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중심·최규하는 무력해”…美 기밀문서 속 5·18

입력 2021.06.02 (13:47) 수정 2021.06.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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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연합뉴스사진 출처: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전후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 일부가 오늘(2일) 한국에 공개됐습니다.

지난해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미국이 관련 기밀문서 43건을 한국 측에 공개한 지 1년여 만에, 문서 사본 14건이 추가로 전달된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1980년에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이래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됐지만 미국에서도 올해 5월에 이르러서야 가려진 단어나 문장 없이 내용 전체가 기밀해제됐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기밀해제에 대한 국내적 관심과 역사적 의미를 미국 측에 설명해 왔고, 문서 추가 기밀해제라는 성과를 이루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특히 이번 공개는 대외정책 기조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공개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문서들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에 곧 게시될 예정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 진상조사위) 측 도움을 받아, 기밀문건의 몇 가지 주요 내용을 추려 소개합니다.

■ 실세로 떠오르던 전두환…美 국무부의 딜레마

12·12 군사반란 이후인 1980년 3월 13일,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던 사이러스 밴스는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에게 "코리아 포커스: 한국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주제로 한 문서를 보냅니다. 여기에는 전두환의 이름이 7번 등장하는데요.

국무부는 "현 시점에서 분명한 문제는 전두환 장군의 권력과 확장(pervasiveness), 그가 만들어 낸 정보·보안망"이라면서, 일주일 전 있었다고 보고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사이 만남에서의 분위기에 "다소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1980년 3월 13일 미국 국무부 장관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Korea focus - our stance with the ROK military” 문건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문단에만 전두환의 이름이 4번 등장한다.1980년 3월 13일 미국 국무부 장관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Korea focus - our stance with the ROK military” 문건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문단에만 전두환의 이름이 4번 등장한다.

미 국무부는 당시 만남을 통해 전두환이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미군사령관이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나의 환심을 사려한다'는 식의 해석을 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반란을 주도한 군부세력을 지지하고 있다거나 실세로 인정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전두환에게 가지 않을지 우려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두환에게 미국이 특별한 명성이나 관심을 부여하는 양 보이는 것이 미 국무부 입장에선 그리 유용해보이진 않는다고 썼습니다.

미 국무부는 그러면서도 한국군의 내부 갈등이 지속될 경우, 6월로 예정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개최를 연기하겠다, 즉 미국의 군사원조를 끊을 수도 있다는 미국의 메시지를 가능하면 전두환에게도 적절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계엄사령부뿐 아니라 전두환에게도 중요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 것은, 미국도 채널이 전두환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미국의 접촉이 전두환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당시 미국 정부의 딜레마가 이번 기밀해제로 확인됐다"고 평가했습니다.

■ 5·18의 시작…美 대사관 "전두환이 중심, 최규하는 무력해"

한국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결정한 1980년 5월 17일,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미 국무부에 급히 전문(電文)을 보냅니다. "서울에서의 강력한 탄압(Crackdown in Seoul)"이 이 문건의 주제였습니다.

전문의 발신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5월 17일 오후 4시 반이었는데, 이를 근거로 미국이 5월 18일 0시를 기해 실시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적어도 시행 7시간 반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부분을 보면, 당시 미 대사관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한국 군부세력에 대해 "전두환이 중심적(central)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전두환의 역할이 반드시 결정적(decisive)이라고 볼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이미 군부의 권력 장악이 진행 중이라면서, 최규하 대통령과 내각은 군부의 결정을 인가(sanctify)해 왔다고 썼는데요. 특히 "A helpless president"라는 표현이 이번 기밀해제로 새롭게 확인돼, '최규하는 무력한 대통령'이라는 당시 미국 측 관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공개됐던 1980년 5월 ‘Crackdown in Seoul’ 문건(위)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기밀해제된 동일한 문건(아래)에는 전두환과 최규하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미국 측의 평가가 드러나 있다.기존에 공개됐던 1980년 5월 ‘Crackdown in Seoul’ 문건(위)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기밀해제된 동일한 문건(아래)에는 전두환과 최규하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미국 측의 평가가 드러나 있다.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계기로 미국도 전두환을 사실상의 지도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문건의 시사점을 짚었습니다.

또 주한 미국대사관 측이 "전두환이 당시 상당히 중요한 리드를 하는 것 같은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봤다"면서 "이는 한국에 전두환 개인뿐 아니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쿠데타 세력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확인된 "helpless"라는 표현에 대해선 "결국 당시 최규하가 거의 실권을 잃었다고 미 정부도 노골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12·12 그 후…한국 국방장관 "난 아무 힘 없어" 대통령 "군 지휘계통 회복"

그 외에 주목할 만한 부분은 1979년 12·12 사태로부터 1달이 지난 뒤 미국과 한국 관료들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레스터 울프 당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이 1980년 1월 7~8일 주영복 국방장관과 최규하 대통령을 잇따라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1980년 1월 10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고했는데요.

문건에 따르면 울프 의원은 주영복 장관에게 한국군의 통합·결속이 매우 중요하며 민정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했습니다. 또 미 의회와 국민들은 미 행정부가 한국 군부에게 이미 표현했던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 장관은 "올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와 민정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나는 군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나를 꼭 도와줘야 한다( I have no influence over the army. You must help me.)"라고도 말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대해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남침 위협 우려를 전하며 한국 군부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한 다른 나라 의원에게 주영복 장관이 노골적으로 자신에겐 군부를 통제할 실권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당시 군부의 실세가 누구인지,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문서"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한국 군부의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새롭게 형성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1980년 1월 10일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Codel wolff meeting with ROK president Choi kyu hah” 문건의 일부다. 같은 해 1월 8일 청와대를 방문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의원 등에게 최규하 대통령이 한 여러 발언이 정리돼 있다.1980년 1월 10일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Codel wolff meeting with ROK president Choi kyu hah” 문건의 일부다. 같은 해 1월 8일 청와대를 방문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의원 등에게 최규하 대통령이 한 여러 발언이 정리돼 있다.

한편 같은 날 미 국무부에 전달된 또 다른 문건을 보면, 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를 찾은 울프 의원에게 향후 정국 구상을 밝히면서 "일부 군 간부들 간의 다툼(12·12 사태)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 그 상황은 해결됐고 군 지휘계통은 회복됐다"고 말했습니다.

최 대통령은 그러면서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지 않고, 한국군이 국방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이어나갈 것으로 자신한다"면서 "한국의 안정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건을 두고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최 대통령이 교과서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실권없는 대통령의 한탄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 연구자들 "美 국방부 문건이 핵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 국무부 기밀문서 공개의 출발점은, 2년 전 5·18 연구자들의 요청이었습니다. 미 국무부 문서 가운데 80건을 추려, 진상 규명을 위해 이 문건들은 가려진 부분없이 완전히 공개해달라고 외교부를 통해 미국에 타진한 것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미국이 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80건 가운데 아직 완전 공개되지 않은 관련 미 국무부 문건은 24건 남았습니다.

5·18 연구자들은 미 국무부 문건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미 국방부의 5·18 관련 문건 공개를 꼽고 있습니다. 이는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을 뿐더러, 구체적으로 어떤 제목이나 주제의 문건이 생산됐는지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용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발포 명령 등) 진상 규명을 위해선 당시 계엄군들의 군사 작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국내에선 많이 유실돼 버리거나 자의적으로 왜곡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시 한국군에 대한 군사작전통제권은 미군, 한미연합사령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의 작전 활동에 대해선 한국군에서 연합사에 사전 통보했고 미국에도 사본이 남아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18 진상조사위는 최근 한국 국방부 채널을 통해 미 국방부에 관련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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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이 중심·최규하는 무력해”…美 기밀문서 속 5·18
    • 입력 2021-06-02 13:47:24
    • 수정2021-06-02 13: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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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전후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 일부가 오늘(2일) 한국에 공개됐습니다.

지난해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미국이 관련 기밀문서 43건을 한국 측에 공개한 지 1년여 만에, 문서 사본 14건이 추가로 전달된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1980년에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이래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됐지만 미국에서도 올해 5월에 이르러서야 가려진 단어나 문장 없이 내용 전체가 기밀해제됐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기밀해제에 대한 국내적 관심과 역사적 의미를 미국 측에 설명해 왔고, 문서 추가 기밀해제라는 성과를 이루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특히 이번 공개는 대외정책 기조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공개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문서들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에 곧 게시될 예정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 진상조사위) 측 도움을 받아, 기밀문건의 몇 가지 주요 내용을 추려 소개합니다.

■ 실세로 떠오르던 전두환…美 국무부의 딜레마

12·12 군사반란 이후인 1980년 3월 13일,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던 사이러스 밴스는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에게 "코리아 포커스: 한국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주제로 한 문서를 보냅니다. 여기에는 전두환의 이름이 7번 등장하는데요.

국무부는 "현 시점에서 분명한 문제는 전두환 장군의 권력과 확장(pervasiveness), 그가 만들어 낸 정보·보안망"이라면서, 일주일 전 있었다고 보고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사이 만남에서의 분위기에 "다소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1980년 3월 13일 미국 국무부 장관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Korea focus - our stance with the ROK military” 문건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문단에만 전두환의 이름이 4번 등장한다.
미 국무부는 당시 만남을 통해 전두환이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미군사령관이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나의 환심을 사려한다'는 식의 해석을 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반란을 주도한 군부세력을 지지하고 있다거나 실세로 인정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전두환에게 가지 않을지 우려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두환에게 미국이 특별한 명성이나 관심을 부여하는 양 보이는 것이 미 국무부 입장에선 그리 유용해보이진 않는다고 썼습니다.

미 국무부는 그러면서도 한국군의 내부 갈등이 지속될 경우, 6월로 예정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개최를 연기하겠다, 즉 미국의 군사원조를 끊을 수도 있다는 미국의 메시지를 가능하면 전두환에게도 적절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계엄사령부뿐 아니라 전두환에게도 중요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 것은, 미국도 채널이 전두환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미국의 접촉이 전두환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당시 미국 정부의 딜레마가 이번 기밀해제로 확인됐다"고 평가했습니다.

■ 5·18의 시작…美 대사관 "전두환이 중심, 최규하는 무력해"

한국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결정한 1980년 5월 17일,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미 국무부에 급히 전문(電文)을 보냅니다. "서울에서의 강력한 탄압(Crackdown in Seoul)"이 이 문건의 주제였습니다.

전문의 발신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5월 17일 오후 4시 반이었는데, 이를 근거로 미국이 5월 18일 0시를 기해 실시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적어도 시행 7시간 반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부분을 보면, 당시 미 대사관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한국 군부세력에 대해 "전두환이 중심적(central)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전두환의 역할이 반드시 결정적(decisive)이라고 볼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이미 군부의 권력 장악이 진행 중이라면서, 최규하 대통령과 내각은 군부의 결정을 인가(sanctify)해 왔다고 썼는데요. 특히 "A helpless president"라는 표현이 이번 기밀해제로 새롭게 확인돼, '최규하는 무력한 대통령'이라는 당시 미국 측 관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공개됐던 1980년 5월 ‘Crackdown in Seoul’ 문건(위)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기밀해제된 동일한 문건(아래)에는 전두환과 최규하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미국 측의 평가가 드러나 있다.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계기로 미국도 전두환을 사실상의 지도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문건의 시사점을 짚었습니다.

또 주한 미국대사관 측이 "전두환이 당시 상당히 중요한 리드를 하는 것 같은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봤다"면서 "이는 한국에 전두환 개인뿐 아니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쿠데타 세력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확인된 "helpless"라는 표현에 대해선 "결국 당시 최규하가 거의 실권을 잃었다고 미 정부도 노골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12·12 그 후…한국 국방장관 "난 아무 힘 없어" 대통령 "군 지휘계통 회복"

그 외에 주목할 만한 부분은 1979년 12·12 사태로부터 1달이 지난 뒤 미국과 한국 관료들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레스터 울프 당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이 1980년 1월 7~8일 주영복 국방장관과 최규하 대통령을 잇따라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1980년 1월 10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고했는데요.

문건에 따르면 울프 의원은 주영복 장관에게 한국군의 통합·결속이 매우 중요하며 민정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했습니다. 또 미 의회와 국민들은 미 행정부가 한국 군부에게 이미 표현했던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 장관은 "올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와 민정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나는 군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나를 꼭 도와줘야 한다( I have no influence over the army. You must help me.)"라고도 말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대해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남침 위협 우려를 전하며 한국 군부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한 다른 나라 의원에게 주영복 장관이 노골적으로 자신에겐 군부를 통제할 실권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당시 군부의 실세가 누구인지,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문서"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한국 군부의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새롭게 형성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1980년 1월 10일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Codel wolff meeting with ROK president Choi kyu hah” 문건의 일부다. 같은 해 1월 8일 청와대를 방문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의원 등에게 최규하 대통령이 한 여러 발언이 정리돼 있다.
한편 같은 날 미 국무부에 전달된 또 다른 문건을 보면, 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를 찾은 울프 의원에게 향후 정국 구상을 밝히면서 "일부 군 간부들 간의 다툼(12·12 사태)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 그 상황은 해결됐고 군 지휘계통은 회복됐다"고 말했습니다.

최 대통령은 그러면서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지 않고, 한국군이 국방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이어나갈 것으로 자신한다"면서 "한국의 안정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건을 두고 5·18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최 대통령이 교과서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실권없는 대통령의 한탄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 연구자들 "美 국방부 문건이 핵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 국무부 기밀문서 공개의 출발점은, 2년 전 5·18 연구자들의 요청이었습니다. 미 국무부 문서 가운데 80건을 추려, 진상 규명을 위해 이 문건들은 가려진 부분없이 완전히 공개해달라고 외교부를 통해 미국에 타진한 것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미국이 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80건 가운데 아직 완전 공개되지 않은 관련 미 국무부 문건은 24건 남았습니다.

5·18 연구자들은 미 국무부 문건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미 국방부의 5·18 관련 문건 공개를 꼽고 있습니다. 이는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을 뿐더러, 구체적으로 어떤 제목이나 주제의 문건이 생산됐는지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용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발포 명령 등) 진상 규명을 위해선 당시 계엄군들의 군사 작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국내에선 많이 유실돼 버리거나 자의적으로 왜곡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시 한국군에 대한 군사작전통제권은 미군, 한미연합사령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의 작전 활동에 대해선 한국군에서 연합사에 사전 통보했고 미국에도 사본이 남아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18 진상조사위는 최근 한국 국방부 채널을 통해 미 국방부에 관련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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