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1심 선고…또다른 정인이 안나오려면?

입력 2021.05.1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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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슬프게 또 공분케 했던 정인이 사건. 2019년생 정인이는 태어난 지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온몸에 멍투성이가 되어 숨졌다. 부검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골절을 넘어 췌장 등 장기가 절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가해자는 8개월짜리 정인이를 입양한 양모 장 씨와 양부 안 씨였다. 16개월의 짧디짧은 생의 절반을 양부모의 극악한 학대 속에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사건 발생 7개월째인 2021년 5월 14일, 양부모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모 장 씨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양부 안 씨는 징역 5년이 선고되고, 구속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받은 안 씨는 “정말 죄송하다. 지은 죄는 철저히 받겠다. 속죄를 위해 2심 전까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선처를 구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주 가해자인 양모 장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의 주요 양형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 13부 (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
“피고인은 자신의 입양으로 인해 무방비 상태에 있는 8~16개월의 피해자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보호하기보다는 피고인 자신이 신체적, 정서적 학대 행위를 일삼다가 피해자를 살해의 대상으로 했고 헌법상 누구나 보장되어야 할만한 인간의 존엄을 저버린 사례로 볼 수 있다. 일반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함으로써 피고인의 책임을 상기하고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게 함이 타당하다.”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이었다. 양모 장 씨는 선고 전 11차례에 걸친 1심 공판에서 살인혐의와 관련해 “피해자(정인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때린 적은 있으나 사망에 이를 만큼 강한 완력을 취한 바는 없다”고 주장하며 고의성을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장 씨에 대해 처음부터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아 뒤늦게 공소장을 변경까지 한 검찰은 재판부에서 살인혐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주위적 공소사실로는 살인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아동학대치사죄를 동시에 적용하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장 씨의 형량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플랜 A와 플랜 B를 모두 적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성을 모두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 13부 (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
“피고인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16개월 여아를 발로 밟았고,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밟을 경우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를 살해할 확정적 요인은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는 인정. 피해자의 살인죄의 공소사실 유죄로 인정. 피고인 장 00에 대한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피고인과 같은 키가 약 168cm 정도의 여성이 체중 약 9kg의 피해자를 떨어뜨리면서 등 부위가 범보의자에 부딪쳐 췌장 절단이나 장간막 파열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사망 당시와 유사한 크기 86cm, 무게 9.05kg의 인형을 피고인의 겨드랑이 높이 정도인 150cm에서 떨어뜨리는 실험을 재연한 결과 5회 모두 다리 부위가 먼저 닿는 것으로 확인. 위와 같은 실험결과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겨드랑이 높이에서 피해자를 떨어뜨린 경우 피해자의 등 부위가 먼저 부딪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날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수백 명의 많은 시민이 모여 너무 짧은 생을 찍고간 정인이의 삶을 추모했다. 이소영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은 “양모와 양부 모두 검찰 구형보다 낮게 나와 안타깝다”면서 선고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앞서 지난 4월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양모 장 씨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양부 안 씨에 대해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일부 시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선고에 대해 여성변호사회 아동학대 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진희 변호사는 “15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2013년 칠곡 계모사건, 2020년 천안 아동 가방 감금 사망사건에는 25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것에 비하면 정인이 사건은 무기징역이 선고돼 법원의 판결, 양형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면서도 “국민 법감정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정인이 사건 이후인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 처벌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 시 현장출동과 현장조사 등이 신속하게 이뤄지게 됐다”며 “관련 공무원들이 즉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자치단체 규정이 생겼지만, 실제 현장에서 잘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평했다. 신 변호사는 또 “결국 어린이집 선생님이든 이웃이든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올 경우 국가나 사회가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이 개정이 됐기 때문에 그 법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될지 실무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엄벌주의와 함께 ‘아동학대 생존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사회적 인프라가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해 아동들이 상습 가해현장에서 벗어나 생존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적 보호시설이 늘어야 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아동학대 건수가 1만 5천 건 정도인데, 보호시설에 수용 가능한 아동은 4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복지선진국 독일의 경우 연간 5만여 건의 아동학대 피해 사례가 접수되는데, 보호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식 가족주의’가 아동학대를 키운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 교수는 “민법에 있는 부모의 자녀 징계권 915조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 문화적으로는 친권자가 징계할 수 있다는 의식이 여전하다”며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존중된 인격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고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아동인권에 대한 민감성’은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아동학대 사건들로 국민들은 슬픔을 넘어 충격과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엄벌주의와 함께 아동인권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사회 문화적 변화가 함께할 때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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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이 사건’ 1심 선고…또다른 정인이 안나오려면?
    • 입력 2021-05-14 18:56:50
    취재K
온 국민을 슬프게 또 공분케 했던 정인이 사건. 2019년생 정인이는 태어난 지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온몸에 멍투성이가 되어 숨졌다. 부검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골절을 넘어 췌장 등 장기가 절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가해자는 8개월짜리 정인이를 입양한 양모 장 씨와 양부 안 씨였다. 16개월의 짧디짧은 생의 절반을 양부모의 극악한 학대 속에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사건 발생 7개월째인 2021년 5월 14일, 양부모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모 장 씨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양부 안 씨는 징역 5년이 선고되고, 구속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받은 안 씨는 “정말 죄송하다. 지은 죄는 철저히 받겠다. 속죄를 위해 2심 전까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선처를 구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의 주 가해자인 양모 장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의 주요 양형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 13부 (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
“피고인은 자신의 입양으로 인해 무방비 상태에 있는 8~16개월의 피해자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보호하기보다는 피고인 자신이 신체적, 정서적 학대 행위를 일삼다가 피해자를 살해의 대상으로 했고 헌법상 누구나 보장되어야 할만한 인간의 존엄을 저버린 사례로 볼 수 있다. 일반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함으로써 피고인의 책임을 상기하고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게 함이 타당하다.”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이었다. 양모 장 씨는 선고 전 11차례에 걸친 1심 공판에서 살인혐의와 관련해 “피해자(정인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때린 적은 있으나 사망에 이를 만큼 강한 완력을 취한 바는 없다”고 주장하며 고의성을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장 씨에 대해 처음부터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아 뒤늦게 공소장을 변경까지 한 검찰은 재판부에서 살인혐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주위적 공소사실로는 살인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아동학대치사죄를 동시에 적용하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장 씨의 형량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플랜 A와 플랜 B를 모두 적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성을 모두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 13부 (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
“피고인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16개월 여아를 발로 밟았고,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밟을 경우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를 살해할 확정적 요인은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는 인정. 피해자의 살인죄의 공소사실 유죄로 인정. 피고인 장 00에 대한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피고인과 같은 키가 약 168cm 정도의 여성이 체중 약 9kg의 피해자를 떨어뜨리면서 등 부위가 범보의자에 부딪쳐 췌장 절단이나 장간막 파열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사망 당시와 유사한 크기 86cm, 무게 9.05kg의 인형을 피고인의 겨드랑이 높이 정도인 150cm에서 떨어뜨리는 실험을 재연한 결과 5회 모두 다리 부위가 먼저 닿는 것으로 확인. 위와 같은 실험결과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겨드랑이 높이에서 피해자를 떨어뜨린 경우 피해자의 등 부위가 먼저 부딪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날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수백 명의 많은 시민이 모여 너무 짧은 생을 찍고간 정인이의 삶을 추모했다. 이소영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은 “양모와 양부 모두 검찰 구형보다 낮게 나와 안타깝다”면서 선고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앞서 지난 4월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양모 장 씨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양부 안 씨에 대해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일부 시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선고에 대해 여성변호사회 아동학대 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진희 변호사는 “15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2013년 칠곡 계모사건, 2020년 천안 아동 가방 감금 사망사건에는 25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것에 비하면 정인이 사건은 무기징역이 선고돼 법원의 판결, 양형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면서도 “국민 법감정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정인이 사건 이후인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 처벌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 시 현장출동과 현장조사 등이 신속하게 이뤄지게 됐다”며 “관련 공무원들이 즉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자치단체 규정이 생겼지만, 실제 현장에서 잘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평했다. 신 변호사는 또 “결국 어린이집 선생님이든 이웃이든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올 경우 국가나 사회가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이 개정이 됐기 때문에 그 법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될지 실무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엄벌주의와 함께 ‘아동학대 생존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사회적 인프라가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해 아동들이 상습 가해현장에서 벗어나 생존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적 보호시설이 늘어야 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아동학대 건수가 1만 5천 건 정도인데, 보호시설에 수용 가능한 아동은 4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복지선진국 독일의 경우 연간 5만여 건의 아동학대 피해 사례가 접수되는데, 보호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식 가족주의’가 아동학대를 키운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 교수는 “민법에 있는 부모의 자녀 징계권 915조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 문화적으로는 친권자가 징계할 수 있다는 의식이 여전하다”며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존중된 인격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고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아동인권에 대한 민감성’은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아동학대 사건들로 국민들은 슬픔을 넘어 충격과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엄벌주의와 함께 아동인권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사회 문화적 변화가 함께할 때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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