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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에서 비롯된 ‘포스트잇’ 발명… 발명자 별세
입력 2021.05.14 (15:02) 수정 2021.05.14 (21:07) 취재K
홍콩 ‘빈 포스트잇’ 식당에 붙어 … 그 자체로 반정부 메시지
접착제 등 발명한 실버 박사, 최근 지병으로 사망
‘실수’가 제품 발명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
제품 개발뒤 마케팅 바람 타고 사무, 주방용품 ‘인기’

지난해 홍콩에서는 사무용품인 ‘포스트잇’이 사실상 시위용품으로 등장했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국가보안법’ (홍콩보안법)의 시행 직후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서 식당에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보안법 위반이 될수있다는 정부의 경고가 발표되자, 일부 식당은 이러한 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빈 포스트잇(아래 사진)을 벽에 가득 붙여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시위용품으로 쓰이기도 하고, 이젠 그냥 ‘메모지’가 아니라 오피스 문구에서 빠질 수 없는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포스트잇’을 개발한 화학자(화학자가 개발했습니다!)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사무용 메모지 ‘포스트잇’을 발명한 화학자 스펜서 퍼거슨 실버 3세 (아래 사진)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자택에서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3M출처=3M
이 소식은 실버 박사가 30 여 년 동안 재직한 3M에 의해 발표됐다고 하는데요.

실버 박사의 스토리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실수를 제품 개발로 승화시킨 그의 노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화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실버는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3M에 입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1968년에 항공기 제작에 쓸 강한 접착제를 개발중이었습니다.

당시 스펜서 실버 박사는 ‘실수’로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이지 않는 물질을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포스트잇’ 탄생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은 당초 의도한 발명품이 아닌, 실수가 만들어낸 아이디어 상품인 것입니다.

그는 2010년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내가 개발한 접착제가 너무 독특해서 제품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바라면서 3M내에서 이를 알리는 세미나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세미나를 했던지 당시 그의 별명은 ‘미스터 끈기’로 불릴 정도였다고 언론은 밝혔습니다.

연구실에서 포스트잇 제품을 살펴보는 실버 박사(왼쪽)과 제품 개발 담당자인 아트 프라이(오른쪽)의 모습.(출처=3M)연구실에서 포스트잇 제품을 살펴보는 실버 박사(왼쪽)과 제품 개발 담당자인 아트 프라이(오른쪽)의 모습.(출처=3M)
실버 박사는 이후 몇년 동안 회사 내에서 자신의 접착제를 홍보했고, 테이프 사업부의 화학 기술자인 아트 프라이와 만나 제품이 탄생합니다.

아트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매번 불러야 할 찬송가를 찾기 쉽도록 책갈피 처럼 종이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출처=게티 이미지출처=게티 이미지
하지만, 매번 그 종이가 빠져나가 원하는 페이지를 찾느라 고생했던 경험이 생각났고, 스펜서 실버의 ‘실패한’ 접착제에 메모지를 붙여 봤던 것이 결국 신제품으로 빛을 보게 됩니다.

이 제품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사무용품 등으로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1980년부터 대량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노란색 제품만 있었지만 점차 주황, 초록,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으로 구색을 갖췄습니다.

출처=게티 이미지출처=게티 이미지
실버 박사는 1996년 은퇴 전까지 30 여건의 특허를 받았고, 그와 아트 프라이는 미국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습니다.
  • ‘실수’에서 비롯된 ‘포스트잇’ 발명… 발명자 별세
    • 입력 2021-05-14 15:02:52
    • 수정2021-05-14 21:07:13
    취재K
홍콩 ‘빈 포스트잇’ 식당에 붙어 … 그 자체로 반정부 메시지<br />접착제 등 발명한 실버 박사, 최근 지병으로 사망<br />‘실수’가 제품 발명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br />제품 개발뒤 마케팅 바람 타고 사무, 주방용품 ‘인기’

지난해 홍콩에서는 사무용품인 ‘포스트잇’이 사실상 시위용품으로 등장했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국가보안법’ (홍콩보안법)의 시행 직후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포스트잇에 써서 식당에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보안법 위반이 될수있다는 정부의 경고가 발표되자, 일부 식당은 이러한 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빈 포스트잇(아래 사진)을 벽에 가득 붙여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시위용품으로 쓰이기도 하고, 이젠 그냥 ‘메모지’가 아니라 오피스 문구에서 빠질 수 없는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포스트잇’을 개발한 화학자(화학자가 개발했습니다!)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사무용 메모지 ‘포스트잇’을 발명한 화학자 스펜서 퍼거슨 실버 3세 (아래 사진)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자택에서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3M출처=3M
이 소식은 실버 박사가 30 여 년 동안 재직한 3M에 의해 발표됐다고 하는데요.

실버 박사의 스토리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실수를 제품 개발로 승화시킨 그의 노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화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실버는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3M에 입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1968년에 항공기 제작에 쓸 강한 접착제를 개발중이었습니다.

당시 스펜서 실버 박사는 ‘실수’로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이지 않는 물질을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포스트잇’ 탄생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은 당초 의도한 발명품이 아닌, 실수가 만들어낸 아이디어 상품인 것입니다.

그는 2010년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내가 개발한 접착제가 너무 독특해서 제품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바라면서 3M내에서 이를 알리는 세미나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세미나를 했던지 당시 그의 별명은 ‘미스터 끈기’로 불릴 정도였다고 언론은 밝혔습니다.

연구실에서 포스트잇 제품을 살펴보는 실버 박사(왼쪽)과 제품 개발 담당자인 아트 프라이(오른쪽)의 모습.(출처=3M)연구실에서 포스트잇 제품을 살펴보는 실버 박사(왼쪽)과 제품 개발 담당자인 아트 프라이(오른쪽)의 모습.(출처=3M)
실버 박사는 이후 몇년 동안 회사 내에서 자신의 접착제를 홍보했고, 테이프 사업부의 화학 기술자인 아트 프라이와 만나 제품이 탄생합니다.

아트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매번 불러야 할 찬송가를 찾기 쉽도록 책갈피 처럼 종이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출처=게티 이미지출처=게티 이미지
하지만, 매번 그 종이가 빠져나가 원하는 페이지를 찾느라 고생했던 경험이 생각났고, 스펜서 실버의 ‘실패한’ 접착제에 메모지를 붙여 봤던 것이 결국 신제품으로 빛을 보게 됩니다.

이 제품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사무용품 등으로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1980년부터 대량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노란색 제품만 있었지만 점차 주황, 초록,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으로 구색을 갖췄습니다.

출처=게티 이미지출처=게티 이미지
실버 박사는 1996년 은퇴 전까지 30 여건의 특허를 받았고, 그와 아트 프라이는 미국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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