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학대 1년]② ‘학대 어린이집’의 방관자들…‘신고자 노출’ 처벌 강화해야

입력 2021.05.13 (15:03) 수정 2021.05.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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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충남 천안에서 의붓어머니의 '가방 감금 학대'로 9살 어린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대법원은 의붓어머니에게 징역 25년형을 확정했습니다. 사건 이후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며 대책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대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벌어집니다. [가방학대 1년]에서는 왜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지, 당시 나온 대책의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아가 편히 쉬어라', 할머니의 인사

할머니가 근조 꽃바구니를 보냈습니다. 숨진 손녀에게 '편히 쉬라'고 말합니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 숨진 생후 21개월 여아 A 양의 빈소입니다. 가방이나 신발, 공책 등 소지품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작은 가방에는 토끼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소지품의 주인이 얼마나 어린 아이였는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A 양은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숨졌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이 '재운다'며 이불에 싸맨 A양을 자신의 몸으로 눌렀습니다. 영상을 보면 아이는 여러 차례 꿈틀거리지만 원장은 계속 누릅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교실에는 원장 말고 교사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CCTV를 보면 당시 상황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명백한 학대 행위가 바로 옆에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교사는 이를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10여 분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결국 질식사했습니다.

■ 눈감은 '신고의무자'

경찰은 이 교사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방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같은 시간 어린이집에 있었거나 평소 원장의 이런 학대 행위를 알았던 다른 교사 3명에게도 아동학대 방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신고의무자에 해당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학대 행위를 보거나 알고도 알리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본 겁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아이를 돌보거나 관련된 일을 하며 아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신고 의무자로 규정합니다. 학대 사실이나 징후를 빠르게 포착해 막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의 학대가 그렇습니다. 부모가 알아채지 않는 한 아이들이 스스로 학대 사실을 신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A 양 사건도 신고의무자들이 신고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 신고자 보호도, 학대 예방교육도

어린이집 교사 B 씨는 신고자보호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본인은 혹시라도 학대를 목격하면 꼭 신고하겠다고 여러 번 마음 먹었다고 했는데요. 그래도 신고를 못 하거나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B씨 / 어린이집 교사
"취업을 할 때 원장이나 사람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걸로 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취업 길이 막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학대 신고를 했다가 업계에 발붙이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다른 어린이집에 취직하려는 교사에 대한 '평판'을 묻는 전화가 오는 걸 봤고, 평판이 나빠지며 취업이 안 돼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는 교사도 봤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고의무자들이 1년에 한 번 받는 학대예방교육도 형식적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정서적 학대나 유기, 방임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학대를 보고도 학대인 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공혜정 /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내려준 PPT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강사가) 한 20분 설명을 하고 자기네들이 알아서 몇 시간 교육을 들었다…"

아동학대 관련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학대예방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은행이나 보험회사에서 강사가 나와 형식적인 강의를 한 뒤 보험 등을 들어주면 모두 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해주는 겁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현재는 강사 자격 요건을 강화해 아동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강의하는 걸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일일이 찾아가 감독할 수는 없으므로 강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 신고자 노출, "누가 했는지도 몰라"…처벌·교육 강화해야

이러다 보니 전체 아동학대 신고 중 신고의무자의 학대 신고 비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아동학대를 가장 가까이,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일반인의 아동학대 신고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신고를 위해서는 신고자를 노출하거나 불이익을 줄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선뜻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 신고했는데 신원이 노출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가 신고자 신원을 노출했는지 알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아동학대 단체는 특히, 경찰에 의해 신고자 신원이 노출된 경우 노출인을 고소하고 싶어도 누가 그랬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노출자가 밝혀져도 내부 처벌에 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실효성 있는 학대예방교육으로 아동학대 신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학대 신고를 관련법에 따른 국민들의 의무로 여겨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는 겁니다. 아동학대 근절은 이처럼 어느 한 가지 방법만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노력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제도와 인식개선, 문화로 정착될 때 A양 사건과 같은 비극 또한 되풀이 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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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방학대 1년]② ‘학대 어린이집’의 방관자들…‘신고자 노출’ 처벌 강화해야
    • 입력 2021-05-13 15:03:37
    • 수정2021-05-13 15:29:37
    취재K
충남 천안에서 의붓어머니의 '가방 감금 학대'로 9살 어린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대법원은 의붓어머니에게 징역 25년형을 확정했습니다. 사건 이후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며 대책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대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벌어집니다. [가방학대 1년]에서는 왜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지, 당시 나온 대책의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br />

■ '아가 편히 쉬어라', 할머니의 인사

할머니가 근조 꽃바구니를 보냈습니다. 숨진 손녀에게 '편히 쉬라'고 말합니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 숨진 생후 21개월 여아 A 양의 빈소입니다. 가방이나 신발, 공책 등 소지품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작은 가방에는 토끼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소지품의 주인이 얼마나 어린 아이였는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A 양은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숨졌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이 '재운다'며 이불에 싸맨 A양을 자신의 몸으로 눌렀습니다. 영상을 보면 아이는 여러 차례 꿈틀거리지만 원장은 계속 누릅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교실에는 원장 말고 교사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CCTV를 보면 당시 상황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명백한 학대 행위가 바로 옆에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교사는 이를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10여 분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결국 질식사했습니다.

■ 눈감은 '신고의무자'

경찰은 이 교사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방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같은 시간 어린이집에 있었거나 평소 원장의 이런 학대 행위를 알았던 다른 교사 3명에게도 아동학대 방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신고의무자에 해당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학대 행위를 보거나 알고도 알리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본 겁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아이를 돌보거나 관련된 일을 하며 아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신고 의무자로 규정합니다. 학대 사실이나 징후를 빠르게 포착해 막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의 학대가 그렇습니다. 부모가 알아채지 않는 한 아이들이 스스로 학대 사실을 신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A 양 사건도 신고의무자들이 신고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 신고자 보호도, 학대 예방교육도

어린이집 교사 B 씨는 신고자보호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본인은 혹시라도 학대를 목격하면 꼭 신고하겠다고 여러 번 마음 먹었다고 했는데요. 그래도 신고를 못 하거나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B씨 / 어린이집 교사
"취업을 할 때 원장이나 사람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걸로 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취업 길이 막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학대 신고를 했다가 업계에 발붙이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다른 어린이집에 취직하려는 교사에 대한 '평판'을 묻는 전화가 오는 걸 봤고, 평판이 나빠지며 취업이 안 돼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는 교사도 봤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신고의무자들이 1년에 한 번 받는 학대예방교육도 형식적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정서적 학대나 유기, 방임을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학대를 보고도 학대인 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공혜정 /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내려준 PPT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강사가) 한 20분 설명을 하고 자기네들이 알아서 몇 시간 교육을 들었다…"

아동학대 관련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학대예방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은행이나 보험회사에서 강사가 나와 형식적인 강의를 한 뒤 보험 등을 들어주면 모두 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해주는 겁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현재는 강사 자격 요건을 강화해 아동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강의하는 걸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일일이 찾아가 감독할 수는 없으므로 강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 신고자 노출, "누가 했는지도 몰라"…처벌·교육 강화해야

이러다 보니 전체 아동학대 신고 중 신고의무자의 학대 신고 비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아동학대를 가장 가까이,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일반인의 아동학대 신고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신고를 위해서는 신고자를 노출하거나 불이익을 줄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선뜻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 신고했는데 신원이 노출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가 신고자 신원을 노출했는지 알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아동학대 단체는 특히, 경찰에 의해 신고자 신원이 노출된 경우 노출인을 고소하고 싶어도 누가 그랬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노출자가 밝혀져도 내부 처벌에 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실효성 있는 학대예방교육으로 아동학대 신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학대 신고를 관련법에 따른 국민들의 의무로 여겨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는 겁니다. 아동학대 근절은 이처럼 어느 한 가지 방법만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노력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제도와 인식개선, 문화로 정착될 때 A양 사건과 같은 비극 또한 되풀이 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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