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공무원은 왜 목에 ‘웨어러블 캠’을?…“‘내 편’ 필요해”

입력 2021.05.12 (15:43) 수정 2021.05.12 (15: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함안군 공무원이 ‘웨어러블 캠’을 목에  두른 채 민원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함안군)함안군 공무원이 ‘웨어러블 캠’을 목에 두른 채 민원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함안군)

-경남 함안군, 2천만원 예산 '웨어러블 캠' 50대 구입...전국 지자체 최초
-"악성 민원인 폭언·폭행 위협"...사회복지·민원 응대 부서 사용
-"걸고만 있어도 욕을 안 해...'웨어러블 캠(카메라)' 착용 수칙 준비 중"
-'각자도생 시대' 1인칭 시점 카메라..."'내 편'이 필요해"

"웬만큼 고함치고 책상 두드리면서 욕하시는 건 저희도 참고, 달래기도 하고 찬찬히 말씀 드려서 돌려보냅니다."

"때리는 경우도 있고, 뭐 들고 있던 걸 던지시기도 하고요. 휴대전화를..."

경남 함안군청에서 민원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의 말입니다.

민원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원 내용만큼이나 민원을 '전달하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점잖은 분들도 많지만, 술 드시고 와 처음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폭언에 넘어 폭행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경찰을 부르지만, 폭언에 그칠 땐 경찰을 부르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경찰을 부른다고 해도 민원인이 '내가 무슨 욕을 했느냐?' '내가 언제 때렸느냐?' '당신이 나를 무시하고 도리어 밀치지 않았나?' 이럴 땐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다고 하는데요.

결국 경남 함안군청이 지난 2월 사회부서 전담부서와 민원 응대 부서에 '웨어러블 캠(카메라)'을 지급했습니다. 예산 2천만 원으로 50대를 구입했는데,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안전한 공무 수행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섭니다.

지급된 '웨어러블 카메라(Wearable Camera: 착용하기에 적합한 카메라)'는 목걸이(넥밴드)형 카메라로 손을 사용하지 않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데, 전국 지자체 가운데서는 최초로 함안군이 공무원들에게 보급한 겁니다.

'웨어러블 캠'의 효과는 있을까요? 사용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요

<함안군 공무원 A 씨>
"면담 중에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분이 계셨는데, 저희가 '웨어러블 캠'을 목에 두르니깐 그분이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저희가 아직 촬영도 시작 안 했고, 그냥 목에 두르기만 했는데도요."

"처음부터 이야기할 때 '웨어러블 캠'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욕을 하시거나 뭔가 위협적인 행동이 예상될 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사용 수칙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만 이걸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웨어러블 캠(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사진 제공 :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웨어러블 캠(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사진 제공 :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1인 이동 수단'에 웨어러블 카메라

최근에는 전기자전거와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 등 1인 이동 수단 이용 증가에 따라 '웨어러블 캠'을 휴대용 블랙박스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최세환 대표(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는 "이제까지는 주로 레저나 일상의 모습 등을 기록하는 데 '웨어러블 카메라'가 사용됐는데, 최근에는 오토바이와 전동 킥보드 등 1인 이동 수단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인 이동 수단은 자동차와 달리 블랙박스 설치가 불편해 사고가 나더라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웨어러블 카메라'는 별도의 설치 필요 없이 목에 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왜 사람들은 이렇게 카메라에 집착할까?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람의 진술이 아니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말입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선 나 스스로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권위가 무너진 각자도생의 시대'에선 그때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 필수라는 겁니다.

한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는 경찰 등 공권력의 판단이나 거리에 설치된 3인칭 시점인 CCTV보다는 내가 준비한 1인칭 시점의 '웨어러블 캠'이나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내 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알 듯 말 듯 그래서 더 들어봤습니다.

이규창(디지털 콘텐츠 전문가)
"블랙박스, 웨어러블 캠 등 개인이 1인칭 시점의 영상을 증거로 확보하려는 이유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제 3자나 공적 기관이 공정하게 개입해줄 거라는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증거에 대한 필요보다 나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려는 심리적 이유 때문인 거죠. 이렇게 확보한 영상은 '객관적 증인'이 아닌 '내 편'인 겁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고화질 영상 녹화 기능이 있는 블랙박스 보급률이 가장 높다는 건, 그만큼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도 크다는 뜻입니다."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웨어러블 캠'을 착용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각자도생의 시대',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이 의지할 게 '카메라밖에 없다'란 씁쓸한 결론에 이른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멀리 온 걸까요?

'웨어러블 캠'이 신뢰 상실의 시대에 개인을 지켜줄 대안으로 등장했지만, 우리 사회가 또다른 방식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기능하길 한편으로 바라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함안군 공무원은 왜 목에 ‘웨어러블 캠’을?…“‘내 편’ 필요해”
    • 입력 2021-05-12 15:43:34
    • 수정2021-05-12 15:46:47
    취재K
함안군 공무원이 ‘웨어러블 캠’을 목에  두른 채 민원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함안군)
-경남 함안군, 2천만원 예산 '웨어러블 캠' 50대 구입...전국 지자체 최초
-"악성 민원인 폭언·폭행 위협"...사회복지·민원 응대 부서 사용
-"걸고만 있어도 욕을 안 해...'웨어러블 캠(카메라)' 착용 수칙 준비 중"
-'각자도생 시대' 1인칭 시점 카메라..."'내 편'이 필요해"

"웬만큼 고함치고 책상 두드리면서 욕하시는 건 저희도 참고, 달래기도 하고 찬찬히 말씀 드려서 돌려보냅니다."

"때리는 경우도 있고, 뭐 들고 있던 걸 던지시기도 하고요. 휴대전화를..."

경남 함안군청에서 민원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의 말입니다.

민원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원 내용만큼이나 민원을 '전달하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점잖은 분들도 많지만, 술 드시고 와 처음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폭언에 넘어 폭행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경찰을 부르지만, 폭언에 그칠 땐 경찰을 부르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경찰을 부른다고 해도 민원인이 '내가 무슨 욕을 했느냐?' '내가 언제 때렸느냐?' '당신이 나를 무시하고 도리어 밀치지 않았나?' 이럴 땐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다고 하는데요.

결국 경남 함안군청이 지난 2월 사회부서 전담부서와 민원 응대 부서에 '웨어러블 캠(카메라)'을 지급했습니다. 예산 2천만 원으로 50대를 구입했는데,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안전한 공무 수행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섭니다.

지급된 '웨어러블 카메라(Wearable Camera: 착용하기에 적합한 카메라)'는 목걸이(넥밴드)형 카메라로 손을 사용하지 않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데, 전국 지자체 가운데서는 최초로 함안군이 공무원들에게 보급한 겁니다.

'웨어러블 캠'의 효과는 있을까요? 사용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요

<함안군 공무원 A 씨>
"면담 중에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분이 계셨는데, 저희가 '웨어러블 캠'을 목에 두르니깐 그분이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저희가 아직 촬영도 시작 안 했고, 그냥 목에 두르기만 했는데도요."

"처음부터 이야기할 때 '웨어러블 캠'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욕을 하시거나 뭔가 위협적인 행동이 예상될 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사용 수칙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만 이걸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웨어러블 캠(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사진 제공 :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1인 이동 수단'에 웨어러블 카메라

최근에는 전기자전거와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 등 1인 이동 수단 이용 증가에 따라 '웨어러블 캠'을 휴대용 블랙박스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최세환 대표(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는 "이제까지는 주로 레저나 일상의 모습 등을 기록하는 데 '웨어러블 카메라'가 사용됐는데, 최근에는 오토바이와 전동 킥보드 등 1인 이동 수단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인 이동 수단은 자동차와 달리 블랙박스 설치가 불편해 사고가 나더라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웨어러블 카메라'는 별도의 설치 필요 없이 목에 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 왜 사람들은 이렇게 카메라에 집착할까?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람의 진술이 아니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말입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선 나 스스로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권위가 무너진 각자도생의 시대'에선 그때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 필수라는 겁니다.

한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는 경찰 등 공권력의 판단이나 거리에 설치된 3인칭 시점인 CCTV보다는 내가 준비한 1인칭 시점의 '웨어러블 캠'이나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내 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알 듯 말 듯 그래서 더 들어봤습니다.

이규창(디지털 콘텐츠 전문가)
"블랙박스, 웨어러블 캠 등 개인이 1인칭 시점의 영상을 증거로 확보하려는 이유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제 3자나 공적 기관이 공정하게 개입해줄 거라는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증거에 대한 필요보다 나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려는 심리적 이유 때문인 거죠. 이렇게 확보한 영상은 '객관적 증인'이 아닌 '내 편'인 겁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고화질 영상 녹화 기능이 있는 블랙박스 보급률이 가장 높다는 건, 그만큼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도 크다는 뜻입니다."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웨어러블 캠'을 착용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각자도생의 시대',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이 의지할 게 '카메라밖에 없다'란 씁쓸한 결론에 이른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멀리 온 걸까요?

'웨어러블 캠'이 신뢰 상실의 시대에 개인을 지켜줄 대안으로 등장했지만, 우리 사회가 또다른 방식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기능하길 한편으로 바라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