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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기자들Q]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
입력 2021.05.08 (12:00) 취재K

3월 26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은 끔찍한 '스토킹 범죄', 평범한 세 모녀가 스토킹으로 인해 무참히 살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살인범의 정체는 김태현. 경찰은 그의 신상을 공개했고 연일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취재진은 네이버 모바일에서 구독이 가능한 주요 언론사 45곳의 기사들을 분석했습니다. 기간은 최초 보도가 나온 3월 26일부터 4월 22일까지 약 한 달 간이고, 대상은 각 언론사마다 매일 많이 읽은 기사 20건씩입니다. 그리고 ‘김태현’, ‘노원’, ‘세모녀’를 검색해 관련 기사를 추렸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사 521건을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눈 뒤 기사 제목에서 많이 사용된 단어가 무엇인지 ‘키워드 빈도수’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 '연인'이 살해했다는 언론...무책임한 '추측성 보도'

첫 번째 구간인 3월26일~4월3일 기사들 중 노원, 모녀 등의 단어를 제외하고 상위에 올라온 단어는 ‘큰딸’(20회)과 ‘남친·연인’(12회)이었습니다.

피의자를 '남자친구'라고 추측한 기사들피의자를 '남자친구'라고 추측한 기사들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들은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정체가 피해자 큰딸의 전 남자친구, 즉 연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 근거는 주민 익명 인터뷰였습니다. '전언'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언론은 사실 관계 확인 없이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이후 피해자의 지인들이 스토킹 범죄임을 알리면서 관련 보도는 줄었지만, 상당수 언론들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관련 기사를 삭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런 추측성 보도는 사건의 성격도 바뀌게 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잘못된, 왜곡된 인식까지 심어줄 수 있다”며 “이후 사건 보도 방향까지도 결정하게 되는 여러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태현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언론...사라진 본질

4월 5일, 사진과 함께 피의자 25살 김태현의 정체가 공개되자 언론 보도는 다시 급증했습니다. 이 기간 빈도수가 높은 단어 중 하나는 ‘맥주(10회)’입니다.

범행 당시 김태현의 행적이 드러났는데 살해를 저지른 뒤 집에 사흘간 머문 사실을 언론은 강조했습니다. 시신과 함께 머물며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등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김태현의 과거 행적에 대해 다룬 기사.김태현의 과거 행적에 대해 다룬 기사.

그의 엽기적인 범행과 비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한 건데 심지어 김태현의 훈련소 동기생, 동창생 등 과거 김태현을 아는 온갖 지인들의 인터뷰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신상이 공개된 이후 출고된 기사들 상당수는 그야말로 ‘김태현의 모든 것’을 담아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구간(4월 8일~4월 22일) 역시 김태현 관련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김태현이 검찰에 송치되며 언론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4월 9일 보도량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기간 기사 제목에 많이 사용된 단어는 ‘무릎(36회), 죄책감(32회)’이었습니다. 김태현이 무릎을 꿇은 모습, 김태현이 ‘숨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한 부분을 언론사마다 제목으로 사용하며 강조한 겁니다.

이렇듯 한 달 간의 보도 흐름을 보면, 사건의 본질인 스토킹 범죄의 실상을 전하기보다는 김태현의 '개인 서사'에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김태현 보도는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보이는 것 같다. 하나는 ‘두 얼굴의 악마 서사’로 평범한 이웃이었던 청년이 잔혹한 악마로 변해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한다”며 “두 번째는 왜 이렇게 잔혹한 악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가 이루어지는데 거의 스토킹 보도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럼 자연스럽게 그다음부터 모든 스토리는 악마와 피해자 구도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서 스토킹과 관련된 제도적인 문제, 방범과 치안의 문제,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개인정보 보호문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토킹 범죄가 반복되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짚고,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스토킹처벌법'에 대해 심층 분석한 보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선별한 '많이 읽은 기사' 521건 중 이같은 기사는 13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중 6건은 대통령 관련 대책 지시 기사였습니다.

질문하는기자들Q는 4번째 순서로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을 통해 중대 범죄 보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는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최초 보도부터 관심이 시들어지는 순간까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지 심층 분석합니다.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Q' 4회는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와 <AI로 팩트체크까지...기자가 사라진다?> 주제로 9일(일) 밤 10시35분에 KBS1TV에서 방영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세중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 방송은 질문하는기자들Q 유튜브 계정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채널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
  • [질문하는 기자들Q]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
    • 입력 2021-05-08 12:00:39
    취재K

3월 26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은 끔찍한 '스토킹 범죄', 평범한 세 모녀가 스토킹으로 인해 무참히 살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살인범의 정체는 김태현. 경찰은 그의 신상을 공개했고 연일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취재진은 네이버 모바일에서 구독이 가능한 주요 언론사 45곳의 기사들을 분석했습니다. 기간은 최초 보도가 나온 3월 26일부터 4월 22일까지 약 한 달 간이고, 대상은 각 언론사마다 매일 많이 읽은 기사 20건씩입니다. 그리고 ‘김태현’, ‘노원’, ‘세모녀’를 검색해 관련 기사를 추렸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사 521건을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눈 뒤 기사 제목에서 많이 사용된 단어가 무엇인지 ‘키워드 빈도수’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 '연인'이 살해했다는 언론...무책임한 '추측성 보도'

첫 번째 구간인 3월26일~4월3일 기사들 중 노원, 모녀 등의 단어를 제외하고 상위에 올라온 단어는 ‘큰딸’(20회)과 ‘남친·연인’(12회)이었습니다.

피의자를 '남자친구'라고 추측한 기사들피의자를 '남자친구'라고 추측한 기사들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들은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정체가 피해자 큰딸의 전 남자친구, 즉 연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 근거는 주민 익명 인터뷰였습니다. '전언'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언론은 사실 관계 확인 없이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이후 피해자의 지인들이 스토킹 범죄임을 알리면서 관련 보도는 줄었지만, 상당수 언론들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관련 기사를 삭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런 추측성 보도는 사건의 성격도 바뀌게 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잘못된, 왜곡된 인식까지 심어줄 수 있다”며 “이후 사건 보도 방향까지도 결정하게 되는 여러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태현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언론...사라진 본질

4월 5일, 사진과 함께 피의자 25살 김태현의 정체가 공개되자 언론 보도는 다시 급증했습니다. 이 기간 빈도수가 높은 단어 중 하나는 ‘맥주(10회)’입니다.

범행 당시 김태현의 행적이 드러났는데 살해를 저지른 뒤 집에 사흘간 머문 사실을 언론은 강조했습니다. 시신과 함께 머물며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등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김태현의 과거 행적에 대해 다룬 기사.김태현의 과거 행적에 대해 다룬 기사.

그의 엽기적인 범행과 비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한 건데 심지어 김태현의 훈련소 동기생, 동창생 등 과거 김태현을 아는 온갖 지인들의 인터뷰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신상이 공개된 이후 출고된 기사들 상당수는 그야말로 ‘김태현의 모든 것’을 담아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구간(4월 8일~4월 22일) 역시 김태현 관련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김태현이 검찰에 송치되며 언론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4월 9일 보도량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기간 기사 제목에 많이 사용된 단어는 ‘무릎(36회), 죄책감(32회)’이었습니다. 김태현이 무릎을 꿇은 모습, 김태현이 ‘숨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한 부분을 언론사마다 제목으로 사용하며 강조한 겁니다.

이렇듯 한 달 간의 보도 흐름을 보면, 사건의 본질인 스토킹 범죄의 실상을 전하기보다는 김태현의 '개인 서사'에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김태현 보도는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보이는 것 같다. 하나는 ‘두 얼굴의 악마 서사’로 평범한 이웃이었던 청년이 잔혹한 악마로 변해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한다”며 “두 번째는 왜 이렇게 잔혹한 악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가 이루어지는데 거의 스토킹 보도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럼 자연스럽게 그다음부터 모든 스토리는 악마와 피해자 구도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서 스토킹과 관련된 제도적인 문제, 방범과 치안의 문제,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개인정보 보호문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토킹 범죄가 반복되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짚고,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스토킹처벌법'에 대해 심층 분석한 보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선별한 '많이 읽은 기사' 521건 중 이같은 기사는 13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중 6건은 대통령 관련 대책 지시 기사였습니다.

질문하는기자들Q는 4번째 순서로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을 통해 중대 범죄 보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는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최초 보도부터 관심이 시들어지는 순간까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지 심층 분석합니다.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Q' 4회는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와 <AI로 팩트체크까지...기자가 사라진다?> 주제로 9일(일) 밤 10시35분에 KBS1TV에서 방영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세중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 방송은 질문하는기자들Q 유튜브 계정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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