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벼랑 끝에 선 ‘15년 집권’ 네타냐후…이스라엘 정국은 지금

입력 2021.06.0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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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타냐후 총리는 영어 잘하던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지난해 초, KBS 두바이지국 취재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서 히브리대학교에도 가봤습니다. 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하다. 이스라엘 대학생, 그것도 명문 히브리대 학생 영어 실력이 왜 나랑 비슷하지? (사실 저보다는 조금 더 잘하긴 했습니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히브리대 학생이라면 다 그 정도로 영어를 하는 게 아니었나?"

알고 보니 착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주민 상당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다가 귀국한 경우가 많아서 장년층은 네타냐후 총리처럼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반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자란 젊은 세대들은 히브리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는 역시 외국어인 듯 했습니다.

■ 미국에서 성장한 베냐민 네타냐후, 최연소 취임에 최장집권 기록까지

궁금해서 네타냐후 총리의 이력을 찾아봤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194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MIT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가 27살이었던 1976년,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가던 여객기가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과 독일 적군파의 소행이었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특수부대를 보내 인질을 구출해 냅니다.

하지만 이 엔테베 작전에 참여했던 베냐민 네타냐후의 형, 요나단 네타냐후가 전사했습니다.

엔테베 작전 중 전사한 요나단 네타냐후엔테베 작전 중 전사한 요나단 네타냐후

이 사건의 영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경하고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도 6년 동안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한 그는 1988년에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 국회의원이 됐고, 1996년에는 46세의 나이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선출돼 3년 동안 재임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다시 총리 자리에 올라 다시 12년, 총 15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합니다.

■ 입장료 대신 퇴장료? 이스라엘 보수화가 뒷받침한 네타냐후 장기집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 네타냐후가 이토록 오랫동안 집권한 건 이스라엘 사회의 보수화가 뒷받침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이 반복되면서 일반 시민들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기 보다는 싸우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서안지구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정착촌 박물관도 찾아가 봤는데, 그때에도 이런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착촌 건설 초기 아랍 주민들과 전투를 하던 이스라엘 주민들이 몰살당한 곳에 지어진 박물관이었는데, 박물관 리셉션 담당자는 처음에는 이방인을 환영하면서 박물관 입장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안내를 해주시던 분과 취재진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셉션 담당자의 태도는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박물관 담당자는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어쨌든 계속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니 뭔가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또 취재진이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그런 질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취재진이 박물관을 다 보고 나가려는데 리셉션 담당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장료 내세요."

'입장료가 아니라 퇴장료인데?'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20대 젊은 여성이었던 그 담당자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이 이해가 갔습니다.

■ 네타냐후를 벼랑 끝에 서게 한 이스라엘의 '좌우합작'

그런데 이처럼 철옹성 같은 네타냐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실시된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 당이 120석 중 30석을 차지하며 제1당을 차지했지만 연대할 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반면 중도 성향 예시 아티드당과 청백당은 물론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심지어 아랍계 정당까지 모두 反네타냐후 기치 아래 뭉치면서 의석의 과반인 62석을 확보해 연립정부 구성에 나섰습니다. 말 그대로 네타냐후를 끌어내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이스라엘 내 좌우합작이 이뤄진 셈입니다.

퇴진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는 "우익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은 위험한 좌익 정부를 반대해야 한다"며 상대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코로나19 백신 조기 확보로 다른 나라보다 빠른 일상회복이라는 성과도 거뒀고, 또 지난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로 우파 강경 세력의 지지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왜 연정 구성에는 실패한 걸까요?

■ 개인 비리 혐의로 타격…초정통파 감싸기 반감도

전문가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의 미국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고 수십만 달러 어치의 선물을 받았다는 혐의, 이스라엘 일간지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이 일간지의 경쟁신문의 발행 부수를 줄이려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또 측근이 잠수함 도입 사업에 연루된 데 대해서도 네타냐후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초정통파 유대교를 지나치게 감싸는 것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 복무도 면제가 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기반 중 하나가 초정통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 총리가 바뀐다고 해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네타냐후가 물러나도 이스라엘의 보수 강경 노선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후임 총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프탈리 베네트는 네타냐후의 비서실장 출신인데 네타냐후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더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야권이 차기 총리로 지명한 나프탈리 베네트이스라엘 야권이 차기 총리로 지명한 나프탈리 베네트

또 反네타냐후 전선 자체가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집단으로 구성돼 '무지개 연정'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만큼 장기간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스라엘 보수세력은 이를 결사반대하고 있어서 국제 정세에도 변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정국은 최근 10여 년 동안 겪지 못한 변화 앞에 섰습니다. 중동 정세가 이스라엘의 정국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중동 각국도 이스라엘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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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벼랑 끝에 선 ‘15년 집권’ 네타냐후…이스라엘 정국은 지금
    • 입력 2021-06-05 08:04:35
    특파원 리포트

■ '네타냐후 총리는 영어 잘하던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지난해 초, KBS 두바이지국 취재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서 히브리대학교에도 가봤습니다. 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하다. 이스라엘 대학생, 그것도 명문 히브리대 학생 영어 실력이 왜 나랑 비슷하지? (사실 저보다는 조금 더 잘하긴 했습니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히브리대 학생이라면 다 그 정도로 영어를 하는 게 아니었나?"

알고 보니 착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주민 상당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다가 귀국한 경우가 많아서 장년층은 네타냐후 총리처럼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반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자란 젊은 세대들은 히브리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는 역시 외국어인 듯 했습니다.

■ 미국에서 성장한 베냐민 네타냐후, 최연소 취임에 최장집권 기록까지

궁금해서 네타냐후 총리의 이력을 찾아봤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194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MIT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가 27살이었던 1976년,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가던 여객기가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과 독일 적군파의 소행이었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특수부대를 보내 인질을 구출해 냅니다.

하지만 이 엔테베 작전에 참여했던 베냐민 네타냐후의 형, 요나단 네타냐후가 전사했습니다.

엔테베 작전 중 전사한 요나단 네타냐후
이 사건의 영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경하고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도 6년 동안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한 그는 1988년에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 국회의원이 됐고, 1996년에는 46세의 나이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선출돼 3년 동안 재임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다시 총리 자리에 올라 다시 12년, 총 15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합니다.

■ 입장료 대신 퇴장료? 이스라엘 보수화가 뒷받침한 네타냐후 장기집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 네타냐후가 이토록 오랫동안 집권한 건 이스라엘 사회의 보수화가 뒷받침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이 반복되면서 일반 시민들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기 보다는 싸우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서안지구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정착촌 박물관도 찾아가 봤는데, 그때에도 이런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착촌 건설 초기 아랍 주민들과 전투를 하던 이스라엘 주민들이 몰살당한 곳에 지어진 박물관이었는데, 박물관 리셉션 담당자는 처음에는 이방인을 환영하면서 박물관 입장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안내를 해주시던 분과 취재진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셉션 담당자의 태도는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박물관 담당자는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어쨌든 계속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니 뭔가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또 취재진이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그런 질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취재진이 박물관을 다 보고 나가려는데 리셉션 담당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장료 내세요."

'입장료가 아니라 퇴장료인데?'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20대 젊은 여성이었던 그 담당자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이 이해가 갔습니다.

■ 네타냐후를 벼랑 끝에 서게 한 이스라엘의 '좌우합작'

그런데 이처럼 철옹성 같은 네타냐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실시된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 당이 120석 중 30석을 차지하며 제1당을 차지했지만 연대할 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반면 중도 성향 예시 아티드당과 청백당은 물론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심지어 아랍계 정당까지 모두 反네타냐후 기치 아래 뭉치면서 의석의 과반인 62석을 확보해 연립정부 구성에 나섰습니다. 말 그대로 네타냐후를 끌어내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이스라엘 내 좌우합작이 이뤄진 셈입니다.

퇴진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는 "우익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은 위험한 좌익 정부를 반대해야 한다"며 상대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코로나19 백신 조기 확보로 다른 나라보다 빠른 일상회복이라는 성과도 거뒀고, 또 지난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로 우파 강경 세력의 지지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왜 연정 구성에는 실패한 걸까요?

■ 개인 비리 혐의로 타격…초정통파 감싸기 반감도

전문가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의 미국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고 수십만 달러 어치의 선물을 받았다는 혐의, 이스라엘 일간지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이 일간지의 경쟁신문의 발행 부수를 줄이려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또 측근이 잠수함 도입 사업에 연루된 데 대해서도 네타냐후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초정통파 유대교를 지나치게 감싸는 것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 복무도 면제가 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기반 중 하나가 초정통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 총리가 바뀐다고 해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네타냐후가 물러나도 이스라엘의 보수 강경 노선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후임 총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프탈리 베네트는 네타냐후의 비서실장 출신인데 네타냐후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더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야권이 차기 총리로 지명한 나프탈리 베네트
또 反네타냐후 전선 자체가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집단으로 구성돼 '무지개 연정'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만큼 장기간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스라엘 보수세력은 이를 결사반대하고 있어서 국제 정세에도 변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정국은 최근 10여 년 동안 겪지 못한 변화 앞에 섰습니다. 중동 정세가 이스라엘의 정국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중동 각국도 이스라엘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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