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플러스] 미얀마 사태,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입력 2021.05.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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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는 비극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 아내와 남편, 아버지, 어머니 혹은 친구가 죽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 내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그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한 폭도들이란 오해도 뒤집어썼습니다. 군부가 국내 언론을 철저히 통제한 상황, 광주의 참상은 외신 기자들에 의해 비로소 밖에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41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서 더이상 이런 희생은 없습니다. 5·18은 참담한 역사지만, 교훈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보다 성숙해졌고, 무엇이 거짓인지 또 진실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의 5월은 41년 전 광주의 5월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시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군부는 정보를 통제했지만,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목숨을 걸고 SNS를 통해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이 비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하는 기자들 Q플러스> 에서는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를 고민해 봤습니다.

미얀마 기자들 인터뷰하는 〈시사IN〉미얀마 기자들 인터뷰하는 〈시사IN〉


■ "돕고 싶었다" 미얀마를 대하는 <시사IN>의 자세

작은 매체인 <시사IN>은 미얀마 특집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미얀마 현지 기자를 인터뷰해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현지 언론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렵게 그들과 연락이 닿았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고 말합니다.

기자들은 거처 없이 이집저집 숨어들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곧바로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잠시 잊고, 공포를 애써 지우고, 미얀마 기자들은 매일 시위 현장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시사IN> 이 보도한 현지 기자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Zay Yar Minn (탄르윈켓 뉴스/ 편집장)
"취재할 수 있는 건 시민들 때문입니다. 기자를 잡아갈 때 아무 이유 없이 체포합니다. 왜 잡아가는지 이유를 전혀 대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들이 숨어들어오는 기자들에게 먹을 것을 다 꺼내서 제공합니다."

Thu Zar Ahalay (프리랜서 촬영기자)
"저는 남편과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딸은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갈 겁니다. 미얀마 시민들의 혁명을 군인들이 총으로 공격하면 저희는 펜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

<시사IN>은 이들에게 지면을 내주었습니다. 실상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고료 명목으로 이들의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시사IN>이 이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입니다.



■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좀 더 개입할 것인가?

<시사IN>은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시민활동도 주도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오늘의 행동>과 함께 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언론사인 만큼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형편껏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미얀마 국가의 빨간색이 용기를 상징한다는 것에 착안해 집 밖에 빨간풍선 달기 운동을 벌였고, 투표소 앞에서는 '세 손가락 경례' 인증을 유도했습니다. 카페에서, 문구점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기사로 담았습니다. 기사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담당 기자에게도 독자와의 소통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재밌죠. 그러니까, 독자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상상된 존재잖아요. 그러니까 온라인 너머의 뭔가 댓글로만, 메일로만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에게 뭔가 '참여하겠다'는 효능감을 주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독자를 상상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저희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할 때, 그 생각을 실현시켜 주는 것. 여러 사람의 요구가 이어진다면 그걸 하나로 묶어내는 게 저널리즘의 역할이 될 수 있다는 <시사IN> 담당 기자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이 시대의 '국제 뉴스', 어떤 시각이 필요한가?

물리적 거리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시아 한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나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적 연대'를 외치며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하고, 미얀마 지지를 위한 단체를 스스로 만들기도 합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우리 언론은 지난달에만 2천 건이 넘는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미얀마 사태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뤘는지를 짐작할만한 대목입니다. 충분할까요?

17년 동안 분쟁 현장에서 취재해 온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를 만났습니다. 지금 어떤 보도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단편적인 사실을 보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보도가 많아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몇 명이 숨지고, 고문을 어떻게 당하고 등의 표피적인 현상을 보도하는 것 못지 않게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새로 구성된 민간 정부는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소수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미얀마 사태를 통해 언론의 다양한 면을 보았습니다. 언론이 의지를 가진다면 단순한 사실 보도 그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외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충만한 국제 이슈 앞에서,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미얀마 사태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16일(일) 밤 10시 35분 KBS1TV에서 방영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에서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1부에선 <'불가리스 사태' 키운 언론, 몰랐나? 외면했나?>를 다룹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와 임주현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유튜브 계정에 들어가시면 지난 방송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계정: 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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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플러스] 미얀마 사태,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 입력 2021-05-15 11:02:05
    취재K
1980년 5월, 광주는 비극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 아내와 남편, 아버지, 어머니 혹은 친구가 죽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 내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그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한 폭도들이란 오해도 뒤집어썼습니다. 군부가 국내 언론을 철저히 통제한 상황, 광주의 참상은 외신 기자들에 의해 비로소 밖에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41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서 더이상 이런 희생은 없습니다. 5·18은 참담한 역사지만, 교훈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보다 성숙해졌고, 무엇이 거짓인지 또 진실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의 5월은 41년 전 광주의 5월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시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군부는 정보를 통제했지만,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목숨을 걸고 SNS를 통해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이 비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하는 기자들 Q플러스> 에서는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를 고민해 봤습니다.

미얀마 기자들 인터뷰하는 〈시사IN〉

■ "돕고 싶었다" 미얀마를 대하는 <시사IN>의 자세

작은 매체인 <시사IN>은 미얀마 특집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미얀마 현지 기자를 인터뷰해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현지 언론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렵게 그들과 연락이 닿았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고 말합니다.

기자들은 거처 없이 이집저집 숨어들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곧바로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잠시 잊고, 공포를 애써 지우고, 미얀마 기자들은 매일 시위 현장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시사IN> 이 보도한 현지 기자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Zay Yar Minn (탄르윈켓 뉴스/ 편집장)
"취재할 수 있는 건 시민들 때문입니다. 기자를 잡아갈 때 아무 이유 없이 체포합니다. 왜 잡아가는지 이유를 전혀 대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들이 숨어들어오는 기자들에게 먹을 것을 다 꺼내서 제공합니다."

Thu Zar Ahalay (프리랜서 촬영기자)
"저는 남편과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딸은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갈 겁니다. 미얀마 시민들의 혁명을 군인들이 총으로 공격하면 저희는 펜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

<시사IN>은 이들에게 지면을 내주었습니다. 실상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고료 명목으로 이들의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시사IN>이 이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입니다.



■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좀 더 개입할 것인가?

<시사IN>은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시민활동도 주도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오늘의 행동>과 함께 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언론사인 만큼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형편껏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미얀마 국가의 빨간색이 용기를 상징한다는 것에 착안해 집 밖에 빨간풍선 달기 운동을 벌였고, 투표소 앞에서는 '세 손가락 경례' 인증을 유도했습니다. 카페에서, 문구점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기사로 담았습니다. 기사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담당 기자에게도 독자와의 소통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재밌죠. 그러니까, 독자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상상된 존재잖아요. 그러니까 온라인 너머의 뭔가 댓글로만, 메일로만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에게 뭔가 '참여하겠다'는 효능감을 주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독자를 상상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저희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할 때, 그 생각을 실현시켜 주는 것. 여러 사람의 요구가 이어진다면 그걸 하나로 묶어내는 게 저널리즘의 역할이 될 수 있다는 <시사IN> 담당 기자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이 시대의 '국제 뉴스', 어떤 시각이 필요한가?

물리적 거리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시아 한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나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적 연대'를 외치며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하고, 미얀마 지지를 위한 단체를 스스로 만들기도 합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우리 언론은 지난달에만 2천 건이 넘는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미얀마 사태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뤘는지를 짐작할만한 대목입니다. 충분할까요?

17년 동안 분쟁 현장에서 취재해 온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를 만났습니다. 지금 어떤 보도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단편적인 사실을 보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보도가 많아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몇 명이 숨지고, 고문을 어떻게 당하고 등의 표피적인 현상을 보도하는 것 못지 않게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새로 구성된 민간 정부는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소수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미얀마 사태를 통해 언론의 다양한 면을 보았습니다. 언론이 의지를 가진다면 단순한 사실 보도 그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외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충만한 국제 이슈 앞에서,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미얀마 사태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16일(일) 밤 10시 35분 KBS1TV에서 방영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에서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1부에선 <'불가리스 사태' 키운 언론, 몰랐나? 외면했나?>를 다룹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와 임주현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유튜브 계정에 들어가시면 지난 방송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계정: 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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