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독일 헌재의 “혁명적 결정”…“미래 세대에 환경 부담 안 줘야”

입력 2021.05.03 (07:01) 수정 2021.05.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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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수도 베를린이 아닌 프랑스 국경 인근 카를스루에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수도 베를린이 아닌 프랑스 국경 인근 카를스루에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현지시간 지난달 29일 연방정부의 기후변화대응법에 대해 일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음 세대에 환경 부담을 과도하게 지우면 안 된다며 지금 더 강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명령입니다.

국제 비영리 환경연구 재단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은 헌재 결정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혁명적인 결정입니다."

■2050년 탄소 중립국…계획은 2030년까지?
독일의 기후변화대응법은 국제사회와 유럽연합의 기후보호 목표에 보조를 맞추고,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0의 탄소 중립국으로의 길을 모색하고자 제정됐습니다.

2030년까지 에너지, 교통, 건설,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습니다. 2030년까지 1990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5% 이상 감축이 목표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국이 된다는 건 경제 활동을 전후로 해서 배출된 탄소의 양이 전혀 없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통한 탄소 배출을 전면 차단하거나, 배출된 탄소를 산림 조성이나 기술적 방식으로 흡수하는 상태입니다.

독일의 기업들은 기후변화대응법에 따라 탄소 배출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폭스바겐 관계자는 2050년 이후 휘발유나 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폭스바겐 자동차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대응법에 담긴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2030년까지만 설정돼 있습니다.

기후변화대응법에 일부 위헌을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출처=독일 연방 헌재 웹페이지 갈무리)기후변화대응법에 일부 위헌을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출처=독일 연방 헌재 웹페이지 갈무리)

■연방 헌법재판소 "감축 부담 미래 세대에 떠넘겨…기본권 침해"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기후변화대응법 규정이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불가역적으로 2030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는 겁니다.

헌재는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 할당량을 폭넓게 써버린다면, 2031년 이후부터는 더 긴급하고 단기적이고 강력한 조치가 뒤따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침해되는 기본권은 자유권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인간의 삶 거의 모든 부분과 연계돼 있고, 강력한 제한은 잠재적으로 자유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우리는 적은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안고 있는데도 이산화탄소 할당량의 대부분을 써버린다면, 다음 세대들은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더 큰 부담과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 세대에 급격한 감축 부담을 주는 것을 허용할 수 없고, 정부는 내년 말까지 2030년 이후로 미뤄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앞당기라고 명령했습니다.

연방 헌재는 이 결정의 근거로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적 삶의 여건과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독일 연방 기본법 20조를 들었습니다. 기후 변화를 산업과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기본권 문제로 접근한 것입니다.

비영리 연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비영리 연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

■"미래 세대를 위한 '혁명적' 결정"…우리 헌재는?
헌재의 결정 직후 베를린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국제 비영리 연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을 만나 이번 결정의 의미 등을 물어봤습니다.

그라이헨 소장의 첫 마디는 '혁명적 결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헌재가 젊은 세대의 자유권이 현재 성인의 자유권만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는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방정부가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헌재가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며, 올해 9월 치러지는 총선 이후 독일의 환경 정책은 질과 속도에서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단체 '청소년 기후행동'은 지난해 3월 정부의 적극적 기후 대응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감축 목표로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지킬 수 없으며 그 결과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번 독일 헌재의 결정도 주요 참고 자료 중 하나가 될 텐데, 우리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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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3 07:01:57
    • 수정2021-05-03 16:50:02
    특파원 리포트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수도 베를린이 아닌 프랑스 국경 인근 카를스루에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현지시간 지난달 29일 연방정부의 기후변화대응법에 대해 일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음 세대에 환경 부담을 과도하게 지우면 안 된다며 지금 더 강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명령입니다.

국제 비영리 환경연구 재단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은 헌재 결정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혁명적인 결정입니다."

■2050년 탄소 중립국…계획은 2030년까지?
독일의 기후변화대응법은 국제사회와 유럽연합의 기후보호 목표에 보조를 맞추고,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0의 탄소 중립국으로의 길을 모색하고자 제정됐습니다.

2030년까지 에너지, 교통, 건설,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습니다. 2030년까지 1990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5% 이상 감축이 목표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국이 된다는 건 경제 활동을 전후로 해서 배출된 탄소의 양이 전혀 없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통한 탄소 배출을 전면 차단하거나, 배출된 탄소를 산림 조성이나 기술적 방식으로 흡수하는 상태입니다.

독일의 기업들은 기후변화대응법에 따라 탄소 배출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폭스바겐 관계자는 2050년 이후 휘발유나 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폭스바겐 자동차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대응법에 담긴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2030년까지만 설정돼 있습니다.

기후변화대응법에 일부 위헌을 선언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보도자료(출처=독일 연방 헌재 웹페이지 갈무리)
■연방 헌법재판소 "감축 부담 미래 세대에 떠넘겨…기본권 침해"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기후변화대응법 규정이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불가역적으로 2030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는 겁니다.

헌재는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 할당량을 폭넓게 써버린다면, 2031년 이후부터는 더 긴급하고 단기적이고 강력한 조치가 뒤따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침해되는 기본권은 자유권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인간의 삶 거의 모든 부분과 연계돼 있고, 강력한 제한은 잠재적으로 자유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우리는 적은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안고 있는데도 이산화탄소 할당량의 대부분을 써버린다면, 다음 세대들은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더 큰 부담과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 세대에 급격한 감축 부담을 주는 것을 허용할 수 없고, 정부는 내년 말까지 2030년 이후로 미뤄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앞당기라고 명령했습니다.

연방 헌재는 이 결정의 근거로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적 삶의 여건과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독일 연방 기본법 20조를 들었습니다. 기후 변화를 산업과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기본권 문제로 접근한 것입니다.

비영리 연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
■"미래 세대를 위한 '혁명적' 결정"…우리 헌재는?
헌재의 결정 직후 베를린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국제 비영리 연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파트릭 그라이헨 소장을 만나 이번 결정의 의미 등을 물어봤습니다.

그라이헨 소장의 첫 마디는 '혁명적 결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헌재가 젊은 세대의 자유권이 현재 성인의 자유권만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는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방정부가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헌재가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며, 올해 9월 치러지는 총선 이후 독일의 환경 정책은 질과 속도에서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단체 '청소년 기후행동'은 지난해 3월 정부의 적극적 기후 대응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감축 목표로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지킬 수 없으며 그 결과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번 독일 헌재의 결정도 주요 참고 자료 중 하나가 될 텐데, 우리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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