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끼이고…작년에만 9만 2천 명

입력 2021.04.28 (06:00) 수정 2021.04.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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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을 돌며 불시 안전 점검을 벌이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단속 현장에 KBS가 동행했다.공사장을 돌며 불시 안전 점검을 벌이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단속 현장에 KBS가 동행했다.

92,383명.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숨지거나 다쳤던 노동자의 수입니다.

최근 5년 동안 각종 산재 사고로 해마다 8~9만 명이 숨지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망자 수만 보면 882명. 1년 전보다 27명이 더 늘었습니다.

피해가 끊이지 않자 사망 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현장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법 제정 이후,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건설 현장 불시 점검에 KBS가 동행해 취재해봤습니다.

한 인부가 안전모에 보호 장구도 없이 외벽 작업대 위에 걸터앉아 일하고 있다.한 인부가 안전모에 보호 장구도 없이 외벽 작업대 위에 걸터앉아 일하고 있다.

■ 무작위 점검했더니… 위험은 남일?

산업안전보건공단 단속반과 취재진은 충북 청주의 여러 공사 현장을 불시에 무작위로 살펴봤습니다.
한 5층 다가구 주택 공사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노동자 3명이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일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포착됐습니다.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을 확인하자 급히 차에 둔 안전모를 꺼내오더니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달해 황급히 썼습니다.

단속반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한 노동자는 보호 장구도 없이 4층 외벽 작업대에 걸터앉아 아슬아슬하게 도장 작 을 하고 있었습니다 . 건물 층마다 설치해야 하는 외벽 작업용 받침대가 일부 층에만 듬성듬성 설치돼있었습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봤습니다. 2~3m 높이의 천장 작업대에는 떨어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난간을 설치해야 하지만, 추락 피해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었습니다.

내부 계단으로 5층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습니다. 계단마다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난간을 설치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속반 직원이 "왜 안전 난간을 뜯었냐"고 묻자, 현장 소장은 "벽돌을 지고 올가가는 게 불편해서 떼어버렸다"고 털어놨습니다.

타설 작업이 한창인 근처의 또 다른 공사 현장도 가봤습니다.
콘크리트를 살포하는 특수차와 레미콘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지만, 노동자들의 접근을 통제하거나 차량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신호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작업 기계와 연결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외부 콘센트는 접지선이 끊겨 감전사고 위험에 노출 돼 있었습니다.

다가구 주택이나 다중이용시설 공사 현장 곳곳에서 안전 수칙 위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26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가 트럭에 치여 숨졌다.지난 26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가 트럭에 치여 숨졌다.

■ 덤프트럭에 치여… 건설현장 노동자 3명 숨져

산업 현장의 불시 점검이 이뤄진 지 불과 닷새 만에 사망 사고는 또 벌어졌습니다.

지난 26일 낮 12시 40분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 근처 상행선 확장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25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습니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은 안전 감독 책임자인 현장 소장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사고 당시 차량 주변을 통제하는 신호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고 역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충북 괴산군 문광면의 한 공사장에서는 덤프트럭에 치인 40대 노동자가 숨졌고, 지난 2월에도 충북 음성군 생극면의 한 공사장에서 50대 노동자가 토사를 운반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모두 주변에서 일하거나 이동 중인 노동자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망 사고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해마다 800~900명. 사상자는 모두 80,000~90,000명에 이른다.최근 5년 동안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해마다 800~900명. 사상자는 모두 80,000~90,000명에 이른다.

■ 각종 산업 재해 잇따라… 사상자 한 해 평균 8만 8천여 명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고로 숨지는 유형은 다양합니다. 이 가운데, 추락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은데요.

올해 들어서만 넉 달도 안 돼 벌써 5명이 숨졌습니다. 지난 3월, 경기도 3곳과 서울시 1곳에서 아파트 외벽에서 도장과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추락해 숨졌고, 지난달 전라남도에서 역시 아파트 도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구명줄을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사망 사고들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 사고로 숨진 노동자 882명 가운데, 37%인 328명이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에서 458명, 제조업에서 201명이 숨졌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산재 사망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노동자는 44만여 명입니다. 해마다 평균 8만 8천여 명이 노동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겁니다.

충북 청주의 한 공사장에 ‘추락 사고 예방’ 현수막에 내걸렸다.충북 청주의 한 공사장에 ‘추락 사고 예방’ 현수막에 내걸렸다.

■ "산재 사고는 인명 경시의 문제"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올해 산재 사망 사고의 비율을 20% 줄이겠다는 목표에 따라 ‘산업안전보건 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고용노동부는 최근 2년 동안 연속해서 중대 재해가 발생한 업체에 대해, 올해 중대 재해가 1건만 발생해도 본사와 전국 모든 건설 현장을 안전 감독하기로 했습니다.

건설업 다음으로 산재 사망 사고가 잦은 제조업 사업장에 대해서는 원청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홍윤철 서울대학교 직업환경의학 교수는 "산재 사고는 당국의 기술적인 조치 또는 행정적인 조치만으로 해결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추락, 끼임 같은 산재 사고 유형은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조처를 하지 않아 생기는 원시적인 사고"라면서, " 인명 경시에 관한 문제이고, 인권을 어떻게 존중하느냐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오늘(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안타깝게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추모 조형물이 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세워집니다.

이 조형물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산재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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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어지고, 끼이고…작년에만 9만 2천 명
    • 입력 2021-04-28 06:00:44
    • 수정2021-04-28 08:17:54
    취재K
공사장을 돌며 불시 안전 점검을 벌이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단속 현장에 KBS가 동행했다.
92,383명.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숨지거나 다쳤던 노동자의 수입니다.

최근 5년 동안 각종 산재 사고로 해마다 8~9만 명이 숨지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망자 수만 보면 882명. 1년 전보다 27명이 더 늘었습니다.

피해가 끊이지 않자 사망 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현장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법 제정 이후,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건설 현장 불시 점검에 KBS가 동행해 취재해봤습니다.

한 인부가 안전모에 보호 장구도 없이 외벽 작업대 위에 걸터앉아 일하고 있다.
■ 무작위 점검했더니… 위험은 남일?

산업안전보건공단 단속반과 취재진은 충북 청주의 여러 공사 현장을 불시에 무작위로 살펴봤습니다.
한 5층 다가구 주택 공사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노동자 3명이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일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포착됐습니다.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을 확인하자 급히 차에 둔 안전모를 꺼내오더니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달해 황급히 썼습니다.

단속반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한 노동자는 보호 장구도 없이 4층 외벽 작업대에 걸터앉아 아슬아슬하게 도장 작 을 하고 있었습니다 . 건물 층마다 설치해야 하는 외벽 작업용 받침대가 일부 층에만 듬성듬성 설치돼있었습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봤습니다. 2~3m 높이의 천장 작업대에는 떨어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난간을 설치해야 하지만, 추락 피해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었습니다.

내부 계단으로 5층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습니다. 계단마다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난간을 설치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속반 직원이 "왜 안전 난간을 뜯었냐"고 묻자, 현장 소장은 "벽돌을 지고 올가가는 게 불편해서 떼어버렸다"고 털어놨습니다.

타설 작업이 한창인 근처의 또 다른 공사 현장도 가봤습니다.
콘크리트를 살포하는 특수차와 레미콘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지만, 노동자들의 접근을 통제하거나 차량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신호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작업 기계와 연결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외부 콘센트는 접지선이 끊겨 감전사고 위험에 노출 돼 있었습니다.

다가구 주택이나 다중이용시설 공사 현장 곳곳에서 안전 수칙 위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26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가 트럭에 치여 숨졌다.
■ 덤프트럭에 치여… 건설현장 노동자 3명 숨져

산업 현장의 불시 점검이 이뤄진 지 불과 닷새 만에 사망 사고는 또 벌어졌습니다.

지난 26일 낮 12시 40분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 근처 상행선 확장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25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습니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은 안전 감독 책임자인 현장 소장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사고 당시 차량 주변을 통제하는 신호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고 역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충북 괴산군 문광면의 한 공사장에서는 덤프트럭에 치인 40대 노동자가 숨졌고, 지난 2월에도 충북 음성군 생극면의 한 공사장에서 50대 노동자가 토사를 운반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모두 주변에서 일하거나 이동 중인 노동자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망 사고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해마다 800~900명. 사상자는 모두 80,000~90,000명에 이른다.
■ 각종 산업 재해 잇따라… 사상자 한 해 평균 8만 8천여 명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고로 숨지는 유형은 다양합니다. 이 가운데, 추락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은데요.

올해 들어서만 넉 달도 안 돼 벌써 5명이 숨졌습니다. 지난 3월, 경기도 3곳과 서울시 1곳에서 아파트 외벽에서 도장과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추락해 숨졌고, 지난달 전라남도에서 역시 아파트 도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구명줄을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사망 사고들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 사고로 숨진 노동자 882명 가운데, 37%인 328명이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에서 458명, 제조업에서 201명이 숨졌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산재 사망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노동자는 44만여 명입니다. 해마다 평균 8만 8천여 명이 노동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겁니다.

충북 청주의 한 공사장에 ‘추락 사고 예방’ 현수막에 내걸렸다.
■ "산재 사고는 인명 경시의 문제"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올해 산재 사망 사고의 비율을 20% 줄이겠다는 목표에 따라 ‘산업안전보건 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고용노동부는 최근 2년 동안 연속해서 중대 재해가 발생한 업체에 대해, 올해 중대 재해가 1건만 발생해도 본사와 전국 모든 건설 현장을 안전 감독하기로 했습니다.

건설업 다음으로 산재 사망 사고가 잦은 제조업 사업장에 대해서는 원청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홍윤철 서울대학교 직업환경의학 교수는 "산재 사고는 당국의 기술적인 조치 또는 행정적인 조치만으로 해결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추락, 끼임 같은 산재 사고 유형은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조처를 하지 않아 생기는 원시적인 사고"라면서, " 인명 경시에 관한 문제이고, 인권을 어떻게 존중하느냐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오늘(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안타깝게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추모 조형물이 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세워집니다.

이 조형물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산재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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