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던 애물단지가 ‘귀하신 몸’으로…충북의 ‘철도 구애’

입력 2021.05.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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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도심을 통과하는 충청권 광역철도 유치를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던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과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왼쪽부터)청주 도심을 통과하는 충청권 광역철도 유치를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던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과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왼쪽부터)
■ 때아닌 '철도 사랑'에 빠진 충북 자치단체·정치권

하늘을 나는 '드론 택시'부터 시속 1,000km 이상을 낼 수 있다는 초고속 열차 '하이퍼루프'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미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충북 자치단체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전통적인 바퀴로 달리는 열차와 철도입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레트로'가 유행이기 때문일까요?

철도 노선을 유치하기 위해 만 74세의 충청북도지사가 국회의원들에게 큰절하고, 비슷한 또래의 시민단체 원로들 입에서 '삭발', '단식 투쟁'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위기는 매우 진지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될 정도로 충북의 최대 화두가 된 '철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정부에 건의했던 '충청권 광역철도' 노선(왼쪽)과 국토교통부의 초안.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정부에 건의했던 '충청권 광역철도' 노선(왼쪽)과 국토교통부의 초안.
■ 10년 국가철도망 계획에 충북 주요 사업 제외… 너도나도 재도전

지난달 22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온라인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10년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게 될 주요 철도 사업의 밑그림이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초안이 공개되자 전국 자치단체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광역철도를 유치한 지역에서는 환호를, 공들인 사업이 빠진 지역에서는 탄식을 내뱉었는데요.

충북의 경우, 새로 건의한 사업 대부분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화성 동탄부터 안성을 거쳐 충북 진천 혁신도시, 청주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수도권 내륙선 광역철도', 대전과 충북 옥천을 연결하는 광역철도가 반영된 정도였습니다.

특히 충청북도가 가장 공들인 '청주 도심 지하철' 노선이 빠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반발이 나왔는데요. 이 사업은 대전, 세종과 충북 청주 도심을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철도'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충청권 주민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수도권에 대응할 '광역생활경제권'을 형성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정부는 대전과 세종 도심을 통과하는 노선을 반영했지만, 청주는 기존 도심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기존 충북선 철도를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광역철도가 청주 도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직선이 아니라 우회 노선으로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전례가 없고, 지역에서 자체적인 '도시철도'로 추진해도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청주 도심 통과 노선을 유치하기 위해 이시종 충북지사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앞에서 큰절을 하고, 지역 정치인과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삼보일배'까지 했던 충북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이시종 지사는 SNS를 통해 "차라리 대전~세종 광역철도라고 부르라"면서 정부를 비판했고, 80여 개 시민단체는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글을 올리는 등 '정부 여당 심판 운동'에 나섰습니다.

다음 달, 정부의 국가철도망 계획 최종 확정을 앞두고 충북의 일부 기초자치단체도 바빠졌습니다.

충북 음성군은 감곡부터 혁신도시, 청주국제공항까지 연결하는 '중부내륙선 지선'을 유치하기 위해 경제성 논리를 다시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다른 활동이 보이지 않았던 충북 영동군대전~충북 옥천 광역철도를 영동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철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충북 보은군청주공항과 충북 보은~영동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 구상을 새로 내놨습니다.

그야말로 충북 곳곳에서 '철도 유치전'에 불이 붙은 겁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옛 충북선 철도 건널목에 세워진 기념비.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옛 충북선 철도 건널목에 세워진 기념비.
■ 도심 개발 등으로 밀려났던 철도… '서러운 역사'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실 충청북도와 충북 청주시가 '충청권 광역철도'를 유치하려는 청주 도심은 예전에 기차가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현재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에 청주역이 생겼고 1968년까지 충북선 열차가 운행했습니다.

이후 청주 도심 개발로 인한 과밀화와 교통난 해소 등을 위해 청주역은 1968년 청주시 우암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80년에는 기찻길을 두 개로 늘리는 '복선화'를 위해 정부가 도심에 있던 청주역과 철도를 외곽지역인 청주시 정봉동으로 옮기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10km가량 떨어진 지역에 기차역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철도는 소음·진동 문제 등으로 도심 지역에서는 기피하는 시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쇠퇴해가는 구도심이나 관광지에 유동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고, 역세권 개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귀하신 몸'이 됐습니다.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대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건설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덤'입니다.

충북 자치단체가 저마다 철도 유치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문제는 철도 유치가 '반짝 효과'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한국철도공사의 연도별 광역철도 운영 영업수익을 보면 2018년 9,444억여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9,040억 원, 지난해 6,692억 원으로 2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철도를 대체할 운송 수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국비 확보와 개발 논리로만 접근하기보단, 중장기적인 활용 대책부터 고민해야 '외곽으로 밀려났던 철도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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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면받던 애물단지가 ‘귀하신 몸’으로…충북의 ‘철도 구애’
    • 입력 2021-05-05 10:02:39
    취재K
청주 도심을 통과하는 충청권 광역철도 유치를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던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과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왼쪽부터) ■ 때아닌 '철도 사랑'에 빠진 충북 자치단체·정치권

하늘을 나는 '드론 택시'부터 시속 1,000km 이상을 낼 수 있다는 초고속 열차 '하이퍼루프'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미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충북 자치단체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전통적인 바퀴로 달리는 열차와 철도입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레트로'가 유행이기 때문일까요?

철도 노선을 유치하기 위해 만 74세의 충청북도지사가 국회의원들에게 큰절하고, 비슷한 또래의 시민단체 원로들 입에서 '삭발', '단식 투쟁'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위기는 매우 진지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될 정도로 충북의 최대 화두가 된 '철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정부에 건의했던 '충청권 광역철도' 노선(왼쪽)과 국토교통부의 초안. ■ 10년 국가철도망 계획에 충북 주요 사업 제외… 너도나도 재도전

지난달 22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온라인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10년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게 될 주요 철도 사업의 밑그림이 공개된 자리였습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초안이 공개되자 전국 자치단체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광역철도를 유치한 지역에서는 환호를, 공들인 사업이 빠진 지역에서는 탄식을 내뱉었는데요.

충북의 경우, 새로 건의한 사업 대부분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화성 동탄부터 안성을 거쳐 충북 진천 혁신도시, 청주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수도권 내륙선 광역철도', 대전과 충북 옥천을 연결하는 광역철도가 반영된 정도였습니다.

특히 충청북도가 가장 공들인 '청주 도심 지하철' 노선이 빠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반발이 나왔는데요. 이 사업은 대전, 세종과 충북 청주 도심을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철도'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충청권 주민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수도권에 대응할 '광역생활경제권'을 형성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정부는 대전과 세종 도심을 통과하는 노선을 반영했지만, 청주는 기존 도심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기존 충북선 철도를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광역철도가 청주 도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직선이 아니라 우회 노선으로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전례가 없고, 지역에서 자체적인 '도시철도'로 추진해도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청주 도심 통과 노선을 유치하기 위해 이시종 충북지사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앞에서 큰절을 하고, 지역 정치인과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삼보일배'까지 했던 충북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이시종 지사는 SNS를 통해 "차라리 대전~세종 광역철도라고 부르라"면서 정부를 비판했고, 80여 개 시민단체는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글을 올리는 등 '정부 여당 심판 운동'에 나섰습니다.

다음 달, 정부의 국가철도망 계획 최종 확정을 앞두고 충북의 일부 기초자치단체도 바빠졌습니다.

충북 음성군은 감곡부터 혁신도시, 청주국제공항까지 연결하는 '중부내륙선 지선'을 유치하기 위해 경제성 논리를 다시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다른 활동이 보이지 않았던 충북 영동군대전~충북 옥천 광역철도를 영동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철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충북 보은군청주공항과 충북 보은~영동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 구상을 새로 내놨습니다.

그야말로 충북 곳곳에서 '철도 유치전'에 불이 붙은 겁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옛 충북선 철도 건널목에 세워진 기념비. ■ 도심 개발 등으로 밀려났던 철도… '서러운 역사'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실 충청북도와 충북 청주시가 '충청권 광역철도'를 유치하려는 청주 도심은 예전에 기차가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현재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에 청주역이 생겼고 1968년까지 충북선 열차가 운행했습니다.

이후 청주 도심 개발로 인한 과밀화와 교통난 해소 등을 위해 청주역은 1968년 청주시 우암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80년에는 기찻길을 두 개로 늘리는 '복선화'를 위해 정부가 도심에 있던 청주역과 철도를 외곽지역인 청주시 정봉동으로 옮기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10km가량 떨어진 지역에 기차역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철도는 소음·진동 문제 등으로 도심 지역에서는 기피하는 시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쇠퇴해가는 구도심이나 관광지에 유동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고, 역세권 개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귀하신 몸'이 됐습니다.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대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건설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덤'입니다.

충북 자치단체가 저마다 철도 유치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문제는 철도 유치가 '반짝 효과'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한국철도공사의 연도별 광역철도 운영 영업수익을 보면 2018년 9,444억여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9,040억 원, 지난해 6,692억 원으로 2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철도를 대체할 운송 수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국비 확보와 개발 논리로만 접근하기보단, 중장기적인 활용 대책부터 고민해야 '외곽으로 밀려났던 철도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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