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언론에 ‘추모 입장문’ 돌렸지만…“직접 찾아갈 계획은 없어”

입력 2021.05.18 (14:51) 수정 2021.05.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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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어제(17일) 고 손정민 씨의 친구 측을 대리하는 정병원 변호사는 공식 입장문을 아침 6시 반쯤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바로 전날 정 변호사가 개설해 기자 30여 명을 모아 놓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였습니다.

입장문을 배포한 뒤에는 자신이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아침 8시로 정했습니다. 손 씨가 지난달 25일 실종된 뒤 친구 측에서 3주 만에 처음 내놓은 입장문은 주요 언론사에서 같은 시간에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A4용지 17쪽짜리 입장문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희 법무법인은 고 손정민 군의 친구인 A 군과 그 부모님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또한 고인의 부모님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후엔 친구 측에서 기억하는 실종 당일의 일들과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 억측과 명예훼손을 삼가달라는 부탁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 "구체적인 해명 내놓는다는 건 추모에 어긋나는 일"

KBS가 친구 측의 변호사를 처음 취재한 건 지난 7일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이었던 5일 손 씨의 발인 후 이틀이 지나서였습니다. 당시 이 변호사는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는 게 고인에 대한 추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입장 자체'도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취재를 시작한 다른 언론사에도 그렇게 협조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추모의 시간'이라는 데 공감했고, 별도로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끊기 전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기자 : "유가족을 만날 예정은 있으신가요?"

변호사 : "지금 만나는 게 특별할지 모르겠네요. 그걸 생각하진 못했고, 논의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 찾아간다면 더 원망하게 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5월 7일 통화)



■ "유가족 만날 계획은 있나요?" 기자가 계속 물었지만….

이후에도 취재진은 친구 측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안의 중요 당사자이고, 손 씨 아버지 입장과 마찬가지로 친구 측 입장도 고루 다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마치기 전에는 손 씨 가족을 만날 계획이 있는지 꼭 물었습니다.

"전혀 그럴 생각은…. 제가 말릴 거예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 전에 문자는 드렸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얼굴 보고 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격앙된 분을 직접 만나서 뭐하겠어요. (A 군 아버지가 만나야겠다고 한다면) 제가 말릴 거예요." (5월 11일 통화)

그리고 어제(17일) 입장문이 나온 뒤, 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 "직접 찾아갈 계획 없어…여론 눈치 안 봤다면 달려갔을 것, 너무 화낼 것 같아"

변호사는 손 씨 부모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느냐면서 찾아간다고 위로가 되겠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최대한 협조하는 게 의무고, 그런 내용을 국민들에게 말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입장문을 내놓은 날 한 말입니다.

기자 : 그래도 가서 말하고, 얼굴 뵙고…. 그게 법적인 사과는 아니더라도 입장문에 써 있는 것처럼 같이 놀았는데, 혼자 돌아온 것에 대해 도의적인 사과를 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변호사 : "그 마음이야 정말 그래요. 초기에 문자도 보냈어요. 저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면 좋겠는데 너무 화를 내실 것 같아서요. 참 곤혹스러운 입장입니다. 가자니 오히려 더 화를 낼 것 같고, 안 가자니 더 서운하다고 화낼 것 같고요."
(5월 17일 통화)

손 씨의 아버지는 줄곧 친구 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랐습니다.

기자 : 그럴 땐 가는 게 정답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사안이 꼬여있을 때는 어찌됐든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변호사 : "정민 아버지와의 문제만이면 괜찮은데 이제 온 국민들이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여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여론 눈치를 안 본다면 벌써 달려갔죠. 혼자 살아 돌아온 잘못에 대해서 무릎을 꿇고라도 빌죠. 근데 그 자체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비치지 않을 거예요. 가식이다, 위선이다, 뭐 죄를 정말 지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 (5월 17일 통화)

결국, 손 씨 유가족들은 친구 측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기사를 통해 봐야 했습니다.


■ "악의적 보도·유튜버는 고소할 생각"

한편, 친구 측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증폭되고 개인 신상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면서 변호사는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사와 유명 유튜버들에 대해선 고소할 생각이 있다고도 취재과정에서 밝혔습니다.

다만, 공식 입장문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빨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진 않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지상파의 한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음성을 동의 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반면, 입장문이 나온 어제 지상파의 한 뉴스에서는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이 카메라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또 한번 설명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단독' 꼬리가 붙어 게시됐는데, 입장문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정 변호사는 "해당 언론사에서 저희 취지에 공감을 해줬고, 그 언론사가 제일 많이 도와줬다. 저희는 모르는 내용을 먼저 파악하고,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을 다 들어줬다"며 "대신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는 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그쪽에서 걸었고, 약속한 만큼 다른 언론사 인터뷰는 입장문이 나온 오늘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KBS 취재진도 인터뷰를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밤늦게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고, 이미 친구 측 입장을 충분히 담아 방송 리포트를 준비해 놨던 상황이라 거절했습니다. '언론을 다루려 하는 변호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수사로, 법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기자가 친구 측 변호사에게 유가족을 찾아갈 계획이 있는지 계속 물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단순히 '단독' 기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수사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직접 만나고 계속 부딪혀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친했다고 하는 두 집안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다 해도 더는 늦지 않게, 그리고 수사 결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유가족이 환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울부 짖으며 내쫓을 수 있고, 문전박대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같이 있었지만, 한 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과 죄스러움은 수사 결과와는 별개의 일입니다.

계속 찾아가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그게 어쩌면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 사안을 풀어낼 가장 명쾌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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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언론에 ‘추모 입장문’ 돌렸지만…“직접 찾아갈 계획은 없어”
    • 입력 2021-05-18 14:51:11
    • 수정2021-05-18 16:57:21
    취재후·사건후

■ "먼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어제(17일) 고 손정민 씨의 친구 측을 대리하는 정병원 변호사는 공식 입장문을 아침 6시 반쯤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바로 전날 정 변호사가 개설해 기자 30여 명을 모아 놓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였습니다.

입장문을 배포한 뒤에는 자신이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아침 8시로 정했습니다. 손 씨가 지난달 25일 실종된 뒤 친구 측에서 3주 만에 처음 내놓은 입장문은 주요 언론사에서 같은 시간에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A4용지 17쪽짜리 입장문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희 법무법인은 고 손정민 군의 친구인 A 군과 그 부모님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또한 고인의 부모님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후엔 친구 측에서 기억하는 실종 당일의 일들과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 억측과 명예훼손을 삼가달라는 부탁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 "구체적인 해명 내놓는다는 건 추모에 어긋나는 일"

KBS가 친구 측의 변호사를 처음 취재한 건 지난 7일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이었던 5일 손 씨의 발인 후 이틀이 지나서였습니다. 당시 이 변호사는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는 게 고인에 대한 추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입장 자체'도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취재를 시작한 다른 언론사에도 그렇게 협조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추모의 시간'이라는 데 공감했고, 별도로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끊기 전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기자 : "유가족을 만날 예정은 있으신가요?"

변호사 : "지금 만나는 게 특별할지 모르겠네요. 그걸 생각하진 못했고, 논의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 찾아간다면 더 원망하게 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5월 7일 통화)



■ "유가족 만날 계획은 있나요?" 기자가 계속 물었지만….

이후에도 취재진은 친구 측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안의 중요 당사자이고, 손 씨 아버지 입장과 마찬가지로 친구 측 입장도 고루 다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마치기 전에는 손 씨 가족을 만날 계획이 있는지 꼭 물었습니다.

"전혀 그럴 생각은…. 제가 말릴 거예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 전에 문자는 드렸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얼굴 보고 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격앙된 분을 직접 만나서 뭐하겠어요. (A 군 아버지가 만나야겠다고 한다면) 제가 말릴 거예요." (5월 11일 통화)

그리고 어제(17일) 입장문이 나온 뒤, 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 "직접 찾아갈 계획 없어…여론 눈치 안 봤다면 달려갔을 것, 너무 화낼 것 같아"

변호사는 손 씨 부모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느냐면서 찾아간다고 위로가 되겠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최대한 협조하는 게 의무고, 그런 내용을 국민들에게 말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입장문을 내놓은 날 한 말입니다.

기자 : 그래도 가서 말하고, 얼굴 뵙고…. 그게 법적인 사과는 아니더라도 입장문에 써 있는 것처럼 같이 놀았는데, 혼자 돌아온 것에 대해 도의적인 사과를 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변호사 : "그 마음이야 정말 그래요. 초기에 문자도 보냈어요. 저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면 좋겠는데 너무 화를 내실 것 같아서요. 참 곤혹스러운 입장입니다. 가자니 오히려 더 화를 낼 것 같고, 안 가자니 더 서운하다고 화낼 것 같고요."
(5월 17일 통화)

손 씨의 아버지는 줄곧 친구 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랐습니다.

기자 : 그럴 땐 가는 게 정답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사안이 꼬여있을 때는 어찌됐든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변호사 : "정민 아버지와의 문제만이면 괜찮은데 이제 온 국민들이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여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여론 눈치를 안 본다면 벌써 달려갔죠. 혼자 살아 돌아온 잘못에 대해서 무릎을 꿇고라도 빌죠. 근데 그 자체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비치지 않을 거예요. 가식이다, 위선이다, 뭐 죄를 정말 지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 (5월 17일 통화)

결국, 손 씨 유가족들은 친구 측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기사를 통해 봐야 했습니다.


■ "악의적 보도·유튜버는 고소할 생각"

한편, 친구 측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증폭되고 개인 신상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면서 변호사는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사와 유명 유튜버들에 대해선 고소할 생각이 있다고도 취재과정에서 밝혔습니다.

다만, 공식 입장문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빨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진 않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지상파의 한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음성을 동의 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반면, 입장문이 나온 어제 지상파의 한 뉴스에서는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이 카메라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또 한번 설명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단독' 꼬리가 붙어 게시됐는데, 입장문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정 변호사는 "해당 언론사에서 저희 취지에 공감을 해줬고, 그 언론사가 제일 많이 도와줬다. 저희는 모르는 내용을 먼저 파악하고,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을 다 들어줬다"며 "대신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는 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그쪽에서 걸었고, 약속한 만큼 다른 언론사 인터뷰는 입장문이 나온 오늘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KBS 취재진도 인터뷰를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밤늦게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고, 이미 친구 측 입장을 충분히 담아 방송 리포트를 준비해 놨던 상황이라 거절했습니다. '언론을 다루려 하는 변호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수사로, 법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기자가 친구 측 변호사에게 유가족을 찾아갈 계획이 있는지 계속 물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단순히 '단독' 기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수사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직접 만나고 계속 부딪혀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친했다고 하는 두 집안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다 해도 더는 늦지 않게, 그리고 수사 결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유가족이 환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울부 짖으며 내쫓을 수 있고, 문전박대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같이 있었지만, 한 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과 죄스러움은 수사 결과와는 별개의 일입니다.

계속 찾아가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그게 어쩌면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 사안을 풀어낼 가장 명쾌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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