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낮잠 질식사’ 고 정빈이 엄마 최초 심경 인터뷰

입력 2021.05.24 (18:44) 수정 2021.05.24 (18: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삶의 이유'였던 아기를 예고 없이 빼앗긴 엄마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보였다. '대전 어린이집 21개월 여아 질식사망 사건'의 피해자 고 박정빈 양의 엄마 정혜화 씨를 'KBS 뉴스 D-Live'에서 인터뷰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저한테 일어났어요. 그것도 둘째 출산 열흘만에, 조리원에서요. 이제 첫째 딸이 있고, 둘째 아들을 낳았으니 잘 키우자 행복하던 차에..." 정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울먹이던 정 씨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 여러 뉴스에 보도됐고 사건이 잘 처리돼서 정빈이의 억울함이 풀어지겠지 했는데,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 모든 것을 공개하고 목소리를 내겠다."

평범했던 정 씨 가족 일상은 지난 3월 30일 화요일 정빈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던 중 숨을 안쉰다는 전화를 받고 깨졌다. 심폐 소생술을 했고, 119 구급대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2019년 6월 10일생, 21개월 정빈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어린이집 CCTV는 정빈이가 왜 질식사로 숨졌는지 증거로써 뒷받침했다. 어린이집 낮잠시간, 잠에 못 드는 정빈이를 바닥에 엎드려 눕힌 채 이불로 감싸, 온몸으로 누르는 어린이집 원장의 모습이 CCTV 영상에 포착됐다.



이후 수사에 착수한 대전지방경찰청이 어린이집 원장 정모 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아동학대치사죄'였다. 원장이 아동학대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정빈이가 사망한 시점은 이른바 '정인이 법',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시행 이후였다. 정빈이 부모 측은 "어린이집 원장의 아동학대 행위가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행한 것" 이라며 "아동학대살해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고소장까지 제출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지 않았냐는 KBS 뉴스D-Live 취재진 질문에 경찰 측은 " 사건발생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날도 원장이 비슷한 행위를 했고, 피해아동(정빈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유사 행위를 했다" 며 " 특별히 피해아동에게만 그런 행위를 했다면 판단이 다를 수도 있지만, 다른 애들한테도 많이 하다가 그 중 한 번 사고가 난 거여서 사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 본인(어린이집 원장)이 그렇게 해서 아이가 죽을 지 몰랐고 그때 당시에도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며 "살인의 직접 고의성이나 그런한 행위로 인해 아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한 미필적 고의성도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연관 기사] ‘21개월 여아 사망’ 어린이집 CCTV에 학대 정황…영장 재신청

검찰 역시 어린이집 원장 정 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혐의로 구속기소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동학대살해죄 적용은 어떤 이유에서 적용이 어려웠냐는 취재진 질문에 사건을 담당한 대전지방검찰청은 "공개 심의를 열어야 언론에게 어떤 사유로 혐의를 적용했고, 기소를 했는지 알려줄 수 있다"며 "형사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의 판단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 금지가 원칙이다"고 답변했다. 정빈이 엄마는 "학대행위가 담긴 CCTV 증거가 있기에 딸을 마지막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 법으로도 딸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며 "그래서 모든 걸 공개하고 언론에 더 서게됐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실시간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방송에는 수백명의 시청자들이 함께하며 의견을 올렸다. 한 시청자는 " 아이를 엎드려 재우면 질식사 위험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며 "일반인도 다 아는 상식을 어린이집 원장이 모르고 있고, 그런 행위를 여러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냐"며 공분을 토로했다. 또 다른 시청자는 "비슷한 체격의 어른이 다른 어른을 이불로 감싸서 눌러도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21개월짜리 10KG초반대의 어린아이를 성인 여성이 눌렀다면 아이는 당연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라며 아동학대살해죄로 처벌되지 않음을 비판했다.

이어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 결국 , CCTV가 설치돼 있더라도 이 같은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며 "CCTV 같은 하드웨어 강화와 동시에 CCTV 내용을 관리감독할 소프트웨어 정비와 강화도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 외국의 경우 유치원 등에 CCTV 를 설치하고 CCTV영상을 관리감독할 전문인력을 두어 상시 관찰하며 평가를 한다"고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처벌 특례법'이 시행됐지만, 이 특례법을 입법화한 근본취지를 수사기관 등에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아동들을 학대 사망하게 한 경우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어 처벌하겠다는 것이 입법취지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법률 해석을 하고 적용하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인이와 정빈이. 두 아이 모두 2019년 6월 10일 같은 날 태어났다.정인이는 양부모에게서, 정빈이는 어린이집에서 학대 끝에 사망했다. 정빈이를 지키 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인터뷰를 마무리 한 정빈이 엄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러면 누가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에 맡기겠냐고..." 엄마는 "아이가 사망 전날 젤리를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하며 더 달라고 했는데 이가 썩을까봐 더 주지 않은 것이 한으로 남는다"며 "앞으로 비극적인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딸로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정빈이 사건은 법원의 판단만 남은 상황이다. 저출산의 위기라고 출산을 독려하는 한국사회,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지키는 질적 인프라 확충과 법체계 정비 등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 보인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어린이집 낮잠 질식사’ 고 정빈이 엄마 최초 심경 인터뷰
    • 입력 2021-05-24 18:44:15
    • 수정2021-05-24 18:45:28
    취재K
'삶의 이유'였던 아기를 예고 없이 빼앗긴 엄마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보였다. '대전 어린이집 21개월 여아 질식사망 사건'의 피해자 고 박정빈 양의 엄마 정혜화 씨를 'KBS 뉴스 D-Live'에서 인터뷰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저한테 일어났어요. 그것도 둘째 출산 열흘만에, 조리원에서요. 이제 첫째 딸이 있고, 둘째 아들을 낳았으니 잘 키우자 행복하던 차에..." 정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울먹이던 정 씨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 여러 뉴스에 보도됐고 사건이 잘 처리돼서 정빈이의 억울함이 풀어지겠지 했는데,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 모든 것을 공개하고 목소리를 내겠다."

평범했던 정 씨 가족 일상은 지난 3월 30일 화요일 정빈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던 중 숨을 안쉰다는 전화를 받고 깨졌다. 심폐 소생술을 했고, 119 구급대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2019년 6월 10일생, 21개월 정빈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어린이집 CCTV는 정빈이가 왜 질식사로 숨졌는지 증거로써 뒷받침했다. 어린이집 낮잠시간, 잠에 못 드는 정빈이를 바닥에 엎드려 눕힌 채 이불로 감싸, 온몸으로 누르는 어린이집 원장의 모습이 CCTV 영상에 포착됐다.



이후 수사에 착수한 대전지방경찰청이 어린이집 원장 정모 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아동학대치사죄'였다. 원장이 아동학대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정빈이가 사망한 시점은 이른바 '정인이 법',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시행 이후였다. 정빈이 부모 측은 "어린이집 원장의 아동학대 행위가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행한 것" 이라며 "아동학대살해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고소장까지 제출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지 않았냐는 KBS 뉴스D-Live 취재진 질문에 경찰 측은 " 사건발생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날도 원장이 비슷한 행위를 했고, 피해아동(정빈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유사 행위를 했다" 며 " 특별히 피해아동에게만 그런 행위를 했다면 판단이 다를 수도 있지만, 다른 애들한테도 많이 하다가 그 중 한 번 사고가 난 거여서 사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 본인(어린이집 원장)이 그렇게 해서 아이가 죽을 지 몰랐고 그때 당시에도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며 "살인의 직접 고의성이나 그런한 행위로 인해 아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한 미필적 고의성도 인정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연관 기사] ‘21개월 여아 사망’ 어린이집 CCTV에 학대 정황…영장 재신청

검찰 역시 어린이집 원장 정 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혐의로 구속기소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동학대살해죄 적용은 어떤 이유에서 적용이 어려웠냐는 취재진 질문에 사건을 담당한 대전지방검찰청은 "공개 심의를 열어야 언론에게 어떤 사유로 혐의를 적용했고, 기소를 했는지 알려줄 수 있다"며 "형사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의 판단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 금지가 원칙이다"고 답변했다. 정빈이 엄마는 "학대행위가 담긴 CCTV 증거가 있기에 딸을 마지막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 법으로도 딸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며 "그래서 모든 걸 공개하고 언론에 더 서게됐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실시간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방송에는 수백명의 시청자들이 함께하며 의견을 올렸다. 한 시청자는 " 아이를 엎드려 재우면 질식사 위험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며 "일반인도 다 아는 상식을 어린이집 원장이 모르고 있고, 그런 행위를 여러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냐"며 공분을 토로했다. 또 다른 시청자는 "비슷한 체격의 어른이 다른 어른을 이불로 감싸서 눌러도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21개월짜리 10KG초반대의 어린아이를 성인 여성이 눌렀다면 아이는 당연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라며 아동학대살해죄로 처벌되지 않음을 비판했다.

이어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 결국 , CCTV가 설치돼 있더라도 이 같은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며 "CCTV 같은 하드웨어 강화와 동시에 CCTV 내용을 관리감독할 소프트웨어 정비와 강화도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 외국의 경우 유치원 등에 CCTV 를 설치하고 CCTV영상을 관리감독할 전문인력을 두어 상시 관찰하며 평가를 한다"고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처벌 특례법'이 시행됐지만, 이 특례법을 입법화한 근본취지를 수사기관 등에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아동들을 학대 사망하게 한 경우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어 처벌하겠다는 것이 입법취지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법률 해석을 하고 적용하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인이와 정빈이. 두 아이 모두 2019년 6월 10일 같은 날 태어났다.정인이는 양부모에게서, 정빈이는 어린이집에서 학대 끝에 사망했다. 정빈이를 지키 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인터뷰를 마무리 한 정빈이 엄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러면 누가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에 맡기겠냐고..." 엄마는 "아이가 사망 전날 젤리를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하며 더 달라고 했는데 이가 썩을까봐 더 주지 않은 것이 한으로 남는다"며 "앞으로 비극적인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딸로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정빈이 사건은 법원의 판단만 남은 상황이다. 저출산의 위기라고 출산을 독려하는 한국사회,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지키는 질적 인프라 확충과 법체계 정비 등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 보인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