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네오나치? 단독범? 3년 만에 잡힌 살해 협박범…되살아난 극우 악몽

입력 2021.05.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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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성공한 이민자들에게 살해 협박을 했던 남성이 첫 범행 3년 만에 체포됐다. (사진=ntv 웹페이지 화면 갈무리)주로 성공한 이민자들에게 살해 협박을 했던 남성이 첫 범행 3년 만에 체포됐다. (사진=ntv 웹페이지 화면 갈무리)

■ 3년 만에 체포된 살해 협박 'NSU 2.0'

2018년 8월, 터키계 여성 변호사 세다 바사이 일디즈는 한 통의 팩스를 받습니다. 발신인은 ' NSU 2.0', 내용은 일디즈와 그의 두 살 난 딸을 살해하겠다는 것.

NSU 2.0은 일디즈를 시작으로 115건의 살해 협박 이메일과 팩스를 보냈습니다. 협박을 가한 사람은 변호사부터 사업가, 정치인까지 다양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성공한 이민자거나 관대한 이민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 또는 성소수자였습니다.

협박 이메일을 받은 사람 중에는 옌스 슈판 현 연방 보건장관도 있었습니다.

이 기간 모방 범죄도 15건이 발생했습니다. 독일 경찰은 인종차별 범죄로 판단해 수사에 착수했고, 드디어 거의 3년 만인 지난 4일 용의자를 베를린에서 체포했습니다.

용의자는 53살의 실직한 남성이었습니다.

NSU2.0이 피해자에게 보낸 살해 협박 이메일NSU2.0이 피해자에게 보낸 살해 협박 이메일

위 사진은 한 피해자가 NSU2.0에게 받은 협박 이메일입니다.

내용은,

'너를 죽이겠다. 숨을 수는 있지만,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독일에서 금지된 표현인 나치식 경례 Sieg Heil(지크 하일), 그리고 ' 피의 인사'라는 말과 발신인 NSU2.0으로 메일을 마칩니다.


■ NSU, 되살아난 전후 최악의 극우 테러 악몽

이 사건이 알려지자 독일 전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 NSU 2.0'이라는 발신인 서명 때문이었습니다. 독일 최악의 극우 테러 단체 NSU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NSU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쾰른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등 무려 10명을 살해사고 15건의 무장 은행강도 행각을 벌인 '국가 사회주의 지하당' (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 혹은 '나치 지하당(Nazi Untergrund)'으로 불리는 신나치 테러 조직입니다.

당시 이들은 터키계 8명과 그리스계 1명, 경찰 1명을 살해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극우 폭력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바이에른 경찰은 처음에 인종차별 범죄가 아니라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야 사건이 해결됐는데, 주범 우베 뵈하르트와 우베 문트로스는 은행 강도를 벌이다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고, 또 다른 주범 베아테 채페라는 여성은 그 직후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네오 나치에 의한 이민자 9명에 대한 냉혈한 살인은 독일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이며 국가적인 수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수사 결과 NSU를 도운 사람만 200명에 달했고, 하원 의원 2명과 터키 및 이슬람 단체의 대표자들을 포함한 88명의 '히트 리스트(암살 대상자 명단)'가 발견됐습니다. 채페와 무기를 제공하는 등 테러 행위를 직접 도운 4명이 기소됐습니다.

2013년 시작된 재판은 방대한 증거 조사를 거쳐 2018년 7월 마무리됐습니다. 주범격인 채페는 종신형이 선고됐고, 나머지 공범들은 2년 6월에서 10년 사이의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전후 최악의 테러 단체 NSU의 협박 메일을 받은 사람들의 공포심이 어느 정도 였을지 상상이 갑니다. 특히 첫 협박 피해자 일디즈는 NSU 테러로 숨진 터키 유족들의 법률 대리인이었습니다.

2018년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 세력의 폭력 시위. 이들은 독일 정부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며 경찰과 충돌했다.(출처=연합뉴스)2018년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 세력의 폭력 시위. 이들은 독일 정부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며 경찰과 충돌했다.(출처=연합뉴스)

■ 독일 내 계속되는 극우 망령

독일 경찰은 이번 사건이 과연 50대 실직자의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NSU처럼 NSU2.0이 실체를 가진 조직으로 활동했는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협박을 실행에 옮기려고 준비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게 많지는 않지만, 실제 조직적 행위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극우 세력의 문제를 재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독일 내에서 난민 수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첨예할 때 2015년에 네오 나치 조직이 독일 내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공격해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무려 94명을 연방 하원에 입성시켰습니다. 2013년 창당했는데 2017년 총선에서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무려 10%가 넘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AfD의 전 대변인은 "이민자들을 나중에 가스나 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가스는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떠오리게 합니다.

문제는 지금도 이 당의 지지율이 11% 안팎이라는 겁니다.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은 AfD'가 헌법 적대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최근 '감시대상'으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헌법수호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정당해산심판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의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을 반성하고 유대인 등 희생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극우세력의 준동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극단세력은 사회의 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키웁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동양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서구에서 급증하고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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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네오나치? 단독범? 3년 만에 잡힌 살해 협박범…되살아난 극우 악몽
    • 입력 2021-05-06 11:06:04
    특파원 리포트
주로 성공한 이민자들에게 살해 협박을 했던 남성이 첫 범행 3년 만에 체포됐다. (사진=ntv 웹페이지 화면 갈무리)
■ 3년 만에 체포된 살해 협박 'NSU 2.0'

2018년 8월, 터키계 여성 변호사 세다 바사이 일디즈는 한 통의 팩스를 받습니다. 발신인은 ' NSU 2.0', 내용은 일디즈와 그의 두 살 난 딸을 살해하겠다는 것.

NSU 2.0은 일디즈를 시작으로 115건의 살해 협박 이메일과 팩스를 보냈습니다. 협박을 가한 사람은 변호사부터 사업가, 정치인까지 다양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성공한 이민자거나 관대한 이민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 또는 성소수자였습니다.

협박 이메일을 받은 사람 중에는 옌스 슈판 현 연방 보건장관도 있었습니다.

이 기간 모방 범죄도 15건이 발생했습니다. 독일 경찰은 인종차별 범죄로 판단해 수사에 착수했고, 드디어 거의 3년 만인 지난 4일 용의자를 베를린에서 체포했습니다.

용의자는 53살의 실직한 남성이었습니다.

NSU2.0이 피해자에게 보낸 살해 협박 이메일
위 사진은 한 피해자가 NSU2.0에게 받은 협박 이메일입니다.

내용은,

'너를 죽이겠다. 숨을 수는 있지만,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독일에서 금지된 표현인 나치식 경례 Sieg Heil(지크 하일), 그리고 ' 피의 인사'라는 말과 발신인 NSU2.0으로 메일을 마칩니다.


■ NSU, 되살아난 전후 최악의 극우 테러 악몽

이 사건이 알려지자 독일 전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 NSU 2.0'이라는 발신인 서명 때문이었습니다. 독일 최악의 극우 테러 단체 NSU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NSU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쾰른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등 무려 10명을 살해사고 15건의 무장 은행강도 행각을 벌인 '국가 사회주의 지하당' (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 혹은 '나치 지하당(Nazi Untergrund)'으로 불리는 신나치 테러 조직입니다.

당시 이들은 터키계 8명과 그리스계 1명, 경찰 1명을 살해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극우 폭력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바이에른 경찰은 처음에 인종차별 범죄가 아니라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야 사건이 해결됐는데, 주범 우베 뵈하르트와 우베 문트로스는 은행 강도를 벌이다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고, 또 다른 주범 베아테 채페라는 여성은 그 직후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네오 나치에 의한 이민자 9명에 대한 냉혈한 살인은 독일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이며 국가적인 수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수사 결과 NSU를 도운 사람만 200명에 달했고, 하원 의원 2명과 터키 및 이슬람 단체의 대표자들을 포함한 88명의 '히트 리스트(암살 대상자 명단)'가 발견됐습니다. 채페와 무기를 제공하는 등 테러 행위를 직접 도운 4명이 기소됐습니다.

2013년 시작된 재판은 방대한 증거 조사를 거쳐 2018년 7월 마무리됐습니다. 주범격인 채페는 종신형이 선고됐고, 나머지 공범들은 2년 6월에서 10년 사이의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전후 최악의 테러 단체 NSU의 협박 메일을 받은 사람들의 공포심이 어느 정도 였을지 상상이 갑니다. 특히 첫 협박 피해자 일디즈는 NSU 테러로 숨진 터키 유족들의 법률 대리인이었습니다.

2018년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 세력의 폭력 시위. 이들은 독일 정부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며 경찰과 충돌했다.(출처=연합뉴스)
■ 독일 내 계속되는 극우 망령

독일 경찰은 이번 사건이 과연 50대 실직자의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NSU처럼 NSU2.0이 실체를 가진 조직으로 활동했는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협박을 실행에 옮기려고 준비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게 많지는 않지만, 실제 조직적 행위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극우 세력의 문제를 재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독일 내에서 난민 수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첨예할 때 2015년에 네오 나치 조직이 독일 내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공격해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무려 94명을 연방 하원에 입성시켰습니다. 2013년 창당했는데 2017년 총선에서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무려 10%가 넘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AfD의 전 대변인은 "이민자들을 나중에 가스나 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가스는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떠오리게 합니다.

문제는 지금도 이 당의 지지율이 11% 안팎이라는 겁니다.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은 AfD'가 헌법 적대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최근 '감시대상'으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헌법수호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정당해산심판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의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을 반성하고 유대인 등 희생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극우세력의 준동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극단세력은 사회의 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키웁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동양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서구에서 급증하고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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