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참사’ 5년…스크린도어 노동자 절반은 ‘우울증’ 호소

입력 2021.05.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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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8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19살 '김 군'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에 온 사회가 분노했고, 안전보다 효율을 생각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도 수면 위로 드러나, 각종 개선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것도 적지 않습니다. 2018년 3월 김 군의 동료들은 모두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이 됐고, 2인 1조 근무도 당연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선로 쪽에 매달려야 하는 위험한 작업은 열차 운행이 모두 종료된 야간에만 가능하도록 바뀌었고, 장애 신고가 접수된 승강장에 무조건 1시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는 지침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들은 업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난 걸까요?

■ 스크린도어 종사자 절반은 '심한 우울'…'고도 스트레스'도 92%

KBS는 서울교통공사가 발주하고 원진직업병관리재단부설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함께 연구한 129쪽 분량의 '서울교통공사 승강장안전문분야 종사자 직무스트레스 등 실태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분야 근무자 전원 4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 가운데 440명이 응답했습니다. 응답자 평균 연령은 36.9세였고, 절반은 1~4호선에서, 나머지 절반은 5~8호선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근무자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들의 '우울' 수준이었습니다. 응답자의 47%가 고도 우울과 중등도 우울 집단으로, 정신건강의학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 상태를 전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PWI-SF 결과,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2%가 고도의 스트레스 군으로 조사됐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 '직장 내 괴롭힘' 주 1회 경험자 20%…노동강도는 '여전'

서울교통공사 입사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는 비율도 낮지 않았습니다. 응답자 20%가량은 주 1회꼴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는데, 가장 심각한 건 '업무과중' 문제였습니다.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매일 '직장 내에서 주체할 수 없이 업무량이 많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2%에 달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누군가 나의 업무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주지 않은 적이 있다',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목표나 기한이 정해진 일들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 나의 일에 대해 과도하게 모니터링을 한 적이 있다' 순으로 많은 답변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소속일 때와 비교해서, 정규직이 된 뒤로 노동강도가 줄었을까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50%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졌다고 답했습니다. 휴게시간은 오히려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조금 더 많았고, 육체적 부하도 늘었다는 답변이 더 많았습니다.

■ 무시, 폭언, 닦달, 소외…"찬밥신세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도 담겼습니다.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 등의 문제는 물론, 다른 직원들의 하대와 무시, 폭언 등에 고통을 호소하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스크린도어 종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일부 옮겨 보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사례

*관리자에게 '전환해 줬으면 고마워해라! 이래서 전환해 주면 안 됐다' 등의 폭언을 들음
*CCTV 감시, 타부서의 무시, 경멸, 다시 업무직으로 돌려야 한다, 너무 빨리 되었다, 정규직 되었으니 너희는 그렇게 일해도 된다, 이 정도 차이를 감수하고 만족해라 등.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
*공채 입사자와 무기 계약직에서 신분이 전환된 근로자를 다르게 대함
*역무원의 갑질: 같은 회사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욕을 하거나 비속어 등을 섞어 말을 하며, 때로는 작업사항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시하거나 이런 것도 해결 못 하느냐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줌
*PSD(승강장 안전문)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제대로 조직체계(본사 처, 현업사업소)가 없어 회사 내에 소외된 조직처럼 보인다. 서울교통공사의 같은 구성원으로서 찬밥신세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을 살펴볼까요? 다른 직종에서 스크린도어 노동자를 괴롭히는 유형은 '트집 잡기', '태도지적', '무시하기', '감시', '인격 비하', '차별'로 나타났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배경에 대해 기존 정규직들이 과거 하청업체 노동자로 있을 때 대하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입사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때보다 더욱 반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부 갈등도 있었습니다. 파견 와있는 4급 이상의 관리자들이 원래 스크린도어 직종 소속이 아니다 보니, 이 분야를 잘 모른 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준비 없이 급하게 만들어져, 아직 직제 정리조차 되지 않은 신생 조직이 갖는 한계라고 분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공통으로 '출동 닦달'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신고가 접수된 역으로 가고 있는데도 역무원이나 관제센터, 관리자 등이 계속 빨리 오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늘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

*정규시험을 봐서 절차를 밟아서 입사한 사람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하겠다. 너희 정규직 됐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공사로 넘어오고 나서는 눈빛이 좀 달라요. 솔직히 배려와 인정까지 바라지도 않고 인사나 좀 받아주면 좋겠어요. 거의 제가 느끼기에 70, 80%는 인사도 안 받고.
*(관리자가) 관리를 안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뭔가 마찰이 생기면 자기 경력에 금이 갈 거로 생각한다고밖에 생각이 안 들고.
*빨리빨리 출동하라고. 저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못 갑니다. 빨리 못 가요. 전차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전철사고 나면 우리도 못 가요.
*관제에서는 빨리 가라. 언제 도착하느냐. 계속 전화가 와요. 한 10분 안에 2~3통.

이 밖에도 높은 노동강도와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현장 관리소가 1~4호선은 4개, 5~8호선은 8개뿐이라 노동자들의 이동 거리가 길어지고 담당하는 역사가 너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충분한 여유 인력이 없어 휴게시간을 제대로 확보한다거나 작업 과정에서 2인 1조가 깨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 등도 언급됐습니다.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

*인원도 관리소 증설도 필요하다. 역사가 너무 많다. 일이 과중하게 지워져 있다.
*애매한 것들이 있으면 일단 저희 거예요. 무조건 전화가 와요. 선로에서 불났다는데 PSD 빨리 출동하세요. 왜요? 근데 가요 또. 저희는 '저희 것 아니다' 이야기했는데도 그냥 너희가 해라, 그래서 했어요. 만보기 켜고 다니면 집에 도착하면 25,000보 정도가 떠요.
*외부 업체에 있을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됐는데 여기 와서는 시키는 것도 있지만 뭐가 계속 추가가 돼요. 뭐 협의도 없이 계속 추가가 되니까.
*2인 1조로 나가는데 한 명은 작업하고 한 명은 신호보고 있으면 작업하는 동안의 안전, 만약에 감전이 오거나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 스크린도어 종사자는 '낙동강 오리알'?…"소외와 차별 해결해야"

이번 연구를 총괄한 한인임 노동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스크린도어 종사자들의 우울과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공사 차원의 고민과 정책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연구원은 "지금 스크린도어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된 지 3~4년이 돼가는데 조직 체계가 정비가 안 됐다"며 "이쪽 분야만 유일하게 본사와 연결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의견을 개진해도 들어주지 않아 낙동강 오리알처럼 둥둥 떠 있다"라며 "노동자들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조직이라는 굉장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선과제를 수립해 추진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수영 서울교통공사 기술계획처 팀장은 이미 직원들에 대한 심리상담을 진행했고, 괴롭힘 예방교육과 관리소 근무환경 개선 조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관리소를 추가로 만들어 업무 강도를 낮추는 방안은 장기과제로 추진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안전보다 효율을, 사람보다 비용을 중시하다 발생한 5년 전 구의역 사고. 또 다른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깊은 고민과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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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의역 참사’ 5년…스크린도어 노동자 절반은 ‘우울증’ 호소
    • 입력 2021-05-28 18:15:49
    취재K

2016년 5월 28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19살 '김 군'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에 온 사회가 분노했고, 안전보다 효율을 생각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도 수면 위로 드러나, 각종 개선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것도 적지 않습니다. 2018년 3월 김 군의 동료들은 모두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이 됐고, 2인 1조 근무도 당연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선로 쪽에 매달려야 하는 위험한 작업은 열차 운행이 모두 종료된 야간에만 가능하도록 바뀌었고, 장애 신고가 접수된 승강장에 무조건 1시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는 지침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들은 업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난 걸까요?

■ 스크린도어 종사자 절반은 '심한 우울'…'고도 스트레스'도 92%

KBS는 서울교통공사가 발주하고 원진직업병관리재단부설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함께 연구한 129쪽 분량의 '서울교통공사 승강장안전문분야 종사자 직무스트레스 등 실태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분야 근무자 전원 4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 가운데 440명이 응답했습니다. 응답자 평균 연령은 36.9세였고, 절반은 1~4호선에서, 나머지 절반은 5~8호선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근무자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들의 '우울' 수준이었습니다. 응답자의 47%가 고도 우울과 중등도 우울 집단으로, 정신건강의학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 상태를 전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PWI-SF 결과,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2%가 고도의 스트레스 군으로 조사됐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 '직장 내 괴롭힘' 주 1회 경험자 20%…노동강도는 '여전'

서울교통공사 입사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는 비율도 낮지 않았습니다. 응답자 20%가량은 주 1회꼴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는데, 가장 심각한 건 '업무과중' 문제였습니다.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매일 '직장 내에서 주체할 수 없이 업무량이 많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2%에 달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누군가 나의 업무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주지 않은 적이 있다',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목표나 기한이 정해진 일들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 나의 일에 대해 과도하게 모니터링을 한 적이 있다' 순으로 많은 답변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소속일 때와 비교해서, 정규직이 된 뒤로 노동강도가 줄었을까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50%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졌다고 답했습니다. 휴게시간은 오히려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조금 더 많았고, 육체적 부하도 늘었다는 답변이 더 많았습니다.

■ 무시, 폭언, 닦달, 소외…"찬밥신세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도 담겼습니다.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 등의 문제는 물론, 다른 직원들의 하대와 무시, 폭언 등에 고통을 호소하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스크린도어 종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일부 옮겨 보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사례

*관리자에게 '전환해 줬으면 고마워해라! 이래서 전환해 주면 안 됐다' 등의 폭언을 들음
*CCTV 감시, 타부서의 무시, 경멸, 다시 업무직으로 돌려야 한다, 너무 빨리 되었다, 정규직 되었으니 너희는 그렇게 일해도 된다, 이 정도 차이를 감수하고 만족해라 등.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
*공채 입사자와 무기 계약직에서 신분이 전환된 근로자를 다르게 대함
*역무원의 갑질: 같은 회사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욕을 하거나 비속어 등을 섞어 말을 하며, 때로는 작업사항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시하거나 이런 것도 해결 못 하느냐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줌
*PSD(승강장 안전문)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제대로 조직체계(본사 처, 현업사업소)가 없어 회사 내에 소외된 조직처럼 보인다. 서울교통공사의 같은 구성원으로서 찬밥신세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을 살펴볼까요? 다른 직종에서 스크린도어 노동자를 괴롭히는 유형은 '트집 잡기', '태도지적', '무시하기', '감시', '인격 비하', '차별'로 나타났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배경에 대해 기존 정규직들이 과거 하청업체 노동자로 있을 때 대하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입사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때보다 더욱 반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부 갈등도 있었습니다. 파견 와있는 4급 이상의 관리자들이 원래 스크린도어 직종 소속이 아니다 보니, 이 분야를 잘 모른 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준비 없이 급하게 만들어져, 아직 직제 정리조차 되지 않은 신생 조직이 갖는 한계라고 분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공통으로 '출동 닦달'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신고가 접수된 역으로 가고 있는데도 역무원이나 관제센터, 관리자 등이 계속 빨리 오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늘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

*정규시험을 봐서 절차를 밟아서 입사한 사람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하겠다. 너희 정규직 됐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공사로 넘어오고 나서는 눈빛이 좀 달라요. 솔직히 배려와 인정까지 바라지도 않고 인사나 좀 받아주면 좋겠어요. 거의 제가 느끼기에 70, 80%는 인사도 안 받고.
*(관리자가) 관리를 안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뭔가 마찰이 생기면 자기 경력에 금이 갈 거로 생각한다고밖에 생각이 안 들고.
*빨리빨리 출동하라고. 저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못 갑니다. 빨리 못 가요. 전차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전철사고 나면 우리도 못 가요.
*관제에서는 빨리 가라. 언제 도착하느냐. 계속 전화가 와요. 한 10분 안에 2~3통.

이 밖에도 높은 노동강도와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현장 관리소가 1~4호선은 4개, 5~8호선은 8개뿐이라 노동자들의 이동 거리가 길어지고 담당하는 역사가 너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충분한 여유 인력이 없어 휴게시간을 제대로 확보한다거나 작업 과정에서 2인 1조가 깨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 등도 언급됐습니다.

표적집단 인터뷰 내용

*인원도 관리소 증설도 필요하다. 역사가 너무 많다. 일이 과중하게 지워져 있다.
*애매한 것들이 있으면 일단 저희 거예요. 무조건 전화가 와요. 선로에서 불났다는데 PSD 빨리 출동하세요. 왜요? 근데 가요 또. 저희는 '저희 것 아니다' 이야기했는데도 그냥 너희가 해라, 그래서 했어요. 만보기 켜고 다니면 집에 도착하면 25,000보 정도가 떠요.
*외부 업체에 있을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됐는데 여기 와서는 시키는 것도 있지만 뭐가 계속 추가가 돼요. 뭐 협의도 없이 계속 추가가 되니까.
*2인 1조로 나가는데 한 명은 작업하고 한 명은 신호보고 있으면 작업하는 동안의 안전, 만약에 감전이 오거나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 스크린도어 종사자는 '낙동강 오리알'?…"소외와 차별 해결해야"

이번 연구를 총괄한 한인임 노동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스크린도어 종사자들의 우울과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공사 차원의 고민과 정책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연구원은 "지금 스크린도어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된 지 3~4년이 돼가는데 조직 체계가 정비가 안 됐다"며 "이쪽 분야만 유일하게 본사와 연결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의견을 개진해도 들어주지 않아 낙동강 오리알처럼 둥둥 떠 있다"라며 "노동자들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조직이라는 굉장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선과제를 수립해 추진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수영 서울교통공사 기술계획처 팀장은 이미 직원들에 대한 심리상담을 진행했고, 괴롭힘 예방교육과 관리소 근무환경 개선 조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관리소를 추가로 만들어 업무 강도를 낮추는 방안은 장기과제로 추진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안전보다 효율을, 사람보다 비용을 중시하다 발생한 5년 전 구의역 사고. 또 다른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깊은 고민과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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