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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피디, 숨진 뒤에야 ‘근로자성’ 인정
입력 2021.05.17 (11:20) 수정 2021.05.17 (11:56) 취재K

울먹임을 참으며 말을 잇기 시작한 남성. 그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오늘 형이 그토록 원했던 명예회복이 됐고, 억울함이 밝혀졌습니다.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지방법원 앞 취재진을 향해 선 남성은 숨을 고르면서 "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전국 방송 노동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충북 청주시의 자신의 아파트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된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의 동생, 이대로 씨입니다. " 억울한 판결로 생을 마감했다"는 유족의 말처럼, 고인은 생전 무엇을 위해 그토록 법정에서 싸워야 했을까요?

■ "14년 무늬만 프리랜서… 사실상 근로자"

노동계와 언론계 등 6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6월, 국회 정론관에서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실태와 고인의 사망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 등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대책위는 "고인은 2004년 6월부터 청주방송에 조연출로 입사해 '프리랜서 피디'로 14년여 동안 일해왔다"며, "매일 오전 8시 30분 전에 출근해 6시 이후 퇴근했고, 매주 5~7일 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 보험에도 들지 않은 프리랜서였지만 수시로 상급자의 결재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근무 시간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청주방송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무늬만 프리랜서였다"는 겁니다.

고 이재학 피디를 잊지 않겠다는 쪽지가 전봇대에 나붙었다.고 이재학 피디를 잊지 않겠다는 쪽지가 전봇대에 나붙었다.

■ "하루아침에 해고"… 1심 패소 뒤 '극단적 선택'

고인은 해당 방송사의 프리랜서 동료들을 대표해, 임금 인상 등의 처우 개선을 사측에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연출을 그만두라고 통보를 받았다"는 대책위의 말처럼 고인은 2018년, 해고됩니다.

14년 동안 밤낮없이 근무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고 이재학 피디. 이후 부당 해고를 주장하며 같은 해 9월, CJB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지난해 1월, 청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본인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는 회사 관계자의 주장 등을 종합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8일 만에 항소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재학 피디는 항소 닷새 뒤, 자신의 자택인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사회적 타살"… 곳곳 비판 성명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원의 1심 판결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한국PD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CJB 청주방송이 고용·용역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재학 피디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는 비판 성명을 내놨습니다.

방송산업계 노동인권단체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이 피디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법원이 비정규직이나 취약한 근무 환경에 놓인 방송 노동자의 특수성을 살피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고 이재학 피디 사태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CJB 청주방송에 대한 근로감독을 벌인 노동부는 방송 작가와 피디 등 프리랜서 21명 가운데 12명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신분은 프리랜서이지만,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와 감독을 받는 '사용 종속 관계'로 본 겁니다.

故 이재학 피디의 유족, 이대로 씨가 지난 13일, 청주지방법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故 이재학 피디의 유족, 이대로 씨가 지난 13일, 청주지방법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재학 피디는 부당 해고당했다"… 항소심서 뒤바뀐 판결

지난 13일, 고인이 된 이재학 피디의 소송을 이어받은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판사가 낭독한 주문은 간결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제2-2민사부-항소심 판결선고]

"원고(故 이재학 피디)가 피고(CJB 청주방송)의 근로자였던 점과 피고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했다는 점이 인정됩니다. 원고들의 항소를 받아들여서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합니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3,150만 원을 지급하라. 피고는 소송 비용 전액을 부담하라."

법정 다툼이 이어진 지 2년 8개월 만에 법원이 결국, 고인의 된 이 피디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법원의 판결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고인이 수행할 업무 내용을 피고(청주방송)가 정하고, 고인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지휘, 감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이 매달 받은 보수는 연출 또는 조연출로서 노무를 제공한 데 따른 인건비로서 근로에 대한 댓가라고 봐야 한다. 피고의 기획제작국장이 고인을 해고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거나 필요한 절차를 준수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해고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

유족과 대책위는 "진상조사과정에서 확인됐던 부분들이 법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며, "이번 판결이 미디어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청주방송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달 8일, 고 이재학 피디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공판에서 청주방송 측은 "원고(고 이재학 피디 측)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며, 의견을 내지 않고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라고 말해 사실상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유족과 대책위원회에서는 "수많은 방송사의 제2의 이재학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방송계에 선례가 돼 방송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비정규직 피디, 숨진 뒤에야 ‘근로자성’ 인정
    • 입력 2021-05-17 11:20:57
    • 수정2021-05-17 11:56:21
    취재K

울먹임을 참으며 말을 잇기 시작한 남성. 그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오늘 형이 그토록 원했던 명예회복이 됐고, 억울함이 밝혀졌습니다.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지방법원 앞 취재진을 향해 선 남성은 숨을 고르면서 "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전국 방송 노동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충북 청주시의 자신의 아파트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된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의 동생, 이대로 씨입니다. " 억울한 판결로 생을 마감했다"는 유족의 말처럼, 고인은 생전 무엇을 위해 그토록 법정에서 싸워야 했을까요?

■ "14년 무늬만 프리랜서… 사실상 근로자"

노동계와 언론계 등 6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6월, 국회 정론관에서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실태와 고인의 사망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 등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대책위는 "고인은 2004년 6월부터 청주방송에 조연출로 입사해 '프리랜서 피디'로 14년여 동안 일해왔다"며, "매일 오전 8시 30분 전에 출근해 6시 이후 퇴근했고, 매주 5~7일 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 보험에도 들지 않은 프리랜서였지만 수시로 상급자의 결재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근무 시간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청주방송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무늬만 프리랜서였다"는 겁니다.

고 이재학 피디를 잊지 않겠다는 쪽지가 전봇대에 나붙었다.고 이재학 피디를 잊지 않겠다는 쪽지가 전봇대에 나붙었다.

■ "하루아침에 해고"… 1심 패소 뒤 '극단적 선택'

고인은 해당 방송사의 프리랜서 동료들을 대표해, 임금 인상 등의 처우 개선을 사측에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연출을 그만두라고 통보를 받았다"는 대책위의 말처럼 고인은 2018년, 해고됩니다.

14년 동안 밤낮없이 근무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고 이재학 피디. 이후 부당 해고를 주장하며 같은 해 9월, CJB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지난해 1월, 청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본인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는 회사 관계자의 주장 등을 종합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8일 만에 항소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재학 피디는 항소 닷새 뒤, 자신의 자택인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사회적 타살"… 곳곳 비판 성명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원의 1심 판결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한국PD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CJB 청주방송이 고용·용역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재학 피디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는 비판 성명을 내놨습니다.

방송산업계 노동인권단체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이 피디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법원이 비정규직이나 취약한 근무 환경에 놓인 방송 노동자의 특수성을 살피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고 이재학 피디 사태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CJB 청주방송에 대한 근로감독을 벌인 노동부는 방송 작가와 피디 등 프리랜서 21명 가운데 12명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신분은 프리랜서이지만,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와 감독을 받는 '사용 종속 관계'로 본 겁니다.

故 이재학 피디의 유족, 이대로 씨가 지난 13일, 청주지방법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故 이재학 피디의 유족, 이대로 씨가 지난 13일, 청주지방법원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재학 피디는 부당 해고당했다"… 항소심서 뒤바뀐 판결

지난 13일, 고인이 된 이재학 피디의 소송을 이어받은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판사가 낭독한 주문은 간결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제2-2민사부-항소심 판결선고]

"원고(故 이재학 피디)가 피고(CJB 청주방송)의 근로자였던 점과 피고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했다는 점이 인정됩니다. 원고들의 항소를 받아들여서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합니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3,150만 원을 지급하라. 피고는 소송 비용 전액을 부담하라."

법정 다툼이 이어진 지 2년 8개월 만에 법원이 결국, 고인의 된 이 피디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법원의 판결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고인이 수행할 업무 내용을 피고(청주방송)가 정하고, 고인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지휘, 감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이 매달 받은 보수는 연출 또는 조연출로서 노무를 제공한 데 따른 인건비로서 근로에 대한 댓가라고 봐야 한다. 피고의 기획제작국장이 고인을 해고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거나 필요한 절차를 준수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해고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

유족과 대책위는 "진상조사과정에서 확인됐던 부분들이 법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며, "이번 판결이 미디어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청주방송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달 8일, 고 이재학 피디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공판에서 청주방송 측은 "원고(고 이재학 피디 측)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며, 의견을 내지 않고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라고 말해 사실상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유족과 대책위원회에서는 "수많은 방송사의 제2의 이재학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방송계에 선례가 돼 방송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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