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비 횡령’ 고발할 땐 언제고…교육부 ‘총장 연임’ 승인

입력 2021.05.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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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장기 집권 총장…영산대 법인 이사회 만장일치 "4년 더"

부산 소재 영산대학교의 부구욱 총장은 부산의 15개 4년제 대학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2001년 취임한 이래 임기당 4년씩 다섯 번을 연임, 올해 2월까지 총 20년을 총장으로 재직했으니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수준입니다.

지난 2월 부 총장의 5번째 임기 만료를 앞두고, 영산대 학교법인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부 총장의 6선 연임을 의결했습니다.

■ 교육부 승인 앞두고 긴급 이사회 소집…무슨 일이 있었나?

영산대학교 학교법인 성심학원의 '이사장'과 영산대 '총장'은 부부 사이입니다. 20년 동안 남편은 총장을, 아내는 이사장을 맡아온 것입니다.

사립학교법(54조3의 3항)에 따르면 이사장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학교의 장을 할 수 없는데, 예외로 단서조항에 이사회 정수 3분의 2의 동의를 얻고 관할청인 교육부의 승인을 얻으면 가능합니다.

영산대 이사회는 참석 이사 전원의 동의를 얻어 교육부에 승인을 요청했는데,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부가 승인을 반려했습니다.

■ '총장 임명' 동의에 총장 부인이 참석해 표결…동의 절차 타당하지 않아

당시 전체 이사 8명 중 7명이 참석했고, 총장 임용 대상자이면서 이사인 부구욱 총장이 표결에서 빠져 6명이 동의했는데, 그 가운데 이사장이 포함돼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교육부는 배우자가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영산대 이사회는 총장 임기 만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총장임명 동의' 단 한 건을 위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습니다.

이사 정수 3분의 2인 6명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총장과 이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 6명이 모두 참석, 이견없이 모두 동의했습니다.

■ 교육부 '교비 횡령' 고발했던 총장 그대로 임용 승인…교수 노조 반발

임기가 끝나고 두 달이나 지나서 교육부는 총장 임명을 승인했습니다. 절차상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교육부가 임명 승인을 해준 총장은 교육부가 '교비 횡령' 혐의로 고발했던, 같은 총장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교육부는 영산대 감사에서 총장 등을 교비 횡령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해임된 교직원과의 소송을 위해 교비 회계에서 소송비용 2천여만 원을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는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영산대 교수 노조는 이 점에 대해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 영산대 정관 '형사 기소 교원은 직위해제 대상'…총장은 예외?

사립학교법(제58조의2 제1항)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교원의 임용권자는 직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령에는 직위해제가 재량이더라도, 영산대는 학교 정관으로 형사 기소된 교원에 대해 의무적으로 직위해제하도록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교수 노조는 이를 근거로 교육부가 고발한 총장을 직위해제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총장에 임명하도록 승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정 처분을 부정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며 재취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영산대 법인 이사회는 교직원과 달리 총장은 학교 경영 책임자이고,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원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 교육부 "직위해제했어야 하지만, 총장 결격사유는 아니다"

영산대 이사회와 교수 노조의 정면 대립에 교육부는 헷갈리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교육부

"학교법인 성심학원이 전 총장 기소 당시에 해당 정관에 따라 직위해제를 하였어야 하나 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정관 미준수 등 부적정하게 이사회를 운영한 이사회 임원 전체를 대상으로 경고 처분을 하고 조치결과에 대해서도 보고토록 할 예정입니다.

다만, 현재는 전 총장 기소 후 1심 판결이 난 상황으로 현 시점에서 총장에 대한 직위해제 조치는 불가능하며, 1심 판결 결과가 총장 임용의 결격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기소 당시에 직위해제 했어야 하지만 직위해제 하기엔 시기가 지나버렸고, '선고유예'가 총장 임용 결격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학교 정관에 따라 직위해제를 하지 않은 이사회 임원에게 경고하는 방법으로 변죽만 울리고, 총장 임용은 승인했습니다.

■ 변죽만 울린 교육부의 경고, 과연 효과 있을까?

교육부의 경고를 받은 영산대 이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직위 해제 대상인 총장을 우선 임명한 뒤, 이사회 스스로 정관에 따라 총장의 직위 해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영산대 법인 이사장은 총장의 배우자인데 말입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은 교육부의 연임 승인과 관련해 "말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강 의원은 "사립학교법에 이사장과 친인척 총장 임명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교육부가 사정을 살펴 승인을 검토하라는 의미"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립대학을 관리 감독함으로써 비리가 발생하지 않고 공적 교육기관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는 교육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사립대 150여 곳 중 10여 곳 만 직선제나 간선제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다수 사립대는 이사회가 총장을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구성원의 참여가 제한되고,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로, 직위해제 대상인 교원을 사립대학교 이사회가 재임용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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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비 횡령’ 고발할 땐 언제고…교육부 ‘총장 연임’ 승인
    • 입력 2021-05-07 08:00:55
    취재K

■ '20년' 장기 집권 총장…영산대 법인 이사회 만장일치 "4년 더"

부산 소재 영산대학교의 부구욱 총장은 부산의 15개 4년제 대학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2001년 취임한 이래 임기당 4년씩 다섯 번을 연임, 올해 2월까지 총 20년을 총장으로 재직했으니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수준입니다.

지난 2월 부 총장의 5번째 임기 만료를 앞두고, 영산대 학교법인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부 총장의 6선 연임을 의결했습니다.

■ 교육부 승인 앞두고 긴급 이사회 소집…무슨 일이 있었나?

영산대학교 학교법인 성심학원의 '이사장'과 영산대 '총장'은 부부 사이입니다. 20년 동안 남편은 총장을, 아내는 이사장을 맡아온 것입니다.

사립학교법(54조3의 3항)에 따르면 이사장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학교의 장을 할 수 없는데, 예외로 단서조항에 이사회 정수 3분의 2의 동의를 얻고 관할청인 교육부의 승인을 얻으면 가능합니다.

영산대 이사회는 참석 이사 전원의 동의를 얻어 교육부에 승인을 요청했는데,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부가 승인을 반려했습니다.

■ '총장 임명' 동의에 총장 부인이 참석해 표결…동의 절차 타당하지 않아

당시 전체 이사 8명 중 7명이 참석했고, 총장 임용 대상자이면서 이사인 부구욱 총장이 표결에서 빠져 6명이 동의했는데, 그 가운데 이사장이 포함돼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교육부는 배우자가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영산대 이사회는 총장 임기 만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총장임명 동의' 단 한 건을 위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습니다.

이사 정수 3분의 2인 6명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총장과 이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 6명이 모두 참석, 이견없이 모두 동의했습니다.

■ 교육부 '교비 횡령' 고발했던 총장 그대로 임용 승인…교수 노조 반발

임기가 끝나고 두 달이나 지나서 교육부는 총장 임명을 승인했습니다. 절차상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교육부가 임명 승인을 해준 총장은 교육부가 '교비 횡령' 혐의로 고발했던, 같은 총장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교육부는 영산대 감사에서 총장 등을 교비 횡령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해임된 교직원과의 소송을 위해 교비 회계에서 소송비용 2천여만 원을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는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영산대 교수 노조는 이 점에 대해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 영산대 정관 '형사 기소 교원은 직위해제 대상'…총장은 예외?

사립학교법(제58조의2 제1항)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교원의 임용권자는 직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령에는 직위해제가 재량이더라도, 영산대는 학교 정관으로 형사 기소된 교원에 대해 의무적으로 직위해제하도록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교수 노조는 이를 근거로 교육부가 고발한 총장을 직위해제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총장에 임명하도록 승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정 처분을 부정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며 재취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영산대 법인 이사회는 교직원과 달리 총장은 학교 경영 책임자이고,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원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 교육부 "직위해제했어야 하지만, 총장 결격사유는 아니다"

영산대 이사회와 교수 노조의 정면 대립에 교육부는 헷갈리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교육부

"학교법인 성심학원이 전 총장 기소 당시에 해당 정관에 따라 직위해제를 하였어야 하나 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정관 미준수 등 부적정하게 이사회를 운영한 이사회 임원 전체를 대상으로 경고 처분을 하고 조치결과에 대해서도 보고토록 할 예정입니다.

다만, 현재는 전 총장 기소 후 1심 판결이 난 상황으로 현 시점에서 총장에 대한 직위해제 조치는 불가능하며, 1심 판결 결과가 총장 임용의 결격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기소 당시에 직위해제 했어야 하지만 직위해제 하기엔 시기가 지나버렸고, '선고유예'가 총장 임용 결격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학교 정관에 따라 직위해제를 하지 않은 이사회 임원에게 경고하는 방법으로 변죽만 울리고, 총장 임용은 승인했습니다.

■ 변죽만 울린 교육부의 경고, 과연 효과 있을까?

교육부의 경고를 받은 영산대 이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직위 해제 대상인 총장을 우선 임명한 뒤, 이사회 스스로 정관에 따라 총장의 직위 해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영산대 법인 이사장은 총장의 배우자인데 말입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은 교육부의 연임 승인과 관련해 "말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강 의원은 "사립학교법에 이사장과 친인척 총장 임명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교육부가 사정을 살펴 승인을 검토하라는 의미"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립대학을 관리 감독함으로써 비리가 발생하지 않고 공적 교육기관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는 교육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사립대 150여 곳 중 10여 곳 만 직선제나 간선제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다수 사립대는 이사회가 총장을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구성원의 참여가 제한되고,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로, 직위해제 대상인 교원을 사립대학교 이사회가 재임용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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