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게 없는 ‘희망급식 바우처’ 논란…결국 삼각김밥도 허용

입력 2021.06.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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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서울시교육청의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코로나19로 급식을 먹기 어려워진 학생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제로페이 플랫폼을 이용해 한 사람당 10만 원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일종의 '대체 급식' 사업인데요.

문제는 사용처와 구입 품목이었습니다. 교육청이 오직 편의점에서만, 학교급식 기준에 맞춰 1끼당 나트륨 1,067mg 이내, 990kcal 이내, 단백질 11.7g 이상인 10개 군의 품목만 구매할 수 있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편의점 음식, 당연히 많지 않았겠죠. 도시락은 나트륨이 높기 일쑤였고 가장 간편한 삼각김밥은 아예 허용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흰 우유는 되지만 딸기우유나 초코우유는 안 되고, 떠먹는 요구르트는 되지만 마시는 요구르트는 안 되는 등 알쏭달쏭한 기준 탓에 소비자도, 판매자도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살 수 있는 물건은 이른 아침부터 품절돼버리기도 했죠.

■ "다 안 되면 대체 뭘 사야 하나"…학부모 불만 속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앞다퉈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서울 목동에 살며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차 모 씨는 "분식점만 허용해줘도 아이들이 김밥을 사 먹을 수 있고, 아니면 차라리 온누리상품권으로 시장에서 야채나 쌀을 살 수 있게 해줘도 괜찮았을 것"이라며 "아이에게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이고 싶진 않다"고 밝혔습니다. 차 씨는 "제가 사는 곳은 학교가 밀집돼 있어 편의점 상품들이 곧잘 바닥이 난다"며 "지금 훈제계란으로 10만 원을 채워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편의점들은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겨냥해 새로운 과일 꾸러미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편의점들은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겨냥해 새로운 과일 꾸러미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 자양동에 사는 이 모 씨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위해 어떤 음식을 사야 할지 고민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씨는 "도시락을 한 번 사봤는데, 인스턴트라 너무 짜고 맛도 별로였다"며 "그마저도 요즘은 편의점에 가면 도시락은 바닥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이번 사업을 겨냥해 편의점에서 기존에 없던 과일 상품을 출시하긴 했지만 "시장의 3배 가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씨는 "너무 비싼데도 솔직히 살 게 과일밖에 없어서 그냥 사 먹고 있다"며 "아이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족발, 보쌈 등도 구매가 안 되더라"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 편의점 "도시락·김밥 유통기한 하루인데…품목 안내도 어려워"

편의점도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바우처 상품은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을 무작정 많이 들여놓기도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직원들이 바우처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모두 외우고 안내하기도 쉽지 않아,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다시 빼고 담는 불편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의 모습. 바우처 상품을 구별하기 어려워 종이에 직접 적어 안내해뒀다.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의 모습. 바우처 상품을 구별하기 어려워 종이에 직접 적어 안내해뒀다.

서울 영등포구의 편의점 점주 이 모 씨는 "도시락이나 줄김밥, 샌드위치의 경우 유통기한이 하루인데 편의점 입장에서는 많이 사놨다가 안 팔리면 폐기해야 하니 손해"라며 "그냥 현금 10만 원을 주면 회전이 빠르고 좋을 텐데 품목 제한을 두니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불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용 모 씨는 "바우처 손님 열에 여덟은 어떤 상품이 구매 가능한지 모르고 온다"며 "'이건 왜 안 되냐' 항의하는 사람도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용 씨는 특히 "도시락과 샌드위치는 이름은 비슷한데 찍어보면 다른 상품인 경우가 많다"며 "품목 안내가 잘 되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 서울시교육청, 바우처 품목 확대…"반찬 늘린 삼각김밥 출시된다"

이처럼 현장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자, 서울시교육청은 결국 품목 확대를 발표했습니다. 바우처 시행 2주 만에 나온 결정입니다.

우선, 가장 많은 민원이 쏟아졌던 '삼각김밥(주먹밥)'이 구매 가능 품목에 포함됐습니다. 당초 삼각김밥은 밥양 대비 반찬(토핑)이 부족해 학생 영양 관리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었는데요. 현재 판매되는 제품으로는 도저히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웠는지, 서울시교육청은 아예 삼각김밥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협회에 이번 바우처 사업을 계기로 삼각김밥의 질을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며 영양 성분이 개선된 삼각김밥이 곧 출시될 거라고 밝혔습니다. 주로 밥 대비 반찬의 비율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적게는 33%에서 많게는 200%까지 반찬의 양을 늘린 제품 등이 오는 17일 전후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편의점이 바우처 사업에 발맞춰 이미 새롭게 내놓은 상품도 있습니다. 사업 초기와 비교하면 학교급식 기준안에 들어오는 도시락은 13종, 김밥류는 7종이 추가로 출시된 상황입니다.


이 밖에도 논란이 많았던 햇반, 생수, 국류(컵국), 김류, 치즈류 등이 추가 품목으로 선정됐습니다. '밥 한 공기', '물 한 통' 사기 어렵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한국편의점협회에 해당 물품들의 충분한 물량 확보와 편의점 내 별도 배치 등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 추가된 품목들은 편의점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늦어도 오는 7일부터는 바우처로 구입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원격수업 중인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해소하고 학부모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추진된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취지는 좋았지만,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에 '탁상행정'이란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고심 끝에 내놓은 이번 해결책이 현장에 잘 스며들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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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게 없는 ‘희망급식 바우처’ 논란…결국 삼각김밥도 허용
    • 입력 2021-06-03 07:00:46
    취재K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서울시교육청의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코로나19로 급식을 먹기 어려워진 학생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제로페이 플랫폼을 이용해 한 사람당 10만 원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일종의 '대체 급식' 사업인데요.

문제는 사용처와 구입 품목이었습니다. 교육청이 오직 편의점에서만, 학교급식 기준에 맞춰 1끼당 나트륨 1,067mg 이내, 990kcal 이내, 단백질 11.7g 이상인 10개 군의 품목만 구매할 수 있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편의점 음식, 당연히 많지 않았겠죠. 도시락은 나트륨이 높기 일쑤였고 가장 간편한 삼각김밥은 아예 허용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흰 우유는 되지만 딸기우유나 초코우유는 안 되고, 떠먹는 요구르트는 되지만 마시는 요구르트는 안 되는 등 알쏭달쏭한 기준 탓에 소비자도, 판매자도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살 수 있는 물건은 이른 아침부터 품절돼버리기도 했죠.

■ "다 안 되면 대체 뭘 사야 하나"…학부모 불만 속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앞다퉈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서울 목동에 살며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차 모 씨는 "분식점만 허용해줘도 아이들이 김밥을 사 먹을 수 있고, 아니면 차라리 온누리상품권으로 시장에서 야채나 쌀을 살 수 있게 해줘도 괜찮았을 것"이라며 "아이에게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이고 싶진 않다"고 밝혔습니다. 차 씨는 "제가 사는 곳은 학교가 밀집돼 있어 편의점 상품들이 곧잘 바닥이 난다"며 "지금 훈제계란으로 10만 원을 채워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편의점들은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을 겨냥해 새로운 과일 꾸러미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 자양동에 사는 이 모 씨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위해 어떤 음식을 사야 할지 고민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씨는 "도시락을 한 번 사봤는데, 인스턴트라 너무 짜고 맛도 별로였다"며 "그마저도 요즘은 편의점에 가면 도시락은 바닥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이번 사업을 겨냥해 편의점에서 기존에 없던 과일 상품을 출시하긴 했지만 "시장의 3배 가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씨는 "너무 비싼데도 솔직히 살 게 과일밖에 없어서 그냥 사 먹고 있다"며 "아이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족발, 보쌈 등도 구매가 안 되더라"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 편의점 "도시락·김밥 유통기한 하루인데…품목 안내도 어려워"

편의점도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바우처 상품은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을 무작정 많이 들여놓기도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직원들이 바우처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모두 외우고 안내하기도 쉽지 않아,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다시 빼고 담는 불편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의 모습. 바우처 상품을 구별하기 어려워 종이에 직접 적어 안내해뒀다.
서울 영등포구의 편의점 점주 이 모 씨는 "도시락이나 줄김밥, 샌드위치의 경우 유통기한이 하루인데 편의점 입장에서는 많이 사놨다가 안 팔리면 폐기해야 하니 손해"라며 "그냥 현금 10만 원을 주면 회전이 빠르고 좋을 텐데 품목 제한을 두니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불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용 모 씨는 "바우처 손님 열에 여덟은 어떤 상품이 구매 가능한지 모르고 온다"며 "'이건 왜 안 되냐' 항의하는 사람도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용 씨는 특히 "도시락과 샌드위치는 이름은 비슷한데 찍어보면 다른 상품인 경우가 많다"며 "품목 안내가 잘 되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 서울시교육청, 바우처 품목 확대…"반찬 늘린 삼각김밥 출시된다"

이처럼 현장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자, 서울시교육청은 결국 품목 확대를 발표했습니다. 바우처 시행 2주 만에 나온 결정입니다.

우선, 가장 많은 민원이 쏟아졌던 '삼각김밥(주먹밥)'이 구매 가능 품목에 포함됐습니다. 당초 삼각김밥은 밥양 대비 반찬(토핑)이 부족해 학생 영양 관리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었는데요. 현재 판매되는 제품으로는 도저히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웠는지, 서울시교육청은 아예 삼각김밥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편의점협회에 이번 바우처 사업을 계기로 삼각김밥의 질을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며 영양 성분이 개선된 삼각김밥이 곧 출시될 거라고 밝혔습니다. 주로 밥 대비 반찬의 비율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적게는 33%에서 많게는 200%까지 반찬의 양을 늘린 제품 등이 오는 17일 전후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편의점이 바우처 사업에 발맞춰 이미 새롭게 내놓은 상품도 있습니다. 사업 초기와 비교하면 학교급식 기준안에 들어오는 도시락은 13종, 김밥류는 7종이 추가로 출시된 상황입니다.


이 밖에도 논란이 많았던 햇반, 생수, 국류(컵국), 김류, 치즈류 등이 추가 품목으로 선정됐습니다. '밥 한 공기', '물 한 통' 사기 어렵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한국편의점협회에 해당 물품들의 충분한 물량 확보와 편의점 내 별도 배치 등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 추가된 품목들은 편의점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늦어도 오는 7일부터는 바우처로 구입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원격수업 중인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해소하고 학부모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추진된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취지는 좋았지만,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에 '탁상행정'이란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고심 끝에 내놓은 이번 해결책이 현장에 잘 스며들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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