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못자고 일주일 근무·암흑 속 작업” 항만 중장비 사고 왜?

입력 2021.05.20 (07:00) 수정 2021.05.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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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 근로자 ○○○ 씨, 화물선 내 작업 중이던 ○○○ 씨를 발견하지 못한 지게차에 충돌해
사망 - 2020년 12월
·평택항 근로자 □□□ 씨, 근무 교대 뒤 보행로 통해 대기실로 걸어가던 중 선적 마치고 이동하던 화물 차량에 부딪혀 사망 - 2019년 12월
·평택항 근로자 △△△ 씨, 굴착기를 배에 싣고 하차하는 과정에서 오작동으로 굴착기 몸체가 회전, 굴착기 운전석과 선박 사이에 몸이 끼어 사망 - 2019년 8월
·울산항 근로자 ◇◇◇ 씨, 오작동 컨베이어 점검 중 장치에 몸 일부가 말려들어가 사망 - 2018.10

-최근 5년간 항만노동자 재해자 개별자료 中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항만 작업에서는 대형 화물을 싣고 내리는 업무 특성상 중장비가 많이 사용됩니다.

화물차량·굴착기·지게차 등 이동형 중장비는 물론 한 자리 고정돼 짐을 나르는 타워크레인·컨베이어 벨트까지 항구에서는 다양한 중장비가 운영되는데, 이 같은 장비들이 없으면 하역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항만 근로 중 일어나는 사고 상당수가 이 같은 중장비와 관련돼 있다는 겁니다.

사고 유형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운행 중인 장비에 사람이 부딪히고 끼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낙 크고 무거운 장치이다 보니 사고가 한 번 나면 심하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로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KBS 취재진은 군산항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굴착기 기사를 만나 비슷한 중장비 사고가 왜 반복되는지 이유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졸음 작업' 불러오는 노동 강행군…거의 못 자고 7박 8일 근무도"

A씨는 전북 군산시 군산항에서 굴착기를 운전해 배에 실린 석재·고체 연료 등을 항구로 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A씨는 그동안 쌓아왔던 고충과 우려를 토로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죽이려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A씨가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 중 하나는 중장비 기사들의 '노동 강행군'이었습니다.

군산항 굴착기 기사들은 하루 1~2시간 수면 시간을 갖고 며칠 연속 근무하는 경우가 잦다고 A씨는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도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무수면 노동'을 강요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노동 형태로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까지 하는데, 당연히 졸음 작업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크다는 것이 A씨의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굴착기 운전 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던 경험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몸서리 쳤습니다. 당시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삽을 들고 작업을 하던 중이라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는 겁니다.

"눈을 깜빡 감았다 뜨니까 굴착기 날이 180도를 지나가지고 260도까지 돌아서 배의 벽을 쾅 친거예요. 소리가 엄청 크게 나서 저도 깜짝 놀라 아 뭐지 했는데. 만일 그 사이에 사람이 있었으면 100% 압착이고 정말 운이 좋았으면 크게 다쳤겠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그때 생각하면 어휴..." - A씨

조명 10여 개 중 1개를 빼고 모두 고장 난 상황에서 이뤄지는 야간 항만 작업. 고장 난 조명 쪽에 있는 굴착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조명 10여 개 중 1개를 빼고 모두 고장 난 상황에서 이뤄지는 야간 항만 작업. 고장 난 조명 쪽에 있는 굴착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암흑 속에서 반년 간 작업…항의하니 "차 빼고 쉬어라"

몇 달 동안 조명이 거의 없는 암흑 속에서 중장비를 운전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중순쯤 항만 내 창고의 조명 설비가 모두 고장 났는데 약 반년 가까이 수리가 미뤄졌다는 게 A씨의 말입니다.

하역사 측에 지속적으로 수리를 요구하고, 이동식 조명을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 보이면 차 빼고 쉬어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굴착기 여러 대가 함께 창고에 들어가 작업하는데, 작업 특성상 분진이 심하게 날려 조명 없이 밤에 작업하면 어디에 다른 굴착기가 있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A씨는 설명했습니다.

"굴착기에도 조명이 있긴 있지만 약합니다. 먼지까지 날리면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 위치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굴착기 날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오히려 나아요. 아 여기에 굴착기가 있구나 알 수 있는데, 장비 팔을 좀 더 뻗어서 돌려버리면 날이 아니라 작업자 운전대를 칠 수 있거든요. 그럼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거죠" -A씨


'작업 특수성'만 내세우는 하역사…일감 끊어지기도

A씨는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고용주인 하역사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역사 측은 '항만 작업의 특수성' 설명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화주와 계약한 일정대로 대형 선박들에서 수많은 화물을 내려야 하는 산업 특성상 , 문제를 모두 해결해가면서 작업할 시간이 없다는 게 돌아온 답변이었습니다.

문제 제기 뒤 한동안 A씨에게 일감이 뚝 끊기기도 했습니다. A씨는 항만 노동자는 을의 입장이라며 갑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언급했습니다.

A씨는 "사람이 하나 죽어나가야 이 같은 일이 끝나려나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7개월 동안 특정 하역사 일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데 저만 일을 못 받아서 한 달에 15만 원 받아간 적도 있어요. 지금도 여파가 회복이 안 돼 힘듭니다. 사무실에 가서 따져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하역사 측에서 저 사람에게 배차하지 말라는 요청 받았다고…" -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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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의 못자고 일주일 근무·암흑 속 작업” 항만 중장비 사고 왜?
    • 입력 2021-05-20 07:00:39
    • 수정2021-05-20 16: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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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 근로자 ○○○ 씨, 화물선 내 작업 중이던 ○○○ 씨를 발견하지 못한 지게차에 충돌해
사망 - 2020년 12월
·평택항 근로자 □□□ 씨, 근무 교대 뒤 보행로 통해 대기실로 걸어가던 중 선적 마치고 이동하던 화물 차량에 부딪혀 사망 - 2019년 12월
·평택항 근로자 △△△ 씨, 굴착기를 배에 싣고 하차하는 과정에서 오작동으로 굴착기 몸체가 회전, 굴착기 운전석과 선박 사이에 몸이 끼어 사망 - 2019년 8월
·울산항 근로자 ◇◇◇ 씨, 오작동 컨베이어 점검 중 장치에 몸 일부가 말려들어가 사망 - 2018.10

-최근 5년간 항만노동자 재해자 개별자료 中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항만 작업에서는 대형 화물을 싣고 내리는 업무 특성상 중장비가 많이 사용됩니다.

화물차량·굴착기·지게차 등 이동형 중장비는 물론 한 자리 고정돼 짐을 나르는 타워크레인·컨베이어 벨트까지 항구에서는 다양한 중장비가 운영되는데, 이 같은 장비들이 없으면 하역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항만 근로 중 일어나는 사고 상당수가 이 같은 중장비와 관련돼 있다는 겁니다.

사고 유형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운행 중인 장비에 사람이 부딪히고 끼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낙 크고 무거운 장치이다 보니 사고가 한 번 나면 심하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로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KBS 취재진은 군산항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굴착기 기사를 만나 비슷한 중장비 사고가 왜 반복되는지 이유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졸음 작업' 불러오는 노동 강행군…거의 못 자고 7박 8일 근무도"

A씨는 전북 군산시 군산항에서 굴착기를 운전해 배에 실린 석재·고체 연료 등을 항구로 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A씨는 그동안 쌓아왔던 고충과 우려를 토로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죽이려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A씨가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 중 하나는 중장비 기사들의 '노동 강행군'이었습니다.

군산항 굴착기 기사들은 하루 1~2시간 수면 시간을 갖고 며칠 연속 근무하는 경우가 잦다고 A씨는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도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무수면 노동'을 강요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노동 형태로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까지 하는데, 당연히 졸음 작업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크다는 것이 A씨의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굴착기 운전 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던 경험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몸서리 쳤습니다. 당시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삽을 들고 작업을 하던 중이라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는 겁니다.

"눈을 깜빡 감았다 뜨니까 굴착기 날이 180도를 지나가지고 260도까지 돌아서 배의 벽을 쾅 친거예요. 소리가 엄청 크게 나서 저도 깜짝 놀라 아 뭐지 했는데. 만일 그 사이에 사람이 있었으면 100% 압착이고 정말 운이 좋았으면 크게 다쳤겠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그때 생각하면 어휴..." - A씨

조명 10여 개 중 1개를 빼고 모두 고장 난 상황에서 이뤄지는 야간 항만 작업. 고장 난 조명 쪽에 있는 굴착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암흑 속에서 반년 간 작업…항의하니 "차 빼고 쉬어라"

몇 달 동안 조명이 거의 없는 암흑 속에서 중장비를 운전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중순쯤 항만 내 창고의 조명 설비가 모두 고장 났는데 약 반년 가까이 수리가 미뤄졌다는 게 A씨의 말입니다.

하역사 측에 지속적으로 수리를 요구하고, 이동식 조명을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 보이면 차 빼고 쉬어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굴착기 여러 대가 함께 창고에 들어가 작업하는데, 작업 특성상 분진이 심하게 날려 조명 없이 밤에 작업하면 어디에 다른 굴착기가 있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A씨는 설명했습니다.

"굴착기에도 조명이 있긴 있지만 약합니다. 먼지까지 날리면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 위치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굴착기 날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오히려 나아요. 아 여기에 굴착기가 있구나 알 수 있는데, 장비 팔을 좀 더 뻗어서 돌려버리면 날이 아니라 작업자 운전대를 칠 수 있거든요. 그럼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거죠" -A씨


'작업 특수성'만 내세우는 하역사…일감 끊어지기도

A씨는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고용주인 하역사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역사 측은 '항만 작업의 특수성' 설명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화주와 계약한 일정대로 대형 선박들에서 수많은 화물을 내려야 하는 산업 특성상 , 문제를 모두 해결해가면서 작업할 시간이 없다는 게 돌아온 답변이었습니다.

문제 제기 뒤 한동안 A씨에게 일감이 뚝 끊기기도 했습니다. A씨는 항만 노동자는 을의 입장이라며 갑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언급했습니다.

A씨는 "사람이 하나 죽어나가야 이 같은 일이 끝나려나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7개월 동안 특정 하역사 일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데 저만 일을 못 받아서 한 달에 15만 원 받아간 적도 있어요. 지금도 여파가 회복이 안 돼 힘듭니다. 사무실에 가서 따져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하역사 측에서 저 사람에게 배차하지 말라는 요청 받았다고…" -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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