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유 병뚜껑이 뭐길래…” 中 ‘팬덤 단속’까지?

입력 2021.05.13 (19:52) 수정 2021.05.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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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국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하나로 중국은 지금도 시끄럽습니다.

노인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하수구에 옹기종기 둘러 앉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병 포장을 뜯고 있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사람들이 모여 앉아 병 포장을 뜯고 있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

이들 주변으로는 핑크색 상자들이 보이고요. 모두들 분주하게 병을 들고 밀봉된 부분을 뜯고 있습니다.

이미 수 차례 같은 작업을 한 듯, 주변에는 플라스틱 껍데기가 수북히 쌓여 있는데요. 핑크색 병안에 든 것은 과일맛이 첨가된 우유입니다.

우유를 하수구에 버리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우유를 하수구에 버리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

이들에게 필요한 건 병뚜껑, 우유는 모조리 하구수에 쏟아버립니다. 이들은 우유 병뚜껑만을 따로 모아주는 대가로 뚜껑 하나당 5위안, 우리 돈 850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병뚜껑 따기' 아르바이트를 한 건데요. 대체 누가, 왜 우유 병뚜껑만 필요해서 이런 일을 시킨 것일까요?


■ 누가, 왜 우유 병뚜껑만이 필요했을까?

발단은 중국에서 최근 인기몰이 중이었던 아이돌 육성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가 기획한 ‘청춘유니3’ 발표회 (출처: 청춘유니 웨이보 계정)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가 기획한 ‘청춘유니3’ 발표회 (출처: 청춘유니 웨이보 계정)

한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서 기획한 '청춘유니3(청춘에 내가 있다)'이라는 프로그램은 참가자 백여 명을 경쟁시키고 최종 우승자 9명을 선발해 기간 한정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킨다는 내용인데요.

'청춘유니3'은 최종 선발을 앞두고 지난주말 마지막 투표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표방식이 기존의 전화나 문자를 이용하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스캔해 투표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QR코드가 바로 우유 병뚜껑 안에 찍혀 있었던 겁니다. 이 우유는 한 우유 회사에서 '청춘유니3'과 협업한 제품이었습니다.

‘청춘유니3’과 합작해 만든 우유 (출처: 웨이보)‘청춘유니3’과 합작해 만든 우유 (출처: 웨이보)

우유 1개당 1번의 투표가 가능하다 보니 일부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연습생에 더 많은 투표를 하기 위해서 우유를 더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는 우유는 버리고 우유 병뚜껑만 가져오도록 돈을 주고 시킨 겁니다.

일부 매체들에 따르면 마트에서 우유 포장을 뜯은 뒤 사지 않거나 QR코드를 웃돈을 주고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 "버려진 우유 27만여 병 분량"…기획사·우유 회사 '사과'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번 '우유 병뚜껑 사건'으로 버려진 우유는 27만여 병 분량. 우유를 하수구에 쏟아버리는 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중국 SNS상에서는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아까운 우유 가지고 뭐하는 짓이냐."는 반응과 함께 과도한 마케팅도 문제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관영매체 중국 CCTV는 논평을 통해 "이 터무니없는 스타 추종법 뒤에는 판매업자와 플랫폼의 유도가 있으며, 판매업자와 플랫폼은 우유를 쏟아부은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청춘유니3'을 기획한 동영상 플랫폼 회사는 '우유를 버리는' 영상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최종 선발 생방송을 취소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다음날에는 우유 회사의 사과도 이어졌습니다.


"우유 낭비 행위에 대해 우리는 매우 가슴이 아프며 모든 형태의 식품 낭비를 단호하게 반대한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면서 우유 판매도 중지했습니다.


■ 중국 당국 "팬덤 문화 검토하겠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우유 회사와 동영상 플랫폼 회사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중국의 사이버 감독기관인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이번 우유 낭비 사건을 지목하면서 팬들이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경우 앞으로는 강력히 단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악의적인 내용을 올리거나 팬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SNS 계정을 관리할 것이며 팬들이 단체로 과도하게 돈을 모아서 연예인을 지지하는 행동 등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제(12일)는 중국공연산업협회까지 나섰는데요.

협회는 연예인, 소속사 그리고 팬 카페가 '투표를 해달라'며 '상업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관련 연예인 등에 대한 보이콧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습니다.

풀이해보자면 '저를 지지해주세요!', '저에게 투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스타와 소속사 이야기를 듣고 이번처럼 팬들이 조직적으로 금전 지원을 해주는 것이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건데요.

여기에 일부에서는 이들 팬이 우유를 먹지 않고 버린 것이 지난해부터 시행된 '음식낭비금지법'을 어긴 것이며 처벌받을 수 있다고까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관영매체 인민일보가 ‘음식낭비 금지법’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 (출처: 인민일보)관영매체 인민일보가 ‘음식낭비 금지법’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 (출처: 인민일보)

'음식낭비 금지법'은 지난해 8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음식 낭비를 단호히 막아야 한다"고 지시한 뒤 올해 4월부터 29일부터 시행됐는데, 이 법에 따르면 '먹방'(먹는 방송)에 최대 1천7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이 법안 시행과 동시에 '먹방'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모든 속성을 보여주는 '경쟁 식 오디션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마케팅을 했을 뿐이고, 팬들은 자신이 가진 자본을 총동원해 '병뚜껑 아르바이트'까지 만들며 지지하는 연예인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물론 우유를 그냥 버린 것은 비난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내 돈 내산(내 돈을 내고 내가 산 것)'이라도 물의를 빚은 이상 기업과 연예산업은 물론 팬덤 문화까지 손 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번 '우유 병뚜껑 사건'은 또 한 번 공산주의라는 하드웨어에 자본주의라는 소프트웨어를 가진 중국만의 '충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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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우유 병뚜껑이 뭐길래…” 中 ‘팬덤 단속’까지?
    • 입력 2021-05-13 19:52:00
    • 수정2021-05-14 10:27:46
    특파원 리포트

지난주 중국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하나로 중국은 지금도 시끄럽습니다.

노인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하수구에 옹기종기 둘러 앉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병 포장을 뜯고 있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
이들 주변으로는 핑크색 상자들이 보이고요. 모두들 분주하게 병을 들고 밀봉된 부분을 뜯고 있습니다.

이미 수 차례 같은 작업을 한 듯, 주변에는 플라스틱 껍데기가 수북히 쌓여 있는데요. 핑크색 병안에 든 것은 과일맛이 첨가된 우유입니다.

우유를 하수구에 버리는 모습 (출처: 중국 CCTV 웨이보)
이들에게 필요한 건 병뚜껑, 우유는 모조리 하구수에 쏟아버립니다. 이들은 우유 병뚜껑만을 따로 모아주는 대가로 뚜껑 하나당 5위안, 우리 돈 850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병뚜껑 따기' 아르바이트를 한 건데요. 대체 누가, 왜 우유 병뚜껑만 필요해서 이런 일을 시킨 것일까요?


■ 누가, 왜 우유 병뚜껑만이 필요했을까?

발단은 중국에서 최근 인기몰이 중이었던 아이돌 육성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가 기획한 ‘청춘유니3’ 발표회 (출처: 청춘유니 웨이보 계정)
한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서 기획한 '청춘유니3(청춘에 내가 있다)'이라는 프로그램은 참가자 백여 명을 경쟁시키고 최종 우승자 9명을 선발해 기간 한정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킨다는 내용인데요.

'청춘유니3'은 최종 선발을 앞두고 지난주말 마지막 투표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표방식이 기존의 전화나 문자를 이용하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스캔해 투표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QR코드가 바로 우유 병뚜껑 안에 찍혀 있었던 겁니다. 이 우유는 한 우유 회사에서 '청춘유니3'과 협업한 제품이었습니다.

‘청춘유니3’과 합작해 만든 우유 (출처: 웨이보)
우유 1개당 1번의 투표가 가능하다 보니 일부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연습생에 더 많은 투표를 하기 위해서 우유를 더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는 우유는 버리고 우유 병뚜껑만 가져오도록 돈을 주고 시킨 겁니다.

일부 매체들에 따르면 마트에서 우유 포장을 뜯은 뒤 사지 않거나 QR코드를 웃돈을 주고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 "버려진 우유 27만여 병 분량"…기획사·우유 회사 '사과'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번 '우유 병뚜껑 사건'으로 버려진 우유는 27만여 병 분량. 우유를 하수구에 쏟아버리는 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중국 SNS상에서는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아까운 우유 가지고 뭐하는 짓이냐."는 반응과 함께 과도한 마케팅도 문제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관영매체 중국 CCTV는 논평을 통해 "이 터무니없는 스타 추종법 뒤에는 판매업자와 플랫폼의 유도가 있으며, 판매업자와 플랫폼은 우유를 쏟아부은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청춘유니3'을 기획한 동영상 플랫폼 회사는 '우유를 버리는' 영상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최종 선발 생방송을 취소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다음날에는 우유 회사의 사과도 이어졌습니다.


"우유 낭비 행위에 대해 우리는 매우 가슴이 아프며 모든 형태의 식품 낭비를 단호하게 반대한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면서 우유 판매도 중지했습니다.


■ 중국 당국 "팬덤 문화 검토하겠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우유 회사와 동영상 플랫폼 회사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중국의 사이버 감독기관인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이번 우유 낭비 사건을 지목하면서 팬들이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경우 앞으로는 강력히 단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악의적인 내용을 올리거나 팬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SNS 계정을 관리할 것이며 팬들이 단체로 과도하게 돈을 모아서 연예인을 지지하는 행동 등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제(12일)는 중국공연산업협회까지 나섰는데요.

협회는 연예인, 소속사 그리고 팬 카페가 '투표를 해달라'며 '상업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관련 연예인 등에 대한 보이콧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습니다.

풀이해보자면 '저를 지지해주세요!', '저에게 투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스타와 소속사 이야기를 듣고 이번처럼 팬들이 조직적으로 금전 지원을 해주는 것이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건데요.

여기에 일부에서는 이들 팬이 우유를 먹지 않고 버린 것이 지난해부터 시행된 '음식낭비금지법'을 어긴 것이며 처벌받을 수 있다고까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관영매체 인민일보가 ‘음식낭비 금지법’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 (출처: 인민일보)
'음식낭비 금지법'은 지난해 8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음식 낭비를 단호히 막아야 한다"고 지시한 뒤 올해 4월부터 29일부터 시행됐는데, 이 법에 따르면 '먹방'(먹는 방송)에 최대 1천7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이 법안 시행과 동시에 '먹방'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모든 속성을 보여주는 '경쟁 식 오디션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마케팅을 했을 뿐이고, 팬들은 자신이 가진 자본을 총동원해 '병뚜껑 아르바이트'까지 만들며 지지하는 연예인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물론 우유를 그냥 버린 것은 비난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내 돈 내산(내 돈을 내고 내가 산 것)'이라도 물의를 빚은 이상 기업과 연예산업은 물론 팬덤 문화까지 손 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번 '우유 병뚜껑 사건'은 또 한 번 공산주의라는 하드웨어에 자본주의라는 소프트웨어를 가진 중국만의 '충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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