 통역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섬세한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통역이라는 것은 말의 무게를 똑같이 전하는 것입니다. 단어 대 단어로 변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이 나왔을 때 통역사가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서 수어통역의 전달력이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표정 하나하나가 섬세해야 합니다. 다양한 표정과 표현들로 어떤 대상이나 사인이 큰지, 작은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강조해서 전하려 노력합니다. "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가 1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수어통역사 김동호 씨가 1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 "수어통역은 말의 무게를 전하는 것…수어 존재가 농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는 수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농인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농인이 있고, 그 농인이 필요로 하는 언어를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농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수어통역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수어통역을 하는 저조차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농인들은 수어를 절실히 원하십니다."

■ "농인들 수어 통역 절실히 원해…삶 속에서 수어라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보이길"

김동호 통역사는 그러면서 정보를 주고 받고, 감정을 전하고 이해하고, 일상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언어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통의 수단이듯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바로 그런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감정을 꺼내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농인들에게는 그것이 수어입니다. 그래서 수어는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오아시스 물을 마심으로써 삶의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거죠.

삶 속에서 수어라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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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각장애인들의 귀’ 수어통역사를 만나다
    • 입력 2021-04-20 10:01:21
    취재K
한국수어통역사 조성현 씨(왼쪽)와 김동호 씨(오른쪽)
TV 뉴스 오른쪽 하단에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보여주는 또하나의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수어입니다. 줄여서 수어라고 부릅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농인의 언어가 됐습니다.

■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국어와 동등한 자격…"청각장애인들의 모국어"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로 인해 말까지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 들을 수 있는 청인들의 입장에서 수어는 단지 몸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인의 언어를 몸짓과 표정으로 통역하는 수어통역사들은 '수어는 농인들에게는 삶의 절실한 소통수단이고 간절히 필요한 모국어'라고 말합니다.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 " 청각장애인들 자막 아닌 수어로 정보 얻길 간절히 원해"

4월 20일 제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돼주고 있는 수어통역사 두분을 만났습니다. KBS TV는 물론 각종 행사에서 30년 가까이 수어통역을 해온 조성현 씨는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가 한국어듯이 농인(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언어는 수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청인들이 말하기를 '농인들도 한글을 배웠을 텐데 자막을 보면 되지 왜 굳이 TV에서 수어를 제공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농인들에게 한글은, 청인들에게 영어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수어는 또하나의 언어이기에 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자막이 아닌 수어 자체로 보길 간절히 원합니다."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가 지난 16일 KBS 1TV 뉴스 특보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 "토론 프로그램 통역 어려워…발언자 구별 위해 몸짓 표정까지 똑같이 따라하기도"

수어통역사 조성현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수어로 봐야만 청인들의 언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수어통역을 할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성현 씨는 출연자가 여러 명인 토론 프로그램 수어통역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말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하는데, 수어통역은 혼자서 합니다. 그래서 농인들이 수어통역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맞춰보는 게임같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발언자와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거나, 발언자의 표정까지 따라하면서 토론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청인의 입장에선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이었습니다. 참정권을 갖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선거를 앞둔 TV토론은 표심을 결정지을 중요한 정보의 장인데, 후보자의 정책 발표나 이견이 있을 때 벌어지는 진지한 토론을 누가 말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자의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 "수어 통역 매우 어렵고 섬세한 과정"

또 다른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를 만났습니다. KBS 뉴스를 비롯해 코로나19 관련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브리핑 수어통역을 맡고 있습니다.

20년째 수어통역을 하고 있는 김동호 씨도 역시 청인들의 언어를 농인들의 언어로 통역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섬세한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통역이라는 것은 말의 무게를 똑같이 전하는 것입니다. 단어 대 단어로 변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이 나왔을 때 통역사가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서 수어통역의 전달력이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표정 하나하나가 섬세해야 합니다. 다양한 표정과 표현들로 어떤 대상이나 사인이 큰지, 작은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강조해서 전하려 노력합니다. "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가 1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 "수어통역은 말의 무게를 전하는 것…수어 존재가 농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

수어통역사 김동호 씨는 수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농인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농인이 있고, 그 농인이 필요로 하는 언어를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농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수어통역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수어통역을 하는 저조차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농인들은 수어를 절실히 원하십니다."

■ "농인들 수어 통역 절실히 원해…삶 속에서 수어라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보이길"

김동호 통역사는 그러면서 정보를 주고 받고, 감정을 전하고 이해하고, 일상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언어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통의 수단이듯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바로 그런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감정을 꺼내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농인들에게는 그것이 수어입니다. 그래서 수어는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오아시스 물을 마심으로써 삶의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거죠.

삶 속에서 수어라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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