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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아파트 경비원은 ‘문자’로 해고해도 되나요?
입력 2021.05.12 (07:00) 수정 2021.05.12 (15:46) 취재후·사건후
노동절 이틀 앞두고 경비원 16명에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한 아파트
해고 경비원들 ‘복직 요구’ 투쟁…주민들도 온라인 서명운동 동참
고용승계 보장 법안 다음주 발의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경비원들이 용역업체 측으로부터 받은 해고 통보 문자메시지.경비원들이 용역업체 측으로부터 받은 해고 통보 문자메시지.

■ 재계약 이틀 앞두고...경비원 16명 ‘문자 해고’

서울 노원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는 경비원 44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16명이 지난달 말,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통보 수단은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 드린다’면서 ‘또 다른 인연으로 타 현장에서 보자’는 내용입니다.

계약 해지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올해 69살인 5년 차 경비원 최대기 씨는 이렇게 직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주민들이 해고된 경비원들이 다시 일하게 해 달라며 나섰습니다.

온라인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응원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일주일 만에 전체 3천4백여 세대의 주민 중 730명 정도가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갑질은 없어야 합니다’, ‘경비원 아저씨들 힘내세요.’ 등 따뜻한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지난 10일 주민들과 경비원들은 함께 기자회견도 열었습니다. 현장에서 아파트 주민 강여울 씨를 만났습니다. 이번 서명운동을 제안한 사람입니다.

강 씨는 “경비원분들과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너무 억울하게 해고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 도와드릴까 하다가 생각해낸 게 서명운동”이라면서 “갑질 아파트 뉴스를 보면서 욕만 했는데 우리 아파트에 그런 나쁜 사례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원구 아파트 해고 경비원들이 집회를 열고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노원구 아파트 해고 경비원들이 집회를 열고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 경비원 중 한 명인 노득기 씨는 기자회견에서 “바뀐 용역업체 본부장이 직접 면접을 보면서 채용절차에 대한 서류도 다 받아갔고, 심지어 근무복 사이즈도 재갔다”면서 “그래서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계속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아 억울했다”고 호소했습니다.


■ ‘노인에 비정규직’…약한 고리를 노리는 ‘초단기 계약’

경비원들의 근로 계약서는 열악한 고용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어봐야 석 달짜리였습니다. 처음 입사하면 한 달짜리 계약을 맺고, ‘쓸만하면’ 두 달짜리 계약을 맺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퇴사할 때까지 석 달짜리 계약을 이어가는 식입니다.

나이도 많고, 정규직도 아닌 경비원들의 약한 고리를 노린 ‘초단기 계약’입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사소한 이유로도 경비원을 자를 수 있고, 이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이 4월 '한 달'로 명시된 경비원들의 고용계약서계약기간이 4월 '한 달'로 명시된 경비원들의 고용계약서

최근 경기도 안양에서 경비원 십수 명이 한꺼번에 해고당한 사례도 같은 사례입니다. 경비용역업체가 바뀌면서 별다른 이유 없이 기존 경비원들을 자르는 겁니다.

경비원들은 이게 일종의 ‘길들이기’ 수법이라고 말합니다. 안양의 경비원 해고 사례는, 경비원들이 릴레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노동법 위반이라는 신고가 접수돼 최근 담당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근로감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전문가 “‘노동자 보호’ 관점에서의 접근 필요”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들의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 승계 문제는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정치권도 선거 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했고, 여당의 21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주도로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인데, 다음 주쯤 발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영자 측에서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용역업체와 이전 용역업체 간에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법안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용역업체 변경으로 인한 고용 승계 문제가 대부분 경비원, 청소노동자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집중돼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을 고려해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은 EU 차원에서 고용 승계 지침을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와 독일은 법에 명문화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국내 법원 판례를 보면,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고용승계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한 입법적인 논의나 발전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면서 “지금이라도 이 부분을 법제화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고용상의 지위를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취재후] 아파트 경비원은 ‘문자’로 해고해도 되나요?
    • 입력 2021-05-12 07:00:39
    • 수정2021-05-12 15:46:51
    취재후·사건후
노동절 이틀 앞두고 경비원 16명에 문자메시지로 <strong>해고</strong> 통보한 아파트<br />해고 경비원들 ‘복직 요구’ 투쟁…주민들도 온라인 서명운동 동참<br />고용승계 보장 법안 다음주 발의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경비원들이 용역업체 측으로부터 받은 해고 통보 문자메시지.경비원들이 용역업체 측으로부터 받은 해고 통보 문자메시지.

■ 재계약 이틀 앞두고...경비원 16명 ‘문자 해고’

서울 노원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는 경비원 44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16명이 지난달 말,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통보 수단은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 드린다’면서 ‘또 다른 인연으로 타 현장에서 보자’는 내용입니다.

계약 해지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올해 69살인 5년 차 경비원 최대기 씨는 이렇게 직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주민들이 해고된 경비원들이 다시 일하게 해 달라며 나섰습니다.

온라인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응원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일주일 만에 전체 3천4백여 세대의 주민 중 730명 정도가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갑질은 없어야 합니다’, ‘경비원 아저씨들 힘내세요.’ 등 따뜻한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지난 10일 주민들과 경비원들은 함께 기자회견도 열었습니다. 현장에서 아파트 주민 강여울 씨를 만났습니다. 이번 서명운동을 제안한 사람입니다.

강 씨는 “경비원분들과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너무 억울하게 해고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 도와드릴까 하다가 생각해낸 게 서명운동”이라면서 “갑질 아파트 뉴스를 보면서 욕만 했는데 우리 아파트에 그런 나쁜 사례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원구 아파트 해고 경비원들이 집회를 열고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노원구 아파트 해고 경비원들이 집회를 열고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 경비원 중 한 명인 노득기 씨는 기자회견에서 “바뀐 용역업체 본부장이 직접 면접을 보면서 채용절차에 대한 서류도 다 받아갔고, 심지어 근무복 사이즈도 재갔다”면서 “그래서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계속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아 억울했다”고 호소했습니다.


■ ‘노인에 비정규직’…약한 고리를 노리는 ‘초단기 계약’

경비원들의 근로 계약서는 열악한 고용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어봐야 석 달짜리였습니다. 처음 입사하면 한 달짜리 계약을 맺고, ‘쓸만하면’ 두 달짜리 계약을 맺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퇴사할 때까지 석 달짜리 계약을 이어가는 식입니다.

나이도 많고, 정규직도 아닌 경비원들의 약한 고리를 노린 ‘초단기 계약’입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사소한 이유로도 경비원을 자를 수 있고, 이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이 4월 '한 달'로 명시된 경비원들의 고용계약서계약기간이 4월 '한 달'로 명시된 경비원들의 고용계약서

최근 경기도 안양에서 경비원 십수 명이 한꺼번에 해고당한 사례도 같은 사례입니다. 경비용역업체가 바뀌면서 별다른 이유 없이 기존 경비원들을 자르는 겁니다.

경비원들은 이게 일종의 ‘길들이기’ 수법이라고 말합니다. 안양의 경비원 해고 사례는, 경비원들이 릴레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노동법 위반이라는 신고가 접수돼 최근 담당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근로감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전문가 “‘노동자 보호’ 관점에서의 접근 필요”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들의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 승계 문제는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정치권도 선거 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했고, 여당의 21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 주도로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인데, 다음 주쯤 발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영자 측에서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용역업체와 이전 용역업체 간에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법안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용역업체 변경으로 인한 고용 승계 문제가 대부분 경비원, 청소노동자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집중돼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을 고려해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은 EU 차원에서 고용 승계 지침을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와 독일은 법에 명문화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국내 법원 판례를 보면,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고용승계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한 입법적인 논의나 발전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면서 “지금이라도 이 부분을 법제화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고용상의 지위를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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