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
입력 2021.05.09 (22:36)
수정 2021.05.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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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희> 미디어의 본질을 묻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첫 순서는요.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드러난 중대 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 첫 순서는요.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드러난 중대 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서는 기자 대신 기자를 쓰는 인공지능 로봇, AI 저널리즘의 현주소를 짚어볼 텐데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오늘 함께 할 분들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나오셨습니다.
이어서, 취재의 원칙과 관행의 괴리 속에서 늘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진지남 KBS 이세중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이세중> 안녕하세요? 진지하게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채 교수님, 우선 구면입니다. 1회 함께하셨는데요. 1회를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정말 꼼꼼하시고, 진지하시고 약간 대쪽 같은 선비 느낌을 제가 받았거든요, 오늘도 대쪽 같은 선비의 정신으로 비평해주실 거죠?
<채영길> 심각한 오해이시고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알겠습니다. 교수님,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럼 본격적인 비평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는 비판하기도 지친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나온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지난 한 달여간 언론이 쏟아낸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수많은 보도에서 언론은 과연 무엇을 쫓았던 걸까요?
이세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진 기사들,
취재진은 네이버 모바일에서 구독이 가능한 언론사 45곳을 대상으로 분석해봤습니다.
한 달 간 매일 언론사마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스무 개씩을 뽑아 김태현, 노원, 세 모녀라는 단어로 추려봤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사는 모두 521건,
이세중 기자 “중복된 것을 빼고 대략 한 500여 건이 나왔는데, 이렇게 좀 날짜별로 정리를 해보니까 좀 어떤 특징들이 보이는 거 같아요.”
서지영 기자 “중반 이후에 가면서 뭔가 서사적인 것들을 부여하는 것들, 그다음에 주변 지인을 취재해서 따옴표 저널리즘, 그 기사가 많이 보였잖아요?”
정현환 리서쳐 ”자극적인 보도들이 어떤 시기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올렸는지... 그걸 좀 쫙 나눠보면 이게 구조적으로도 뭔가 좀 나오지 않을까, “
취재진은 보도량의 변화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눠 기사 제목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사건 초기 기자들은 범행이 이뤄진 이곳 아파트에 몰려들었습니다.
노원에 사는 세 모녀가 살해됐고,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해 수사 중이라는 속보가 쏟아졌는데요,
그런데 빈도수가 높은 단어들 중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큰딸' 그리고 '연인', 살인범의 정체가
피해자 큰딸의 연인이라는 추측을 내놓은 겁니다.
초반 이 사건을 연인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으로 규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기사들의 출처는 주민 익명 인터뷰,
한 언론은 "남자친구가 살해한 게 확실한 것 같다”, "주민 모두 남자친구로 알고 있다"고 전했는데,
몇 시간 뒤,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주민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아예 "헤어진 연인으로 확인됐다"고 단정한 기사도 있습니다.
같은날 주민이 아닌 피해자의 친구를 인터뷰해 사건의 본질인 스토킹 범죄를 정확히 짚은 보도도 있었지만, 확인은 미뤄진 채
전 남친이 맞다, 아니다라는 피해자와의 관계를 추측하는 보도가 이어지며 스토킹 범죄의 본질은 흐려졌습니다.
그리고 기사가 다시 급증한 두 번째 구간,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시기입니다.
언론이 김태현의 신상을 보도하며 주목한 단어, PC방과 맥주입니다.
김태현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 피해자가 자주 다니던 이 PC방 건물에 왔었다는 스토킹 정황을 보도한 건데요,
그럼 맥주는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맥주를 대상으로 의미망 분석을 해봤더니,
'시신, 사흘, 악마, 엽기'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범행 뒤 집에 머물며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을 언론사마다 강조한 건데, 범행 사실을 담담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범인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태현의 동창생, 훈련소 동기, 그가 일했던 PC방 사장 등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가해자 주변 인물의 인터뷰 보도 역시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구간, 특히, 김태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4월 9일은 가장 많은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언론사들의 눈은 모두 도봉경찰서를 향했습니다.
김태현은 검찰에 송치되기 전 이곳 경찰서 밖을 걸어나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무릎과 죄책감입니다.
김태현이 무릎을 꿇고, '숨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한 건데요,
김태현의 말을 생중계하며 그대로 전한 언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김태현이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를 추측하는 어뷰징 수준의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물론,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의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한 기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에 대해 언론은 심층 분석했는데요,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엔 처벌이 힘든 점과 까다로운 접근금지 신청 절차, 지속적인 피해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선별한 주요 기사 521개 중, 이같은 대안을 다룬 기사는 전체 13건,
그나마 6건은 대통령의 관련 대책 지시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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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희> 언론이 범죄 사건을 어떻게 가십거리로 소비를 하고, 그러면서 사건의 본질이 어떻게 흐려지는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 기분이었습니다. 최 교수님 어떻게 보셨어요?
<채영길>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까 문제의 심각성이 이렇게 뚜렷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김태현이라고 하는 가해자와 이름, 누가 피해자인지 이런 것만 바꾸면 기존에 있었던 굉장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스토리나 어떤 주체만 달라졌을 뿐이지, 보도 방식이 굉장히 반복적이지 않나, 그래서 어떤 기시감을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김솔희> 그렇죠. 일련의 어떤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어떤 패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세중 기자는 취재하면서 어땠어요?
<이세중> 사실 저도 이번에 전부 조사를 해보니까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좀 알 수 있었는데 그럼 우리 KBS는 어떻게 보도를 했을까?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KBS 9시 뉴스에 처음으로 보도된 게 4월 1일이거든요.
그러면 일주일 동안 KBS는 뭘 했는가? 이런 의문이 분명히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이번 스토킹살인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의제 설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가, 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고요.
또 하나는 KBS가 어떤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어떤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그러게 말입니다. VCR을 보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이랄까?
그런 거를 짚어보면요. 김태현의 발언이 하나하나가 다 생중계되듯이 나오더라고요. 김태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뭔가 면죄부를 주는듯한? 그런 보도를 계속해서 듣다 보면 그랬구나, 많이 반성하고 있네? 절로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이세중> 말씀하신 대로 김태현의 발언으로만 기사를 쓴 것들이 셀 수도 없거든요. 너무 많은데 피의자의 이런 말들이 대서특필되는 현재 상황이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기자로서 고민이 되는 지점이 뭐냐면 어쨌든 간에 강력 사건의 피의자가 신상 공개 결정이 내려져서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자리였거든요,
그렇다면 취재를 안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피의자가 언론에 대고 어떤 말을 한다면 이것을 기사화를 안 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런 기자로서 현실적인 고민이 들더라고요.
<채영길> 일단 현장에서 취재가 되고 있는 상태였고, 어떤 스토리가 있으면 어떻게든 전달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왜’라는 질문보다 내가 어떤 효과를 기대하면서 이것을 보도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을 더 고양시키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보도하려고 하는지, 또는 피해자에 대한 어떤 동정심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보도를 하려고 하는지, 또는 사건의 어떠한 범죄의 수법이나 잔혹함을 이렇게 더 전달해서 시청자나 독자를 놀라게 하려고 보도를 하는지, 어떻게 보면 자기가 이것을 보도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한번 되돌아보면 사실은 이것에 대한 어떠한 접근 방식이나 어떠한 보도의 어떤 선택의 여부, 이런 것들이 좀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김솔희> 그런 식으로 기자 스스로 자꾸 질문을 던져보면서 기준을 잡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좀 보도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부적절한 보도 내용을 비평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가 커서요. 지나치게 선정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를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련의 보도 과정을 보시면서
채 교수님은 어떤 언론의 공통으로 잘못하고 있는 점들, 그런 거를 어떻게 꼽으실까요?
<채영길> 아까 일련의 어떤 사건 타임 스케줄이 나왔는데요.
성급한 어떠한 사건을 규정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 김태현 같은 사건 같은 경우에는 많은 어떠한 무리한 추측들이 많이 개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추측의 근거로 이용되는 것이 주민들의 어떠한 인용, 이런 것들인데요. 사실 추측이거든요.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온 어떠한 이제 기사가 둘 간의 연인 관계였다. 연인의 어떤 치정살인이다, 그런데 본질은 스토킹이라는 명백한 범죄. 어떤 사건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초기의 추측성이라는 것은 사건의 성격도 바뀌게 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어떤 잘못된, 왜곡된 인식까지 심어주고 사건의 어떠한 이후에 보도의 방향까지도 결정하게 되는 이런 여러 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세중> 그러니까 이러한 식의 추측이나 전언, 남자친구라 하더라 식의 이런 것들은 반드시 재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이 누락된 게 이번 보도의 문제라고 보는데, 그래서 저희 취재진이 이렇게 보도한 언론사들에 한번 물어봤습니다.
<김솔희> 잘못 보도한 언론사들에요?
<이세중> 그랬더니 대부분 답이 오지 않았고요. 아까 보셨다시피 전 남자친구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OBS 측에서는 답이 왔는데요. 다른 언론사 보도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다만 방송 뉴스에서는 전 남자친구라고 보도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내리지 않은 건 착오였고,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이렇게 알려왔습니다.
<김솔희>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도 왜 이렇게 마을 주민, 동네 주민 인터뷰가 많은지 의아해요. 요즘 현대 사회에서 사실 이웃끼리 그렇게 교류 많이 안 하거든요.
<이세중> 그렇죠. 분명히 기자들이 아마 범죄 현장 가서 그 옆집 딩동 누르고 옆 옆집 누르고 지나간 사람 붙잡고 경비원, 아저씨 가릴 것 없이 다 물어봤을 거예요. 이걸 왜 하느냐 하면 경찰은 사건 직후에는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찰이 기자들에게 제공한 정보를 보니까
“모녀 3명이 숨진 채 발견이 됐고 거실에서 자해한 남성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범행을 자백했고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렇게 알려왔는데요. 기자들이 가장 궁금한 ‘피해자가 누구인지, 피의자는 누구인지, 범행 동기가 뭔지, 범행 수법은 뭔지’는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은 그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변부 취재를 하는데 ‘사건 발생 당일 무슨 소리는 못 들었는지’, ‘뭘 목격한 건 없는지’이런 본인의 직접 경험담 증언은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 안에서 새로운 팩트가 나올 수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은 사실 주민들이 알기 어려운 거죠. 말씀하신 대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어떻게 주민들이 알겠어요.
<채영길>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의 언어나 그들의 어떠한 말씀들이 하나의 소문이고 잠재적인 어떠한 추측이라는 거죠. 소문은 사실은 잠재적인 어떠한 사실이 아니라 잠재적인 거짓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보도가 오보가 됐을 때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사나 기자에게는 하나의 실수구나, 어떠한 정정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해당 대상자들은. 이것이 시청자나 구독자들에게 뇌리에 남게 되거든요.
<김솔희> 섣부르게 언론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는데요. 이 지점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건의 이름을 정하는 것에 대한 건데요. 지난달 19일에 피해자 유가족 측에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면서요. “언론에서 노원 세 모녀 사건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가슴이 무너진다”면서 “가해자의 이름을 따서 김태현 사건 등으로 불러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세중> 언론이 얼마나 이 사건 이름을 잘못 붙였기에 이랬나 봤더니 저희가 분석한 기사 중에서 노원 세 모녀 사건, 세 모녀 사건처럼 (제목을)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으로 이름 붙인 게 39건이었습니다. 반면에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처럼 피의자 중심으로 보도한 건 6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 노원 경찰서에서 보낸 문자거든요. 기자들한테 보낸 문자를 보면 노원 세 모녀 사망 사건 관련 문자입니다. 그러니까 경찰에서도 모녀 사망 사건이라고 네이밍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큰 고민 없이 언론들은 관행대로 이거를 그대로 받아쓰는 그러한 경향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7일에는 또 이런 보도가 있었습니다. MBN 단독인데요, 이거를 보면서 이게 뭐지? 애초에 이게 기사가 될 만한 정보 가치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단독이라고 하니까 뭐가 단독인 거지? 어떤 내용이 이 언론사만의 특별한 정보를 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세중> 사실 단독 보도라는 것은 어떠한 사건의 진실을 발굴하고 어떠한 진상을 파헤쳐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이런 것들이 단독 보도로써 가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진실을, 어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기보다는 기존의 보도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면 단독인 겁니다. 그러니까 파편적이고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더라도 가십거리라도 보도가 안 됐으면 그냥 다 단독인 거예요.
”김태현이 뭘 먹었다더라“, ”김태현이 투표 할 수 있다, 없다.“ 과거 김태현을 아는 그 누군가 인터뷰했다, 그러면 단독 인터뷰가 되는 겁니다.
<김솔희>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짚어보죠. 가해자 서사 보도에 대해서 좀 문제점을 짚어볼까요?
<채영길> 최근 들어서 이게 굉장히 많이 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번 김태현 보도 같은 경우에도 그런데 한,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하나는 두 얼굴의 악마 서사가 있고요. 사실은 평범하고 주위 이웃이었던 청년이 갑자기 굉장히 어떠한 잔혹한 악마로 변해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라고 하면서 평범한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리고 굉장히 잔혹한 범죄 수법을 연결해 보여주면서 그러한 서사를 만듭니다. 두 번째는 ‘악마의 기원 서사’라고 제가 이름을 붙여봤는데요.
왜 이렇게 잔혹한 악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가 이루어지는데요. 여기서 바로 집요한 과거 행적 취재가 들어가는 것 같아요. 거의 스토킹 보도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거를 통해서 무엇을 발견하고자 했느냐 하면 바로 서사 구조를 완성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다음부터의 모든 스토리는 그 악마와 피해자 이 구도에서 시청자들은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서 이 스토킹과 관련된 어떤 제도적인 문제. 그리고 방범과 치안의 문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어떤 개인 정보의 어떤 보호 문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세중> 그러니까 기자들이 관심을 두는 포인트가 공통으로 보이는데 아까 VCR에서 보신 것처럼 PC방이 좀 대표적입니다.
피해자와 김태현이 게임에서 만났다고 하니까 피해자가 갔던 PC방, 김태현이 갔던 PC방을 아마 또 기자들은 다 우르르 몰려갔을 거거든요. 저도 이번에 김태현이 다녀갔다는 PC방을 가봤습니다.
그래서 가봐서 촬영하려고 하니까 해당 건물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다른 식당 주인이 와서 정말 강하게 항의하더라고요.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자기들이 너무 피해를 많이 봤다는 거예요.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하도 사정을 하길래 자기가 CCTV도 보여주고 편의도 봐줬는데 공익에 부합하니까. 그런데 자기의 상호를 노출 안 하기로 한 약속도 어기고 손님은 뚝 끊기고 이제는 기자라면 이골이 난다.
<김솔희> 진저리.
<이세중> 그냥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제발 가라고 하더라고요.
<채영길> 분명히 과거 행적을 좇아가다 보면 어떤 가정 그리고 그 공동체,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들이 제기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어떠한 이런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리가 이 사건의 어떠한 이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보도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 이런 것들이 이 짧은 시간에 쏟아지면서 이 사회 구조를 제대로 검증이 되거나 어떠한 원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십거리로 그냥 지나가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 김솔희> 이번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 대해서 시청자 참여단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의견을 좀 들어봤습니다. 공통으로 나온 의견은요.
”알 권리를 내세워 점점 더 선정적인 보도가 늘어나다 보니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 이런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 “김태현이 주장하는 범행 동기와 사과 퍼포먼스를 검증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중계할 경우 언론이 보여주는 대로 믿어버리고 생각하게 되는 시청자가 많은 만큼 그런 영향력을 고려해서라도 신중하게 보도했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만 봐도요. 보도, 범죄 보도가 뉴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조금 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채영길> 민 월드 신드롬(Mean world syndrome)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주 이렇게 굉장히 위험하고 어떤 추한 세상에 대한 신드롬이라는 말인데요. 언론 보도를 통해서 그러한 것들이 관념이 만들어진다는 어떤 그러한 이론 같은 개념인데요. 범죄 보도가 굉장히 잔혹하고
굉장히 빈번하게 이렇게 보도되다 보면 세상에 대해서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실제 통계 조사에 의하면 강력 범죄나
성범죄가 증가하는 속도보다도 언론사가 이러한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보도하는 횟수나 빈도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 보도는 보도함으로써 우리가 더 사회가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과 정반대가 되는 어떠한 효과가 있다, 이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김솔희> 알겠습니다. 실제로 발생하는 것보다 더 과하게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는 현상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은요. 올해 9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게 99년에 발의가 됐다고 해요. 첫 발의가 된 이후에 22년이 흘렀는데요, 언론이 이번 사건이 지난 20년간 국회에 묶여 있었던 제도의 공백 속에 벌어진 예고된 참극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조차도 이러한 스토킹 범죄를 가십거리로 소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 이렇게 국회 탓만 하고있을 자격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세중> 사실 언론이 스토킹 범죄에 관심을 가진 게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스토킹 범죄라는 것 자체에 사회적인 경각심이 좀 부족했던 시절도 있었고요.
이게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잡히면서 언론 보도가 늘었는데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사실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의 스토킹 범죄 보도가 어땠는지 분석한 단체가 있다고 하는데요. 분석 결과에 대해서 제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셰도우핀즈 “안녕하세요”
기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 “먼저 우리 셰도우핀즈라는 단체를 소개해 주신다면”
테오즈 “저희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소규모 그룹이고요. 사법 체계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동안 굉장히 침해받아온 부분을 회복시키는...”
기자 “이번 스토킹 살인사건 보도를 어떻게 보셨는지?”
테오즈 “이게 놀라운 사건이 아니에요. 그냥 이제껏 이런 사건은 너무너무 많았고, 20년 동안....스토킹 피해 이후에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이 패턴이 왜 이렇게 반복이 되고 스토킹이 이제 방치됐을 때 이렇게 더 큰 범죄가 벌어지면 여성으로서 대책은 무엇인가, 이런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전혀 없고...
20년간 반복된 스토킹 범죄 보도, 그 실상은 어떨까.
셰도우핀즈는 1999년부터 2020년 9월까지,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에 올라온 스토킹 관련 기사 3천여 건을 분석했습니다.
스토킹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하던 시절, 기사는 대부분 연예인 피해 사례였고, 일반인의 경우
피해 여성의 외모를 부각했습니다.
기자 “스토킹 범죄 보도가 이런 것들이 공통으로 문제가 있더라,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제로섬 “미모에 초점을 두는 기사가 좀 많았던 것 같고, 아니면 되게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그런 서사가 꽤 많더라고요. 나름대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름 분투하는 그런 사람인데 왜 처박혀서 울고만 있어야 되는지?”
스토킹 범죄외 관련 없는 내용도 '스토킹'이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기도 합니다.
테오즈 “악성 민원 넣듯이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헤드라인을..”
스토킹 보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해자에게도 그럴듯한 범행 이유가 있었다는 식의 기사.
스토킹을 구애 행위에 빗댄 경우가 가장 흔했는데, 145건의 기사가 이런 오류를 범했습니다.
제로섬 "거의 똑같은 내용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가해자는 뭔가 저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저 여자를 쫓아다닌 거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테오즈 "기자들이 왜 이렇게 뽑는지.. 가해자 남성한테 이입했고 이미 기울어져 있는 거예요,"
분석해보니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테오즈 "프로젝트 거의 초기에 한 건데 '왜 안 만나줘'라는 것만 놓고 네이버에서 그때 돌린 건데, 돌려도 4800건의 기사가..."
기자 "안 만나줬으니까 이 사람이 널 스토킹했지, 라는 식의 어떤 인과(관계)를..."
테오즈 "맞아요, 맞아요.."
가해자의 변명을 피해자의 말과 대등하게 보여주는 점도 문제입니다.
테오즈 ”순수한 팬심이었다. 이거는 가해자가 그냥 한 말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실었잖아요? 순수한 사랑, 순수한 팬심, 그런 식으로.. 이거는 이제 또 가해자의 시선이지 이분께서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제목들만 보면 '미모'의 여성에 대한 '구애'가 실패한 것일 뿐이라는 식의 기사들.
하지만 스토킹이 끝내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기사도 228건에 이를 만큼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테오즈 "계속 구애를 지속을 한 거고, 그 끝은 죽음인 거죠. 그런데 사실은 이게 강력 범죄고 굉장히 살인 사건인데..."
그럼 어떻게 보도해야 될까,
다섯 가지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해자가 했던 말을 여과없이 싣진 않았는지, 가해자의 변명에 편향되게 이입하지 않았는지, 또,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진 않았는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진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범행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진 않았는지입니다.
그러면서 2018년 한겨레가 보도한 스토킹 연속 보도를 좋은 기사로 뽑았습니다.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지적했고, 끝내 살인까지 이어진 사례를 취재해 피해 유가족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의 법제화를 이룬 지금, 이젠 언론이 변해야 할 때라고 지적합니다.
테오즈 "언론을 제지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런 방비가 없어요.
어떻게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이제 피해자.. 특히 여성들의 이미지를 광고판으로 그냥 갖다가 쓰는 것 같고...
9년간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는 활동가는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피해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제로섬 "그냥 그 언론의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텐데.. 저처럼 그 피해자는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단 말이에요. 피해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한 번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거든요.
<김솔희> 가해자 시각에 갇힌 스토킹 범죄 보도, 이게 참 정확한 지적인 것 같아요. 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보도를 보면 구애에 실패해서, 아니면 어긋난 사랑 이런 식의
내용이 참 많이 습관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게 가해자 입장에서 보면 관심이고 구애고 사랑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그 자체가 공포고 범죄인데 언론이 이미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채영길> 저는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이 이게 일부 언론사가 아니라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런 것을 하고 있고, 그리고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포털 저널리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1초 뒤에 보도되면 1초 앞에 나온 어떤 기사보다 훨씬 더 클릭 수가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사실은 누가 먼저 보도를 하는지가 많은 어떠한 구독자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기사가 구독자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죠. 즉, 속도가 사실은 경제적인 어떤 이익과 결부되는 상황에서는. 같은 어떠한 속도라 하더라도 훨씬 더 자극적이면 사람들이 클릭하게 되어 있어요.
<이세중> 적극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데 사실 말씀하신 대로 이런 강력 범죄 사건이 어떤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보다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속보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거든요.
특히 말씀하신 대로 이런 사건 사고 취재를 맡는 기자는, 입사한 지 5년 미만의 주니어로 분류되는 그런 기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데스크나 선임 기자의 지시를 정말 시시각각 받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기사 건수는 채워야 하고 뭐라도 쓰라고 위에서는 반복, 쏟아부으니까 이거를 자기가 판단하기에도 힘들고 그런 흐름에 좀 맡겨지는 게 아닌가,
기자들이. 특히 어린 기자들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그러면 말씀하신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세중> 사실 관련된 보도 준칙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면 안 되고 또 피해자 측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고요. 또 신문윤리실천요강을 보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틀에서는 분명히 기준이 있는데 사실은 이거를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가 좀 두루뭉술하고 좀 애매한 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채영길> 최근 들어 이제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언론사들이 좀 생기고 있긴 합니다. 이제 젠더와 관련한 그리고 소수자와 관련한 어떤 보도를 내부에서 감시하고 관련 보도를 하는 기자를 교육하려고 하는 어떠한 시스템을 만드는 지역 언론사들도 좀 생기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어떠한, 저희 같은 모니터링이나 비판, 감시도 중요하지만 실제 내부에서 체계적인 어떠한 필터링 시스템 그리고 어떠한 제도 교육 시스템들을 언론사마다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은 준칙이 없어서 이러한 보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실은 법이 없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준칙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이것을 지키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야지만 법과 준칙으로써의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김솔희> 네, 스토킹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요.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의로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이것입니다. 이 선정적인 범죄 보도가 반복될 때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 또 뉴스 소비자들이 이제는 좀 멈춰달라는 호소를 이어왔는데 언론은 달라지지 않았죠? 이제는 언론 스스로가 스토커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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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기자들Q] 김태현 스토킹 살인…언론은 무엇을 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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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5-09 22:36:02
- 수정2021-05-14 18:51:20

<김솔희> 미디어의 본질을 묻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첫 순서는요.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드러난 중대 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 첫 순서는요.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드러난 중대 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서는 기자 대신 기자를 쓰는 인공지능 로봇, AI 저널리즘의 현주소를 짚어볼 텐데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오늘 함께 할 분들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나오셨습니다.
이어서, 취재의 원칙과 관행의 괴리 속에서 늘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진지남 KBS 이세중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이세중> 안녕하세요? 진지하게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채 교수님, 우선 구면입니다. 1회 함께하셨는데요. 1회를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정말 꼼꼼하시고, 진지하시고 약간 대쪽 같은 선비 느낌을 제가 받았거든요, 오늘도 대쪽 같은 선비의 정신으로 비평해주실 거죠?
<채영길> 심각한 오해이시고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알겠습니다. 교수님,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럼 본격적인 비평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솔희>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는 비판하기도 지친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서 나온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지난 한 달여간 언론이 쏟아낸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수많은 보도에서 언론은 과연 무엇을 쫓았던 걸까요?
이세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진 기사들,
취재진은 네이버 모바일에서 구독이 가능한 언론사 45곳을 대상으로 분석해봤습니다.
한 달 간 매일 언론사마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스무 개씩을 뽑아 김태현, 노원, 세 모녀라는 단어로 추려봤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사는 모두 521건,
이세중 기자 “중복된 것을 빼고 대략 한 500여 건이 나왔는데, 이렇게 좀 날짜별로 정리를 해보니까 좀 어떤 특징들이 보이는 거 같아요.”
서지영 기자 “중반 이후에 가면서 뭔가 서사적인 것들을 부여하는 것들, 그다음에 주변 지인을 취재해서 따옴표 저널리즘, 그 기사가 많이 보였잖아요?”
정현환 리서쳐 ”자극적인 보도들이 어떤 시기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올렸는지... 그걸 좀 쫙 나눠보면 이게 구조적으로도 뭔가 좀 나오지 않을까, “
취재진은 보도량의 변화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눠 기사 제목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사건 초기 기자들은 범행이 이뤄진 이곳 아파트에 몰려들었습니다.
노원에 사는 세 모녀가 살해됐고,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해 수사 중이라는 속보가 쏟아졌는데요,
그런데 빈도수가 높은 단어들 중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큰딸' 그리고 '연인', 살인범의 정체가
피해자 큰딸의 연인이라는 추측을 내놓은 겁니다.
초반 이 사건을 연인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으로 규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기사들의 출처는 주민 익명 인터뷰,
한 언론은 "남자친구가 살해한 게 확실한 것 같다”, "주민 모두 남자친구로 알고 있다"고 전했는데,
몇 시간 뒤,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주민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아예 "헤어진 연인으로 확인됐다"고 단정한 기사도 있습니다.
같은날 주민이 아닌 피해자의 친구를 인터뷰해 사건의 본질인 스토킹 범죄를 정확히 짚은 보도도 있었지만, 확인은 미뤄진 채
전 남친이 맞다, 아니다라는 피해자와의 관계를 추측하는 보도가 이어지며 스토킹 범죄의 본질은 흐려졌습니다.
그리고 기사가 다시 급증한 두 번째 구간,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시기입니다.
언론이 김태현의 신상을 보도하며 주목한 단어, PC방과 맥주입니다.
김태현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 피해자가 자주 다니던 이 PC방 건물에 왔었다는 스토킹 정황을 보도한 건데요,
그럼 맥주는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맥주를 대상으로 의미망 분석을 해봤더니,
'시신, 사흘, 악마, 엽기'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범행 뒤 집에 머물며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을 언론사마다 강조한 건데, 범행 사실을 담담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범인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태현의 동창생, 훈련소 동기, 그가 일했던 PC방 사장 등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가해자 주변 인물의 인터뷰 보도 역시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구간, 특히, 김태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4월 9일은 가장 많은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언론사들의 눈은 모두 도봉경찰서를 향했습니다.
김태현은 검찰에 송치되기 전 이곳 경찰서 밖을 걸어나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무릎과 죄책감입니다.
김태현이 무릎을 꿇고, '숨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고 말한 건데요,
김태현의 말을 생중계하며 그대로 전한 언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김태현이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를 추측하는 어뷰징 수준의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물론,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의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한 기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에 대해 언론은 심층 분석했는데요,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엔 처벌이 힘든 점과 까다로운 접근금지 신청 절차, 지속적인 피해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선별한 주요 기사 521개 중, 이같은 대안을 다룬 기사는 전체 13건,
그나마 6건은 대통령의 관련 대책 지시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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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희> 언론이 범죄 사건을 어떻게 가십거리로 소비를 하고, 그러면서 사건의 본질이 어떻게 흐려지는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 기분이었습니다. 최 교수님 어떻게 보셨어요?
<채영길>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까 문제의 심각성이 이렇게 뚜렷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김태현이라고 하는 가해자와 이름, 누가 피해자인지 이런 것만 바꾸면 기존에 있었던 굉장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스토리나 어떤 주체만 달라졌을 뿐이지, 보도 방식이 굉장히 반복적이지 않나, 그래서 어떤 기시감을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김솔희> 그렇죠. 일련의 어떤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어떤 패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세중 기자는 취재하면서 어땠어요?
<이세중> 사실 저도 이번에 전부 조사를 해보니까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좀 알 수 있었는데 그럼 우리 KBS는 어떻게 보도를 했을까?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KBS 9시 뉴스에 처음으로 보도된 게 4월 1일이거든요.
그러면 일주일 동안 KBS는 뭘 했는가? 이런 의문이 분명히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이번 스토킹살인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의제 설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가, 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고요.
또 하나는 KBS가 어떤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어떤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그러게 말입니다. VCR을 보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이랄까?
그런 거를 짚어보면요. 김태현의 발언이 하나하나가 다 생중계되듯이 나오더라고요. 김태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뭔가 면죄부를 주는듯한? 그런 보도를 계속해서 듣다 보면 그랬구나, 많이 반성하고 있네? 절로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이세중> 말씀하신 대로 김태현의 발언으로만 기사를 쓴 것들이 셀 수도 없거든요. 너무 많은데 피의자의 이런 말들이 대서특필되는 현재 상황이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기자로서 고민이 되는 지점이 뭐냐면 어쨌든 간에 강력 사건의 피의자가 신상 공개 결정이 내려져서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자리였거든요,
그렇다면 취재를 안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피의자가 언론에 대고 어떤 말을 한다면 이것을 기사화를 안 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런 기자로서 현실적인 고민이 들더라고요.
<채영길> 일단 현장에서 취재가 되고 있는 상태였고, 어떤 스토리가 있으면 어떻게든 전달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왜’라는 질문보다 내가 어떤 효과를 기대하면서 이것을 보도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을 더 고양시키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보도하려고 하는지, 또는 피해자에 대한 어떤 동정심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보도를 하려고 하는지, 또는 사건의 어떠한 범죄의 수법이나 잔혹함을 이렇게 더 전달해서 시청자나 독자를 놀라게 하려고 보도를 하는지, 어떻게 보면 자기가 이것을 보도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한번 되돌아보면 사실은 이것에 대한 어떠한 접근 방식이나 어떠한 보도의 어떤 선택의 여부, 이런 것들이 좀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김솔희> 그런 식으로 기자 스스로 자꾸 질문을 던져보면서 기준을 잡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좀 보도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부적절한 보도 내용을 비평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가 커서요. 지나치게 선정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를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련의 보도 과정을 보시면서
채 교수님은 어떤 언론의 공통으로 잘못하고 있는 점들, 그런 거를 어떻게 꼽으실까요?
<채영길> 아까 일련의 어떤 사건 타임 스케줄이 나왔는데요.
성급한 어떠한 사건을 규정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 김태현 같은 사건 같은 경우에는 많은 어떠한 무리한 추측들이 많이 개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추측의 근거로 이용되는 것이 주민들의 어떠한 인용, 이런 것들인데요. 사실 추측이거든요.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온 어떠한 이제 기사가 둘 간의 연인 관계였다. 연인의 어떤 치정살인이다, 그런데 본질은 스토킹이라는 명백한 범죄. 어떤 사건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초기의 추측성이라는 것은 사건의 성격도 바뀌게 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어떤 잘못된, 왜곡된 인식까지 심어주고 사건의 어떠한 이후에 보도의 방향까지도 결정하게 되는 이런 여러 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세중> 그러니까 이러한 식의 추측이나 전언, 남자친구라 하더라 식의 이런 것들은 반드시 재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이 누락된 게 이번 보도의 문제라고 보는데, 그래서 저희 취재진이 이렇게 보도한 언론사들에 한번 물어봤습니다.
<김솔희> 잘못 보도한 언론사들에요?
<이세중> 그랬더니 대부분 답이 오지 않았고요. 아까 보셨다시피 전 남자친구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OBS 측에서는 답이 왔는데요. 다른 언론사 보도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다만 방송 뉴스에서는 전 남자친구라고 보도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내리지 않은 건 착오였고,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이렇게 알려왔습니다.
<김솔희>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도 왜 이렇게 마을 주민, 동네 주민 인터뷰가 많은지 의아해요. 요즘 현대 사회에서 사실 이웃끼리 그렇게 교류 많이 안 하거든요.
<이세중> 그렇죠. 분명히 기자들이 아마 범죄 현장 가서 그 옆집 딩동 누르고 옆 옆집 누르고 지나간 사람 붙잡고 경비원, 아저씨 가릴 것 없이 다 물어봤을 거예요. 이걸 왜 하느냐 하면 경찰은 사건 직후에는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찰이 기자들에게 제공한 정보를 보니까
“모녀 3명이 숨진 채 발견이 됐고 거실에서 자해한 남성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범행을 자백했고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렇게 알려왔는데요. 기자들이 가장 궁금한 ‘피해자가 누구인지, 피의자는 누구인지, 범행 동기가 뭔지, 범행 수법은 뭔지’는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은 그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변부 취재를 하는데 ‘사건 발생 당일 무슨 소리는 못 들었는지’, ‘뭘 목격한 건 없는지’이런 본인의 직접 경험담 증언은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 안에서 새로운 팩트가 나올 수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은 사실 주민들이 알기 어려운 거죠. 말씀하신 대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어떻게 주민들이 알겠어요.
<채영길>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의 언어나 그들의 어떠한 말씀들이 하나의 소문이고 잠재적인 어떠한 추측이라는 거죠. 소문은 사실은 잠재적인 어떠한 사실이 아니라 잠재적인 거짓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보도가 오보가 됐을 때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사나 기자에게는 하나의 실수구나, 어떠한 정정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해당 대상자들은. 이것이 시청자나 구독자들에게 뇌리에 남게 되거든요.
<김솔희> 섣부르게 언론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는데요. 이 지점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건의 이름을 정하는 것에 대한 건데요. 지난달 19일에 피해자 유가족 측에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면서요. “언론에서 노원 세 모녀 사건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가슴이 무너진다”면서 “가해자의 이름을 따서 김태현 사건 등으로 불러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세중> 언론이 얼마나 이 사건 이름을 잘못 붙였기에 이랬나 봤더니 저희가 분석한 기사 중에서 노원 세 모녀 사건, 세 모녀 사건처럼 (제목을)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으로 이름 붙인 게 39건이었습니다. 반면에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처럼 피의자 중심으로 보도한 건 6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 노원 경찰서에서 보낸 문자거든요. 기자들한테 보낸 문자를 보면 노원 세 모녀 사망 사건 관련 문자입니다. 그러니까 경찰에서도 모녀 사망 사건이라고 네이밍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큰 고민 없이 언론들은 관행대로 이거를 그대로 받아쓰는 그러한 경향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7일에는 또 이런 보도가 있었습니다. MBN 단독인데요, 이거를 보면서 이게 뭐지? 애초에 이게 기사가 될 만한 정보 가치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단독이라고 하니까 뭐가 단독인 거지? 어떤 내용이 이 언론사만의 특별한 정보를 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세중> 사실 단독 보도라는 것은 어떠한 사건의 진실을 발굴하고 어떠한 진상을 파헤쳐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이런 것들이 단독 보도로써 가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진실을, 어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기보다는 기존의 보도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면 단독인 겁니다. 그러니까 파편적이고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더라도 가십거리라도 보도가 안 됐으면 그냥 다 단독인 거예요.
”김태현이 뭘 먹었다더라“, ”김태현이 투표 할 수 있다, 없다.“ 과거 김태현을 아는 그 누군가 인터뷰했다, 그러면 단독 인터뷰가 되는 겁니다.
<김솔희>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짚어보죠. 가해자 서사 보도에 대해서 좀 문제점을 짚어볼까요?
<채영길> 최근 들어서 이게 굉장히 많이 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번 김태현 보도 같은 경우에도 그런데 한,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하나는 두 얼굴의 악마 서사가 있고요. 사실은 평범하고 주위 이웃이었던 청년이 갑자기 굉장히 어떠한 잔혹한 악마로 변해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라고 하면서 평범한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리고 굉장히 잔혹한 범죄 수법을 연결해 보여주면서 그러한 서사를 만듭니다. 두 번째는 ‘악마의 기원 서사’라고 제가 이름을 붙여봤는데요.
왜 이렇게 잔혹한 악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가 이루어지는데요. 여기서 바로 집요한 과거 행적 취재가 들어가는 것 같아요. 거의 스토킹 보도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거를 통해서 무엇을 발견하고자 했느냐 하면 바로 서사 구조를 완성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다음부터의 모든 스토리는 그 악마와 피해자 이 구도에서 시청자들은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서 이 스토킹과 관련된 어떤 제도적인 문제. 그리고 방범과 치안의 문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어떤 개인 정보의 어떤 보호 문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세중> 그러니까 기자들이 관심을 두는 포인트가 공통으로 보이는데 아까 VCR에서 보신 것처럼 PC방이 좀 대표적입니다.
피해자와 김태현이 게임에서 만났다고 하니까 피해자가 갔던 PC방, 김태현이 갔던 PC방을 아마 또 기자들은 다 우르르 몰려갔을 거거든요. 저도 이번에 김태현이 다녀갔다는 PC방을 가봤습니다.
그래서 가봐서 촬영하려고 하니까 해당 건물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다른 식당 주인이 와서 정말 강하게 항의하더라고요.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자기들이 너무 피해를 많이 봤다는 거예요.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하도 사정을 하길래 자기가 CCTV도 보여주고 편의도 봐줬는데 공익에 부합하니까. 그런데 자기의 상호를 노출 안 하기로 한 약속도 어기고 손님은 뚝 끊기고 이제는 기자라면 이골이 난다.
<김솔희> 진저리.
<이세중> 그냥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제발 가라고 하더라고요.
<채영길> 분명히 과거 행적을 좇아가다 보면 어떤 가정 그리고 그 공동체,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들이 제기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어떠한 이런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리가 이 사건의 어떠한 이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보도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 이런 것들이 이 짧은 시간에 쏟아지면서 이 사회 구조를 제대로 검증이 되거나 어떠한 원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십거리로 그냥 지나가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 김솔희> 이번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에 대해서 시청자 참여단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의견을 좀 들어봤습니다. 공통으로 나온 의견은요.
”알 권리를 내세워 점점 더 선정적인 보도가 늘어나다 보니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 이런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 “김태현이 주장하는 범행 동기와 사과 퍼포먼스를 검증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중계할 경우 언론이 보여주는 대로 믿어버리고 생각하게 되는 시청자가 많은 만큼 그런 영향력을 고려해서라도 신중하게 보도했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만 봐도요. 보도, 범죄 보도가 뉴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조금 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채영길> 민 월드 신드롬(Mean world syndrome)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주 이렇게 굉장히 위험하고 어떤 추한 세상에 대한 신드롬이라는 말인데요. 언론 보도를 통해서 그러한 것들이 관념이 만들어진다는 어떤 그러한 이론 같은 개념인데요. 범죄 보도가 굉장히 잔혹하고
굉장히 빈번하게 이렇게 보도되다 보면 세상에 대해서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실제 통계 조사에 의하면 강력 범죄나
성범죄가 증가하는 속도보다도 언론사가 이러한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보도하는 횟수나 빈도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 보도는 보도함으로써 우리가 더 사회가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과 정반대가 되는 어떠한 효과가 있다, 이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김솔희> 알겠습니다. 실제로 발생하는 것보다 더 과하게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는 현상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은요. 올해 9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게 99년에 발의가 됐다고 해요. 첫 발의가 된 이후에 22년이 흘렀는데요, 언론이 이번 사건이 지난 20년간 국회에 묶여 있었던 제도의 공백 속에 벌어진 예고된 참극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조차도 이러한 스토킹 범죄를 가십거리로 소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 이렇게 국회 탓만 하고있을 자격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세중> 사실 언론이 스토킹 범죄에 관심을 가진 게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스토킹 범죄라는 것 자체에 사회적인 경각심이 좀 부족했던 시절도 있었고요.
이게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잡히면서 언론 보도가 늘었는데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사실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의 스토킹 범죄 보도가 어땠는지 분석한 단체가 있다고 하는데요. 분석 결과에 대해서 제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셰도우핀즈 “안녕하세요”
기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 “먼저 우리 셰도우핀즈라는 단체를 소개해 주신다면”
테오즈 “저희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소규모 그룹이고요. 사법 체계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동안 굉장히 침해받아온 부분을 회복시키는...”
기자 “이번 스토킹 살인사건 보도를 어떻게 보셨는지?”
테오즈 “이게 놀라운 사건이 아니에요. 그냥 이제껏 이런 사건은 너무너무 많았고, 20년 동안....스토킹 피해 이후에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이 패턴이 왜 이렇게 반복이 되고 스토킹이 이제 방치됐을 때 이렇게 더 큰 범죄가 벌어지면 여성으로서 대책은 무엇인가, 이런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전혀 없고...
20년간 반복된 스토킹 범죄 보도, 그 실상은 어떨까.
셰도우핀즈는 1999년부터 2020년 9월까지,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에 올라온 스토킹 관련 기사 3천여 건을 분석했습니다.
스토킹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하던 시절, 기사는 대부분 연예인 피해 사례였고, 일반인의 경우
피해 여성의 외모를 부각했습니다.
기자 “스토킹 범죄 보도가 이런 것들이 공통으로 문제가 있더라,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제로섬 “미모에 초점을 두는 기사가 좀 많았던 것 같고, 아니면 되게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그런 서사가 꽤 많더라고요. 나름대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름 분투하는 그런 사람인데 왜 처박혀서 울고만 있어야 되는지?”
스토킹 범죄외 관련 없는 내용도 '스토킹'이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기도 합니다.
테오즈 “악성 민원 넣듯이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헤드라인을..”
스토킹 보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해자에게도 그럴듯한 범행 이유가 있었다는 식의 기사.
스토킹을 구애 행위에 빗댄 경우가 가장 흔했는데, 145건의 기사가 이런 오류를 범했습니다.
제로섬 "거의 똑같은 내용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가해자는 뭔가 저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저 여자를 쫓아다닌 거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테오즈 "기자들이 왜 이렇게 뽑는지.. 가해자 남성한테 이입했고 이미 기울어져 있는 거예요,"
분석해보니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테오즈 "프로젝트 거의 초기에 한 건데 '왜 안 만나줘'라는 것만 놓고 네이버에서 그때 돌린 건데, 돌려도 4800건의 기사가..."
기자 "안 만나줬으니까 이 사람이 널 스토킹했지, 라는 식의 어떤 인과(관계)를..."
테오즈 "맞아요, 맞아요.."
가해자의 변명을 피해자의 말과 대등하게 보여주는 점도 문제입니다.
테오즈 ”순수한 팬심이었다. 이거는 가해자가 그냥 한 말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실었잖아요? 순수한 사랑, 순수한 팬심, 그런 식으로.. 이거는 이제 또 가해자의 시선이지 이분께서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제목들만 보면 '미모'의 여성에 대한 '구애'가 실패한 것일 뿐이라는 식의 기사들.
하지만 스토킹이 끝내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기사도 228건에 이를 만큼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테오즈 "계속 구애를 지속을 한 거고, 그 끝은 죽음인 거죠. 그런데 사실은 이게 강력 범죄고 굉장히 살인 사건인데..."
그럼 어떻게 보도해야 될까,
다섯 가지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해자가 했던 말을 여과없이 싣진 않았는지, 가해자의 변명에 편향되게 이입하지 않았는지, 또,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진 않았는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진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범행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진 않았는지입니다.
그러면서 2018년 한겨레가 보도한 스토킹 연속 보도를 좋은 기사로 뽑았습니다.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지적했고, 끝내 살인까지 이어진 사례를 취재해 피해 유가족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의 법제화를 이룬 지금, 이젠 언론이 변해야 할 때라고 지적합니다.
테오즈 "언론을 제지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런 방비가 없어요.
어떻게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이제 피해자.. 특히 여성들의 이미지를 광고판으로 그냥 갖다가 쓰는 것 같고...
9년간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는 활동가는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피해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제로섬 "그냥 그 언론의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텐데.. 저처럼 그 피해자는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단 말이에요. 피해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한 번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거든요.
<김솔희> 가해자 시각에 갇힌 스토킹 범죄 보도, 이게 참 정확한 지적인 것 같아요. 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보도를 보면 구애에 실패해서, 아니면 어긋난 사랑 이런 식의
내용이 참 많이 습관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게 가해자 입장에서 보면 관심이고 구애고 사랑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그 자체가 공포고 범죄인데 언론이 이미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채영길> 저는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이 이게 일부 언론사가 아니라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런 것을 하고 있고, 그리고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포털 저널리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1초 뒤에 보도되면 1초 앞에 나온 어떤 기사보다 훨씬 더 클릭 수가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사실은 누가 먼저 보도를 하는지가 많은 어떠한 구독자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기사가 구독자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죠. 즉, 속도가 사실은 경제적인 어떤 이익과 결부되는 상황에서는. 같은 어떠한 속도라 하더라도 훨씬 더 자극적이면 사람들이 클릭하게 되어 있어요.
<이세중> 적극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데 사실 말씀하신 대로 이런 강력 범죄 사건이 어떤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보다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속보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거든요.
특히 말씀하신 대로 이런 사건 사고 취재를 맡는 기자는, 입사한 지 5년 미만의 주니어로 분류되는 그런 기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데스크나 선임 기자의 지시를 정말 시시각각 받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기사 건수는 채워야 하고 뭐라도 쓰라고 위에서는 반복, 쏟아부으니까 이거를 자기가 판단하기에도 힘들고 그런 흐름에 좀 맡겨지는 게 아닌가,
기자들이. 특히 어린 기자들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솔희> 그러면 말씀하신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세중> 사실 관련된 보도 준칙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면 안 되고 또 피해자 측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고요. 또 신문윤리실천요강을 보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틀에서는 분명히 기준이 있는데 사실은 이거를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가 좀 두루뭉술하고 좀 애매한 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채영길> 최근 들어 이제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언론사들이 좀 생기고 있긴 합니다. 이제 젠더와 관련한 그리고 소수자와 관련한 어떤 보도를 내부에서 감시하고 관련 보도를 하는 기자를 교육하려고 하는 어떠한 시스템을 만드는 지역 언론사들도 좀 생기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어떠한, 저희 같은 모니터링이나 비판, 감시도 중요하지만 실제 내부에서 체계적인 어떠한 필터링 시스템 그리고 어떠한 제도 교육 시스템들을 언론사마다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은 준칙이 없어서 이러한 보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실은 법이 없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준칙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이것을 지키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야지만 법과 준칙으로써의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김솔희> 네, 스토킹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요.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의로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이것입니다. 이 선정적인 범죄 보도가 반복될 때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 또 뉴스 소비자들이 이제는 좀 멈춰달라는 호소를 이어왔는데 언론은 달라지지 않았죠? 이제는 언론 스스로가 스토커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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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중 기자 ce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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