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택배기사가 아파트 단지에 텐트 친 사연은?

입력 2021.05.22 (07: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못 보던 텐트가 들어선 건 5월 17일. 단지 내 인도 위, 그늘을 찾아 세워진 텐트 옆에는 해먹에 이불까지 놓여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해먹을 설치한 모습 (출처: 선양 뉴스 종합채널)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해먹을 설치한 모습 (출처: 선양 뉴스 종합채널)

혹시 노숙자가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파트 주민이 때아닌 무더위를 피해 피서 중인 걸까요?


■ 택배 기사가 아파트 '특별 주민' 된 사연

텐트의 주인인 32살 동옌차오 씨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쇼핑업체 택배 기사입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를 배달하던 동 씨는 17일 밤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주변 지역이 중위험 지역이 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중국은 중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순간, 전염병 예방 부서의 필요에 따라 주민 전체가 격리를 시작합니다.

아파트 주민의 경우,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수천 명이 됐든 수만 명이 됐든 모두 핵산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말이 그렇지,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극단적인 통제'입니다.

방역 조치에 따라 아파트 주민과 근처 지역 주민 4,000명 이상이 격리에 들어간 순간, 동 씨는 하필이면 단지 내서 택배를 배달 중이었고 예외 없이 함께 격리된 겁니다.

동 씨는 찾아온 아파트 주민들동 씨는 찾아온 아파트 주민들

수중에 있는 건 휴대전화 뿐이었던 동 씨는 제일 먼저 서둘러 가족에게 연락해 텐트를 받았는데요. 동 씨가 단지 안에서 '텐트 격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그는 단지 내 '특별 주민'이 됐습니다.

"95% 이상이 내가 아는 고객이라는 게 신기해요. 어느 날 밤 10시가 넘었는데 '부족한것은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어요."

모두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 건 기본이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양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동 씨를 찾아왔습니다.

동 씨를 찾아 생필품을 건네는 주민동 씨를 찾아 생필품을 건네는 주민

빵, 우유, 생수 같은 음식과 수건, 비누, 마스크 등과 같은 생필품, 심지어 맥주를 가져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3일 간의 텐트 생활 내내 다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 씨가 동료와 영상통화를 하며 주민들이 준 선물을 소개하는 모습동 씨가 동료와 영상통화를 하며 주민들이 준 선물을 소개하는 모습

또 많은 주민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했지만 동 씨는 불편을 끼치기 싫어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동 씨는 특히 격리하는 동안에도 주민들을 위해 택배를 분류하고 아파트 동마다 배달하는 일을 계속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민들 환대에 보답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20일 아파트 관리소에서 마련해준 곳으로 이사 준비를 하는 동 씨20일 아파트 관리소에서 마련해준 곳으로 이사 준비를 하는 동 씨

이틀 전부터는 관리소의 도움으로 텐트 생활을 끝내고 단지 내 한 거처로 이사도 했습니다.

" 이틀 동안 여러분의 도움을 받았고 정말 감사합니다. 봉쇄를 끝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사실 동 씨의 집은 걸어서 아파트 단지와 5분 거리에 있습니다.


■ 중국식 '극단 봉쇄', 코로나 방역 열쇠? vs 인권 침해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확인되는 순간 인근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에게 핵산검사를 진행하는 전략이 중국의 코로나 19 방역 성공의 '중요한 열쇠'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도 외출 금지나 통금 등의 강력한 봉쇄 조치가 있었지만, 중국의 봉쇄와는 강도면에서 큰 차이가 큽니다.

봉쇄 상황에서도 식료품을 사러 하루에 한 번 외출을 허용하거나 하루에 한 번 일정 거리 내에서 산책을 허용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해 줬기 때문인데요. 유럽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협조에 응할 뿐입니다.

중국 내에서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QR코드를 스캔해 확인하는 모습중국 내에서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QR코드를 스캔해 확인하는 모습

중국처럼 QR코드를 스캔해서 가는 곳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등록하는 등의 방식은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로 인식됩니다.

중국 언론들은 훈훈한 뉴스로 동 씨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5분 거리 앞에 집을 두고 노숙까지 해야 했던 동 씨 이야기는 개인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中 택배기사가 아파트 단지에 텐트 친 사연은?
    • 입력 2021-05-22 07:05:35
    특파원 리포트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못 보던 텐트가 들어선 건 5월 17일. 단지 내 인도 위, 그늘을 찾아 세워진 텐트 옆에는 해먹에 이불까지 놓여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해먹을 설치한 모습 (출처: 선양 뉴스 종합채널)
혹시 노숙자가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파트 주민이 때아닌 무더위를 피해 피서 중인 걸까요?


■ 택배 기사가 아파트 '특별 주민' 된 사연

텐트의 주인인 32살 동옌차오 씨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쇼핑업체 택배 기사입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를 배달하던 동 씨는 17일 밤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주변 지역이 중위험 지역이 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중국은 중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순간, 전염병 예방 부서의 필요에 따라 주민 전체가 격리를 시작합니다.

아파트 주민의 경우,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수천 명이 됐든 수만 명이 됐든 모두 핵산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말이 그렇지,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극단적인 통제'입니다.

방역 조치에 따라 아파트 주민과 근처 지역 주민 4,000명 이상이 격리에 들어간 순간, 동 씨는 하필이면 단지 내서 택배를 배달 중이었고 예외 없이 함께 격리된 겁니다.

동 씨는 찾아온 아파트 주민들
수중에 있는 건 휴대전화 뿐이었던 동 씨는 제일 먼저 서둘러 가족에게 연락해 텐트를 받았는데요. 동 씨가 단지 안에서 '텐트 격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그는 단지 내 '특별 주민'이 됐습니다.

"95% 이상이 내가 아는 고객이라는 게 신기해요. 어느 날 밤 10시가 넘었는데 '부족한것은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어요."

모두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 건 기본이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양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동 씨를 찾아왔습니다.

동 씨를 찾아 생필품을 건네는 주민
빵, 우유, 생수 같은 음식과 수건, 비누, 마스크 등과 같은 생필품, 심지어 맥주를 가져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3일 간의 텐트 생활 내내 다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 씨가 동료와 영상통화를 하며 주민들이 준 선물을 소개하는 모습
또 많은 주민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했지만 동 씨는 불편을 끼치기 싫어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동 씨는 특히 격리하는 동안에도 주민들을 위해 택배를 분류하고 아파트 동마다 배달하는 일을 계속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민들 환대에 보답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20일 아파트 관리소에서 마련해준 곳으로 이사 준비를 하는 동 씨
이틀 전부터는 관리소의 도움으로 텐트 생활을 끝내고 단지 내 한 거처로 이사도 했습니다.

" 이틀 동안 여러분의 도움을 받았고 정말 감사합니다. 봉쇄를 끝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사실 동 씨의 집은 걸어서 아파트 단지와 5분 거리에 있습니다.


■ 중국식 '극단 봉쇄', 코로나 방역 열쇠? vs 인권 침해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확인되는 순간 인근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에게 핵산검사를 진행하는 전략이 중국의 코로나 19 방역 성공의 '중요한 열쇠'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도 외출 금지나 통금 등의 강력한 봉쇄 조치가 있었지만, 중국의 봉쇄와는 강도면에서 큰 차이가 큽니다.

봉쇄 상황에서도 식료품을 사러 하루에 한 번 외출을 허용하거나 하루에 한 번 일정 거리 내에서 산책을 허용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해 줬기 때문인데요. 유럽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협조에 응할 뿐입니다.

중국 내에서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QR코드를 스캔해 확인하는 모습
중국처럼 QR코드를 스캔해서 가는 곳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등록하는 등의 방식은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로 인식됩니다.

중국 언론들은 훈훈한 뉴스로 동 씨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5분 거리 앞에 집을 두고 노숙까지 해야 했던 동 씨 이야기는 개인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