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치경찰제…충북에선 갈등 재점화

입력 2021.05.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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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시스템 대변혁, '자치경찰제'… 7월 시행 앞둬

오는 7월부터 전국 시·도에서 전면 도입되는 자치 경찰제. 사실,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체감상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경찰관의 신분은 그대로 국가 공무원이고, 경찰 업무도 그대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찰 조직 내부 업무 범위가 '자치 경찰'과 '국가 경찰' 소관, 2가지로 나뉩니다.
자치 경찰의 범위는 방범 순찰이나 학교 폭력·성폭력 예방, 교통 법규 위반 단속 등 지역 생활과 밀접한 치안 분야로 정했습니다. 이런 자치 경찰을 시·도지사 소속의 자치경찰위원회가 시·도 경찰청장을 통해서 지휘하고 감독하게 됩니다.

경찰청장의 일부 권한을 지방자치로 이양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 정책을 펴,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자치경찰제의 본 취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제75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자치경찰제는 자치 분권 확대 요구에 부응하고, 지역 주민의 생활 치안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제도 시행 혼란을 최소화하고 변화와 도약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충청북도의회 본회의에 상정된 자치경찰조례안의 통과를 앞두고 의원들끼리 비공개 격론이 벌어졌다.지난달 30일, 충청북도의회 본회의에 상정된 자치경찰조례안의 통과를 앞두고 의원들끼리 비공개 격론이 벌어졌다.

■ '자치경찰제' 도입 준비 한창인데… 충북에서 계속되는 갈등

본격 시행을 두 달 앞둔 지금, 전국 17개 시·도에서 자치경찰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강원도와 충청남도는 지난달 초, 그리고 대전시는 지난달 말부터 자치경찰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시·도는 아울러 자치경찰제 시행 근거가 되는 자체 조례안도 서둘러 만들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조례자치경찰 사무의 범위, 자치경찰위원회 임명 절차 등의 세부 내용을 담은 제도 시행의 근거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입법 예고를 마친 조례안을 시·도의회 상임위원회에 넘기면, 상임위는 이를 심사해 본회의에 상정합니다. 본회의까지 통과한 조례안은 최종 공포 절차를 거쳐 조례로 확정됩니다.

하지만 본회의까지 통과한 자치경찰조례안이 다시 번복될 위기에 처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충북입니다.

충북은 자치경찰조례안이 입법 예고된 지난 3월 말부터 현직 경찰관들이 "경찰과 충분한 협의도 없이 조례안이 입법 예고됐다"며 1인 릴레이 시위와 단체 집회 신고까지 내는 등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충청북도가 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재의 요구’를 결정하자 충청북도경찰청이 거세게 반발했다.충청북도가 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재의 요구’를 결정하자 충청북도경찰청이 거세게 반발했다.

■ "국가직 경찰 복지비, 국가가 부담해야" vs "상식에 반하는 주장"

조례안을 만든 충청북도와 충청북도경찰청 간 갈등의 핵심은 ' 예산'입니다. 국가직 공무원 신분인 자치 경찰에게 지원해줄 예산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 둘 것이냐를 놓고, 두 기관 사이에 날 선 신경전이 오가고 있는 겁니다.

충북경찰청은 경찰법 제35조 제2항에 따라 " 자치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자치단체가 후생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이럴 경우, 한 해 40억여 원의 복지 예산이 들어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자치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복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례안은 '국가 부담을 지자체에 전가하면 안 된다'는 '지방자치법'과 '지자체에 근무하는 국가 공무원에 한해 후생 복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공무원 후생복지에 관한 규정 '에 위배된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박문희 충청북도의회 의장은 지난달 14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 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자치 경찰의 후생 복지비를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쪽으로 힘을 모으자"고 제안한 겁니다. 하지만 사실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충북을 제외한 대다수 시·도 의장들은 " 지역별로 여건이 다르다", "지역별 상황에 맞게 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도의회에 재심사를 요청한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이 재점화됐다.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도의회에 재심사를 요청한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 자치경찰조례 사흘 만에 '재의' 요구… 갈등 다시 전면전

충청북도와 경찰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충북도의회는 결국 자치경찰 후생 복지 지원 대상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소속에서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조례안을 수정 의결했습니다. 경찰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사흘 만에 충청북도가 이 조례안을 다시 심사해달라는 '재의 요구안'을 도의회에 전달했습니다. 수개월 여 갈등 끝에 가까스로 도의회를 통과한 자치경찰조례안이 번복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겁니다. 충청북도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법령에 위배되는 만큼, 국가 공무원의 복지를 지방비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시종 충청북도지사와 같은 당인 여당 의원들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연철흠 충청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자치경찰 신분은 여전히 국가직이고, 간부 인사권도 경찰청이 가지고 있어서 지자체는 아무런 권한도 없이 국가의 예산 부담만 떠안는 '무늬만 자치'"라고 비판했습니다.

정상교 충청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더 나아가 "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을 분리하는 이원화 방안을 실시하여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법과 경찰법이 상충하지 않도록 국회와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방경찰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충청북도의 재의 요구 결정에 충북경찰청은 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김기영 충청북도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은 " 자치경찰사무는 지자체의 책무이기 때문에, 국가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이 충돌할 경우, 신법 우선의 원칙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경찰법이 적용되므로 당연히 지방자치법에 위배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충청북도가 이를 알면서도 억지 주장을 편다"고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가 다시 번복될 위기에 처한 충북 자치경찰조례안.
'국가직 자치 경찰 복지 예산을 누가 부담해야 할 것인가', 논란의 불씨가 재점화하면서 충청북도와 충북 경찰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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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자치경찰제…충북에선 갈등 재점화
    • 입력 2021-05-04 07:00:21
    취재K

■ 경찰 시스템 대변혁, '자치경찰제'… 7월 시행 앞둬

오는 7월부터 전국 시·도에서 전면 도입되는 자치 경찰제. 사실,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체감상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경찰관의 신분은 그대로 국가 공무원이고, 경찰 업무도 그대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찰 조직 내부 업무 범위가 '자치 경찰'과 '국가 경찰' 소관, 2가지로 나뉩니다.
자치 경찰의 범위는 방범 순찰이나 학교 폭력·성폭력 예방, 교통 법규 위반 단속 등 지역 생활과 밀접한 치안 분야로 정했습니다. 이런 자치 경찰을 시·도지사 소속의 자치경찰위원회가 시·도 경찰청장을 통해서 지휘하고 감독하게 됩니다.

경찰청장의 일부 권한을 지방자치로 이양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 정책을 펴,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자치경찰제의 본 취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제75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자치경찰제는 자치 분권 확대 요구에 부응하고, 지역 주민의 생활 치안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제도 시행 혼란을 최소화하고 변화와 도약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충청북도의회 본회의에 상정된 자치경찰조례안의 통과를 앞두고 의원들끼리 비공개 격론이 벌어졌다.
■ '자치경찰제' 도입 준비 한창인데… 충북에서 계속되는 갈등

본격 시행을 두 달 앞둔 지금, 전국 17개 시·도에서 자치경찰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강원도와 충청남도는 지난달 초, 그리고 대전시는 지난달 말부터 자치경찰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시·도는 아울러 자치경찰제 시행 근거가 되는 자체 조례안도 서둘러 만들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조례자치경찰 사무의 범위, 자치경찰위원회 임명 절차 등의 세부 내용을 담은 제도 시행의 근거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입법 예고를 마친 조례안을 시·도의회 상임위원회에 넘기면, 상임위는 이를 심사해 본회의에 상정합니다. 본회의까지 통과한 조례안은 최종 공포 절차를 거쳐 조례로 확정됩니다.

하지만 본회의까지 통과한 자치경찰조례안이 다시 번복될 위기에 처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충북입니다.

충북은 자치경찰조례안이 입법 예고된 지난 3월 말부터 현직 경찰관들이 "경찰과 충분한 협의도 없이 조례안이 입법 예고됐다"며 1인 릴레이 시위와 단체 집회 신고까지 내는 등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충청북도가 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재의 요구’를 결정하자 충청북도경찰청이 거세게 반발했다.
■ "국가직 경찰 복지비, 국가가 부담해야" vs "상식에 반하는 주장"

조례안을 만든 충청북도와 충청북도경찰청 간 갈등의 핵심은 ' 예산'입니다. 국가직 공무원 신분인 자치 경찰에게 지원해줄 예산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 둘 것이냐를 놓고, 두 기관 사이에 날 선 신경전이 오가고 있는 겁니다.

충북경찰청은 경찰법 제35조 제2항에 따라 " 자치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자치단체가 후생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이럴 경우, 한 해 40억여 원의 복지 예산이 들어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자치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복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례안은 '국가 부담을 지자체에 전가하면 안 된다'는 '지방자치법'과 '지자체에 근무하는 국가 공무원에 한해 후생 복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공무원 후생복지에 관한 규정 '에 위배된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박문희 충청북도의회 의장은 지난달 14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 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자치 경찰의 후생 복지비를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쪽으로 힘을 모으자"고 제안한 겁니다. 하지만 사실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충북을 제외한 대다수 시·도 의장들은 " 지역별로 여건이 다르다", "지역별 상황에 맞게 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자치경찰조례안에 대해 도의회에 재심사를 요청한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 자치경찰조례 사흘 만에 '재의' 요구… 갈등 다시 전면전

충청북도와 경찰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충북도의회는 결국 자치경찰 후생 복지 지원 대상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소속에서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조례안을 수정 의결했습니다. 경찰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사흘 만에 충청북도가 이 조례안을 다시 심사해달라는 '재의 요구안'을 도의회에 전달했습니다. 수개월 여 갈등 끝에 가까스로 도의회를 통과한 자치경찰조례안이 번복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겁니다. 충청북도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법령에 위배되는 만큼, 국가 공무원의 복지를 지방비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시종 충청북도지사와 같은 당인 여당 의원들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연철흠 충청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자치경찰 신분은 여전히 국가직이고, 간부 인사권도 경찰청이 가지고 있어서 지자체는 아무런 권한도 없이 국가의 예산 부담만 떠안는 '무늬만 자치'"라고 비판했습니다.

정상교 충청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더 나아가 "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을 분리하는 이원화 방안을 실시하여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법과 경찰법이 상충하지 않도록 국회와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방경찰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충청북도의 재의 요구 결정에 충북경찰청은 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김기영 충청북도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은 " 자치경찰사무는 지자체의 책무이기 때문에, 국가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이 충돌할 경우, 신법 우선의 원칙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경찰법이 적용되므로 당연히 지방자치법에 위배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충청북도가 이를 알면서도 억지 주장을 편다"고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가 다시 번복될 위기에 처한 충북 자치경찰조례안.
'국가직 자치 경찰 복지 예산을 누가 부담해야 할 것인가', 논란의 불씨가 재점화하면서 충청북도와 충북 경찰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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