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도쿄올림픽 진짜 열려요?…日 조직위의 ‘깜짝 구인 광고’

입력 2021.05.19 (07:00) 수정 2021.05.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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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020이 세계의 희망이 됩니다. 필요한 건 당신의 힘입니다."

일본 최대 이직 사이트 '리크나비 NEXT'에 최근 이례적인 구인 광고가 연달아 올라왔습니다.

구인에 나선 사람은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7월 23일)이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대회 운영상 필수 인력 모집이 여태 계속되고 있다는 데 많은 구직자가 놀랐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최근 일본 최대 이직 사이트 ‘리크나비 NEXT’에 올린 구인 광고. 4월 중순 시작된 공고는 5월 18일로 모집 마감됐다. 〈출처=리크나비 NEXT〉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최근 일본 최대 이직 사이트 ‘리크나비 NEXT’에 올린 구인 광고. 4월 중순 시작된 공고는 5월 18일로 모집 마감됐다. 〈출처=리크나비 NEXT〉

■ 조직위, 5개 직종 공개 모집

모집 광고가 올라오기 시작한 건 4월 중순부터입니다.

경기장 안에 설치된 기기의 배치 설계·관리를 맡는 '엔지니어 PM(프로젝트 매니저)', 코로나19 대책 시스템의 기획·설계 등을 담당하는 '앱 개발' 외에, '시큐리티 엔지니어'(SE), '경기장 내 사무 관리·조정 담당 PM, '대회 공식 웹사이트 운영·콘텐츠 기획' 등 5개 직종이 모집 대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앱 개발' 직종에는 이런 설명이 붙었습니다.

"방대한 대회 관계자의 정보 관리, 업무 지원을 위한 대규모 정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코로나19 대책으로 새로운 정보 시스템의 도입 검토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시스템 요건을 검토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 등에 대처해 이를 실현할 업무를 맡게 됩니다."

어떠신가요? 오는 7~9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중 대회 관계자 9만여 명이 일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제서야 이들을 추적·관리할 정보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실현'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쨌든 올림픽 운영과 관련된 만큼 모집 조건도 까다로운 편입니다. '시큐리티 엔지니어'는 실무 경험에 더해 일상 회화 수준의 영어 실력을 요구받습니다.

'보안 엔지니어' 역시 '정규 표현이나 DB 검색에 의한 로그 검색 및 해석을 실시한 경험' 등이 필수 요건에 포함됐고, 토익( TOEIC) 600점 정도의 영어 실력을 요구받습니다.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이 5월 7일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이 5월 7일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

■ 처우는 '야박'…"3개월 시험 사용"

반면에 대우는 박합니다. 예컨대 '보안 엔지니어'의 월 급여는 23만 5,800엔(한화 약 244만 원). 일본 대기업으로 치자면 신입사원 입사 후 몇 년 안에 받게 될 급여 수준입니다.

가장 황당한 건 '시용 기간 3개월'입니다. '시용'(試用)은 정식 근로계약을 맺기 전에 근로자의 업무 수행 능력 등을 살펴보기 위해 일정 기간 계약을 맺은 직원을 뜻합니다.

도쿄올림픽은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열립니다. 구인 모집이 마감된 5월 18일 직후 채용된다 하더라도 시용 기간 중 실전 대회를 맞게 됩니다. 또 시용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도쿄올림픽은 폐회합니다.

이런 자리에 과연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츠네미 요헤이(常見陽平) 치바(千葉)상과대학 준교수는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출간하는 매체 'AERA do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직위가) 원하는 스펙과 급여가 안 맞는다. IT도 되고 영어도 되는 인재는 '성인군자급 스펙'이다. 연봉 700만 엔(한화 약 7천250만 원) 받는 IT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할 수준이다. 일손이 부족한 조직위가 조건을 따져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임시방편으로 구인에 나선 것 아닌가 싶다."



■ "도쿄올림픽, 하긴 하는 거야?"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입니다. 기자가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던진 물음이기도 하죠. 모두가 궁금한데, 누구 하나 확답을 못 합니다. 민망하나 "할 것 '같기도' 하고, 안 할 것 '같기도' 하다"는 게 '오늘의 답'입니다.

이런 어정쩡한 상황을 자초한 건, 역설적이게도 일본 정부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죠. 일본의 첫 코로나19 긴급사태는 지난해 4월 선언됐습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도쿄올림픽 1년 연장'에 합의한 직후였습니다.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시간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스가 총리도 그랬습니다. 두 번째 긴급사태는 올해 3월 21일 해제됐습니다.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식(3월 25일) 직전이었습니다. "축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성급한 해제"라는 지적이 또 나왔습니다.

세 번째 긴급사태 해제 예정일 역시 당초 5월 11일로 잡혔습니다. 불과 17일짜리 긴급사태는 바흐 IOC 위원장의 일본 방문(5월 17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월 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월 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

■잦은 '올림픽 시프트'…어려움 자초

상황이 이쯤 되니 일본에선 '도쿄올림픽 시프트'(shift)라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올림픽 일정에 얽매여 긴급사태 선포·해제가 반복되는 상황을 빗댄 표현입니다. 야구에서 극단적 수비 이동(시프트)은 잘하면 '득'(得), 못하면 '독'(毒)입니다. 상대 타자의 밀어치기, 기습 번트, 빗맞은 타구 등에 결정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변화무쌍합니다. 이에 대처하기에 '도쿄올림픽 시프트'는 애초 걸맞은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감독의 판단 미스는 팀 전체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립니다.

스가 총리는 긴급사태 연장(5월 말)을 발표한 5월 7일 회견에서 "'안전·안심' 대회를 실현하겠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며 개최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일본에선 148명이 코로나19로 숨졌습니다. '과거 최다'였습니다.

도쿄올림픽은 이미 너무 '위험한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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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도쿄올림픽 진짜 열려요?…日 조직위의 ‘깜짝 구인 광고’
    • 입력 2021-05-19 07:00:45
    • 수정2021-05-19 16:27:52
    특파원 리포트

"도쿄 2020이 세계의 희망이 됩니다. 필요한 건 당신의 힘입니다."

일본 최대 이직 사이트 '리크나비 NEXT'에 최근 이례적인 구인 광고가 연달아 올라왔습니다.

구인에 나선 사람은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7월 23일)이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대회 운영상 필수 인력 모집이 여태 계속되고 있다는 데 많은 구직자가 놀랐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최근 일본 최대 이직 사이트 ‘리크나비 NEXT’에 올린 구인 광고. 4월 중순 시작된 공고는 5월 18일로 모집 마감됐다. 〈출처=리크나비 NEXT〉
■ 조직위, 5개 직종 공개 모집

모집 광고가 올라오기 시작한 건 4월 중순부터입니다.

경기장 안에 설치된 기기의 배치 설계·관리를 맡는 '엔지니어 PM(프로젝트 매니저)', 코로나19 대책 시스템의 기획·설계 등을 담당하는 '앱 개발' 외에, '시큐리티 엔지니어'(SE), '경기장 내 사무 관리·조정 담당 PM, '대회 공식 웹사이트 운영·콘텐츠 기획' 등 5개 직종이 모집 대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앱 개발' 직종에는 이런 설명이 붙었습니다.

"방대한 대회 관계자의 정보 관리, 업무 지원을 위한 대규모 정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코로나19 대책으로 새로운 정보 시스템의 도입 검토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시스템 요건을 검토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 등에 대처해 이를 실현할 업무를 맡게 됩니다."

어떠신가요? 오는 7~9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중 대회 관계자 9만여 명이 일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제서야 이들을 추적·관리할 정보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실현'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쨌든 올림픽 운영과 관련된 만큼 모집 조건도 까다로운 편입니다. '시큐리티 엔지니어'는 실무 경험에 더해 일상 회화 수준의 영어 실력을 요구받습니다.

'보안 엔지니어' 역시 '정규 표현이나 DB 검색에 의한 로그 검색 및 해석을 실시한 경험' 등이 필수 요건에 포함됐고, 토익( TOEIC) 600점 정도의 영어 실력을 요구받습니다.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이 5월 7일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
■ 처우는 '야박'…"3개월 시험 사용"

반면에 대우는 박합니다. 예컨대 '보안 엔지니어'의 월 급여는 23만 5,800엔(한화 약 244만 원). 일본 대기업으로 치자면 신입사원 입사 후 몇 년 안에 받게 될 급여 수준입니다.

가장 황당한 건 '시용 기간 3개월'입니다. '시용'(試用)은 정식 근로계약을 맺기 전에 근로자의 업무 수행 능력 등을 살펴보기 위해 일정 기간 계약을 맺은 직원을 뜻합니다.

도쿄올림픽은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열립니다. 구인 모집이 마감된 5월 18일 직후 채용된다 하더라도 시용 기간 중 실전 대회를 맞게 됩니다. 또 시용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도쿄올림픽은 폐회합니다.

이런 자리에 과연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츠네미 요헤이(常見陽平) 치바(千葉)상과대학 준교수는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출간하는 매체 'AERA do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직위가) 원하는 스펙과 급여가 안 맞는다. IT도 되고 영어도 되는 인재는 '성인군자급 스펙'이다. 연봉 700만 엔(한화 약 7천250만 원) 받는 IT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할 수준이다. 일손이 부족한 조직위가 조건을 따져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임시방편으로 구인에 나선 것 아닌가 싶다."



■ "도쿄올림픽, 하긴 하는 거야?"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입니다. 기자가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던진 물음이기도 하죠. 모두가 궁금한데, 누구 하나 확답을 못 합니다. 민망하나 "할 것 '같기도' 하고, 안 할 것 '같기도' 하다"는 게 '오늘의 답'입니다.

이런 어정쩡한 상황을 자초한 건, 역설적이게도 일본 정부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죠. 일본의 첫 코로나19 긴급사태는 지난해 4월 선언됐습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도쿄올림픽 1년 연장'에 합의한 직후였습니다.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시간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스가 총리도 그랬습니다. 두 번째 긴급사태는 올해 3월 21일 해제됐습니다.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식(3월 25일) 직전이었습니다. "축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성급한 해제"라는 지적이 또 나왔습니다.

세 번째 긴급사태 해제 예정일 역시 당초 5월 11일로 잡혔습니다. 불과 17일짜리 긴급사태는 바흐 IOC 위원장의 일본 방문(5월 17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월 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일본 교도통신〉
■잦은 '올림픽 시프트'…어려움 자초

상황이 이쯤 되니 일본에선 '도쿄올림픽 시프트'(shift)라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올림픽 일정에 얽매여 긴급사태 선포·해제가 반복되는 상황을 빗댄 표현입니다. 야구에서 극단적 수비 이동(시프트)은 잘하면 '득'(得), 못하면 '독'(毒)입니다. 상대 타자의 밀어치기, 기습 번트, 빗맞은 타구 등에 결정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변화무쌍합니다. 이에 대처하기에 '도쿄올림픽 시프트'는 애초 걸맞은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감독의 판단 미스는 팀 전체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립니다.

스가 총리는 긴급사태 연장(5월 말)을 발표한 5월 7일 회견에서 "'안전·안심' 대회를 실현하겠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며 개최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일본에선 148명이 코로나19로 숨졌습니다. '과거 최다'였습니다.

도쿄올림픽은 이미 너무 '위험한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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