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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엄마와 함께했던 마지막 등원길…4살 아이는 무엇을 기억할까?
입력 2021.05.13 (17:54) 수정 2021.05.14 (10:44) 취재후·사건후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던 4살 아이,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아이의 머릿속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등원길을 아이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딸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길을 나섰다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숨진 엄마, 그리고 남아 있는 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관기사] 4살 딸 손잡고 등원하던 엄마 스쿨존서 차에 치여 숨져(2021.5.12. KBS1TV 뉴스9)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진 순간

아파트에서 보여준 CCTV 화면 속 모녀의 모습은 평온했습니다.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어깨엔 유치원 가방을 멘 엄마의 모습은 평범한 어느 아침의 일상이었습니다.

좌우를 살피고 아파트 바로 앞 횡단보도로 들어섭니다. 그때 모니터 위쪽에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승용차 1대가 잡힙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엄마는 좌회전해오는 차를 보고, 딸의 손을 잡고 있지 않던 나머지 한쪽 손을 살짝 듭니다. '멈추겠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승용차는 멈추지 않았고 모녀의 일상은 그렇게 파괴됐습니다.

5월 11일 오전 9시 20분, 인천시 서구 마전동(아파트 CCTV  화면)5월 11일 오전 9시 20분, 인천시 서구 마전동(아파트 CCTV 화면)

54살인 가해 운전자는 사고 나기 사흘 전인 지난 8일, 왼쪽 눈 수술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앞이 흐릿하게 보여 길을 건너는 모녀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력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급하게 운전대를 잡았을까. 경찰도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답했습니다.


달려가 아이를 안은 주민…엄마를 배웅하는 이웃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한 주민의 모습도 담겼습니다.

처음엔 놀라서 뒷걸음치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달려가 바닥에 넘어진 아이를 안아 듭니다. 한쪽으로 비켜서서 아이를 한참 안고 있습니다.

사고 목격 후 아이를 안아 든 주민(아파트 CCTV 화면)사고 목격 후 아이를 안아 든 주민(아파트 CCTV 화면)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들은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마련한 겁니다. 그곳에는 어느새 국화꽃이 수북이 놓였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접은 걸로 보이는 종이꽃들도 보입니다.

이웃들이 사고 현장에 마련한 추모 공간이웃들이 사고 현장에 마련한 추모 공간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주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일처럼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남아 있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지었습니다. 딸은 현재 골절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는 왜 없을까?

사고 현장을 둘러싸고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4개 단지, 3천 가구에 가깝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말로는 그곳은 평소에도 차량 통행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컸다고 합니다. 사고가 발생한 삼거리에는 비좁은 도로에 횡단보도가 4개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호등이나 과속 단속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사고 현장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사고 현장

"4개 단지 주민들이 아파트 들어가려면 이 도로(사고가 난 도로) 를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반드시 거쳐야 해요. 출근 시간대 직후(이번 사고도 오전 9시 20분에 발생했음)에 특히 혼잡합니다. 통학 차량들과 승용차들이 뒤엉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

"불법 유턴하는 차량이 너무 많아요. 아찔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구청, 경찰청에 단속 카메라 좀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그렇게 넣어도 예산 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라니까요." (인근 아파트 주민)


사고 현장은 스쿨존 안의 횡단보도입니다. 처음 내용을 접할 때부터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가 왜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 가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좁은 이면 도로라 신호등을 설치하기 어렵다. 사고 현장에서 150m 떨어진 초등학교 앞에 방지턱, 카메라, 신호등이 다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의 말과 달리 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10분 사이에도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수십 대의 차량이 통행하는 혼잡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마 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모르는 지, 어떤 차량은 언뜻 보기에도 30km/h가 넘는 속도로 지나쳐 가고, 어떤 아이들은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갔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서는 신호등과 무인 교통 단속 장비의 설치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정해두고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서식 참고

신호등 설치·관리 기준
△ 교통이 가장 빈번한 8시간 동안 주도로의 자동차 통행량 시간당 600대 이상, 부도로 200대 이상 등
△ 횡단보도 통행량 가장 많은 1시간 동안 보행자가 150명 이상인 경우
△ 학교 앞 300미터 이내에 신호등이 없고 통학시간대 자동차 통행시간 간격이 1분 이내인 경우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설치 기준
△ 교통사고 위험지수: 어린이 보호구역 내 인명피해 사고 건수 및 사망자·중상자 수
△ 사고 유형: 차대 사람, 차대 자전거 사고 건수
△ 사고 원인: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의 건수
△ 그 밖의 기준: 지역 주민 여론수렴 결과 등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이 관할 구청이나 경찰청에 꾸준히 민원을 제기했다면, 해당 장소를 방문해 사고의 위험성을 측정해보고 신호등이나 단속 장비의 설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신호등과 단속 장비가 있었다고 해도 막지 못할 사고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쿨존 안의 횡단보도 위에서 발생한 이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책임은 비단 가해 운전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딸의 기억을 걱정하는 마음들

눈을 떴을 때 곁에 엄마가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딸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큽니다. 추모 공간에 모인 시민들도, 뉴스에 댓글을 단 시청자들도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딸의 기억을 어루만지고 보듬어주는 심리 치료가 절실해 보입니다.

경찰에 물었습니다. 혹시 그런 지원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다행히 경찰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딸이 일상을 되찾고 다시 유치원에 가게 되는 날, 그날의 도로는 지금보다 더 안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취재후] 엄마와 함께했던 마지막 등원길…4살 아이는 무엇을 기억할까?
    • 입력 2021-05-13 17:54:10
    • 수정2021-05-14 10:44:05
    취재후·사건후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던 4살 아이,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아이의 머릿속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등원길을 아이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딸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길을 나섰다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숨진 엄마, 그리고 남아 있는 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관기사] 4살 딸 손잡고 등원하던 엄마 스쿨존서 차에 치여 숨져(2021.5.12. KBS1TV 뉴스9)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진 순간

아파트에서 보여준 CCTV 화면 속 모녀의 모습은 평온했습니다.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어깨엔 유치원 가방을 멘 엄마의 모습은 평범한 어느 아침의 일상이었습니다.

좌우를 살피고 아파트 바로 앞 횡단보도로 들어섭니다. 그때 모니터 위쪽에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승용차 1대가 잡힙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엄마는 좌회전해오는 차를 보고, 딸의 손을 잡고 있지 않던 나머지 한쪽 손을 살짝 듭니다. '멈추겠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승용차는 멈추지 않았고 모녀의 일상은 그렇게 파괴됐습니다.

5월 11일 오전 9시 20분, 인천시 서구 마전동(아파트 CCTV  화면)5월 11일 오전 9시 20분, 인천시 서구 마전동(아파트 CCTV 화면)

54살인 가해 운전자는 사고 나기 사흘 전인 지난 8일, 왼쪽 눈 수술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앞이 흐릿하게 보여 길을 건너는 모녀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력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급하게 운전대를 잡았을까. 경찰도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답했습니다.


달려가 아이를 안은 주민…엄마를 배웅하는 이웃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한 주민의 모습도 담겼습니다.

처음엔 놀라서 뒷걸음치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달려가 바닥에 넘어진 아이를 안아 듭니다. 한쪽으로 비켜서서 아이를 한참 안고 있습니다.

사고 목격 후 아이를 안아 든 주민(아파트 CCTV 화면)사고 목격 후 아이를 안아 든 주민(아파트 CCTV 화면)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들은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마련한 겁니다. 그곳에는 어느새 국화꽃이 수북이 놓였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접은 걸로 보이는 종이꽃들도 보입니다.

이웃들이 사고 현장에 마련한 추모 공간이웃들이 사고 현장에 마련한 추모 공간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주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일처럼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남아 있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지었습니다. 딸은 현재 골절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는 왜 없을까?

사고 현장을 둘러싸고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4개 단지, 3천 가구에 가깝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말로는 그곳은 평소에도 차량 통행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컸다고 합니다. 사고가 발생한 삼거리에는 비좁은 도로에 횡단보도가 4개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호등이나 과속 단속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사고 현장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사고 현장

"4개 단지 주민들이 아파트 들어가려면 이 도로(사고가 난 도로) 를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반드시 거쳐야 해요. 출근 시간대 직후(이번 사고도 오전 9시 20분에 발생했음)에 특히 혼잡합니다. 통학 차량들과 승용차들이 뒤엉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

"불법 유턴하는 차량이 너무 많아요. 아찔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구청, 경찰청에 단속 카메라 좀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그렇게 넣어도 예산 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라니까요." (인근 아파트 주민)


사고 현장은 스쿨존 안의 횡단보도입니다. 처음 내용을 접할 때부터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가 왜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 가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좁은 이면 도로라 신호등을 설치하기 어렵다. 사고 현장에서 150m 떨어진 초등학교 앞에 방지턱, 카메라, 신호등이 다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의 말과 달리 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10분 사이에도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수십 대의 차량이 통행하는 혼잡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마 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모르는 지, 어떤 차량은 언뜻 보기에도 30km/h가 넘는 속도로 지나쳐 가고, 어떤 아이들은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갔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서는 신호등과 무인 교통 단속 장비의 설치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정해두고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서식 참고

신호등 설치·관리 기준
△ 교통이 가장 빈번한 8시간 동안 주도로의 자동차 통행량 시간당 600대 이상, 부도로 200대 이상 등
△ 횡단보도 통행량 가장 많은 1시간 동안 보행자가 150명 이상인 경우
△ 학교 앞 300미터 이내에 신호등이 없고 통학시간대 자동차 통행시간 간격이 1분 이내인 경우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설치 기준
△ 교통사고 위험지수: 어린이 보호구역 내 인명피해 사고 건수 및 사망자·중상자 수
△ 사고 유형: 차대 사람, 차대 자전거 사고 건수
△ 사고 원인: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의 건수
△ 그 밖의 기준: 지역 주민 여론수렴 결과 등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이 관할 구청이나 경찰청에 꾸준히 민원을 제기했다면, 해당 장소를 방문해 사고의 위험성을 측정해보고 신호등이나 단속 장비의 설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신호등과 단속 장비가 있었다고 해도 막지 못할 사고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쿨존 안의 횡단보도 위에서 발생한 이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책임은 비단 가해 운전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딸의 기억을 걱정하는 마음들

눈을 떴을 때 곁에 엄마가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딸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큽니다. 추모 공간에 모인 시민들도, 뉴스에 댓글을 단 시청자들도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딸의 기억을 어루만지고 보듬어주는 심리 치료가 절실해 보입니다.

경찰에 물었습니다. 혹시 그런 지원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다행히 경찰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딸이 일상을 되찾고 다시 유치원에 가게 되는 날, 그날의 도로는 지금보다 더 안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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