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암 발병 인과성 없어” vs “환경부가 면죄부 줘”

입력 2021.05.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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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새 주민 60명, 암으로 숨져… ‘암 괴담’까지

영농철을 맞아 논을 갈아 물을 대는 등 모내기 작업이 한창인 조용한 시골 마을.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반경 2km 안에서 소각장이 3곳이 한참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 업체들이 계속 신 ‧증축하면서 하루 처리하는 소각량은 543톤으로 20년 새 36배나 늘었습니다.

소각량이 워낙 많다 보니 평소에도 전국에서 나온 폐기물을 싣고 소각장을 드나드는 대형 화물차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전국 최대 폐기물 소각지로 꼽히는 충북 청주 지역에서도 전체 소각량의 37%가 세 업체에서 처리됩니다.

이곳에 사는 충북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은 “평소에 심한 악취로 숨쉬기 힘들다”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 10년 새, 주민 60명이 잇따라 암에 걸려 숨지면서 나머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1명은 폐암이었습니다. 현재 호흡기나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주민도 40명이 넘습니다.

소각장이 밀집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마을 일대소각장이 밀집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마을 일대
암 발병 원인을 놓고 괴담까지 떠돌 정도로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환경 재앙’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주민들은 희뿌연 연기가 쉴새 없이 나오는 소각장 굴뚝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집단 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서 열린 소각시설 주변지역 주민 건강영향조사 설명회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서 열린 소각시설 주변지역 주민 건강영향조사 설명회

■ 전국 첫 소각장 주민 건강영향조사… 진실 밝혀지나

결국, 주민들이 피해 입증을 통해 보상을 받고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2019년 4월,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 건강영향조사 결정이 났고 2019년 12월에서 지난 3월까지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핵심은 소각장 밀집과 집단 암 발병의 인과 관계 규명입니다.

환경부 관계자 등을 만난 충북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은 “소각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유해 물질 등 영향으로 집단 암이 발병하는 등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충북 청주시 북이면의 재가 암환자 수는 47명인데 10년 전, 12명보다 4배가량 늘었습니다.


■ 환경부, “소각장 밀집과 집단 암 발병 연관성 없어”

하지만 간절하게 피해 입증을 기대했던 주민들에게 매우 절망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환경부의 결론은 “소각 시설에서 배출하는 유해 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명확하게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인과성 입증이 힘들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대기 중 유해물질 배출원 조사 결과, “ 소각시설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이 대조 지역보다는 높았지만, 배출 허용 기준 대비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이옥신(0.001∼0.093ng I-TEQ/S∼㎥)과 다핵방향족탄화수소류(PAHs) 중 벤조(a)피렌(0.073㎍/S㎥)은 배출허용기준 대비 0.15∼9.3%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충북 청주시와 환경·건강 조사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 계획을 세워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주민 반발 격화… “환경부가 소각 업체에 ‘면죄부’”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이번 조사 결과는 소각 업체들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7년 이후의 암 발생률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주민들의 생체 내 유해물질 조사 결과는 환경부의 결론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변 중 카드뮴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대사체, 유전자의 손상지표(요중 8-OHdG) 등 일부 항목이 대조 지역보다 높게 나타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사 결과, 일대 주민들의 소변 중 카드뮴 농도 (2.47㎍/g_cr) 등은 성인 평균의 최대 5.7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소각 시설과 가까이 살수록 수치가 증가하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유전자의 손상지표(요중 8-OHdG)역시 소변 중 카드뮴 농도와 통계적으로 유의성을 보였습니다.



■ “청주 북이 소각장 주변 주민들, 담낭암과 신장암 발생률 높아”

특히 암 잠복기(혈액암 5년·고형암 10년)를 고려한 후향적 동일집단 연구 결과,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충북 청주시 북이면 지역의 남성은 다른 지역보다 담낭암 발생이 2.63배, 여성은 신장암 발생이 2.79배나 높았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해 설명회는 파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33명이 암에 걸려 17명이 숨지고 난 이후 인과성이 규명된 전북 익산 장점마을 사례처럼 될 것”이라며 재조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민채 청주시 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은 환경부의 발표에 대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상한 결론”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 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용대 충북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도 “ 이번 주민 건강영향조사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정 암 발생이나 요중 카드뮴 수치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이 확인되는 등 소각장 밀집과 건강 영향이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면서, “과거 노출 영향 관련 자료가 많이 부족했고, 잠복기가 10년 이상인 고형암 증가 여부 등을 파악하기에도 시간적인 제약이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사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주민들은 환경부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하는 등 반발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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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각장-암 발병 인과성 없어” vs “환경부가 면죄부 줘”
    • 입력 2021-05-16 10:01:12
    취재K

■ 10년 새 주민 60명, 암으로 숨져… ‘암 괴담’까지

영농철을 맞아 논을 갈아 물을 대는 등 모내기 작업이 한창인 조용한 시골 마을.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반경 2km 안에서 소각장이 3곳이 한참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 업체들이 계속 신 ‧증축하면서 하루 처리하는 소각량은 543톤으로 20년 새 36배나 늘었습니다.

소각량이 워낙 많다 보니 평소에도 전국에서 나온 폐기물을 싣고 소각장을 드나드는 대형 화물차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전국 최대 폐기물 소각지로 꼽히는 충북 청주 지역에서도 전체 소각량의 37%가 세 업체에서 처리됩니다.

이곳에 사는 충북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은 “평소에 심한 악취로 숨쉬기 힘들다”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 10년 새, 주민 60명이 잇따라 암에 걸려 숨지면서 나머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1명은 폐암이었습니다. 현재 호흡기나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주민도 40명이 넘습니다.

소각장이 밀집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마을 일대 암 발병 원인을 놓고 괴담까지 떠돌 정도로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환경 재앙’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주민들은 희뿌연 연기가 쉴새 없이 나오는 소각장 굴뚝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집단 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서 열린 소각시설 주변지역 주민 건강영향조사 설명회
■ 전국 첫 소각장 주민 건강영향조사… 진실 밝혀지나

결국, 주민들이 피해 입증을 통해 보상을 받고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2019년 4월,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 건강영향조사 결정이 났고 2019년 12월에서 지난 3월까지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핵심은 소각장 밀집과 집단 암 발병의 인과 관계 규명입니다.

환경부 관계자 등을 만난 충북 청주시 북이면 주민들은 “소각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유해 물질 등 영향으로 집단 암이 발병하는 등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충북 청주시 북이면의 재가 암환자 수는 47명인데 10년 전, 12명보다 4배가량 늘었습니다.


■ 환경부, “소각장 밀집과 집단 암 발병 연관성 없어”

하지만 간절하게 피해 입증을 기대했던 주민들에게 매우 절망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환경부의 결론은 “소각 시설에서 배출하는 유해 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명확하게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인과성 입증이 힘들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대기 중 유해물질 배출원 조사 결과, “ 소각시설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이 대조 지역보다는 높았지만, 배출 허용 기준 대비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이옥신(0.001∼0.093ng I-TEQ/S∼㎥)과 다핵방향족탄화수소류(PAHs) 중 벤조(a)피렌(0.073㎍/S㎥)은 배출허용기준 대비 0.15∼9.3%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충북 청주시와 환경·건강 조사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 계획을 세워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주민 반발 격화… “환경부가 소각 업체에 ‘면죄부’”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이번 조사 결과는 소각 업체들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7년 이후의 암 발생률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주민들의 생체 내 유해물질 조사 결과는 환경부의 결론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변 중 카드뮴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대사체, 유전자의 손상지표(요중 8-OHdG) 등 일부 항목이 대조 지역보다 높게 나타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사 결과, 일대 주민들의 소변 중 카드뮴 농도 (2.47㎍/g_cr) 등은 성인 평균의 최대 5.7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소각 시설과 가까이 살수록 수치가 증가하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유전자의 손상지표(요중 8-OHdG)역시 소변 중 카드뮴 농도와 통계적으로 유의성을 보였습니다.



■ “청주 북이 소각장 주변 주민들, 담낭암과 신장암 발생률 높아”

특히 암 잠복기(혈액암 5년·고형암 10년)를 고려한 후향적 동일집단 연구 결과,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충북 청주시 북이면 지역의 남성은 다른 지역보다 담낭암 발생이 2.63배, 여성은 신장암 발생이 2.79배나 높았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해 설명회는 파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33명이 암에 걸려 17명이 숨지고 난 이후 인과성이 규명된 전북 익산 장점마을 사례처럼 될 것”이라며 재조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민채 청주시 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은 환경부의 발표에 대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상한 결론”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 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용대 충북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도 “ 이번 주민 건강영향조사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정 암 발생이나 요중 카드뮴 수치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이 확인되는 등 소각장 밀집과 건강 영향이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면서, “과거 노출 영향 관련 자료가 많이 부족했고, 잠복기가 10년 이상인 고형암 증가 여부 등을 파악하기에도 시간적인 제약이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사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주민들은 환경부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하는 등 반발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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