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 ‘백신 관광’ 봇물, 막을 수도 없고…

입력 2021.05.08 (18:44) 수정 2021.05.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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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오는 10일(월) 첫출발 합니다. 태국에 백신 관광상품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하나 살펴볼까요? 첫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갑니다. 이후 사흘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명소를 구경하고 유명 아울렛도 들립니다. 나흘째 되는 날 백신을 맞습니다. 존슨앤드존슨의 '얀센' 백신을 맞습니다. '얀센'은 1번만 맞아도 되니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됩니다. 이후에도 사나흘 더 관광을 하고 9일째 돌아오는 상품입니다.

 태국의 한 여행사가 출시한 미국 백신 상품,  9박 10일 상품으로 특급호텔에 머물며 '얀센' 백신을 맞는다. 얀센 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된다. 태국의 한 여행사가 출시한 미국 백신 상품, 9박 10일 상품으로 특급호텔에 머물며 '얀센' 백신을 맞는다. 얀센 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된다.

가격은 2~3명이 함께 가면 1인당 175,000바트(600만원 정도)입니다. 4~5인 가족상품의 경우 1인당 108,000바트(370만 원 정도)로 조금 내려갑니다. 항공권은 포함되지 않은 가격입니다. 물론 태국으로 돌아와서 15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유독 심한 태국에선 아마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사실 태국 정부 마음은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관광비자 받아서 합법적으로 떠나는 시민들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태국 관광국은 다만 '백신 관광'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 것과, 미국 일부 주는 관광객에게 백신을 접종해주지 않으니 주의하라는 당부만 내놨습니다. 실제 방콕포스트(Bangkok post)는 미 플로리다주와 앨라배마주는 영주권이 있어야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백신 관광이 등장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는 백신이 넘치고, 그러니 이제 미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에겐 기꺼이 백신을 맞춰줄 분위기입니다. 알래스카주는 해외 관광객에게 백신 접종을 약속했고, 벨라지오 뉴욕시장도 "백신도 맞고 뉴욕도 구경 오세요!"라며 백신 접종을 미끼로 내걸었습니다(뉴욕주 당국의 허가는 아직 나지 않았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국민의 백신을 모두 확보한 몰디브 역시 입국자에게 백신 접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입국할 때 1번 공짜로 접종하고, 20여 일이 지나면 또 2차 접종도 가능합니다. 눈치채셨죠? 관광객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르웨이 여행사가 내놓은 모스크바 관광상품 역시 비슷합니다. 아주아주 비싼 23일짜리 상품이 있는데, 역시 '스푸트니크ⅴ' 백신을 2회 맞기 위해 상당히 오래 머물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터키 여행사의 러시아 백신 관광상품,  1인당 799유로로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터키 여행사의 러시아 백신 관광상품, 1인당 799유로로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이렇게 세계 각국의 백신 관광이 활성화되면, 형편이 넉넉한 부자들만 먼저 백신을 맞게 됩니다. 지금도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들은 백신이 넘쳐나고, 하루가 다급한 인도 같은 나라는 백신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부자나라 국민만 먼저 백신을 맞는 문제가, 이제 개도국의 부자들만 먼저 백신을 맞는 문제로 확대되는 겁니다.

계획보다 백신 확보가 계속 늦어지고 있는 태국에서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민간병원 등의 백신 유통을 검토 중입니다. 민간자본이 화이자나 모더나를 비싼 값에 들여와(다국적 제약사들이 같은 가격에는 안 줄 테니까요), 더 비싼 값에 접종하는 것을 허용할 움직입니다. 결국 백신까지 시장원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급한대로 이렇게 부자나라 먼저, 또 개도국에선 형편이 넉넉한 사람 먼저 백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위생이 열악하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감염률이 높습니다. 이들만 잘 관리하면 바이러스가 선진국으로 또 부자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WHO)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이바이러스가 신고됩니다. 과학자들은 이 중 10여 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난한 지역에서 범람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사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1.8배나 감염률이 높은 영국발 변이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각국이 그렇게 주의를 했지만 결국 거의 모든 나라로 번졌습니다).

과학자들은 부자나라, 또 부자 동네만 백신을 맞는다고 결코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백악관 등이 입장을 바꿔 백신의 '지식재산권'의 일시 정지에 찬성 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계속 외면하면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변신해 부자나라를 겨냥할지 모릅니다.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래저래 참 이 바이러스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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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 ‘백신 관광’ 봇물, 막을 수도 없고…
    • 입력 2021-05-08 18:44:26
    • 수정2021-05-08 19:34:59
    특파원 리포트

당장 오는 10일(월) 첫출발 합니다. 태국에 백신 관광상품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하나 살펴볼까요? 첫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갑니다. 이후 사흘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명소를 구경하고 유명 아울렛도 들립니다. 나흘째 되는 날 백신을 맞습니다. 존슨앤드존슨의 '얀센' 백신을 맞습니다. '얀센'은 1번만 맞아도 되니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됩니다. 이후에도 사나흘 더 관광을 하고 9일째 돌아오는 상품입니다.

 태국의 한 여행사가 출시한 미국 백신 상품,  9박 10일 상품으로 특급호텔에 머물며 '얀센' 백신을 맞는다. 얀센 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된다.
가격은 2~3명이 함께 가면 1인당 175,000바트(600만원 정도)입니다. 4~5인 가족상품의 경우 1인당 108,000바트(370만 원 정도)로 조금 내려갑니다. 항공권은 포함되지 않은 가격입니다. 물론 태국으로 돌아와서 15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유독 심한 태국에선 아마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사실 태국 정부 마음은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관광비자 받아서 합법적으로 떠나는 시민들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태국 관광국은 다만 '백신 관광'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 것과, 미국 일부 주는 관광객에게 백신을 접종해주지 않으니 주의하라는 당부만 내놨습니다. 실제 방콕포스트(Bangkok post)는 미 플로리다주와 앨라배마주는 영주권이 있어야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백신 관광이 등장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는 백신이 넘치고, 그러니 이제 미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에겐 기꺼이 백신을 맞춰줄 분위기입니다. 알래스카주는 해외 관광객에게 백신 접종을 약속했고, 벨라지오 뉴욕시장도 "백신도 맞고 뉴욕도 구경 오세요!"라며 백신 접종을 미끼로 내걸었습니다(뉴욕주 당국의 허가는 아직 나지 않았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국민의 백신을 모두 확보한 몰디브 역시 입국자에게 백신 접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입국할 때 1번 공짜로 접종하고, 20여 일이 지나면 또 2차 접종도 가능합니다. 눈치채셨죠? 관광객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르웨이 여행사가 내놓은 모스크바 관광상품 역시 비슷합니다. 아주아주 비싼 23일짜리 상품이 있는데, 역시 '스푸트니크ⅴ' 백신을 2회 맞기 위해 상당히 오래 머물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터키 여행사의 러시아 백신 관광상품,  1인당 799유로로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이렇게 세계 각국의 백신 관광이 활성화되면, 형편이 넉넉한 부자들만 먼저 백신을 맞게 됩니다. 지금도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들은 백신이 넘쳐나고, 하루가 다급한 인도 같은 나라는 백신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부자나라 국민만 먼저 백신을 맞는 문제가, 이제 개도국의 부자들만 먼저 백신을 맞는 문제로 확대되는 겁니다.

계획보다 백신 확보가 계속 늦어지고 있는 태국에서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민간병원 등의 백신 유통을 검토 중입니다. 민간자본이 화이자나 모더나를 비싼 값에 들여와(다국적 제약사들이 같은 가격에는 안 줄 테니까요), 더 비싼 값에 접종하는 것을 허용할 움직입니다. 결국 백신까지 시장원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급한대로 이렇게 부자나라 먼저, 또 개도국에선 형편이 넉넉한 사람 먼저 백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위생이 열악하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감염률이 높습니다. 이들만 잘 관리하면 바이러스가 선진국으로 또 부자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WHO)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이바이러스가 신고됩니다. 과학자들은 이 중 10여 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난한 지역에서 범람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사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1.8배나 감염률이 높은 영국발 변이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각국이 그렇게 주의를 했지만 결국 거의 모든 나라로 번졌습니다).

과학자들은 부자나라, 또 부자 동네만 백신을 맞는다고 결코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백악관 등이 입장을 바꿔 백신의 '지식재산권'의 일시 정지에 찬성 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계속 외면하면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변신해 부자나라를 겨냥할지 모릅니다.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래저래 참 이 바이러스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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