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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로 끌려간 조선 도공 후손…‘명예 총영사’된 사연은?
입력 2021.05.08 (22:20) 수정 2021.05.08 (22:33)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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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한일 관계 속에서 최근 양국 정부가 작지만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뤘습니다.

420여 년 전 정유재란 때 왜구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를 우리 정부가 '명예 총영사'로 임명하고, 일본 정부도 곧바로 이를 승인한 건데요.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요.

조선 도공 '심수관 가'의 혼이 살아 있는 가고시마 현지를 황현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활화산이 숨 쉬는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

일본의 3대 도자기 '사쓰마야키'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이른 아침, 빗질 청소로 가마터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무런 모양 없는 물레 위 흙덩어리가 점차 도기 형태를 갖춰 갑니다.

날카로운 조각칼로 몸체에 음각을 새기는 작업에 이어 도기 표면에 섬세한 색을 입히는 일 역시 모두 수작업입니다.

반나절 가까이 수백 도 고온을 견뎌낸 도기를 가마 밖으로 꺼냅니다.

'사쓰마야키', 즉 사쓰마 도자기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책임진 이가 바로 15대 심수관입니다.

[15대 심수관 : "(만족한 작품은) 지금까지 한 번, 두 번밖에는 없었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반성할 일만 계속 생기죠. 왜 더 잘 만들지 못했을까."]

전북 남원에 살던 심 씨 가문이 일본에 끌려간 건 1598년 정유재란 때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색 자기를 만들지 못했어요. 제조 기술이 크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도자기를 사왔는데, 자기들도 직접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심 씨 가문은 이후 가고시마에 정착해 420여 년 도자기를 빚으며 살았습니다.

심 씨 가문의 초기 작품 '히바카리'입니다.

흙과 유약 등 모든 재료와 기술은 '조선의 것'으로, 일본 건 "불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14대 심수관/1984년 : "이국에 끌려와 말도 안 통하고, 흙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돈 한 푼 없이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기어코 일본의 특산품이 될 때까지 발전시켜 나간 거죠."]

세월과 더불어 변신을 거듭하던 '사쓰마야키'는 19세기 절정을 맞이합니다.

국제 박람회에 잇따라 작품을 출품해 유럽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15대 심수관 : "달걀 껍데기 같은 도자기는 대체 뭐냐, 위에서 우유를 부은 듯한, 아직 우리가 모르는 도자기가 있구나,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이를 계기로 후손들은 대대로 '심수관'이란 이름을 지키며 도자기 명가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전시회.

작품마다 노란색 스티커가 여러 개 붙었습니다.

["5명이 사겠다는 건데요. 주문을 하면 3~4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습니다)."]

[야우치 츠토무/백화점 VIP 담당 : "제가 가고시마까지 (전시회를) 부탁하러 갔었어요. 그게 5년 전인데, 5년을 기다려서 겨우 오늘에서야 실현됐습니다."]

심수관 가는 이번 15대까지 일본에서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며 한일 양국을 잇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사쓰마야키' 탄생 4백 주년을 맞았던 1998년.

가마의 생명과도 같은 혼불을 한국에서 가져오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고향의 불을 들여와 온전한 조선의 도자기를 빚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15대 심수관 : "많은 할머니가 자기 집 불을 가져와 '이것도 가져가시라'고 보태 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기뻤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어요."]

당시 남원에서 가져온 불은 이렇게 한일 우호를 상징하는 탑 안에서 20년 넘게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민간 교류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해 양국 총리는 우리나라 쪽으로 방향을 잡은 3층 석탑을 세웠고, 2004년 가고시마 정상회담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심수관요를 찾아 양국 우호를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2004년 : "이건 어떻게 만든 거죠? 무늬 있는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기업 비밀입니다.)"]

선조의 아픈 역사, 그리고 담대한 도전으로 이를 극복해 온 심수관 가.

15대 심수관에게도 이제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지난달 열린 명예 총영사관 개관식.

올해 초 한국 정부는 15대 심수관을 주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임명했고, 일본 외무성도 이례적으로 이를 곧바로 승인했습니다.

[시오타 코이치/일본 가고시마현 지사 : "한일 우호 증진에 온 힘을 쏟아온 데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이 (한일 양국의)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일본의 어머니의 나라"라는 15대 심수관.

선조들이 4백여 년 가마의 불을 지켜온 것처럼 자신도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 '작은 불씨'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15대 심수관 : "중요한 것은 물 한 컵을 바다에 붓는,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뒤에서 돕고 싶습니다."]

가고시마에서 황현택입니다.
  • 日로 끌려간 조선 도공 후손…‘명예 총영사’된 사연은?
    • 입력 2021-05-08 22:20:19
    • 수정2021-05-08 22:33:54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한일 관계 속에서 최근 양국 정부가 작지만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뤘습니다.

420여 년 전 정유재란 때 왜구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를 우리 정부가 '명예 총영사'로 임명하고, 일본 정부도 곧바로 이를 승인한 건데요.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요.

조선 도공 '심수관 가'의 혼이 살아 있는 가고시마 현지를 황현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활화산이 숨 쉬는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

일본의 3대 도자기 '사쓰마야키'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이른 아침, 빗질 청소로 가마터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무런 모양 없는 물레 위 흙덩어리가 점차 도기 형태를 갖춰 갑니다.

날카로운 조각칼로 몸체에 음각을 새기는 작업에 이어 도기 표면에 섬세한 색을 입히는 일 역시 모두 수작업입니다.

반나절 가까이 수백 도 고온을 견뎌낸 도기를 가마 밖으로 꺼냅니다.

'사쓰마야키', 즉 사쓰마 도자기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책임진 이가 바로 15대 심수관입니다.

[15대 심수관 : "(만족한 작품은) 지금까지 한 번, 두 번밖에는 없었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반성할 일만 계속 생기죠. 왜 더 잘 만들지 못했을까."]

전북 남원에 살던 심 씨 가문이 일본에 끌려간 건 1598년 정유재란 때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색 자기를 만들지 못했어요. 제조 기술이 크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도자기를 사왔는데, 자기들도 직접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심 씨 가문은 이후 가고시마에 정착해 420여 년 도자기를 빚으며 살았습니다.

심 씨 가문의 초기 작품 '히바카리'입니다.

흙과 유약 등 모든 재료와 기술은 '조선의 것'으로, 일본 건 "불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14대 심수관/1984년 : "이국에 끌려와 말도 안 통하고, 흙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돈 한 푼 없이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기어코 일본의 특산품이 될 때까지 발전시켜 나간 거죠."]

세월과 더불어 변신을 거듭하던 '사쓰마야키'는 19세기 절정을 맞이합니다.

국제 박람회에 잇따라 작품을 출품해 유럽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15대 심수관 : "달걀 껍데기 같은 도자기는 대체 뭐냐, 위에서 우유를 부은 듯한, 아직 우리가 모르는 도자기가 있구나,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이를 계기로 후손들은 대대로 '심수관'이란 이름을 지키며 도자기 명가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전시회.

작품마다 노란색 스티커가 여러 개 붙었습니다.

["5명이 사겠다는 건데요. 주문을 하면 3~4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습니다)."]

[야우치 츠토무/백화점 VIP 담당 : "제가 가고시마까지 (전시회를) 부탁하러 갔었어요. 그게 5년 전인데, 5년을 기다려서 겨우 오늘에서야 실현됐습니다."]

심수관 가는 이번 15대까지 일본에서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며 한일 양국을 잇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사쓰마야키' 탄생 4백 주년을 맞았던 1998년.

가마의 생명과도 같은 혼불을 한국에서 가져오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고향의 불을 들여와 온전한 조선의 도자기를 빚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15대 심수관 : "많은 할머니가 자기 집 불을 가져와 '이것도 가져가시라'고 보태 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기뻤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어요."]

당시 남원에서 가져온 불은 이렇게 한일 우호를 상징하는 탑 안에서 20년 넘게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민간 교류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해 양국 총리는 우리나라 쪽으로 방향을 잡은 3층 석탑을 세웠고, 2004년 가고시마 정상회담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심수관요를 찾아 양국 우호를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2004년 : "이건 어떻게 만든 거죠? 무늬 있는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기업 비밀입니다.)"]

선조의 아픈 역사, 그리고 담대한 도전으로 이를 극복해 온 심수관 가.

15대 심수관에게도 이제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지난달 열린 명예 총영사관 개관식.

올해 초 한국 정부는 15대 심수관을 주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임명했고, 일본 외무성도 이례적으로 이를 곧바로 승인했습니다.

[시오타 코이치/일본 가고시마현 지사 : "한일 우호 증진에 온 힘을 쏟아온 데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이 (한일 양국의)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일본의 어머니의 나라"라는 15대 심수관.

선조들이 4백여 년 가마의 불을 지켜온 것처럼 자신도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 '작은 불씨'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15대 심수관 : "중요한 것은 물 한 컵을 바다에 붓는,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뒤에서 돕고 싶습니다."]

가고시마에서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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