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5살 의붓아들 살해’ 남성에 징역 25년형 확정

입력 2021.05.14 (18:02) 수정 2021.05.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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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학대로 아동이 숨진 사건에서 '살인죄'가 적용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가해자(주로 부모)는 아이가 숨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수사기관 역시 살인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살인'보다 형량은 낮고 입증은 더 쉬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동학대 피고인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는 판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아동학대 과정에서 살인의 고의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2019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5살 의붓아들 폭행 살해' 사건입니다. 아동보호 등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 사건이었는데요.

KBS 취재 결과, 대법원이 최근 피고인인 의붓아버지에게 징역 25년의 중형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5살 아이 무차별 폭행…화장실에 감금하기도

2018년 이 모 씨는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둘을 학대한 혐의로, 인천가정법원에서 아이들에게 1년간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접근금지 기간이 끝난 이듬해, 이 씨는 보호시설에 있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고, 학대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특히 학대 후유증 등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언어발달도 다소 지체된 상태였던 다섯 살 A 군이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법원에서 인정된 2019년 9월의 범죄 사실은 참혹합니다.


이 씨는 힘없는 아이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고, 코피가 날 때까지 목을 조르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신장 172㎝, 체중 90㎏의 건장한 체격이었고, A군은 당시 신장 110㎝, 체중 16~17㎏에 불과했습니다.)


목검 등의 흉기로 수백 차례 찌르거나 때렸습니다.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가 방바닥 또는 화장실에 집어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폭행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분씩 이어졌습니다.


이 씨는 아이를 때리지 않을 때는 자신이 기르는 개와 함께 화장실에 가둬놨습니다. 아이는 사흘 내리 화장실에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다른 가족들이 외출할 때면 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막아 뒀습니다. 이 씨는 아이를 하루 종일 굶기거나 아주 적은 양의 식사 한 끼만 줬습니다.


아이는 건강이 악화돼 그나마 주어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갖은 학대가 이어지던 그해 9월 26일 저녁, 이 씨는 아이를 폭행한 뒤 케이블선 등으로 아이의 팔과 다리를 몸 뒤쪽으로 묶어 몸이 활처럼 휜 자세가 되도록 한 후 방치했습니다. 다음날까지도 탈진 상태에 있던 아이를 방치한 채 병원에 데려가거나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로부터 "풀어주지 않으면 아이가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이 씨는 아이를 풀어주지 않았고,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날 저녁 숨졌습니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A군의 직접적인 사인은 이 씨의 폭행 등에 의한 치명적인 복부 손상이었습니다.

이 씨는 살인과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상습특수상해), 아동복지법위반(상습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훈육 위해"…법원 "도저히 정상적 훈육 아냐" 징역 25년 확정

이 씨는 재판에서 "아이를 폭행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훈육을 위한 것"이라며 "사망 당일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스스로 119에 신고하고 가슴압박 등 응급조치를 취한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당시 사망을 예견하거나 용인할 의사가 없었고, 미필적으로라도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심인 인천지방법원은 이 씨에게 징역 22년과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아동관련기관 10년간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미 피고인의 무자비한 폭행과 학대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폭행하고 방치할 당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폭행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는 당시 만 5살의 어린 나이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발달의 지체 등으로 의사소통에도 매우 서툰 상태에 있었다"며 "이러한 피해자를 폭행 또는 감금하는 것이 훈육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그 방법과 정도 역시 도저히 정상적인 훈육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학대의 내용과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나 스트레스 등 감정 해소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학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형량을 더 늘려, A 씨에게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아동의 양육은 가족 구성원 차원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바, 아동에 대한 학대행위는 성장 단계에 있는 아동의 정서 및 건강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으므로 그 대상이 성인인 경우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것으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원심의 형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대법원 1부(대법관 김선수, 이기택, 박정화, 이흥구)는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을 검토하여 보면, 피고인이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의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 씨의 학대를 내버려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군의 친엄마는 지난해 10월 징역 5년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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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5살 의붓아들 살해’ 남성에 징역 25년형 확정
    • 입력 2021-05-14 18:02:05
    • 수정2021-05-14 18:10:24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br />


학대로 아동이 숨진 사건에서 '살인죄'가 적용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가해자(주로 부모)는 아이가 숨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수사기관 역시 살인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살인'보다 형량은 낮고 입증은 더 쉬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동학대 피고인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는 판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아동학대 과정에서 살인의 고의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2019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5살 의붓아들 폭행 살해' 사건입니다. 아동보호 등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 사건이었는데요.

KBS 취재 결과, 대법원이 최근 피고인인 의붓아버지에게 징역 25년의 중형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5살 아이 무차별 폭행…화장실에 감금하기도

2018년 이 모 씨는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둘을 학대한 혐의로, 인천가정법원에서 아이들에게 1년간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접근금지 기간이 끝난 이듬해, 이 씨는 보호시설에 있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고, 학대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특히 학대 후유증 등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언어발달도 다소 지체된 상태였던 다섯 살 A 군이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법원에서 인정된 2019년 9월의 범죄 사실은 참혹합니다.


이 씨는 힘없는 아이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고, 코피가 날 때까지 목을 조르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신장 172㎝, 체중 90㎏의 건장한 체격이었고, A군은 당시 신장 110㎝, 체중 16~17㎏에 불과했습니다.)


목검 등의 흉기로 수백 차례 찌르거나 때렸습니다.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가 방바닥 또는 화장실에 집어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폭행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분씩 이어졌습니다.


이 씨는 아이를 때리지 않을 때는 자신이 기르는 개와 함께 화장실에 가둬놨습니다. 아이는 사흘 내리 화장실에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다른 가족들이 외출할 때면 아이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막아 뒀습니다. 이 씨는 아이를 하루 종일 굶기거나 아주 적은 양의 식사 한 끼만 줬습니다.


아이는 건강이 악화돼 그나마 주어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갖은 학대가 이어지던 그해 9월 26일 저녁, 이 씨는 아이를 폭행한 뒤 케이블선 등으로 아이의 팔과 다리를 몸 뒤쪽으로 묶어 몸이 활처럼 휜 자세가 되도록 한 후 방치했습니다. 다음날까지도 탈진 상태에 있던 아이를 방치한 채 병원에 데려가거나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로부터 "풀어주지 않으면 아이가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이 씨는 아이를 풀어주지 않았고,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날 저녁 숨졌습니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A군의 직접적인 사인은 이 씨의 폭행 등에 의한 치명적인 복부 손상이었습니다.

이 씨는 살인과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상습특수상해), 아동복지법위반(상습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훈육 위해"…법원 "도저히 정상적 훈육 아냐" 징역 25년 확정

이 씨는 재판에서 "아이를 폭행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훈육을 위한 것"이라며 "사망 당일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스스로 119에 신고하고 가슴압박 등 응급조치를 취한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당시 사망을 예견하거나 용인할 의사가 없었고, 미필적으로라도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심인 인천지방법원은 이 씨에게 징역 22년과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아동관련기관 10년간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미 피고인의 무자비한 폭행과 학대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폭행하고 방치할 당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폭행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는 당시 만 5살의 어린 나이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발달의 지체 등으로 의사소통에도 매우 서툰 상태에 있었다"며 "이러한 피해자를 폭행 또는 감금하는 것이 훈육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그 방법과 정도 역시 도저히 정상적인 훈육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학대의 내용과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나 스트레스 등 감정 해소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학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형량을 더 늘려, A 씨에게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아동의 양육은 가족 구성원 차원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바, 아동에 대한 학대행위는 성장 단계에 있는 아동의 정서 및 건강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으므로 그 대상이 성인인 경우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것으로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원심의 형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대법원 1부(대법관 김선수, 이기택, 박정화, 이흥구)는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을 검토하여 보면, 피고인이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의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 씨의 학대를 내버려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군의 친엄마는 지난해 10월 징역 5년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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