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두 달 벌이 30만 원” 벼랑 끝 지입 버스 운전사

입력 2021.05.03 (19:56) 수정 2021.05.0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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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5인승 전세버스입니다.

학교 통학이나 산악회 등반, 결혼식 참석 등에 다양하게 쓰이죠.

이런 대형 버스, 값이 2억 원에 이를 만큼 비쌉니다.

게다가 면허를 얻으려면 버스가 적어도 10대 이상 있어야 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이런 이유로 관행이 된 게 바로 '지입'이라는 방식입니다.

'가지고 들어간다'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요.

운전사들이 차값을 할부로 내며 버스의 실제 소유주가 되고, 명의는 사업 면허가 있는 회사 앞으로 두는 형태입니다.

회사는 운전사가 차값을 내주니 적은 자본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운전사도 고가 차량을 이용해 영업할 수 있어서 이해 관계가 들어맞는데요.

문제는 전세버스 관련 법에서 개인 사업자의 영업을 금지하고 있어서 이런 지입이 불법이라는 겁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된 온 '전세버스 불법 지입'.

업계에 큰 타격을 준 코로나19 사태 이후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KBS는 전세버스 지입 문제를 집중 취재했는데요.

먼저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전세버스 지입 운전사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20년 경력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배기남 씨.

요새는 익숙한 버스 대신 화물차 핸들을 잡는 날이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버스 일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산악회를 8개 정도 했거든요. 지금은 전혀 안 나가고요. 한달에 한 번 나가기도 어렵더라고요. 코로나 생긴 뒤로는..."]

어쩌다 회사로 일거리가 들어와도 개인사업자 형태인 지입 운전사에게 돌아오는 몫은 극소수입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지입차들한테 돌아오는 몫은 없고요. 회사 차들이 거의 다 뛰고 없습니다."]

없어진 일감보다 더 무서운 건 지입 버스 유지비입니다.

차량 할부금 3백만 원에 지입료 50만 원, 보험료까지 더하면 월 고정 지출은 거의 5백만 원.

매달 벌어서 메꿔야 하는데 수입이 없으니 빚만 쌓입니다.

애써 일을 해도 손에 쥐는 건 거의 없습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작년에 두 달 정도 대학교 통근을 뛰었는데요, 한 800 정도를 벌었어요. 회사에서는 그 돈을 다 가져갔어요. 저한테 딱 30만 원 줬어요."]

1년 가까이 영업이 뜸했던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A씨는 지난달부터 통학 차량을 몰고 있습니다.

기름값과 통행료를 빼고도 월 2백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일감이지만 차량 할부금을 내기도 모자랍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이거라도 해야 그래도 밀린 부채를 조금이라도 탕감할 수 있는 상황이라 이렇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된 운전이 끝난 밤에는 또 일을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쉬는 날 건설 현장이라도 나가서 뛰고 이렇게 해야, 그 돈 가지고 핸드폰 요금이라도 내고...”]

지난해 전국 전세버스 매출액은 평년의 5분의 1 수준.

최악의 업황 속에 구조적으로 매달 수백만 원씩을 지출하며 일해야 하는 지입 운전사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이거 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차 가지고는 벌어먹을 수가 없어요."]

▼[탐사K] 차량 뺏기고 돈 뜯기고…속 타는 지입 운전사

[기자]

이렇게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심화된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들은, 개인사업자처럼 일하면서도 버스회사에 종속돼 있습니다.

차값은 자신이 내지만 차량 명의는 회사에 있고, 일감도 상당 부분은 회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적인 사업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처지에서 지입 운전사들은 여러 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데요.

이어서 김정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주의 한 전세버스 회사에서 4년 가까이 지입 차량을 운전한 정구택 씨.

코로나19로 벌이가 끊기자 일을 그만두며 회사에 낼 돈, 받을 돈을 정산했습니다.

2백만 원을 덜 받았다는 정 씨 주장에, 회사는 오히려 3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회사 측이 포기해 승소하긴 했지만, 정산 과정은 불투명했고 계약서도 없었습니다.

[정구택/전직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내가 일했던 일하고 자기네들(버스 회사)이 정산했던 표하고 전혀 맞지 않습니다. (지입 운전을 시작할 때) 목돈을 갖고 오면 계약서를 써 줍니다. 그런데 돈이 소액이다 보면 계약서 없이, 그냥..."]

같은 회사에서 지입 차량을 갖고 일한 황우 씨.

일을 그만둔 지 1년도 훌쩍 넘었는데 회사에서 밀린 과태료를 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낼 돈은 이미 다 냈고 받을 것도 못 받았다고 항의하자 돌아온 건 욕설과 폭행이었습니다.

[황우/전직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그 얘기를 갖고 따졌더니, '너는 법만 없으면 죽여버렸어' 그러면서 내 얼굴에 침을 6번 뱉어버리더라고요."]

차량 할부금 등 회사에 낼 돈이 밀렸다는 이유로 버스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버스의 명의는 회사 앞으로 돼 있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종필/차량 탈취 피해 지입 운전사 : "그 당시에 돈이 9백만 원 정도 줄 것이 있었습니다. 지입료 포함해서. (그러더니 버스업체가) 열쇠집 불러다가 차를 가져가버렸어요. 지금도 그 차의 리모콘과 키를 제가 갖고 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설문조사 결과 지입 운전사들 상당수는 '갑질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차량을 뺏기거나 받을 돈을 못 받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김영수/전국 개별전세버스 운송사업조합연합회 준비위원회 대표 : "지입 차량을 담보로 캐피탈 또는 제2금융기관에 담보대출을 받고 유용, 또는 부도를 냄으로써 지입차주들이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입 운전사들의 피해 호소에 대부분의 전세버스 업체들은 업계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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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두 달 벌이 30만 원” 벼랑 끝 지입 버스 운전사
    • 입력 2021-05-03 19:56:46
    • 수정2021-05-03 20:43:19
    뉴스7(광주)
[기자]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5인승 전세버스입니다.

학교 통학이나 산악회 등반, 결혼식 참석 등에 다양하게 쓰이죠.

이런 대형 버스, 값이 2억 원에 이를 만큼 비쌉니다.

게다가 면허를 얻으려면 버스가 적어도 10대 이상 있어야 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이런 이유로 관행이 된 게 바로 '지입'이라는 방식입니다.

'가지고 들어간다'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요.

운전사들이 차값을 할부로 내며 버스의 실제 소유주가 되고, 명의는 사업 면허가 있는 회사 앞으로 두는 형태입니다.

회사는 운전사가 차값을 내주니 적은 자본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운전사도 고가 차량을 이용해 영업할 수 있어서 이해 관계가 들어맞는데요.

문제는 전세버스 관련 법에서 개인 사업자의 영업을 금지하고 있어서 이런 지입이 불법이라는 겁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된 온 '전세버스 불법 지입'.

업계에 큰 타격을 준 코로나19 사태 이후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KBS는 전세버스 지입 문제를 집중 취재했는데요.

먼저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전세버스 지입 운전사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20년 경력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배기남 씨.

요새는 익숙한 버스 대신 화물차 핸들을 잡는 날이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버스 일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산악회를 8개 정도 했거든요. 지금은 전혀 안 나가고요. 한달에 한 번 나가기도 어렵더라고요. 코로나 생긴 뒤로는..."]

어쩌다 회사로 일거리가 들어와도 개인사업자 형태인 지입 운전사에게 돌아오는 몫은 극소수입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지입차들한테 돌아오는 몫은 없고요. 회사 차들이 거의 다 뛰고 없습니다."]

없어진 일감보다 더 무서운 건 지입 버스 유지비입니다.

차량 할부금 3백만 원에 지입료 50만 원, 보험료까지 더하면 월 고정 지출은 거의 5백만 원.

매달 벌어서 메꿔야 하는데 수입이 없으니 빚만 쌓입니다.

애써 일을 해도 손에 쥐는 건 거의 없습니다.

[배기남/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작년에 두 달 정도 대학교 통근을 뛰었는데요, 한 800 정도를 벌었어요. 회사에서는 그 돈을 다 가져갔어요. 저한테 딱 30만 원 줬어요."]

1년 가까이 영업이 뜸했던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A씨는 지난달부터 통학 차량을 몰고 있습니다.

기름값과 통행료를 빼고도 월 2백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일감이지만 차량 할부금을 내기도 모자랍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이거라도 해야 그래도 밀린 부채를 조금이라도 탕감할 수 있는 상황이라 이렇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된 운전이 끝난 밤에는 또 일을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쉬는 날 건설 현장이라도 나가서 뛰고 이렇게 해야, 그 돈 가지고 핸드폰 요금이라도 내고...”]

지난해 전국 전세버스 매출액은 평년의 5분의 1 수준.

최악의 업황 속에 구조적으로 매달 수백만 원씩을 지출하며 일해야 하는 지입 운전사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A씨/지입 전세버스 운전자/음성변조 : "이거 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차 가지고는 벌어먹을 수가 없어요."]

▼[탐사K] 차량 뺏기고 돈 뜯기고…속 타는 지입 운전사

[기자]

이렇게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심화된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들은, 개인사업자처럼 일하면서도 버스회사에 종속돼 있습니다.

차값은 자신이 내지만 차량 명의는 회사에 있고, 일감도 상당 부분은 회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적인 사업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처지에서 지입 운전사들은 여러 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데요.

이어서 김정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주의 한 전세버스 회사에서 4년 가까이 지입 차량을 운전한 정구택 씨.

코로나19로 벌이가 끊기자 일을 그만두며 회사에 낼 돈, 받을 돈을 정산했습니다.

2백만 원을 덜 받았다는 정 씨 주장에, 회사는 오히려 3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회사 측이 포기해 승소하긴 했지만, 정산 과정은 불투명했고 계약서도 없었습니다.

[정구택/전직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내가 일했던 일하고 자기네들(버스 회사)이 정산했던 표하고 전혀 맞지 않습니다. (지입 운전을 시작할 때) 목돈을 갖고 오면 계약서를 써 줍니다. 그런데 돈이 소액이다 보면 계약서 없이, 그냥..."]

같은 회사에서 지입 차량을 갖고 일한 황우 씨.

일을 그만둔 지 1년도 훌쩍 넘었는데 회사에서 밀린 과태료를 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낼 돈은 이미 다 냈고 받을 것도 못 받았다고 항의하자 돌아온 건 욕설과 폭행이었습니다.

[황우/전직 지입 전세버스 운전사 : "그 얘기를 갖고 따졌더니, '너는 법만 없으면 죽여버렸어' 그러면서 내 얼굴에 침을 6번 뱉어버리더라고요."]

차량 할부금 등 회사에 낼 돈이 밀렸다는 이유로 버스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버스의 명의는 회사 앞으로 돼 있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종필/차량 탈취 피해 지입 운전사 : "그 당시에 돈이 9백만 원 정도 줄 것이 있었습니다. 지입료 포함해서. (그러더니 버스업체가) 열쇠집 불러다가 차를 가져가버렸어요. 지금도 그 차의 리모콘과 키를 제가 갖고 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설문조사 결과 지입 운전사들 상당수는 '갑질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차량을 뺏기거나 받을 돈을 못 받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김영수/전국 개별전세버스 운송사업조합연합회 준비위원회 대표 : "지입 차량을 담보로 캐피탈 또는 제2금융기관에 담보대출을 받고 유용, 또는 부도를 냄으로써 지입차주들이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입 운전사들의 피해 호소에 대부분의 전세버스 업체들은 업계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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