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개선? 저소득층 지출 들여다봤더니…

입력 2021.05.21 (07:00) 수정 2021.05.21 (20:5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21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대표 소득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이 6.30으로 작년 1/4분기 대비 0.59배p 감소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크게 개선된 모습입니다."

홍남기 부총리가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코로나19로 양극화가 심해질 거라는 우려와 달리 '분배가 개선됐다'는 통계는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겠죠.

정부는 20일 '가계동향조사 결과' 보도자료와 '녹실회의(관계장관회의) 개최 및 논의결과' 보도자료에서도 5분위 배율이 6.30배로 1년 전보다 줄었다는 것,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개선됐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5분위 배율은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겁니다. 소득 차이가 크게 날수록 숫자가 커지니까, 작을수록 좋은 의미입니다. 분배가 잘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실제로 소득 하위 가구의 생활은 안정되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 역시 우리나라 가구의 '가계부' 격인 가계동향조사에 있습니다.



■ 저소득층 소비지출 9.8%↑…어디에 더 썼을까?

1달에 평균 소득 91만 원. 소비로 지출하는 돈은 112만 5천 원.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살림살이입니다. 소득이 971만 4천 원이고, 소비지출은 428만 2천 원인 상위 20%(5분위)와 차이가 꽤 나죠.

올해 1분기 1분위의 소비지출은 9.8% 증가해 0.7% 감소한 5분위와 대조됐습니다.


■ 식료품, 가정용품 지출 두 자릿수 증가…고소득층과 비슷

1분위 가구가 지출을 늘린 항목 가운데 식료품·비주류 음료(17.9%) 그리고 가정용품·가사서비스(27.5%)는 5분위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밥을 많이 먹고, 집이라는 공간에 더 신경 쓰게 되는 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다 같다는 겁니다.

오락·문화 항목이 두 자릿수로 감소한 것도 비슷합니다. 1분위는 12.2%, 5분위는 10.7% 각각 줄었습니다.


■ 보건 지출, 왜 저소득층만 늘었지?

반면 보건 항목은 1분위에서만 16.7% 늘었습니다. 2, 3, 4, 5분위는 모두 감소했는데 이례적인 결과입니다.

1분위를 제외한 가구에서 보건 지출이 줄어든 데는 마스크 영향이 크다는 게 통계청 설명입니다. 지난해 1분기 '마스크 대란'으로 마스크 가격은 비쌌고, 한번 살 때 수십 개씩 사서 쟁이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스크값이 내리면서 그런 부담이 사라졌죠.

그럼 1분위는 왜 마스크 가격 인하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걸까요?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에서는 "1분위 고령화로 인해 의료 비용이 증가했고, 영양제 등에 쓰는 돈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1분위의 평균 가구주연령은 63.2세로 지난해 1분기 61.8세보다 훌쩍 고령화됐습니다. 코로나19로 건강염려가 늘어난 어르신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도 건강 관련 지출을 늘린 셈입니다.


■ 기타 상품·서비스도 엇갈렸다…이유는 '혼례비'

기타 상품·서비스 항목도 소득 분위별 증감이 엇갈렸습니다. 이 항목에는 이미용과 보험, 복지시설, 혼례비 증이 포함됩니다.

5분위, 고소득층은 지출이 16.2% 감소했습니다. 올해 1분기에도 코로나19 여파로 결혼식 간소화하는 가정이 많은데, 실제로 고소득층의 혼례비 지출이 크게 줄었고 이게 통계에 드러났다는 게 통계청의 해석입니다.

반면 1분위는 8.1% 증가했습니다. 고령인 이들 가구에서는 보험료나 복지시설 비용을 줄이기 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1분위 압박하는 지출은 식(食)과 주(住)

교통, 통신, 의류·신발.. 소비지출 조사 항목에는 이런 항목들도 있지만 1분위에는 크게 영향이 없는 것들입니다. 한 달에 기껏해야 8만 1천 원(교통)에서 3만 2천 원(의류·신발) 쓸 뿐이거든요. 심지어 교육비로는 2만 7천 원밖에 쓰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식료품과 주거, 그리고 보건 비용입니다.

그런데 1분기에 식료품 지출은 17.9% 늘었고 주거 지출도 10% 증가했습니다. 앞서 짚었듯 보건 비용이 늘어나면서 뺄 수 없는 지출 항목이 저소득층을 압박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 코로나19 잡히면 분배 개선될까?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면, 이런 상황이 개선될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2분기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3%를 기록하며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농축수산물 가격도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식료품 가격이 당분간은 오를 것으로 보고, 달걀 수입을 크게 늘리는 등 안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죠.

주거비용도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 속에 하락을 기대하기는 쉽잖은 상황입니다. 점점 더 고령화되는 저소득층이 보건 비용을 줄일 수도 없겠죠.

해법은 소득을 늘리는 건데, 올해 1분기는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이전 소득이 늘었을 뿐, 1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모두 감소했습니다. 일자리 회복이 더뎌서 이들의 임금이 상승으로 반전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 전 세계적 과제 '양극화'…우리도 예외 아냐

코로나19로 인해 시중에 풀린 돈은 자산 가격을 올려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또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번 통계에서는 '분배 개선' 이라지만, 우리 현실은 결코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 분배 지표, 5분위 배율이 개선됐다는 정부의 강조에도 당장 다음 분기가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분배 개선? 저소득층 지출 들여다봤더니…
    • 입력 2021-05-21 07:00:46
    • 수정2021-05-21 20:59:33
    취재K
"오늘 21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대표 소득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이 6.30으로 작년 1/4분기 대비 0.59배p 감소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크게 개선된 모습입니다."

홍남기 부총리가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코로나19로 양극화가 심해질 거라는 우려와 달리 '분배가 개선됐다'는 통계는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겠죠.

정부는 20일 '가계동향조사 결과' 보도자료와 '녹실회의(관계장관회의) 개최 및 논의결과' 보도자료에서도 5분위 배율이 6.30배로 1년 전보다 줄었다는 것,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개선됐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5분위 배율은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겁니다. 소득 차이가 크게 날수록 숫자가 커지니까, 작을수록 좋은 의미입니다. 분배가 잘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실제로 소득 하위 가구의 생활은 안정되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 역시 우리나라 가구의 '가계부' 격인 가계동향조사에 있습니다.



■ 저소득층 소비지출 9.8%↑…어디에 더 썼을까?

1달에 평균 소득 91만 원. 소비로 지출하는 돈은 112만 5천 원.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살림살이입니다. 소득이 971만 4천 원이고, 소비지출은 428만 2천 원인 상위 20%(5분위)와 차이가 꽤 나죠.

올해 1분기 1분위의 소비지출은 9.8% 증가해 0.7% 감소한 5분위와 대조됐습니다.


■ 식료품, 가정용품 지출 두 자릿수 증가…고소득층과 비슷

1분위 가구가 지출을 늘린 항목 가운데 식료품·비주류 음료(17.9%) 그리고 가정용품·가사서비스(27.5%)는 5분위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밥을 많이 먹고, 집이라는 공간에 더 신경 쓰게 되는 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다 같다는 겁니다.

오락·문화 항목이 두 자릿수로 감소한 것도 비슷합니다. 1분위는 12.2%, 5분위는 10.7% 각각 줄었습니다.


■ 보건 지출, 왜 저소득층만 늘었지?

반면 보건 항목은 1분위에서만 16.7% 늘었습니다. 2, 3, 4, 5분위는 모두 감소했는데 이례적인 결과입니다.

1분위를 제외한 가구에서 보건 지출이 줄어든 데는 마스크 영향이 크다는 게 통계청 설명입니다. 지난해 1분기 '마스크 대란'으로 마스크 가격은 비쌌고, 한번 살 때 수십 개씩 사서 쟁이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스크값이 내리면서 그런 부담이 사라졌죠.

그럼 1분위는 왜 마스크 가격 인하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걸까요?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에서는 "1분위 고령화로 인해 의료 비용이 증가했고, 영양제 등에 쓰는 돈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1분위의 평균 가구주연령은 63.2세로 지난해 1분기 61.8세보다 훌쩍 고령화됐습니다. 코로나19로 건강염려가 늘어난 어르신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도 건강 관련 지출을 늘린 셈입니다.


■ 기타 상품·서비스도 엇갈렸다…이유는 '혼례비'

기타 상품·서비스 항목도 소득 분위별 증감이 엇갈렸습니다. 이 항목에는 이미용과 보험, 복지시설, 혼례비 증이 포함됩니다.

5분위, 고소득층은 지출이 16.2% 감소했습니다. 올해 1분기에도 코로나19 여파로 결혼식 간소화하는 가정이 많은데, 실제로 고소득층의 혼례비 지출이 크게 줄었고 이게 통계에 드러났다는 게 통계청의 해석입니다.

반면 1분위는 8.1% 증가했습니다. 고령인 이들 가구에서는 보험료나 복지시설 비용을 줄이기 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1분위 압박하는 지출은 식(食)과 주(住)

교통, 통신, 의류·신발.. 소비지출 조사 항목에는 이런 항목들도 있지만 1분위에는 크게 영향이 없는 것들입니다. 한 달에 기껏해야 8만 1천 원(교통)에서 3만 2천 원(의류·신발) 쓸 뿐이거든요. 심지어 교육비로는 2만 7천 원밖에 쓰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식료품과 주거, 그리고 보건 비용입니다.

그런데 1분기에 식료품 지출은 17.9% 늘었고 주거 지출도 10% 증가했습니다. 앞서 짚었듯 보건 비용이 늘어나면서 뺄 수 없는 지출 항목이 저소득층을 압박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 코로나19 잡히면 분배 개선될까?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면, 이런 상황이 개선될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2분기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3%를 기록하며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농축수산물 가격도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식료품 가격이 당분간은 오를 것으로 보고, 달걀 수입을 크게 늘리는 등 안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죠.

주거비용도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 속에 하락을 기대하기는 쉽잖은 상황입니다. 점점 더 고령화되는 저소득층이 보건 비용을 줄일 수도 없겠죠.

해법은 소득을 늘리는 건데, 올해 1분기는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이전 소득이 늘었을 뿐, 1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모두 감소했습니다. 일자리 회복이 더뎌서 이들의 임금이 상승으로 반전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 전 세계적 과제 '양극화'…우리도 예외 아냐

코로나19로 인해 시중에 풀린 돈은 자산 가격을 올려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또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번 통계에서는 '분배 개선' 이라지만, 우리 현실은 결코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 분배 지표, 5분위 배율이 개선됐다는 정부의 강조에도 당장 다음 분기가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