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죽음”…화장실 못 가는 공포의 ‘742번 버스’?

입력 2021.05.0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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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들은 이 노선에 걸렸다고 하면 죽음이라고 생각하죠."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서초구 교대역을 오가는 '742번' 시내버스는 기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입니다. 서울 시내 상습 정체 구간을 포함한 60km가량을 4시간 넘게 쉼 없이 운전해야 하는 탓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742번 버스가 이렇게 된 건, 원래는 동작구 상도동까지였던 노선이 교대역까지로 연장되면서부터입니다. 이름표도 751번에서 742번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2019년 4월 새로 개통된 '서리풀터널'을 거치는 노선을 만들기 위해, 지난 1월 서울시가 노선을 변경한 겁니다.


■ "5시간 운전에 화장실도 못 가요"…국민청원에 호소

바뀐 노선으로 운행한 지 3개월째인 지난 16일, 한 742번 버스기사는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도로에 한번 나가면 5시간이 넘는데 화장실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시에서 지켜주느냐"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저희의 휴식시간과 근로여건은 곧 저희 차에 탑승하시는 승객분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직결된다고 감히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기사들의 실제 근무일지를 살펴봤습니다. 새벽 시간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4시간은 넘게 차를 몰아야 하고, 출·퇴근 시간에는 5시간에 가까워집니다. 한 742번 버스 기사는 "이것도 코로나19로 출·퇴근 인원이 분산되면서 그나마 조금 나은 것"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 해소되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23일 742번 노선 기사들의 근무일지를 보면, 운행에 4~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것을 알 수 있다.지난 23일 742번 노선 기사들의 근무일지를 보면, 운행에 4~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버스 회사는 "불가능" 의견 냈지만…서울시, 그대로 인가

이런 문제점은 사실 충분히 예견됐습니다.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시는 노선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데, 변경 전에 버스회사나 관계 구청 등에 '의견 조회'를 합니다. 이때 회사 측은 분명히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운행시간이 최소 253분에 이르고 기사들의 피로도가 증가하게 되며, 휴식시간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운행거리 60km 이상 또는 운행시간 240분 이상인 노선을 '장거리 노선'으로 분류하고 운전 종사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점차 줄여가고 있는데, 742번(前 751번) 버스의 노선 변경은 이에 역행한다는 게 버스회사의 지적입니다.

742번(前 751번) 버스회사가 지난해 서울시에 제출한 검토의견서에는 노선변경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담겨 있다.742번(前 751번) 버스회사가 지난해 서울시에 제출한 검토의견서에는 노선변경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담겨 있다.

버스회사 관계자는 "협의라는 건 서로 동등한 위치일 때 하는 건데, 서울시와 버스회사는 동등한 위치가 아니다"라며 "서울시가 다 정해놓은 것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의견조회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고, 버스회사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준공영제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서울시의 노선 거리나 시간 측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버스회사 측 주장입니다. 57.9km라는 거리는 서울시가 지도상으로 측정한 것일 뿐 실제 운행에서는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특히나 운행 시간의 경우 자주 정체되는 구간의 교통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서울시 "추가 버스 투입·'버스베이' 설치 예정"

서울시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나름의 대책도 준비 중입니다. 우선 기사들의 화장실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초구와 협의해 '버스 베이(bus bay)'를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차도를 넓혀 버스를 잠깐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또, 기사들이 상습 정체 구간인 교대역 인근의 민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끔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배차 간격과 버스 총 운행 횟수를 줄이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5월 7일에 742번 버스 3대를, 6월 중에 2대를 더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현재는 742번 버스 1대가 총 4회 운행되는데, 3대가 더 투입되면 당장 1대당 3.8회를 운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742번 버스는 단독 노선이기도 하고 하루평균 이용객이 2,200~2,500명으로 많다"며 "기사나 운수회사 입장에서 너무 힘들 것을 알고 있지만, 동작구와 서초구를 연결하려면 742번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운행한 지 3개월이 지난 것이니, 불편한 점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게 준공영제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742번 버스 기사가 차를 세워두고 빠르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742번 버스 기사가 차를 세워두고 빠르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 서울 시내 장거리 버스 노선 27개…서울시 "줄여갈 것"

이처럼 기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되는 이른바 '장거리 노선'은 742번뿐만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에는 모두 27개의 장거리 노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 노선들을 점차 줄여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월에도 정기노선조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올해 안에 4개의 장거리 노선을 줄이기로 의결했습니다.


다만 서울시 입장에서는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이 부담입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노선이 변경되면 기존에 다니던 곳에 거주하는 분들의 불만 민원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한다"며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집 앞에서 버스를 타서 직장까지 가길 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버스 관련 민원은 하루에도 100건 넘게 접수되는 실정입니다.

국민청원 글에서 742번 버스 기사는 "황제처럼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와 버스 기사들의 기본권 사이에서, 서울시의 현명한 해결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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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리면 죽음”…화장실 못 가는 공포의 ‘742번 버스’?
    • 입력 2021-05-01 09:09:00
    취재K

"기사님들은 이 노선에 걸렸다고 하면 죽음이라고 생각하죠."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서초구 교대역을 오가는 '742번' 시내버스는 기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입니다. 서울 시내 상습 정체 구간을 포함한 60km가량을 4시간 넘게 쉼 없이 운전해야 하는 탓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742번 버스가 이렇게 된 건, 원래는 동작구 상도동까지였던 노선이 교대역까지로 연장되면서부터입니다. 이름표도 751번에서 742번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2019년 4월 새로 개통된 '서리풀터널'을 거치는 노선을 만들기 위해, 지난 1월 서울시가 노선을 변경한 겁니다.


■ "5시간 운전에 화장실도 못 가요"…국민청원에 호소

바뀐 노선으로 운행한 지 3개월째인 지난 16일, 한 742번 버스기사는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도로에 한번 나가면 5시간이 넘는데 화장실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시에서 지켜주느냐"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저희의 휴식시간과 근로여건은 곧 저희 차에 탑승하시는 승객분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직결된다고 감히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기사들의 실제 근무일지를 살펴봤습니다. 새벽 시간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4시간은 넘게 차를 몰아야 하고, 출·퇴근 시간에는 5시간에 가까워집니다. 한 742번 버스 기사는 "이것도 코로나19로 출·퇴근 인원이 분산되면서 그나마 조금 나은 것"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 해소되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23일 742번 노선 기사들의 근무일지를 보면, 운행에 4~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버스 회사는 "불가능" 의견 냈지만…서울시, 그대로 인가

이런 문제점은 사실 충분히 예견됐습니다.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시는 노선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데, 변경 전에 버스회사나 관계 구청 등에 '의견 조회'를 합니다. 이때 회사 측은 분명히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운행시간이 최소 253분에 이르고 기사들의 피로도가 증가하게 되며, 휴식시간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운행거리 60km 이상 또는 운행시간 240분 이상인 노선을 '장거리 노선'으로 분류하고 운전 종사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점차 줄여가고 있는데, 742번(前 751번) 버스의 노선 변경은 이에 역행한다는 게 버스회사의 지적입니다.

742번(前 751번) 버스회사가 지난해 서울시에 제출한 검토의견서에는 노선변경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담겨 있다.
버스회사 관계자는 "협의라는 건 서로 동등한 위치일 때 하는 건데, 서울시와 버스회사는 동등한 위치가 아니다"라며 "서울시가 다 정해놓은 것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의견조회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고, 버스회사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준공영제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서울시의 노선 거리나 시간 측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버스회사 측 주장입니다. 57.9km라는 거리는 서울시가 지도상으로 측정한 것일 뿐 실제 운행에서는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특히나 운행 시간의 경우 자주 정체되는 구간의 교통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서울시 "추가 버스 투입·'버스베이' 설치 예정"

서울시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나름의 대책도 준비 중입니다. 우선 기사들의 화장실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초구와 협의해 '버스 베이(bus bay)'를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차도를 넓혀 버스를 잠깐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또, 기사들이 상습 정체 구간인 교대역 인근의 민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끔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배차 간격과 버스 총 운행 횟수를 줄이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5월 7일에 742번 버스 3대를, 6월 중에 2대를 더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현재는 742번 버스 1대가 총 4회 운행되는데, 3대가 더 투입되면 당장 1대당 3.8회를 운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742번 버스는 단독 노선이기도 하고 하루평균 이용객이 2,200~2,500명으로 많다"며 "기사나 운수회사 입장에서 너무 힘들 것을 알고 있지만, 동작구와 서초구를 연결하려면 742번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운행한 지 3개월이 지난 것이니, 불편한 점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게 준공영제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742번 버스 기사가 차를 세워두고 빠르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 서울 시내 장거리 버스 노선 27개…서울시 "줄여갈 것"

이처럼 기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되는 이른바 '장거리 노선'은 742번뿐만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에는 모두 27개의 장거리 노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 노선들을 점차 줄여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월에도 정기노선조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올해 안에 4개의 장거리 노선을 줄이기로 의결했습니다.


다만 서울시 입장에서는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이 부담입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노선이 변경되면 기존에 다니던 곳에 거주하는 분들의 불만 민원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한다"며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집 앞에서 버스를 타서 직장까지 가길 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버스 관련 민원은 하루에도 100건 넘게 접수되는 실정입니다.

국민청원 글에서 742번 버스 기사는 "황제처럼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와 버스 기사들의 기본권 사이에서, 서울시의 현명한 해결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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