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실패한 베를린의 월세상한제…헌재 “권한 없어 원천 무효”

입력 2021.04.21 (08:01) 수정 2021.04.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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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주택가.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시의 월세 상한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베를린 시내 주택가.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시의 월세 상한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현지시간 15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시가 시행하고 있는 월세 상한제가 무효라고 결정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월세를 잡기 위해 베를린 시가 내놓은 회심의 정책이었는데 시행 1년 만에 헌재에서 제동이 걸린 겁니다.

무효를 선언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월세를 제한하는 건 지방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의 권한이기 때문에 월세 상한을 규정한 베를린 시 관련법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헌재의 선언으로 베를린 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치솟는 임대료에 맞선 베를린의 실험 "5년간 월세 동결"

베를린 시의 월세 상한제, 또는 월세 동결 법안은 2019년 10월에 발표돼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됐습니다.

2014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한해서 5년 동안 월세를 동결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2020년 2월 22일 이후 체결되는 임대계약은 베를린 시 정부가 정한 ' 월세상한표'대로 계약을 하도록 했습니다.

법 시행 당시 월세가 시세보다 20% 이상 높다면 깎아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월세 시세가 100만 원으로 측정된 집인데 130만 원의 월세를 받고 있다면 법 시행과 함께 120만 원으로 내려야 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최대 1.3%까지 인상이 가능했지만, 그것도 월세상한표의 기준을 넘어선 안됐습니다.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신축 건물은 예외로 했습니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갔다는 점 등을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베를린 내 150만 개 월셋집이 월세 상한제의 적용을 받았고, 월세는 2019년 6월 수준으로 동결됐습니다.

베를린의 월세는 월세 상한제 시행 전까지 최근 5년간 22%가 올랐습니다. 2019년엔 방 두 개에 550유로짜리 월셋집에 무려 1,700명이 몰려, 줄을 서 집을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월세 상한제는 폭등하는 임대료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베를린 정부의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제도 도입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베를린 시 월셋집의 평균 월세는 2019년보다 최대 11%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신규 월셋집 공급이 절반 정도로 줄었는데, 월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베를린 월세 상한제를 무효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 (출처=독일 연방 헌재 홈페이지 갈무리)베를린 월세 상한제를 무효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 (출처=독일 연방 헌재 홈페이지 갈무리)

■독일 헌법재판소 "월세 제한은 베를린 권한 아냐…무효"

베를린은 연방정부 연립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이 힘을 못 쓰는 지역 중의 한 곳입니다. 한때 집권당이었지만 이제 15% 안팎의 지지율을 겨우 얻고 있는 사회민주당(SPD) 소속 미하엘 뮐러가 시장이고 시 정부는 SPD와 좌파당·녹색당이 연정을 꾸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색체가 강한 베를린 시 정부였기에 16개 주 정부 중 유일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월세 상한제를 도입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도 시행 3개월도 안 돼 CDU·CSU 연합과 자유민주당(FDP) 소속 연방의원 284명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냈습니다. 월세 관련 법령을 만드는 건 연방 입법기관의 일인데 베를린 시가 권한을 넘어선 입법행위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1년 가깝게 심리를 해 온 독일 헌재는 지난 15일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는 무효!"

헌재의 결정 내용은 이렇습니다. 16개 연방 주들은 연방이 입법 권한을 최종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연방의회가 입법 조치를 미루고 있거나, 입법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입법 권한을 갖는데, 월세 제한과 관련된 법률은 이미 연방의회에서 2015년 제정됐기 때문에 베를린 시에 입법권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는 원천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독일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임대사업자나 집주인의 재산권 등 기본권 제한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 입법권에 대한 헌법 통제만 다뤘습니다.

월세 상한제 무효 결정이 내려지자 베를린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규탄 시위를 벌였다.월세 상한제 무효 결정이 내려지자 베를린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집주인 "못 받은 돈 받을 것"…세입자 "연방의회가 나서라"

베를린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또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도 시행으로 월세를 올리지 못한 집주인들이 '못 받은 돈'을 받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법안이 처음부터 무효라고 선언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집주인들은 지난해 세입자들과 계약을 하며 만약 헌재에서 월세 상한제가 무효화된다면 얼마를 추가 지급하라는 조항을 삽입했습니다.

한 교민은 지난해 9월에 방 두 개 짜리 작은 집에 월 410유로에 계약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계약서에 삽입된 조항은 원래 월세는 500유로이니 법 무효가 선언되면 계약 시점부터 매월 90유로를 추가로 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민 8개월을 살았으니 720유로를 추가로 집주인에게 내야 되고, 다음 달부터 500유로씩 월세를 내야 합니다.

세입자들은 당연히 망연자실했습니다. 헌재 결정 당일 베를린 시내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이 행진을 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미 헌재의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베를린 시 정부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결국 연방의회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연방의회가 베를린 시 정부처럼 '월세 상한제' 같은 제도를 들고 나설지는 미지수입니다. 집권 CDU·CSU 연정은 '공급 확대'가 해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임차인의 부담을 실제 덜어주려면 시장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하고, 결국은 공급 증대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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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1 08:00:59
    • 수정2021-04-21 10:30:57
    국제
베를린 시내 주택가.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시의 월세 상한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현지시간 15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시가 시행하고 있는 월세 상한제가 무효라고 결정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월세를 잡기 위해 베를린 시가 내놓은 회심의 정책이었는데 시행 1년 만에 헌재에서 제동이 걸린 겁니다.

무효를 선언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월세를 제한하는 건 지방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의 권한이기 때문에 월세 상한을 규정한 베를린 시 관련법은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헌재의 선언으로 베를린 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치솟는 임대료에 맞선 베를린의 실험 "5년간 월세 동결"

베를린 시의 월세 상한제, 또는 월세 동결 법안은 2019년 10월에 발표돼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됐습니다.

2014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한해서 5년 동안 월세를 동결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2020년 2월 22일 이후 체결되는 임대계약은 베를린 시 정부가 정한 ' 월세상한표'대로 계약을 하도록 했습니다.

법 시행 당시 월세가 시세보다 20% 이상 높다면 깎아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월세 시세가 100만 원으로 측정된 집인데 130만 원의 월세를 받고 있다면 법 시행과 함께 120만 원으로 내려야 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최대 1.3%까지 인상이 가능했지만, 그것도 월세상한표의 기준을 넘어선 안됐습니다.

2014년 이후에 지어진 신축 건물은 예외로 했습니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갔다는 점 등을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베를린 내 150만 개 월셋집이 월세 상한제의 적용을 받았고, 월세는 2019년 6월 수준으로 동결됐습니다.

베를린의 월세는 월세 상한제 시행 전까지 최근 5년간 22%가 올랐습니다. 2019년엔 방 두 개에 550유로짜리 월셋집에 무려 1,700명이 몰려, 줄을 서 집을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월세 상한제는 폭등하는 임대료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베를린 정부의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제도 도입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베를린 시 월셋집의 평균 월세는 2019년보다 최대 11%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신규 월셋집 공급이 절반 정도로 줄었는데, 월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베를린 월세 상한제를 무효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 (출처=독일 연방 헌재 홈페이지 갈무리)
■독일 헌법재판소 "월세 제한은 베를린 권한 아냐…무효"

베를린은 연방정부 연립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이 힘을 못 쓰는 지역 중의 한 곳입니다. 한때 집권당이었지만 이제 15% 안팎의 지지율을 겨우 얻고 있는 사회민주당(SPD) 소속 미하엘 뮐러가 시장이고 시 정부는 SPD와 좌파당·녹색당이 연정을 꾸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색체가 강한 베를린 시 정부였기에 16개 주 정부 중 유일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월세 상한제를 도입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도 시행 3개월도 안 돼 CDU·CSU 연합과 자유민주당(FDP) 소속 연방의원 284명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냈습니다. 월세 관련 법령을 만드는 건 연방 입법기관의 일인데 베를린 시가 권한을 넘어선 입법행위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1년 가깝게 심리를 해 온 독일 헌재는 지난 15일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는 무효!"

헌재의 결정 내용은 이렇습니다. 16개 연방 주들은 연방이 입법 권한을 최종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연방의회가 입법 조치를 미루고 있거나, 입법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입법 권한을 갖는데, 월세 제한과 관련된 법률은 이미 연방의회에서 2015년 제정됐기 때문에 베를린 시에 입법권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는 원천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독일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임대사업자나 집주인의 재산권 등 기본권 제한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 입법권에 대한 헌법 통제만 다뤘습니다.

월세 상한제 무효 결정이 내려지자 베를린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집주인 "못 받은 돈 받을 것"…세입자 "연방의회가 나서라"

베를린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또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도 시행으로 월세를 올리지 못한 집주인들이 '못 받은 돈'을 받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법안이 처음부터 무효라고 선언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집주인들은 지난해 세입자들과 계약을 하며 만약 헌재에서 월세 상한제가 무효화된다면 얼마를 추가 지급하라는 조항을 삽입했습니다.

한 교민은 지난해 9월에 방 두 개 짜리 작은 집에 월 410유로에 계약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계약서에 삽입된 조항은 원래 월세는 500유로이니 법 무효가 선언되면 계약 시점부터 매월 90유로를 추가로 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민 8개월을 살았으니 720유로를 추가로 집주인에게 내야 되고, 다음 달부터 500유로씩 월세를 내야 합니다.

세입자들은 당연히 망연자실했습니다. 헌재 결정 당일 베를린 시내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이 행진을 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미 헌재의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베를린 시 정부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결국 연방의회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연방의회가 베를린 시 정부처럼 '월세 상한제' 같은 제도를 들고 나설지는 미지수입니다. 집권 CDU·CSU 연정은 '공급 확대'가 해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임차인의 부담을 실제 덜어주려면 시장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하고, 결국은 공급 증대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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