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 갇혀 홀로 4년을 버틴 남성…비극의 시작은?

입력 2021.05.23 (08:01) 수정 2021.05.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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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출처-BBC

바다 위의 배에 갇혀서 4년을 버티다 자유의 몸이 된 남성이 있습니다.

2017년 선원 모하메드 아이샤는 바레인 선적 화물선 MV아만호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7월 자신이 탄 화물선의 안전 증명서들이 만료되면서 이집트 수에즈 인근 아다비야 항에 억류되며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선박 계약자인 레바논 화주는 연료비를 대지 못했고, 선박 소유주인 바레인 선사도 자금난에 빠지게 됐는데요.

출처-BBC출처-BBC

발이 묶여 배와 함께 유기된 그를 4천 톤급 선박의 법정 대리인으로 지정한 이집트 선장. 시리아 출신이었던 아이샤는 이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서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샤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배를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그 사이 동료들은 모두 다 떠나고 형량 없는 감옥에 갇힌 채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그는 2018년 8월 어머니의 임종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이샤는 “그때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에는 전기가 끊겨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유령선에서 매일 공포와 맞섰습니다.

지난해 3월 폭풍우가 휘몰아쳤을 때는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하지만 8km를 표류하던 선박이 오히려 해안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는 며칠에 한 번 해변으로 헤엄쳐나갈 수 있게 됐고 육지로 나가 음식을 사고 휴대전화도 충전했습니다.

모두에게 잊힌 채 4년을 보낸 남성의 사연을 접한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TF)은 아이샤가 유령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는데요.

지난달 23일 아이샤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인 시리아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 기쁘다. 마치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라며, 가족과 재회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출처-BBC출처-BBC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아이샤 건과 같은 선원 유기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250건 이상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2020년 발생한 신규 건수는 85건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이란의 아살루예 해안에는 2019년 7월에 버려진 벌크 운반선 울라에 인도 선원 19명이 갇힌 채 표류 중입니다.

ITF는 아이샤 사건이 해운업계에 만연한 선원 유기 실태를 바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ITF 관계자는 "모하메드 아이샤의 이 비극은 선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진 소유주와 당사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그의 송환을 위해 노력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질타했습니다.

제3세계와 선진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상의 격차가 심화하며 가난한 나라의 인권문제는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선박 소유주의 무책임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의 기본권리인 자유를 박탈당한 채 바다 위의 배에 갇혀 4년의 세월을 보낸 힘없는 선원이 만약 선진국 시민이었다면 국제 사회는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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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선 갇혀 홀로 4년을 버틴 남성…비극의 시작은?
    • 입력 2021-05-23 08:01:30
    • 수정2021-05-23 14:46:48
    취재K
출처-BBC
바다 위의 배에 갇혀서 4년을 버티다 자유의 몸이 된 남성이 있습니다.

2017년 선원 모하메드 아이샤는 바레인 선적 화물선 MV아만호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7월 자신이 탄 화물선의 안전 증명서들이 만료되면서 이집트 수에즈 인근 아다비야 항에 억류되며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선박 계약자인 레바논 화주는 연료비를 대지 못했고, 선박 소유주인 바레인 선사도 자금난에 빠지게 됐는데요.

출처-BBC
발이 묶여 배와 함께 유기된 그를 4천 톤급 선박의 법정 대리인으로 지정한 이집트 선장. 시리아 출신이었던 아이샤는 이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서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샤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배를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그 사이 동료들은 모두 다 떠나고 형량 없는 감옥에 갇힌 채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그는 2018년 8월 어머니의 임종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이샤는 “그때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에는 전기가 끊겨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유령선에서 매일 공포와 맞섰습니다.

지난해 3월 폭풍우가 휘몰아쳤을 때는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하지만 8km를 표류하던 선박이 오히려 해안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는 며칠에 한 번 해변으로 헤엄쳐나갈 수 있게 됐고 육지로 나가 음식을 사고 휴대전화도 충전했습니다.

모두에게 잊힌 채 4년을 보낸 남성의 사연을 접한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TF)은 아이샤가 유령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는데요.

지난달 23일 아이샤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인 시리아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 기쁘다. 마치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라며, 가족과 재회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출처-BBC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아이샤 건과 같은 선원 유기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250건 이상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2020년 발생한 신규 건수는 85건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이란의 아살루예 해안에는 2019년 7월에 버려진 벌크 운반선 울라에 인도 선원 19명이 갇힌 채 표류 중입니다.

ITF는 아이샤 사건이 해운업계에 만연한 선원 유기 실태를 바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ITF 관계자는 "모하메드 아이샤의 이 비극은 선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진 소유주와 당사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그의 송환을 위해 노력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질타했습니다.

제3세계와 선진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상의 격차가 심화하며 가난한 나라의 인권문제는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선박 소유주의 무책임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의 기본권리인 자유를 박탈당한 채 바다 위의 배에 갇혀 4년의 세월을 보낸 힘없는 선원이 만약 선진국 시민이었다면 국제 사회는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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