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BMW 전기차 무더기 방치…왜?

입력 2021.05.25 (16:35) 수정 2021.05.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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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한 목장 지대에 방치된 BMW 전기차제주시 애월읍 한 목장 지대에 방치된 BMW 전기차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고사리 채취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번호판이 없는 BMW 전기차 100여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가보니 말들이 주차된 차량 틈 사이를 비집고 풀을 뜯고 있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차량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차량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1백여 대가 주차돼 있다.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1백여 대가 주차돼 있다.

입구에 있는 팻말에는 '주차장 공사로 잠시 보관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취재진이 팻말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 차량에 관해 묻자, 관리인은 "부도가 난 렌터카 업체의 전기차를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심지인 제주시 한 주택가 공터에도 같은 모델의 BMW 전기차 다수가 방치된 지 오래다.

공기가 빠진 타이어 주변으로는 무성한 잡초가 파고들었고, 빽빽이 세워둔 차량 사이로 성인 여성 키만큼 자란 유채꽃이 노랗게 꽃을 피울 정도였다. 주민들은 해당 차량이 수년째 내버려진 상태라고 말했다.

제주시 도심에 세워진 BMW 전기차제주시 도심에 세워진 BMW 전기차

제주시 모 정비업소에 세워진 BMW 전기차제주시 모 정비업소에 세워진 BMW 전기차

제주시에 위치한 한 자동차 정비업체에도 동일 모델 BMW 전기차 30여 대가 건물 안팎에 한가득 세워져 있었다.

공업사 업주는 "수리 의뢰가 들어왔던 차량인데, 렌터카 회사가 망해버렸다"며 "차를 내치지도 못하고, 매각도 못 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주는 보관료는커녕 수리비 수천만 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보조금 수십억 지원…파산 뒤엔 무용지물

BMW 코리아 측에 따르면, 해당 렌터카 업체는 2016년과 2017년 BMW 파이낸셜을 통해 할부로 전기차 i3 모델 200대를 구매했다.

당시 BMW 코리아의 공식 판매사인 도이치모터스는 제주에서 전기차 200대를 배열해 'i3' 로고를 형상화하는 특별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7년 제주도에서 진행된 i3 200대 판매 기념 특별 행사(사진=BMW코리아)2017년 제주도에서 진행된 i3 200대 판매 기념 특별 행사(사진=BMW코리아)

당시 렌터카 업체는 i3를 통해 제주도의 친환경 이미지에 걸맞은 전기차 렌터카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영 악화가 반복되면서 지난해 4월 차량 매각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세금과 대출금 등을 내지 못해 차량이 압류됐고, 이 과정에서 도심 곳곳에 차량이 방치돼 온 것이다.

BMW 코리아 측은 지난 17일 법원으로부터 경매 허가 결정을 받아 조만간 차량이 경매에 넘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거미줄이 처져 있다.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거미줄이 처져 있다.

BMW 코리아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다음 달 중 모든 차량을 법원 경매 보관소에 입고시킬 예정"이라며 "현재까지 렌터카 업체로부터 원금과 이자 등 75억 원 상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BMW 파이낸셜 역시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조금 밀어내기' 급급…줄줄 새어나간 세금

제주도 곳곳에 전기차 렌터카 수백 대가 방치된 채 발견되는 촌극은 '예견된 사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 사업에 다량의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양적 팽창'에 집중했다. 전기차 보급 목표치를 세우고 거액의 보조금을 집행하는 정부와 한 번에 수십~수백 대씩 전기차를 사들이는 렌터카 업체의 타산이 당시만 해도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수백억 보조금을 쏟고도 시장의 만족도는 높지 못했다. 보급 사업 초창기, 전기차는 완성도가 지금보다 떨어졌는데, 넉넉하지 못한 충전 인프라와 짧은 주행거리 등으로 선호도가 낮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가의 수리 비용 등도 리스크로 작용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으로 '밀어내기식' 보급을 하다가, 이런 후유증이 최근 들어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해당 차량에 지원된 보조금은 1대당 2,000만 원 상당으로, 200대에 40억 원 넘는 국비와 도비가 지원됐다. 그러나 전기차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제주도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에 방치된 BMW 전기차들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에 방치된 BMW 전기차들
송규진 제주교통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제주지역 렌터카의 도로 점유율이 70% 이상이기 때문에 렌터카를 빠르게 전기차로 대체해야 한다는 게 제주도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며 "전기차가 이후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도 렌터카 업계의 전기차 전환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업체가 파산했을 경우 보조금을 어떻게 환수할지, 대중교통과 달리 사익을 추구하는 렌터카 업계에 지금보다 강화된 방안을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도 "렌터카 업체처럼 수십 대 이상 한꺼번에 보급하는 경우엔 단순히 '2년 보유' 조건보다는, 실제 운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의무 운행 기간 2년 지나 환수할 수 없어…"50대 제한 할 것"

제주도 저탄소정책과 관계자는 "의무 운행 기간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후의 문제는 사실상 민간의 영역"이라며 "렌터카 업체가 부도가 나는 것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만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렌터카 업체 한 곳당 50대를 초과해서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렌터카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시행해 실제 전기차 운영 여부 등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사업을 맡은 정부부처에서도 뒤늦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김효정 환경부 대기미래전략과장은 "렌터카 업체가 폐업했다고 해서 차를 못 쓰는 건 아니"라며 "해당 차량이 법정절차에 들어가 자산 처분이 되면, 중고차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제주도와 모니터링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도내 민간에 지원된 전기차는 1만 5,874대에 이른다.

제주도 관내 렌터카 업체에는 2016년부터 지원이 시작돼 2020년까지 최근 5년 동안 4,143대에 수백억 원의 보조금이 지원됐다.

해당 렌터카 업체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가 기업 회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법원 차량 보관소를 관리하는 업체를 통해 소정의 임대료를 내며 주차를 하고 있다"며 "차량이 방치된 게 아니라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기자 민소영 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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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에 BMW 전기차 무더기 방치…왜?
    • 입력 2021-05-25 16:35:32
    • 수정2021-05-25 18:59:31
    취재K
제주시 애월읍 한 목장 지대에 방치된 BMW 전기차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고사리 채취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번호판이 없는 BMW 전기차 100여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가보니 말들이 주차된 차량 틈 사이를 비집고 풀을 뜯고 있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차량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1백여 대가 주차돼 있다.
입구에 있는 팻말에는 '주차장 공사로 잠시 보관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취재진이 팻말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 차량에 관해 묻자, 관리인은 "부도가 난 렌터카 업체의 전기차를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심지인 제주시 한 주택가 공터에도 같은 모델의 BMW 전기차 다수가 방치된 지 오래다.

공기가 빠진 타이어 주변으로는 무성한 잡초가 파고들었고, 빽빽이 세워둔 차량 사이로 성인 여성 키만큼 자란 유채꽃이 노랗게 꽃을 피울 정도였다. 주민들은 해당 차량이 수년째 내버려진 상태라고 말했다.

제주시 도심에 세워진 BMW 전기차
제주시 모 정비업소에 세워진 BMW 전기차
제주시에 위치한 한 자동차 정비업체에도 동일 모델 BMW 전기차 30여 대가 건물 안팎에 한가득 세워져 있었다.

공업사 업주는 "수리 의뢰가 들어왔던 차량인데, 렌터카 회사가 망해버렸다"며 "차를 내치지도 못하고, 매각도 못 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주는 보관료는커녕 수리비 수천만 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보조금 수십억 지원…파산 뒤엔 무용지물

BMW 코리아 측에 따르면, 해당 렌터카 업체는 2016년과 2017년 BMW 파이낸셜을 통해 할부로 전기차 i3 모델 200대를 구매했다.

당시 BMW 코리아의 공식 판매사인 도이치모터스는 제주에서 전기차 200대를 배열해 'i3' 로고를 형상화하는 특별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7년 제주도에서 진행된 i3 200대 판매 기념 특별 행사(사진=BMW코리아)
당시 렌터카 업체는 i3를 통해 제주도의 친환경 이미지에 걸맞은 전기차 렌터카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영 악화가 반복되면서 지난해 4월 차량 매각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세금과 대출금 등을 내지 못해 차량이 압류됐고, 이 과정에서 도심 곳곳에 차량이 방치돼 온 것이다.

BMW 코리아 측은 지난 17일 법원으로부터 경매 허가 결정을 받아 조만간 차량이 경매에 넘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거미줄이 처져 있다.
BMW 코리아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다음 달 중 모든 차량을 법원 경매 보관소에 입고시킬 예정"이라며 "현재까지 렌터카 업체로부터 원금과 이자 등 75억 원 상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BMW 파이낸셜 역시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조금 밀어내기' 급급…줄줄 새어나간 세금

제주도 곳곳에 전기차 렌터카 수백 대가 방치된 채 발견되는 촌극은 '예견된 사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 사업에 다량의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양적 팽창'에 집중했다. 전기차 보급 목표치를 세우고 거액의 보조금을 집행하는 정부와 한 번에 수십~수백 대씩 전기차를 사들이는 렌터카 업체의 타산이 당시만 해도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수백억 보조금을 쏟고도 시장의 만족도는 높지 못했다. 보급 사업 초창기, 전기차는 완성도가 지금보다 떨어졌는데, 넉넉하지 못한 충전 인프라와 짧은 주행거리 등으로 선호도가 낮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가의 수리 비용 등도 리스크로 작용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으로 '밀어내기식' 보급을 하다가, 이런 후유증이 최근 들어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해당 차량에 지원된 보조금은 1대당 2,000만 원 상당으로, 200대에 40억 원 넘는 국비와 도비가 지원됐다. 그러나 전기차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제주도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에 방치된 BMW 전기차들송규진 제주교통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제주지역 렌터카의 도로 점유율이 70% 이상이기 때문에 렌터카를 빠르게 전기차로 대체해야 한다는 게 제주도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며 "전기차가 이후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도 렌터카 업계의 전기차 전환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업체가 파산했을 경우 보조금을 어떻게 환수할지, 대중교통과 달리 사익을 추구하는 렌터카 업계에 지금보다 강화된 방안을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도 "렌터카 업체처럼 수십 대 이상 한꺼번에 보급하는 경우엔 단순히 '2년 보유' 조건보다는, 실제 운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 방치된 BMW 전기차 사이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의무 운행 기간 2년 지나 환수할 수 없어…"50대 제한 할 것"

제주도 저탄소정책과 관계자는 "의무 운행 기간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후의 문제는 사실상 민간의 영역"이라며 "렌터카 업체가 부도가 나는 것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만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렌터카 업체 한 곳당 50대를 초과해서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렌터카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시행해 실제 전기차 운영 여부 등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사업을 맡은 정부부처에서도 뒤늦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김효정 환경부 대기미래전략과장은 "렌터카 업체가 폐업했다고 해서 차를 못 쓰는 건 아니"라며 "해당 차량이 법정절차에 들어가 자산 처분이 되면, 중고차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제주도와 모니터링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도내 민간에 지원된 전기차는 1만 5,874대에 이른다.

제주도 관내 렌터카 업체에는 2016년부터 지원이 시작돼 2020년까지 최근 5년 동안 4,143대에 수백억 원의 보조금이 지원됐다.

해당 렌터카 업체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가 기업 회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법원 차량 보관소를 관리하는 업체를 통해 소정의 임대료를 내며 주차를 하고 있다"며 "차량이 방치된 게 아니라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기자 민소영 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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