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그날의 광주…횃불 들고 평화 행진

입력 2021.05.17 (12:24) 수정 2021.05.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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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발발 직전인 41년 전, 80년 5월의 광주는 민주화 열기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모여 횃불을 들고 민주화를 외친 '민주화 대성회'가 열렸던 건데요.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그날을 생생히 보여주는 영상이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양창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 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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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년 전 그날의 광주…횃불 들고 평화 행진
    • 입력 2021-05-17 12:24:12
    • 수정2021-05-17 13:03:42
    뉴스 12
[앵커]

5.18 발발 직전인 41년 전, 80년 5월의 광주는 민주화 열기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모여 횃불을 들고 민주화를 외친 '민주화 대성회'가 열렸던 건데요.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그날을 생생히 보여주는 영상이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양창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 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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