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학위’ 지도교수에게 연구 용역·장학금…수상한 ‘박사’

입력 2021.04.20 (16:36) 수정 2021.04.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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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의원 300명 가운데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183명. KBS는 이들이 정당한 노력을 들여 학위를 받았는지 검증해 연속 보도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과정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홍보하려고 학위를 내세우지만,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논문을 검사한 결과, 학계에서 논문 철회를 고민하는 수준인 유사도 20% 이상인 논문이 34편이었다.

KBS는 이 가운데 해당 분야 전문성, 지도교수와의 관계, 표절 의심 신고 사례 등의 기준에 따라 모두 6건을 추려 연구 윤리 전문가에게 정밀 분석을 의뢰했고, 모두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오늘은 이 중 무소속 박덕흠,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의 학위 논문을 살펴본다. 논문 표절 여부를 넘어, 논문을 통과시켜 준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추적했다.


■ 자칭 '국토 전문가', 박사논문은 표절?

"1년 정도는 제가 보니까 공기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요? 저는 국토 전문가입니다." (21대 총선 후보자 토론회)

무소속 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4월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대표적인 '건설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을 역임했고, 2012년부터 내리 3선을 하며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일했다.

국토교통위는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진입 경쟁이 치열한 '인기' 상임위다.

박 의원이 박사 학위를 딴 전공 분야 역시 '토목공학'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이었던 2010년 한양대에서 받았다.

논문 제목은 '무기질계 보강재료의 친환경성 및 내구성'으로 참고 문헌을 빼면 113쪽 분량이다. 당시 건설 분야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박덕흠 회장 한양대서 박사 학위 취득'이란 제목의 기사가 여러 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논문을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했더니, 같은 대학원에서 한두 해 먼저 나온 석사 논문 3개와 유사도가 눈에 띄게 높게 나왔다. 취재팀은 해당 논문들과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해봤다.

논문 '2장 이론적 배경'의 경우, 비교한 석사 논문들과 20여 쪽에 걸쳐 소제목, 문장, 각종 표 등이 똑같았다.


이뿐만 아니라 논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장 시험 방법'과 '4장 시험 결과' 부분에서도 동일한 문장이 여러 개 발견됐다.


KBS의 의뢰로 이 논문을 검증한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는 "명백한 표절"이라고 판단했다. 선행 연구자의 연구물에서 그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출처 표기를 하지 않고 자신이 쓴 척했다는 것이다.


■ 가족회사가 논문 지도교수에 연구 용역…"필요해서 맡긴 것"

박 의원의 지도교수는 한국지반환경공학회 이사와 학회장 등을 지낸 원로 학자다. 취재팀은 이 학회가 정부 기관이나 민간기업 등 외부에서 연구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한 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박 의원 측이 이 학회에 5천만 원짜리 연구 용역을 의뢰한 내역을 발견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박 의원의 지도교수였다. 시점은 2006년으로 박 의원이 박사과정 중일 때입니다.

용역을 의뢰한 업체는 한 건설회사인데, 이 회사의 등기부를 보면 박 의원이 여러 해 대표를 맡았던 가족 회사다.

한국지반환경공학회 외부 연구 용역 수행 내역한국지반환경공학회 외부 연구 용역 수행 내역

박 의원은 같은 해 논문지도 교수가 소장으로 있던 한양대 부설 연구소에 장학금도 기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의원 지도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2006년 당시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 조성 취지를 설명했고 제자 가운데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십여 명 됐다며, "박 의원은 한 2, 3천만 원 정도 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박 의원 가족회사가 의뢰한 연구 용역을 수행한 것에 대해서는 "해당 회사가 필요해서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는 논문 표절 의심 부분에 대해 박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 의원은 응하지 않았다.


■ 김희국 "교수가 대신 인용 표시"… 특별 대우?

그런가 하면 정부부처 차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동시에 학위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이다.

김 의원은 2012년 초까지 국토부 차관으로 일하다가, 그 해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공천을 앞둔 2012년 2월, 광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 의원 논문을 보면 다른 대학 김 모 씨의 2년 전 박사학위 논문과 상당 부분 겹친다. 모두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 참고 문헌에 해당 논문명을 적어놓긴 했는데 저자의 소속 대학 이름을 잘못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 논문을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 유사도는 34%였다.


KBS 의뢰로 이 논문을 검증한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타인의 저작물 상당 부분을 적절한 출처 표기 없이 활용했다"라면서 "전형적인 표절"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KBS 질의에 자신이 직접 논문을 쓴 건 맞다면서도 " 인용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형식은 당시 교수님께 고쳐달라고 했다 . 내가 잘 모른다"고 밝혔다. 또 석사 학위를 딴 뒤 박사 과정에서 쓴 학술 논문에 대해서도 인용 표시 등을 지도교수에게 일임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 말이 사실이라면 특별 대우로 볼 수 있다. 서울대 생명윤리 심의위원인 서이종 사회학과 교수는 "인용 표시는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도교수의 책임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 박사 과정 중 학회장 취임, 이유는?

김 의원의 논문 지도교수는 2015년 건설법무학회라는 이름의 학회를 만들었다. 이 학회 초대 회장은 바로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당시 박사 과정 중이었다. 교수가 아닌 학생이 학회장을 맡는 것은 학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학회는 국토부에 설립 신청을 냈고, 심사를 거쳐 두 달 만에 설립 승인이 떨어졌다. 이때 김 의원은 국토부를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이었다. 김 의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스스로 학회장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건설법무학회 사진한국건설법무학회 사진

김 의원의 지도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특혜를 제공한 게 있느냐는 KBS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광운대 측은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해 김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은 당시 내규상 졸업 필수 요건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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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0 16:36:26
    • 수정2021-04-20 19:39:10
    탐사K

21대 의원 300명 가운데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183명. KBS는 이들이 정당한 노력을 들여 학위를 받았는지 검증해 연속 보도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과정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홍보하려고 학위를 내세우지만,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논문을 검사한 결과, 학계에서 논문 철회를 고민하는 수준인 유사도 20% 이상인 논문이 34편이었다.

KBS는 이 가운데 해당 분야 전문성, 지도교수와의 관계, 표절 의심 신고 사례 등의 기준에 따라 모두 6건을 추려 연구 윤리 전문가에게 정밀 분석을 의뢰했고, 모두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오늘은 이 중 무소속 박덕흠,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의 학위 논문을 살펴본다. 논문 표절 여부를 넘어, 논문을 통과시켜 준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추적했다.


■ 자칭 '국토 전문가', 박사논문은 표절?

"1년 정도는 제가 보니까 공기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요? 저는 국토 전문가입니다." (21대 총선 후보자 토론회)

무소속 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4월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대표적인 '건설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을 역임했고, 2012년부터 내리 3선을 하며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일했다.

국토교통위는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진입 경쟁이 치열한 '인기' 상임위다.

박 의원이 박사 학위를 딴 전공 분야 역시 '토목공학'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이었던 2010년 한양대에서 받았다.

논문 제목은 '무기질계 보강재료의 친환경성 및 내구성'으로 참고 문헌을 빼면 113쪽 분량이다. 당시 건설 분야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박덕흠 회장 한양대서 박사 학위 취득'이란 제목의 기사가 여러 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논문을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했더니, 같은 대학원에서 한두 해 먼저 나온 석사 논문 3개와 유사도가 눈에 띄게 높게 나왔다. 취재팀은 해당 논문들과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해봤다.

논문 '2장 이론적 배경'의 경우, 비교한 석사 논문들과 20여 쪽에 걸쳐 소제목, 문장, 각종 표 등이 똑같았다.


이뿐만 아니라 논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장 시험 방법'과 '4장 시험 결과' 부분에서도 동일한 문장이 여러 개 발견됐다.


KBS의 의뢰로 이 논문을 검증한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는 "명백한 표절"이라고 판단했다. 선행 연구자의 연구물에서 그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출처 표기를 하지 않고 자신이 쓴 척했다는 것이다.


■ 가족회사가 논문 지도교수에 연구 용역…"필요해서 맡긴 것"

박 의원의 지도교수는 한국지반환경공학회 이사와 학회장 등을 지낸 원로 학자다. 취재팀은 이 학회가 정부 기관이나 민간기업 등 외부에서 연구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한 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박 의원 측이 이 학회에 5천만 원짜리 연구 용역을 의뢰한 내역을 발견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박 의원의 지도교수였다. 시점은 2006년으로 박 의원이 박사과정 중일 때입니다.

용역을 의뢰한 업체는 한 건설회사인데, 이 회사의 등기부를 보면 박 의원이 여러 해 대표를 맡았던 가족 회사다.

한국지반환경공학회 외부 연구 용역 수행 내역
박 의원은 같은 해 논문지도 교수가 소장으로 있던 한양대 부설 연구소에 장학금도 기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의원 지도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2006년 당시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 조성 취지를 설명했고 제자 가운데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십여 명 됐다며, "박 의원은 한 2, 3천만 원 정도 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박 의원 가족회사가 의뢰한 연구 용역을 수행한 것에 대해서는 "해당 회사가 필요해서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는 논문 표절 의심 부분에 대해 박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 의원은 응하지 않았다.


■ 김희국 "교수가 대신 인용 표시"… 특별 대우?

그런가 하면 정부부처 차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동시에 학위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이다.

김 의원은 2012년 초까지 국토부 차관으로 일하다가, 그 해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공천을 앞둔 2012년 2월, 광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 의원 논문을 보면 다른 대학 김 모 씨의 2년 전 박사학위 논문과 상당 부분 겹친다. 모두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 참고 문헌에 해당 논문명을 적어놓긴 했는데 저자의 소속 대학 이름을 잘못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 논문을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 유사도는 34%였다.


KBS 의뢰로 이 논문을 검증한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타인의 저작물 상당 부분을 적절한 출처 표기 없이 활용했다"라면서 "전형적인 표절"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KBS 질의에 자신이 직접 논문을 쓴 건 맞다면서도 " 인용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형식은 당시 교수님께 고쳐달라고 했다 . 내가 잘 모른다"고 밝혔다. 또 석사 학위를 딴 뒤 박사 과정에서 쓴 학술 논문에 대해서도 인용 표시 등을 지도교수에게 일임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 말이 사실이라면 특별 대우로 볼 수 있다. 서울대 생명윤리 심의위원인 서이종 사회학과 교수는 "인용 표시는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도교수의 책임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 박사 과정 중 학회장 취임, 이유는?

김 의원의 논문 지도교수는 2015년 건설법무학회라는 이름의 학회를 만들었다. 이 학회 초대 회장은 바로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당시 박사 과정 중이었다. 교수가 아닌 학생이 학회장을 맡는 것은 학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학회는 국토부에 설립 신청을 냈고, 심사를 거쳐 두 달 만에 설립 승인이 떨어졌다. 이때 김 의원은 국토부를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이었다. 김 의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스스로 학회장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건설법무학회 사진
김 의원의 지도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특혜를 제공한 게 있느냐는 KBS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광운대 측은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해 김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은 당시 내규상 졸업 필수 요건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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