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찾은 워싱턴 한복판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입력 2021.05.2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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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한복판에 백악관이 있다. 이 백악관을 우리 경복궁 위치 정도로 생각하고 간단하게 이 동네 지리를 살펴보자.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 기간 찾은 워싱턴 한복판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백악관 남쪽으로 '대통령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 정도 위치다. 이 공원을 따라 내려가면,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위치 정도에 우리에게 익숙한 '워싱턴 모뉴먼트'가 있다. 높이 170m로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워싱턴 모뉴먼트워싱턴 모뉴먼트

이 워싱턴 모뉴먼트 좌우로 주요 관광지가 집결되어 있다. 워싱턴 관광의 기점인 셈이다. 동쪽으로는 긴 내셔널 몰 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도 우주박물관도 이 길 좌우로 있다. 1마일 남짓, 약 20분 정도 걸어가면 언덕 위에 미국 의회가 있다.

구글 지도구글 지도

워싱턴 모뉴먼트 서쪽으로는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거대한 링컨기념관이 있다. 이 거대한 기념관 안 의자에 앉아있는 링컨, 앉은 높이가 5.9m에 달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워싱턴D.C. 한복판을 설명하는 이유, 이번에 건립될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이 바로 이 미국 수도의 한복판, 링컨 기념관 바로 앞에 조성되기 때문이다.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 국가보훈처의 해외 6.25 기념시설물 안내 책자 중에서-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 국가보훈처의 해외 6.25 기념시설물 안내 책자 중에서-

'추모의 벽' 자리에는 사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다. 피자 한 조각 모양을 닮은 부채꼴 공간 안에는 판초 우의를 입은 19명의 미국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수색을 벌이는 듯한 형상으로 서 있다.

이 병사들의 앞에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나본 적 없는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도보 관광객이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링컨 기념관으로 걸어가면 우선 '제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을 지나게 된다. 그 다음 '반영의 연못'이라는 얕고 긴 연못 옆을 걷게 되는데, 이 연못이 끝나고 링컨기념관이 시작되는 자리 왼쪽(남쪽)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오른쪽(북쪽)에 '베트남전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계획된 도시의 심장부를 걷다가 우리나라에서 70년 전 일어난 전쟁을 기념하는 공원을 맞이하는 느낌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미국 수도 한가운데, 일종의 '복합 역사공원'의 한 자리가 한국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승전한 2차대전 기념공원과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을 기리는 사이에 '이기지 못한 두 전쟁'을 끼워 넣은 미국인들의 역사인식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2차대전을 지나 냉전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동시에 세계 최강대국이 된 나라다. 냉전은 '대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초강대국 부상'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냉전 시기, 미국이 배운 것은 '세계를 경영하는 초강대국이긴 하되, 힘으로 상대를 완전히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는 교훈이다. 그 교훈을 가장 먼저 배운 시점과 장소가 1950년대 초반 '한반도'였고, 그 교훈이 극대화된 게 70년대 '베트남'이다.

본토와는 전혀 관련 없는 그곳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죽었고, 또 이기지도 못했다. 그 사실을 수도 한복판에 기록해놓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는 나라가 미국이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기록사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쟁승리를 예감한 미군의 심리가 느껴진다.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기록사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쟁승리를 예감한 미군의 심리가 느껴진다.

사실 문 대통령 개인의 인생사가 이 역사와 직접 연결돼 있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참전한 미국은 5개월 만에 한반도 거의 전부를 수복한다. 그리고 승리감에 들떠 추수감사절 즈음, '자신만만'하게 마지막 미수복지로 향한다.

그러나 압록강까지 경계를 확정 짓기 위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돌진한 한반도 최북단에서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경험한다. 장진호 전투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며 퇴각한 미국은 전면전보다 지역적 대치를 기본으로 하는 '냉전적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 장진호 전투 패배 후 퇴각의 과정이 '흥남부두 철수'이고,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실었던 피난민 가운데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첫 방미 때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간 이유도 일부는 여기에 있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 당시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 당시
워싱턴 한복판 바로 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새롭게 '추모의 벽'이 들어선다.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과 달리,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록해놓은 추모공간이 없어 유가족이나 시민들에게 당시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따라 추진된 사업이다.

위치는 '자유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글귀가 새겨진 ‘추모의 연못’ 주위다. 2백억 원 넘는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국에서 전달됐다.

전사 미군 3만 6천여 명과 미군 배속 한국군 7천여 명의 명단이 경사진 화강암 판에 새겨지게 된다. 내년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

사실 이번 건립사업의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진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은 미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국가적 공모전을 통해 공원 형태를 확정 지었는데, 수상자가 유명 건축가가 아닌 당시 21살짜리 예일대 건축학과 대학생이었다. 게다가 중국계 유학생, '마야 린'이었다.

〈The Wall〉로 알려진 마야 린의 1981년 Vietnam Veterans Memorial 공모전 당선작〈The Wall〉로 알려진 마야 린의 1981년 Vietnam Veterans Memorial 공모전 당선작

이 기념공원이 기념비적인 이유, 추모의 마음을 탑이나 거대한 수직적 조형물로 드러냄으로써가 아니라 수평적인 땅 아래 숨김으로서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이 추모의 벽을 따라 걷다보면 서서히 주변 지형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서 5만 8천여 희생 장병의 이름들이 새겨진 검은 화강암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역사를 대면하는 이 공간을 벗어나 워싱턴 중심부로 다시 향한다면, 미국 수도를 상징하는 워싱턴 모뉴먼트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출처 : Reddit.com출처 : Reddit.com

건립 당시에는 20대 중국인의 설계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추모와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애국심을 되돌아보게 만든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곳을 걸으면 이름 위에 흰 종이를 대고 탁본을 떠가는 사람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맞은 편에 새롭게 조성될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이 우리 추모의 벽도 베트남의 그것처럼, 미국인들에게 한국,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각별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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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찾은 워싱턴 한복판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 입력 2021-05-22 08:13:57
    취재K

워싱턴D.C. 한복판에 백악관이 있다. 이 백악관을 우리 경복궁 위치 정도로 생각하고 간단하게 이 동네 지리를 살펴보자.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 기간 찾은 워싱턴 한복판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백악관 남쪽으로 '대통령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 정도 위치다. 이 공원을 따라 내려가면,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위치 정도에 우리에게 익숙한 '워싱턴 모뉴먼트'가 있다. 높이 170m로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워싱턴 모뉴먼트
이 워싱턴 모뉴먼트 좌우로 주요 관광지가 집결되어 있다. 워싱턴 관광의 기점인 셈이다. 동쪽으로는 긴 내셔널 몰 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도 우주박물관도 이 길 좌우로 있다. 1마일 남짓, 약 20분 정도 걸어가면 언덕 위에 미국 의회가 있다.

구글 지도
워싱턴 모뉴먼트 서쪽으로는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거대한 링컨기념관이 있다. 이 거대한 기념관 안 의자에 앉아있는 링컨, 앉은 높이가 5.9m에 달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워싱턴D.C. 한복판을 설명하는 이유, 이번에 건립될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이 바로 이 미국 수도의 한복판, 링컨 기념관 바로 앞에 조성되기 때문이다.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 국가보훈처의 해외 6.25 기념시설물 안내 책자 중에서-
'추모의 벽' 자리에는 사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다. 피자 한 조각 모양을 닮은 부채꼴 공간 안에는 판초 우의를 입은 19명의 미국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수색을 벌이는 듯한 형상으로 서 있다.

이 병사들의 앞에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나본 적 없는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도보 관광객이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링컨 기념관으로 걸어가면 우선 '제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을 지나게 된다. 그 다음 '반영의 연못'이라는 얕고 긴 연못 옆을 걷게 되는데, 이 연못이 끝나고 링컨기념관이 시작되는 자리 왼쪽(남쪽)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오른쪽(북쪽)에 '베트남전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계획된 도시의 심장부를 걷다가 우리나라에서 70년 전 일어난 전쟁을 기념하는 공원을 맞이하는 느낌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미국 수도 한가운데, 일종의 '복합 역사공원'의 한 자리가 한국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승전한 2차대전 기념공원과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을 기리는 사이에 '이기지 못한 두 전쟁'을 끼워 넣은 미국인들의 역사인식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2차대전을 지나 냉전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동시에 세계 최강대국이 된 나라다. 냉전은 '대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초강대국 부상'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냉전 시기, 미국이 배운 것은 '세계를 경영하는 초강대국이긴 하되, 힘으로 상대를 완전히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는 교훈이다. 그 교훈을 가장 먼저 배운 시점과 장소가 1950년대 초반 '한반도'였고, 그 교훈이 극대화된 게 70년대 '베트남'이다.

본토와는 전혀 관련 없는 그곳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죽었고, 또 이기지도 못했다. 그 사실을 수도 한복판에 기록해놓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는 나라가 미국이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기록사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쟁승리를 예감한 미군의 심리가 느껴진다.
사실 문 대통령 개인의 인생사가 이 역사와 직접 연결돼 있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참전한 미국은 5개월 만에 한반도 거의 전부를 수복한다. 그리고 승리감에 들떠 추수감사절 즈음, '자신만만'하게 마지막 미수복지로 향한다.

그러나 압록강까지 경계를 확정 짓기 위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돌진한 한반도 최북단에서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경험한다. 장진호 전투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며 퇴각한 미국은 전면전보다 지역적 대치를 기본으로 하는 '냉전적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 장진호 전투 패배 후 퇴각의 과정이 '흥남부두 철수'이고,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실었던 피난민 가운데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첫 방미 때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간 이유도 일부는 여기에 있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 당시워싱턴 한복판 바로 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새롭게 '추모의 벽'이 들어선다.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과 달리,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록해놓은 추모공간이 없어 유가족이나 시민들에게 당시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따라 추진된 사업이다.

위치는 '자유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글귀가 새겨진 ‘추모의 연못’ 주위다. 2백억 원 넘는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국에서 전달됐다.

전사 미군 3만 6천여 명과 미군 배속 한국군 7천여 명의 명단이 경사진 화강암 판에 새겨지게 된다. 내년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
사실 이번 건립사업의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진 맞은 편 베트남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은 미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국가적 공모전을 통해 공원 형태를 확정 지었는데, 수상자가 유명 건축가가 아닌 당시 21살짜리 예일대 건축학과 대학생이었다. 게다가 중국계 유학생, '마야 린'이었다.

〈The Wall〉로 알려진 마야 린의 1981년 Vietnam Veterans Memorial 공모전 당선작
이 기념공원이 기념비적인 이유, 추모의 마음을 탑이나 거대한 수직적 조형물로 드러냄으로써가 아니라 수평적인 땅 아래 숨김으로서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이 추모의 벽을 따라 걷다보면 서서히 주변 지형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서 5만 8천여 희생 장병의 이름들이 새겨진 검은 화강암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역사를 대면하는 이 공간을 벗어나 워싱턴 중심부로 다시 향한다면, 미국 수도를 상징하는 워싱턴 모뉴먼트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출처 : Reddit.com
건립 당시에는 20대 중국인의 설계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추모와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애국심을 되돌아보게 만든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곳을 걸으면 이름 위에 흰 종이를 대고 탁본을 떠가는 사람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맞은 편에 새롭게 조성될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이 우리 추모의 벽도 베트남의 그것처럼, 미국인들에게 한국,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각별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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