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옥을 사랑한 미국인…한국서 잠들다

입력 2021.05.13 (07:02) 수정 2021.05.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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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바돌로뮤(1945~2021)  ⓒ KBS피터 바돌로뮤(1945~2021) ⓒ KBS

한옥에서 40년 넘게 거주하며 '한옥 지킴이' 역할을 해 온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가 76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톰 코이너 씨는 자신의 SNS에 왕립아시아학회 이사인 바돌로뮤 씨가 어제(12일) 새벽 서울 동소문동 한옥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한국인보다 더 한옥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외부 (사진제공: 석지훈)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외부 (사진제공: 석지훈)

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내부 ⓒ KBS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내부 ⓒ KBS

■ 1974년부터 서울 동소문동 한옥에 거주

1945년 미국에서 태어난 바돌로뮤 씨는 23살 때인 1968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에 거주했습니다. 선교장은 120칸 규모로 조선 시대 옛 살림집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고택입니다.

청년 바돌로뮤 씨는 선교장에서만 4년여를 머물며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후 1973년 서울로 몸을 옮겨 잠시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거주하기도 했지만 1년도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빠져든 바돌로뮤씨는 1974년 서울 동소문동의 14칸 한옥을 사들여 이사했고 이후 그 한옥은 그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47년간 보금자리가 됐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1920년대 지어졌다는 이 한옥을 개조하고 수리하며 살아 왔습니다. 100년 가까이 된 집이지만 관리를 잘해 보존 상태도 좋은 편입니다.

한옥의 장점에 대해 묻자 그는 아래 영상과 같이 능숙한 우리 말로 답했습니다.

2007년 KBS 인터뷰

■ 남다른 한옥사랑…재개발로 사라질 한옥 보존 위한 소송 승소

바돌로뮤 씨는 단지 한옥에 살면서 한옥 예찬만 늘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재개발의 물결에 사라질 한옥들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에 나서 한옥을 지켜내는 역할도 한몫했습니다.

2004년 6월 서울시는 바돌로뮤 씨가 사는 한옥을 포함해 동소문동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고 3년 뒤 성북구청이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처분을 내리면서 동소문동 한옥 43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주민 19명과 함께 전통가옥 보존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서울시를 상대로 정비구역 지정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의 1심, 고등법원의 2심에서 잇따라 승소하며 철거의 위기에서 한옥을 지켜냈습니다.

이후 그에게는 '한옥 지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피터 바돌로뮤 씨의 승소를 보도한 기사. KBS 뉴스9, 2009년 6월 4일.

바돌로뮤 씨는 2010년 소송 상대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2012년엔 문화체육부로부터 한옥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세종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창조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82년 제정됐는데 외국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자였습니다.

바돌로뮤 씨가 세상을 떠난 어제(12일) 자택인 동소문동 한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제공: 석지훈)바돌로뮤 씨가 세상을 떠난 어제(12일) 자택인 동소문동 한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제공: 석지훈)

■ "한국 전통 건축 연구하고 싶다" 포부 밝히기도

바돌로뮤 씨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동소문동 집은 문이 닫힌 채 정적에 잠겼습니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던 바돌로뮤 씨의 장례는 지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2011년 1월 11일 방송된 KBS 퀴즈쇼 <1 대 100>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외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상금 5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상금으로 뭘 할 거냐고 묻자 대답은 이랬습니다.

" 제가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인데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이 단체에 기부해 한국 전통 건축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책을 쓰는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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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보다 더 한옥을 사랑한 미국인…한국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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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5-13 16:00:42
    취재K
피터 바돌로뮤(1945~2021)  ⓒ KBS
한옥에서 40년 넘게 거주하며 '한옥 지킴이' 역할을 해 온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가 76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톰 코이너 씨는 자신의 SNS에 왕립아시아학회 이사인 바돌로뮤 씨가 어제(12일) 새벽 서울 동소문동 한옥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한국인보다 더 한옥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외부 (사진제공: 석지훈)
피터 바돌로뮤 씨가 47년간 살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 내부 ⓒ KBS
■ 1974년부터 서울 동소문동 한옥에 거주

1945년 미국에서 태어난 바돌로뮤 씨는 23살 때인 1968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에 거주했습니다. 선교장은 120칸 규모로 조선 시대 옛 살림집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고택입니다.

청년 바돌로뮤 씨는 선교장에서만 4년여를 머물며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후 1973년 서울로 몸을 옮겨 잠시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거주하기도 했지만 1년도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빠져든 바돌로뮤씨는 1974년 서울 동소문동의 14칸 한옥을 사들여 이사했고 이후 그 한옥은 그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47년간 보금자리가 됐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1920년대 지어졌다는 이 한옥을 개조하고 수리하며 살아 왔습니다. 100년 가까이 된 집이지만 관리를 잘해 보존 상태도 좋은 편입니다.

한옥의 장점에 대해 묻자 그는 아래 영상과 같이 능숙한 우리 말로 답했습니다.

2007년 KBS 인터뷰

■ 남다른 한옥사랑…재개발로 사라질 한옥 보존 위한 소송 승소

바돌로뮤 씨는 단지 한옥에 살면서 한옥 예찬만 늘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재개발의 물결에 사라질 한옥들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에 나서 한옥을 지켜내는 역할도 한몫했습니다.

2004년 6월 서울시는 바돌로뮤 씨가 사는 한옥을 포함해 동소문동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고 3년 뒤 성북구청이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처분을 내리면서 동소문동 한옥 43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주민 19명과 함께 전통가옥 보존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서울시를 상대로 정비구역 지정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의 1심, 고등법원의 2심에서 잇따라 승소하며 철거의 위기에서 한옥을 지켜냈습니다.

이후 그에게는 '한옥 지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피터 바돌로뮤 씨의 승소를 보도한 기사. KBS 뉴스9, 2009년 6월 4일.

바돌로뮤 씨는 2010년 소송 상대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2012년엔 문화체육부로부터 한옥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세종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창조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82년 제정됐는데 외국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자였습니다.

바돌로뮤 씨가 세상을 떠난 어제(12일) 자택인 동소문동 한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제공: 석지훈)
■ "한국 전통 건축 연구하고 싶다" 포부 밝히기도

바돌로뮤 씨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동소문동 집은 문이 닫힌 채 정적에 잠겼습니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던 바돌로뮤 씨의 장례는 지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돌로뮤 씨는 2011년 1월 11일 방송된 KBS 퀴즈쇼 <1 대 100>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외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상금 5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상금으로 뭘 할 거냐고 묻자 대답은 이랬습니다.

" 제가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인데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이 단체에 기부해 한국 전통 건축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책을 쓰는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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