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랩] “나 16살, 종일 일해야 학교 갈 수 있었다”

입력 2021.05.01 (11:01) 수정 2021.05.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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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국가 수출의 10%를 넘게 차지하며 '수출 한국의 꽃'이라 불렸던 한국수출산업공단, 제1단지가 구로동에 착공되면서 '구로공단'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구로공단의 상징은 10~20대 여공들이었습니다. 한 달에 고작 이틀 쉬어가며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일했고, '벌집'이라 불리던 월세방에 3~5명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80년대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습니다.

결국, 1985년 구로공단 10개 업체들이 동시 파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동맹파업은 정부의 강경 진압 끝에 일주일 만에 끝납니다.

결과는 1,500여 명 해고(파업참여 2,500여 명).

하지만 이 동맹파업은 이후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별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조합의 연대를 모색하게 된 것이죠.

경공업이 쇠퇴하며 내리막길을 걷던 구로공단은 2000년대 첨단산업과 패션의 메카로 변하며 상전벽해를 이룹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크랩이 80년대 구로공단 모습을 되짚어 봤습니다.

편집 - 이지혜
도움 - 임재희 인턴


https://youtu.be/4F0DrU-B6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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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랩] “나 16살, 종일 일해야 학교 갈 수 있었다”
    • 입력 2021-05-01 11:01:50
    • 수정2021-05-01 11:03:55
    크랩
1970년대 국가 수출의 10%를 넘게 차지하며 '수출 한국의 꽃'이라 불렸던 한국수출산업공단, 제1단지가 구로동에 착공되면서 '구로공단'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구로공단의 상징은 10~20대 여공들이었습니다. 한 달에 고작 이틀 쉬어가며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일했고, '벌집'이라 불리던 월세방에 3~5명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80년대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습니다.

결국, 1985년 구로공단 10개 업체들이 동시 파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동맹파업은 정부의 강경 진압 끝에 일주일 만에 끝납니다.

결과는 1,500여 명 해고(파업참여 2,500여 명).

하지만 이 동맹파업은 이후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별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조합의 연대를 모색하게 된 것이죠.

경공업이 쇠퇴하며 내리막길을 걷던 구로공단은 2000년대 첨단산업과 패션의 메카로 변하며 상전벽해를 이룹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크랩이 80년대 구로공단 모습을 되짚어 봤습니다.

편집 - 이지혜
도움 - 임재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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