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코앞…‘싱가포르 합의’ 언급될까

한미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워싱턴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 방문 등 몇가지 공식일정에 이어 우리 시간으로 22일 새벽(현지시간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백신 협력과 대북정책 공조, 한미동맹 강화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예정인데,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된 상황에서 관련 내용이 한미 정상의 공동선언 등에 얼마나 담길지도 관심입니다.

■ 캠벨 美조정관 "대북정책 싱가포르합의 토대…적대 아닌 해결 목표"

한미정상회담 직전,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눈에 띄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싱가포르 합의'를 직접 언급한 건데요.

캠벨 조정관은 18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싱가포를 합의를 토대로 한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실용적인 조치를 강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커트 캠벨 美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는 "우리의 대북정책은 적대가 아니라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외교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지만, 그러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실용적인 조치(practical measures)를 강구할 준비도 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책 검토는 이전에 시도된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폈다"며 "우리의 노력은 이전 정부에서 마련된 싱가포르 합의 및 다른 합의 위에 구축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전 정부인 트럼프 행정부 당시 북한과 이루었던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하고 이어가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힌 겁니다.

■ '아시아 차르' 캠벨 조정관, '싱가포르 합의 계승' 공식 확인

앞서 지난달 30일 워싱턴포스트가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등 이전 합의에 기초할 것"이라는 익명의 미 고위 관계자의 언급을 보도한 적이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인사가 직접 싱가포르 합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특히 캠벨 조정관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며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핵심 인사인데요. 게다가 한미정상회담 직전이라는 시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말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싱가포르 합의 정신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특히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와 긴밀히 협의해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본 목표로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외교를 통해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환영한다"고 언급했는데요.

이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의 주요 인사가 싱가포르 선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동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줄곧 밝혀온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했을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 '싱가포르 합의'가 뭐길래... 북-미 4개항 합의

싱가포르 합의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서명하고 발표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을 말합니다.

전문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4개항의 합의사항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참전 유해 송환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당시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라 전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됐었고, 비록 '원론적'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공동성명에 담긴 내용들도 획기적인 북미관계 개선의 기대를 높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해 12월 고별 방한 당시 "싱가포르 정상 합의가 나아갈 길"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 북한도 '외교성과'로 여기는 싱가포르 합의

싱가포르 합의의 경우 북한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주요 '외교적 성과'로 여기고 있는 듯 합니다. 이달 북한의 외국문출판사가 발행한 화보집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이 화보집에는 중국·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습도 상세히 담겨있습니다.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이번달 공개한 화보집.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모습과 당시 싱가포르 현지 신문의 지면을 함께 실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특히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미(북미)관계의 새 역사를 개척한 세기적 만남'이라 설명하며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회담 장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모습 등을 상세히 싣고 있습니다.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를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토대로 여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듬해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5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하노이까지 가서 내심 최고의 카드로 여겼던 '영변' 카드를 던지고도 면전에서 협상이 깨지는 수모를 겪었는데요.

북한에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이 '하노이 참사' 이전 '싱가포르 합의'로 돌아가 이를 계승하며 협상을 다시 해보자는 제안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유화적인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프랭크 엄 선임 연구원은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정상이 서명한 최초이자 유일한 합의문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미협상 재개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 '싱가포르 합의'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언급될까

그럼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 합의와 관련한 언급이 나올까 하는 점이 관심인데요.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 당일 '모호한 약속만 받고 동맹을 약화할 수 있다는 신호까지 보냈다'며 혹평한 바 있습니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캠벨 조정관을 비롯해 바이든 정부에서 최근 발신하고 있는 메시지를 보면 싱가포르 합의와 관련된 내용이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또는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 과정에서 언급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도 단순히 북한에 '유화적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 외에도,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비핵화를 서면으로 약속하고 서명까지 한 유일한 문서라는 중요성을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선 적대시정책 폐기'를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것만으로 북한이 선뜻 대화에 나오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포함되거나 바이든 대통령의 직접 언급이 나온다면 북한 역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2년 넘게 교착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북미관계.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