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인데…”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 50대 건설 노동자

입력 2021.06.0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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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아버지 생신인데... 평생 제삿밥을 차려야 합니다."

KBS 취재진과 마주 앉은 A씨의 딸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A씨는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 씨의 59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

가족들은 A 씨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씨가 지내던 방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걸어놓았던 빨래며 옷가지도 그대로입니다. 침대 한 가운데엔 A 씨의 옷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경찰 등은 A 씨의 사망 시각을 발견되기 하루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도대체 왜, 숨지고 하루가 지나서야 발견된 것일까요?

■ 하루 전 실종신고 했지만 못 찾아…다음 날에서야 발견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지난달 25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을 나선 A씨가 집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5살 난 손주의 하원 시간을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었던 A 씨였습니다. 매일 오후 5시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여 손주가 자신을 창피해할까 봐 늘 샤워를 한 뒤 마중나갔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  유족 제공.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 유족 제공.

하지만 그날엔 5시 50분이 넘도록 A 씨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A 씨의 딸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근처 응급실과 119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A 씨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저녁 8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건설현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A 씨의 지인으로부터 A씨가 쌍촌동 인근의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A 씨의 딸은 경찰에 "CCTV를 통해 아버지가 타고 나간 차를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쌍촌동 인근의 한 건설현장에 직접 가보자고도 말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날 저녁, 경찰도 A 씨를 찾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고 현장.A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고 현장.

결국 A 씨는 다음 날, A 씨 딸의 연락을 받고 A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동료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콘크리트 마감 작업을 하던 A 씨가 1m 정도의 발판에서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고 119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A 씨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경찰은 A 씨의 사망 시각을 발견되기 하루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숨지고 난 뒤 오랫동안 방치된 겁니다.

A 씨의 딸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안전관리자는 무엇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한 명만 돌아봤어도 그다음 날 그렇게 차갑게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2인 1조 원칙도, 퇴근 관리도 이뤄지지 않아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

사고가 난 건설현장에는 업체 30여 곳에 소속된 노동자 100여 명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안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을 고려해 노동자들의 발열 체크를 하는 등 출근은 기록하고 있지만, 퇴근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건설현장의 특성상 퇴근 시간이 제각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

2인 1조 작업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씨가 발판 위에서 떨어졌을 때, A 씨를 발견할 동료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건설현장 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통상적으로 단독 작업은 거의 배제하고 있었는데, 관리가 소홀했다"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출퇴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퇴근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

노동계에선 "기본 원칙이 지켜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건설지부의 이준상 조직부장은 "지난 2020년 기준 산업재해로 사망한 882명 가운데 52%에 해당하는 458명이 건설현장에서 숨졌다"며 "이 비율만 보더라도 건설현장이 타 직종에 비해서 사고위험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5살 난 손주의 하원을 기다리던 평범한 할아버지였던 A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더는 A 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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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생신인데…”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 50대 건설 노동자
    • 입력 2021-06-04 18:24:11
    취재K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아버지 생신인데... 평생 제삿밥을 차려야 합니다."

KBS 취재진과 마주 앉은 A씨의 딸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A씨는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 씨의 59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
가족들은 A 씨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씨가 지내던 방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걸어놓았던 빨래며 옷가지도 그대로입니다. 침대 한 가운데엔 A 씨의 옷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경찰 등은 A 씨의 사망 시각을 발견되기 하루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도대체 왜, 숨지고 하루가 지나서야 발견된 것일까요?

■ 하루 전 실종신고 했지만 못 찾아…다음 날에서야 발견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지난달 25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을 나선 A씨가 집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5살 난 손주의 하원 시간을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었던 A 씨였습니다. 매일 오후 5시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여 손주가 자신을 창피해할까 봐 늘 샤워를 한 뒤 마중나갔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  유족 제공.
하지만 그날엔 5시 50분이 넘도록 A 씨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A 씨의 딸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근처 응급실과 119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A 씨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저녁 8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건설현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A 씨의 지인으로부터 A씨가 쌍촌동 인근의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A 씨의 딸은 경찰에 "CCTV를 통해 아버지가 타고 나간 차를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쌍촌동 인근의 한 건설현장에 직접 가보자고도 말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날 저녁, 경찰도 A 씨를 찾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고 현장.
결국 A 씨는 다음 날, A 씨 딸의 연락을 받고 A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동료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콘크리트 마감 작업을 하던 A 씨가 1m 정도의 발판에서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고 119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A 씨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경찰은 A 씨의 사망 시각을 발견되기 하루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숨지고 난 뒤 오랫동안 방치된 겁니다.

A 씨의 딸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안전관리자는 무엇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한 명만 돌아봤어도 그다음 날 그렇게 차갑게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2인 1조 원칙도, 퇴근 관리도 이뤄지지 않아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
사고가 난 건설현장에는 업체 30여 곳에 소속된 노동자 100여 명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안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을 고려해 노동자들의 발열 체크를 하는 등 출근은 기록하고 있지만, 퇴근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건설현장의 특성상 퇴근 시간이 제각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
2인 1조 작업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씨가 발판 위에서 떨어졌을 때, A 씨를 발견할 동료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건설현장 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통상적으로 단독 작업은 거의 배제하고 있었는데, 관리가 소홀했다"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출퇴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퇴근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의 방. 유족 제공
노동계에선 "기본 원칙이 지켜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건설지부의 이준상 조직부장은 "지난 2020년 기준 산업재해로 사망한 882명 가운데 52%에 해당하는 458명이 건설현장에서 숨졌다"며 "이 비율만 보더라도 건설현장이 타 직종에 비해서 사고위험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5살 난 손주의 하원을 기다리던 평범한 할아버지였던 A씨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더는 A 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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