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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독일 학교 내 ‘마스크 금지’ 부당 판결 판사에 ‘법 왜곡죄’ 적용 수사
입력 2021.04.28 (10:05) 특파원 리포트
독일 튀링엔주 검찰이 학교에서 마스크 금지 판결을 내린 지방법원 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공영방송 MDR 웹페이지.독일 튀링엔주 검찰이 학교에서 마스크 금지 판결을 내린 지방법원 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공영방송 MDR 웹페이지.

■ '학교 내 마스크 금지' 판결 내린 판사…"마스크 착용 효과 없어"

독일 튀링엔주 검찰은 최근 바이마르시 지방법원 A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습니다. 발단은 이 판사가 내린 판결이었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바이마르 지역의 학교들도 독일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스크 착용과 코로나19 진단 검사, 거리두기를 의무화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부모들이 이 조치가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교육청 등 관련 기관에 청원과 함께 이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학부모들이 낸 소송은 바이마르 지방법원의 가정 담당 A판사에게 배당돼 4월 초 판결이 내려졌는데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고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두 곳에서 마스크를 쓰게 해선 안 되고 코로나 진단검사도 실시해선 안 된다고 결정한 겁니다.

마스크 착용이 효과가 없고, 학교에서의 코로나19 진단 검사는 적절치 않다고 판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판결은 위법" 수사 착수한 검찰, 판사 휴대전화도 압수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는 독일에서 이 판결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튀링엔주 교육부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A판사가 법을 왜곡해 판결을 내렸다는 '법 왜곡죄' 혐의가 있다는 겁니다.

검찰의 판단은 해당 판결이 연방과 주의 현행법(감염예방법 등)을 왜곡한 판결이고, 소송의 성격상 행정법원이 맡아야 할 사건인데 가정 담당 판사가 심리해 판결한 것도 잘못이라는 겁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을 보면 영장 발부 판사도 같은 법리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의 항소로 행정법원으로 간 사건은 지난 20일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교육 당국의 학교 내 마스크 의무화 및 코로나19 진단 검사 조치는 정당하다는 것이죠.

지역 법조계도 A판사의 판결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 판사는 해당 판결에 대해 "수용 가능한 수준을 초과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판결이 관련 법률 조항과 필수 과학적 지식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또 해당 사건의 재판 관할권은 행정법원이기 때문에, 가정 담당 판사는 사건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법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339조 조항(출처=독일 법무부 웹페이지 갈무리)‘법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339조 조항(출처=독일 법무부 웹페이지 갈무리)

■ 징역 1년 이상 중형 '법 왜곡죄'

해당 판사가 받고 있는 혐의인 '법 왜곡죄(Rechtsbeugung)'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독일에서는 19세기부터 존재했던 법입니다.

'법 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제339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이 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주로 판사나 검사인데, 법정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1년 이상 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한 범죄로 다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라고 합니다. 어떤 법률 사건이 다뤄지는 데 있어서 검사나 판사가 당파적이지 않고 전횡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재판 참여자인 개인의 이익이나 법관의 독립성보다는 법질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 조항이라는 겁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이 조항은 거의 사문화됐었다고 합니다. 통독 이전에 '법 왜곡죄'를 적용해 나치 시대 판사들을 처벌한 전례가 없고, 구 서독에서도 법관 처벌 사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 이후 구 동독지역의 법관과 검사들을 법 왜곡죄로 처벌함으로써 조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드물지만 해마다 '법 왜곡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법관·검사들이 있는데, 2016년엔 7명이 기소돼, 이 중 6명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 농단' 사건 때 '법 왜곡죄' 도입이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심상정 의원이 2018년에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는데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나 법관에 의해 자행되는 법 왜곡행위를 처벌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법조계 한편에선 기존의 법(직권남용)으로 처벌이 가능하며 법관과 검사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반대 논리가 제기됐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판과 관련된 불법 행위는 법관의 독립과 무관하며, 사법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관련 법 개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실 국회에서 크게 관심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법 왜곡죄' 도입을 포함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 [특파원 리포트] 독일 학교 내 ‘마스크 금지’ 부당 판결 판사에 ‘법 왜곡죄’ 적용 수사
    • 입력 2021-04-28 10:05:57
    특파원 리포트
독일 튀링엔주 검찰이 학교에서 마스크 금지 판결을 내린 지방법원 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공영방송 MDR 웹페이지.독일 튀링엔주 검찰이 학교에서 마스크 금지 판결을 내린 지방법원 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공영방송 MDR 웹페이지.

■ '학교 내 마스크 금지' 판결 내린 판사…"마스크 착용 효과 없어"

독일 튀링엔주 검찰은 최근 바이마르시 지방법원 A판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습니다. 발단은 이 판사가 내린 판결이었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바이마르 지역의 학교들도 독일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스크 착용과 코로나19 진단 검사, 거리두기를 의무화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부모들이 이 조치가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교육청 등 관련 기관에 청원과 함께 이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학부모들이 낸 소송은 바이마르 지방법원의 가정 담당 A판사에게 배당돼 4월 초 판결이 내려졌는데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고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두 곳에서 마스크를 쓰게 해선 안 되고 코로나 진단검사도 실시해선 안 된다고 결정한 겁니다.

마스크 착용이 효과가 없고, 학교에서의 코로나19 진단 검사는 적절치 않다고 판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판결은 위법" 수사 착수한 검찰, 판사 휴대전화도 압수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는 독일에서 이 판결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튀링엔주 교육부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A판사가 법을 왜곡해 판결을 내렸다는 '법 왜곡죄' 혐의가 있다는 겁니다.

검찰의 판단은 해당 판결이 연방과 주의 현행법(감염예방법 등)을 왜곡한 판결이고, 소송의 성격상 행정법원이 맡아야 할 사건인데 가정 담당 판사가 심리해 판결한 것도 잘못이라는 겁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을 보면 영장 발부 판사도 같은 법리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의 항소로 행정법원으로 간 사건은 지난 20일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교육 당국의 학교 내 마스크 의무화 및 코로나19 진단 검사 조치는 정당하다는 것이죠.

지역 법조계도 A판사의 판결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 판사는 해당 판결에 대해 "수용 가능한 수준을 초과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판결이 관련 법률 조항과 필수 과학적 지식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또 해당 사건의 재판 관할권은 행정법원이기 때문에, 가정 담당 판사는 사건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법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339조 조항(출처=독일 법무부 웹페이지 갈무리)‘법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339조 조항(출처=독일 법무부 웹페이지 갈무리)

■ 징역 1년 이상 중형 '법 왜곡죄'

해당 판사가 받고 있는 혐의인 '법 왜곡죄(Rechtsbeugung)'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독일에서는 19세기부터 존재했던 법입니다.

'법 왜곡죄'를 규정한 독일 형법 제339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이 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주로 판사나 검사인데, 법정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1년 이상 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한 범죄로 다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라고 합니다. 어떤 법률 사건이 다뤄지는 데 있어서 검사나 판사가 당파적이지 않고 전횡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재판 참여자인 개인의 이익이나 법관의 독립성보다는 법질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 조항이라는 겁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이 조항은 거의 사문화됐었다고 합니다. 통독 이전에 '법 왜곡죄'를 적용해 나치 시대 판사들을 처벌한 전례가 없고, 구 서독에서도 법관 처벌 사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 이후 구 동독지역의 법관과 검사들을 법 왜곡죄로 처벌함으로써 조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드물지만 해마다 '법 왜곡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법관·검사들이 있는데, 2016년엔 7명이 기소돼, 이 중 6명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 농단' 사건 때 '법 왜곡죄' 도입이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심상정 의원이 2018년에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는데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나 법관에 의해 자행되는 법 왜곡행위를 처벌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법조계 한편에선 기존의 법(직권남용)으로 처벌이 가능하며 법관과 검사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반대 논리가 제기됐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판과 관련된 불법 행위는 법관의 독립과 무관하며, 사법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관련 법 개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실 국회에서 크게 관심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법 왜곡죄' 도입을 포함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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