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뜨다 추락한 헬기…사고 원인은?

입력 2021.04.25 (07:02) 수정 2021.04.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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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
"물을 담는 게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추락하더라고요."

지난 21일 오후 2시 57분,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헬기 한 대가 물에 빠졌다는 신고였습니다. 사고지점은 충북 청주 대청호 문의대교 인근. 헬기가 수면 가까이 내려왔다가 중심을 잃으면서 다시 날아오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 대청호에 산불진화헬기 추락… 1명 숨지고 1명 다쳐

기장은 추락 직후 스스로 탈출해 관할 지구대 경찰에 구조됐습니다. 하지만 부기장과 헬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수 위에 뜬 기름과 파편이 물 아래 가라앉은 헬기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는 보트를 띄워 기름띠 주변 물속을 수색한 끝에 헬기와 부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부기장은 심정지 상태에서 구조돼 숨졌습니다.

사고 헬기는 충청북도가 대전지역 민간항공운송사, 헬리코리아에서 임차한 'S-76C+' 기종입니다. 충북 옥천과 근처 지역 화재를 진화해왔습니다. 산불은 피해 규모가 큰 재난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헬기를 보유하고 운용하기에는 큰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필요할 때만 헬기와 조종사를 민간에서 빌려 투입하고 있는 겁니다.

기장과 부기장은 사고가 난 21일, 충청북도의 요청으로 청주의 한 야산에 난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충북 옥천에 있는 계류장으로 복귀하다가 또 다른 화재 현장에 출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현장에 가기 전, 대청호에 들러 헬기 물탱크에 다시 물을 채워넣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 "물주머니 방식, 사고 위험 더 커"

화재 진화에 투입하는 헬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물을 담습니다.

먼저 헬기 자체에 물탱크가 달려있는 경우입니다. 헬기가 공중에 멈춰선 상태(호버링)에서 호스를 수면으로 내려 물을 빨아들이는 방식입니다. 물탱크에 물이 가득 차면 화재 현장으로 날아가 헬기 바닥면에 있는 문을 열어 물을 뿌리는 방식입니다. 벨리 탱크(Belly tank)라고 불리는 물탱크는 기종에 따라 탈부착할 수 있습니다.

물탱크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산림청 제공)물탱크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산림청 제공)
반면, 이번 사고 기종은 물탱크가 없는 헬기입니다. 대신 줄을 매달아 사용하는 물주머니를 달고 출동했습니다. 밤비 버킷(Bambi bucket)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헬기에도 쉽게 장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습니다. 담수 과정에서 송전탑 같은 장애물에 걸릴 수 있고, 바람 저항도 강해져 비행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물주머니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부산 금정소방서 제공)물주머니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부산 금정소방서 제공)
특히, 수면에 빨대를 꽂아 빨아올리는 형태의 물탱크 방식에 비해 물주머니 방식은 조종사의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물주머니를 물에 담그는 과정에서 조종사가 직접 헬기와 수면 사이의 거리를 판단해야 합니다. 최연철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는 "(조종사가) 물의 파동을 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헬기가 내려가거나 올라갈 수 있다"면서 "수면에 접촉하면 헬기는 전복하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주머니 방식은 종종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킵니다. 2017년, 11월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기장 1명이 숨졌습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매뉴얼에 명시된 길이보다 긴 화재진화용 물주머니를 매달고 비행하다가 (물주머니가) 꼬리 회전날개를 타격해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습니다.

■ 에어백·크레인으로 인양 …"정확한 원인 규명 시간 걸려"

대청호에 빠진 헬기 인양작업은 하루 종일(23일) 진행됐습니다. 먼저 잠수부 8명이 수심 20m까지 내려가 빈 튜브(에어백)를 장착했습니다. 그리고 튜브에 연결된 호스로 공기를 불어넣자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고 발생 이틀 만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헬기를 사고 지점에서 800여m 떨어진 문의대교까지 인양한 뒤, 다리 위에 설치한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지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헬기를 김포공항에 있는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 시험분석실로 옮겨 파손된 헬기와 잔해, 엔진 상태, 승무원의 비행 이력과 음성 기록까지 10여 가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특히 추락 경위를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가 남아있을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를 별도로 떼어 정밀 분석할 예정입니다.

다만 통상 항공기 사고 조사 기간이 1년 이상으로 긴 데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이승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은 "헬기 제작사인 시코르스키가 미국 회사이다 보니 팬데믹에서 공동으로 사고 원인 조사를 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위는 생존한 기장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도 자세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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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5 07:02:15
    • 수정2021-04-25 15:09:45
    취재K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 "물을 담는 게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추락하더라고요."

지난 21일 오후 2시 57분,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헬기 한 대가 물에 빠졌다는 신고였습니다. 사고지점은 충북 청주 대청호 문의대교 인근. 헬기가 수면 가까이 내려왔다가 중심을 잃으면서 다시 날아오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 대청호에 산불진화헬기 추락… 1명 숨지고 1명 다쳐

기장은 추락 직후 스스로 탈출해 관할 지구대 경찰에 구조됐습니다. 하지만 부기장과 헬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수 위에 뜬 기름과 파편이 물 아래 가라앉은 헬기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는 보트를 띄워 기름띠 주변 물속을 수색한 끝에 헬기와 부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부기장은 심정지 상태에서 구조돼 숨졌습니다.

사고 헬기는 충청북도가 대전지역 민간항공운송사, 헬리코리아에서 임차한 'S-76C+' 기종입니다. 충북 옥천과 근처 지역 화재를 진화해왔습니다. 산불은 피해 규모가 큰 재난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헬기를 보유하고 운용하기에는 큰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필요할 때만 헬기와 조종사를 민간에서 빌려 투입하고 있는 겁니다.

기장과 부기장은 사고가 난 21일, 충청북도의 요청으로 청주의 한 야산에 난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충북 옥천에 있는 계류장으로 복귀하다가 또 다른 화재 현장에 출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현장에 가기 전, 대청호에 들러 헬기 물탱크에 다시 물을 채워넣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 "물주머니 방식, 사고 위험 더 커"

화재 진화에 투입하는 헬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물을 담습니다.

먼저 헬기 자체에 물탱크가 달려있는 경우입니다. 헬기가 공중에 멈춰선 상태(호버링)에서 호스를 수면으로 내려 물을 빨아들이는 방식입니다. 물탱크에 물이 가득 차면 화재 현장으로 날아가 헬기 바닥면에 있는 문을 열어 물을 뿌리는 방식입니다. 벨리 탱크(Belly tank)라고 불리는 물탱크는 기종에 따라 탈부착할 수 있습니다.

물탱크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산림청 제공)반면, 이번 사고 기종은 물탱크가 없는 헬기입니다. 대신 줄을 매달아 사용하는 물주머니를 달고 출동했습니다. 밤비 버킷(Bambi bucket)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헬기에도 쉽게 장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습니다. 담수 과정에서 송전탑 같은 장애물에 걸릴 수 있고, 바람 저항도 강해져 비행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물주머니 방식의 산불진화 헬기(사진: 부산 금정소방서 제공)특히, 수면에 빨대를 꽂아 빨아올리는 형태의 물탱크 방식에 비해 물주머니 방식은 조종사의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물주머니를 물에 담그는 과정에서 조종사가 직접 헬기와 수면 사이의 거리를 판단해야 합니다. 최연철 한서대학교 항공학부 교수는 "(조종사가) 물의 파동을 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헬기가 내려가거나 올라갈 수 있다"면서 "수면에 접촉하면 헬기는 전복하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주머니 방식은 종종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킵니다. 2017년, 11월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기장 1명이 숨졌습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매뉴얼에 명시된 길이보다 긴 화재진화용 물주머니를 매달고 비행하다가 (물주머니가) 꼬리 회전날개를 타격해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습니다.

■ 에어백·크레인으로 인양 …"정확한 원인 규명 시간 걸려"

대청호에 빠진 헬기 인양작업은 하루 종일(23일) 진행됐습니다. 먼저 잠수부 8명이 수심 20m까지 내려가 빈 튜브(에어백)를 장착했습니다. 그리고 튜브에 연결된 호스로 공기를 불어넣자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고 발생 이틀 만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헬기를 사고 지점에서 800여m 떨어진 문의대교까지 인양한 뒤, 다리 위에 설치한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지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충북 청주 대청호에 추락한 산불진화용 헬기가 인양되고 있다.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헬기를 김포공항에 있는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 시험분석실로 옮겨 파손된 헬기와 잔해, 엔진 상태, 승무원의 비행 이력과 음성 기록까지 10여 가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특히 추락 경위를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가 남아있을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를 별도로 떼어 정밀 분석할 예정입니다.

다만 통상 항공기 사고 조사 기간이 1년 이상으로 긴 데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이승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은 "헬기 제작사인 시코르스키가 미국 회사이다 보니 팬데믹에서 공동으로 사고 원인 조사를 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위는 생존한 기장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도 자세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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