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노동자 숨진 현대제철…그날 무슨 일이?

입력 2021.05.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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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 40대 노동자가 끼어 숨진 현대제철 당진공장 설비지난 8일 밤, 40대 노동자가 끼어 숨진 현대제철 당진공장 설비

지난 8일 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숨진 노동자는 15년 넘게 현대제철에서 근무했던 44살 김 모 씨였습니다. 김 씨는 자동화된 육중한 설비를 점검하던 중 해당 설비에 신체 일부가 끼는 사고를 당해 결국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에도 설비 끼임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 자동으로 움직이는 '워킹빔'...홀로 점검하다 끼어 숨져

사고가 난 지난 8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오후 4시쯤, 사고를 당한 김 씨를 비롯해 당시 근무조원들은 공장 설비에 이상이 있는지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일상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속을 가열하는 가열로 아래에서 '틱, 틱' 하는 이상한 소음이 났습니다. 가열로 아래에 있는 워킹빔이라는 게 문제였습니다.

워킹빔은 대형 쇳덩이를 차례대로 가열하기 위해 이동시키는 것으로 이름처럼 자동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설비입니다.

여기에 이상이 감지되자 김 씨는 5시간쯤 뒤인 밤 9시 15분, 혼자 이 설비를 정밀하게 점검하기 위해 가열로 아랫부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점검하러 간 김 씨가 한참을 복귀하지 않자 동료들이 김 씨를 찾아 나섰고 결국, 김 씨는 밤 10시 50분쯤 바닥에 쓰러져 발견된 뒤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습니다.

현대제철 최초 사고보고서 사진현대제철 최초 사고보고서 사진

■ 안전장비 했지만 워킹빔 압력 못 견뎌...현장에서 숨져

김 씨는 물론 안전모 같은 안전장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동화된 대형 설비에 안전장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워킹빔이 한 번 움직일 때 걸리는 시간은 50초가량.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유압실린더 방식으로 움직이는 설비이기 때문에 압력이 굉장히 강하다고 합니다. 김 씨가 쓰고 있던 안전모에서 깊게 눌린 자국이 발견됐고 또 머리에서 출혈도 확인됐습니다.

김 씨는 발견되자마자 119에 의해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이송 과정에서 맥박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사고가 난 가열로 하부 공간사고가 난 가열로 하부 공간

■ 사고 현장 안전장치 전혀 없어..."사측 위험 개선 요구 묵살"

사고 장소는 가열로 아래 상당히 넓은 지하공간이었습니다.

워킹빔이 움직이는 동선에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멈추는 센서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사고 장소에는 이런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김 씨 동료들은 사고 장소가 이상 여부를 점검할 때뿐만 아니라 윤활유를 주입하는 등 일상적인 작업을 할 때도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이후 점검을 해보니 이런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장 안에 같거나 비슷한 설비가 3개가 더 있었고,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씨 동료들은 전부터 사측에 이런 위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현대제철 당진공장

■ 산업안전보건기준 위반 정황..."사업주 구속해야"

이런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마련돼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92조를 보면 사업주는 각종 기계의 정비나 검사, 수리 같은 작업을 할 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해당 기계의 운전을 정지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223조에서는 안전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사업주는 로봇의 운전으로 인해 근로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높이 1.8m 이상의 울타리를 설치하여야 하며, 컨베이어 설치 등으로 울타리를 설치할 수 없는 일부 구간에 대해서는 감응형 방호장치, 즉 센서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과 과실에 대한 조사가 더 진행돼야겠지만, 이런 규정들을 볼 때 사측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금속노조는 사업주를 구속할 것과 당진공장 내 유사 설비에 즉각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당진공장 전체에 대한 특별 감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2007년 이후 38명이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대제철 중대재해 및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규탄 기자회견현대제철 중대재해 및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규탄 기자회견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내년 1월 시행...실효성 있을까?

한편으론 이런 법이 이미 있는데도 노동 현장에서 반영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현행법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태안화력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 입법이 논의돼 오다가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내년 1월 27일 시행됩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하고 사업주의 경우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하는 데 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데서 우선 차이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경영계에서는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에서는 유예 조항이 생기고 처벌 수위가 낮아지면서 입법 취지가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대 사고가 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도입되는 제도. 과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현장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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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 노동자 숨진 현대제철…그날 무슨 일이?
    • 입력 2021-05-10 15:32:55
    취재K
지난 8일 밤, 40대 노동자가 끼어 숨진 현대제철 당진공장 설비
지난 8일 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숨진 노동자는 15년 넘게 현대제철에서 근무했던 44살 김 모 씨였습니다. 김 씨는 자동화된 육중한 설비를 점검하던 중 해당 설비에 신체 일부가 끼는 사고를 당해 결국 생을 마감했습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에도 설비 끼임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 자동으로 움직이는 '워킹빔'...홀로 점검하다 끼어 숨져

사고가 난 지난 8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오후 4시쯤, 사고를 당한 김 씨를 비롯해 당시 근무조원들은 공장 설비에 이상이 있는지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일상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속을 가열하는 가열로 아래에서 '틱, 틱' 하는 이상한 소음이 났습니다. 가열로 아래에 있는 워킹빔이라는 게 문제였습니다.

워킹빔은 대형 쇳덩이를 차례대로 가열하기 위해 이동시키는 것으로 이름처럼 자동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설비입니다.

여기에 이상이 감지되자 김 씨는 5시간쯤 뒤인 밤 9시 15분, 혼자 이 설비를 정밀하게 점검하기 위해 가열로 아랫부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점검하러 간 김 씨가 한참을 복귀하지 않자 동료들이 김 씨를 찾아 나섰고 결국, 김 씨는 밤 10시 50분쯤 바닥에 쓰러져 발견된 뒤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습니다.

현대제철 최초 사고보고서 사진
■ 안전장비 했지만 워킹빔 압력 못 견뎌...현장에서 숨져

김 씨는 물론 안전모 같은 안전장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동화된 대형 설비에 안전장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워킹빔이 한 번 움직일 때 걸리는 시간은 50초가량.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유압실린더 방식으로 움직이는 설비이기 때문에 압력이 굉장히 강하다고 합니다. 김 씨가 쓰고 있던 안전모에서 깊게 눌린 자국이 발견됐고 또 머리에서 출혈도 확인됐습니다.

김 씨는 발견되자마자 119에 의해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이송 과정에서 맥박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사고가 난 가열로 하부 공간
■ 사고 현장 안전장치 전혀 없어..."사측 위험 개선 요구 묵살"

사고 장소는 가열로 아래 상당히 넓은 지하공간이었습니다.

워킹빔이 움직이는 동선에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멈추는 센서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사고 장소에는 이런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김 씨 동료들은 사고 장소가 이상 여부를 점검할 때뿐만 아니라 윤활유를 주입하는 등 일상적인 작업을 할 때도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이후 점검을 해보니 이런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장 안에 같거나 비슷한 설비가 3개가 더 있었고,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씨 동료들은 전부터 사측에 이런 위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 산업안전보건기준 위반 정황..."사업주 구속해야"

이런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마련돼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92조를 보면 사업주는 각종 기계의 정비나 검사, 수리 같은 작업을 할 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해당 기계의 운전을 정지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223조에서는 안전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사업주는 로봇의 운전으로 인해 근로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높이 1.8m 이상의 울타리를 설치하여야 하며, 컨베이어 설치 등으로 울타리를 설치할 수 없는 일부 구간에 대해서는 감응형 방호장치, 즉 센서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과 과실에 대한 조사가 더 진행돼야겠지만, 이런 규정들을 볼 때 사측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금속노조는 사업주를 구속할 것과 당진공장 내 유사 설비에 즉각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당진공장 전체에 대한 특별 감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2007년 이후 38명이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대제철 중대재해 및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규탄 기자회견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내년 1월 시행...실효성 있을까?

한편으론 이런 법이 이미 있는데도 노동 현장에서 반영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현행법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태안화력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 입법이 논의돼 오다가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내년 1월 27일 시행됩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하고 사업주의 경우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하는 데 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데서 우선 차이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경영계에서는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에서는 유예 조항이 생기고 처벌 수위가 낮아지면서 입법 취지가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대 사고가 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도입되는 제도. 과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현장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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