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모르는 입양 기록 공개?…‘친양자증명서’ 발급 허술

입력 2021.05.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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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다양한 관계 증명서

'나'를 설명하고 규정하고 있는 서류, 몇 개나 있을까요?

국적과 출생, 사망 등이 나오는 기본증명서, 부모와 배우자, 자녀 사항이 기재되는 가족관계증명서, 결혼했다면 혼인관계증명서가 있을 것이고, 호주와 본적까지 포함된 제적부 등·초본도 있습니다. 꽤 많은 증명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나'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가족에게는 이런 증명서가 더 있습니다.

입양인과 그 가족 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서류입니다. 입양부모가 아이를 친자로 입양했다면 '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입양부모는 물론 낳아준 부모까지 모두 인정하는 방식으로, 양자로 아이를 받아들였다면 ' 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안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 입양인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가 담겨있다.‘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안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 입양인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가 담겨있다.


■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신청 조건 매우 까다로워"

증명서에 기록된 인물이 당사자일 경우, '나'를 증명할 신분증만 있으면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증명서 발급입니다.

하지만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는 조금 다릅니다. 신청 기준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법에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신청자를 '성인이 된 입양인'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⑦ 본인 또는 배우자, 부모, 자녀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록부 등의 기록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전자적 방법에 의한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의 기록사항에 대하여는 친양자가 성년이 된 이후에만 청구할 수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친생부모와 입양부모, 입양인 등입니다.

특히, 기재 사항이 매우 상세합니다. 이 증명서만 떼면 이들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까지 알 수 있습니다. 잘못 공개되면 입양아 본인은 물론 입양 가족과 친부모들의 삶까지 좌우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들입니다.

물론, 신청자격 예외조건도 있습니다.

친양자가 성인이 된 뒤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가 본인 이름으로 증명서 열람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입양취소나 파양을 할 때, 상속, 수사나 소송, 민사집행 등에 필요한 경우에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또, 친양자의 복리를 위해 필요할 때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갖추면, 친양자가 미성년자여도 부모가 증명서를 뗄 수 있습니다.


■ 행정기관마다 기준 제각각?…발급 2곳·거절 1곳

이런 까다로운 발급조건,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입양가족들은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행정기관에서 증명서에 포함된 본인이라고 하면, 별다른 확인 없이 발급을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KBS 취재진이 미성년자 입양 자녀를 둔 부모의 도움을 받아, 강원도 춘천시 내 행정복지센터 3곳을 돌아다녀 봤습니다.

이 가운데 2곳에서 자녀 통장의 명의 변경을 위해 은행에 제출할 서류라고 하자, 이를 확인할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고, 바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줬습니다.

나머지 한 곳은 "법원 등에서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발급해 줄 수 없다"라고 거절했습니다. 또, 기본증명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준 행정기관에 이유를 묻자, '친양자의 복리를 위해 신청한 경우'로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해당 공무원의 미숙한 행정처리였다"라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강원도 춘천시내 행정복지센터 3곳 가운데 2곳이 별다른 소명자료 제출 요구 없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준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강원도 춘천시내 행정복지센터 3곳 가운데 2곳이 별다른 소명자료 제출 요구 없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준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 입양가족 "친생부가 입양아 돌려달라고 하기도…"

허술한 행정처리 탓에 입양가족은 "인권침해를 당할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실제로 2018년,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이 증명서를 확인한 친생부가 입양가족을 찾아와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인연을 끊은 친생부모가 원치 않은 만남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입양가족들은 허술한 행정 탓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하고 있다.입양가족들은 허술한 행정 탓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하고 있다.

■ 복지부, "친양자증명서 앞으로는 제대로 관리"

보건복지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신청 자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일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장치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민원인이 신청하면, 시스템에 입력할 때 '미성년자인 입양인은 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식의 알림창을 띄워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의 알 권리와 친생·입양 부모의 정보 보호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누군가의 불이익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때입니다. 그 시작은 정해진 법적 절차를 따르는 일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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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도 모르는 입양 기록 공개?…‘친양자증명서’ 발급 허술
    • 입력 2021-05-14 11:04:07
    취재K
■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다양한 관계 증명서

'나'를 설명하고 규정하고 있는 서류, 몇 개나 있을까요?

국적과 출생, 사망 등이 나오는 기본증명서, 부모와 배우자, 자녀 사항이 기재되는 가족관계증명서, 결혼했다면 혼인관계증명서가 있을 것이고, 호주와 본적까지 포함된 제적부 등·초본도 있습니다. 꽤 많은 증명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나'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가족에게는 이런 증명서가 더 있습니다.

입양인과 그 가족 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서류입니다. 입양부모가 아이를 친자로 입양했다면 '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입양부모는 물론 낳아준 부모까지 모두 인정하는 방식으로, 양자로 아이를 받아들였다면 ' 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안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 입양인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가 담겨있다.

■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신청 조건 매우 까다로워"

증명서에 기록된 인물이 당사자일 경우, '나'를 증명할 신분증만 있으면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증명서 발급입니다.

하지만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는 조금 다릅니다. 신청 기준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법에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신청자를 '성인이 된 입양인'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⑦ 본인 또는 배우자, 부모, 자녀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록부 등의 기록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전자적 방법에 의한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의 기록사항에 대하여는 친양자가 성년이 된 이후에만 청구할 수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친생부모와 입양부모, 입양인 등입니다.

특히, 기재 사항이 매우 상세합니다. 이 증명서만 떼면 이들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까지 알 수 있습니다. 잘못 공개되면 입양아 본인은 물론 입양 가족과 친부모들의 삶까지 좌우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들입니다.

물론, 신청자격 예외조건도 있습니다.

친양자가 성인이 된 뒤에는 친생부모와 양부모가 본인 이름으로 증명서 열람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입양취소나 파양을 할 때, 상속, 수사나 소송, 민사집행 등에 필요한 경우에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또, 친양자의 복리를 위해 필요할 때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갖추면, 친양자가 미성년자여도 부모가 증명서를 뗄 수 있습니다.


■ 행정기관마다 기준 제각각?…발급 2곳·거절 1곳

이런 까다로운 발급조건,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입양가족들은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행정기관에서 증명서에 포함된 본인이라고 하면, 별다른 확인 없이 발급을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KBS 취재진이 미성년자 입양 자녀를 둔 부모의 도움을 받아, 강원도 춘천시 내 행정복지센터 3곳을 돌아다녀 봤습니다.

이 가운데 2곳에서 자녀 통장의 명의 변경을 위해 은행에 제출할 서류라고 하자, 이를 확인할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고, 바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줬습니다.

나머지 한 곳은 "법원 등에서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발급해 줄 수 없다"라고 거절했습니다. 또, 기본증명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준 행정기관에 이유를 묻자, '친양자의 복리를 위해 신청한 경우'로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해당 공무원의 미숙한 행정처리였다"라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강원도 춘천시내 행정복지센터 3곳 가운데 2곳이 별다른 소명자료 제출 요구 없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발급해준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 입양가족 "친생부가 입양아 돌려달라고 하기도…"

허술한 행정처리 탓에 입양가족은 "인권침해를 당할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실제로 2018년,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이 증명서를 확인한 친생부가 입양가족을 찾아와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인연을 끊은 친생부모가 원치 않은 만남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입양가족들은 허술한 행정 탓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하고 있다.
■ 복지부, "친양자증명서 앞으로는 제대로 관리"

보건복지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신청 자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일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장치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민원인이 신청하면, 시스템에 입력할 때 '미성년자인 입양인은 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식의 알림창을 띄워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의 알 권리와 친생·입양 부모의 정보 보호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누군가의 불이익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때입니다. 그 시작은 정해진 법적 절차를 따르는 일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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