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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을 먹었고, 죽었다…그렇게 찍혔다
입력 2021.06.05 (09:01) 취재K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中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中

■ 하늘을 나는 가장 큰 새 '앨버트로스'…사체에 쓰레기가

늙은 선원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게나….
악몽 같던 옛 항해.
눈발 섞인 안개를 헤치며 앨버트로스 한 마리가 배를 따라왔네.
그런데 한 선원이 활을 쏴 앨버트로스를 죽였다네.
그리고 저주가 이어졌지.
끔찍한 저주, 갈증이 시작되었어.
여기저기서 물, 물.
한 방울도 마실 물이 없었다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뱃사람의 노래' 中

영국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쓴 장시(長詩),
'늙은 뱃사람의 노래' 중 일부입니다.


태평양의 새, 앨버트로스는 비행이 가능한 조류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 나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데다 최장 수명이 70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불립니다.


어떤 사람을 높여 부르는 '옹(翁)'이라는 칭호까지 붙은 이 새.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사체 사진으로 더 익숙해졌습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포착한 이 사진, 죽은 앨버트로스 배 안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조각들이 가득 들어찬 게 발견됐죠.


크리스 조던은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을 제작했습니다. 1시간 37분여 되는 이 영상 안에서 우리는 앨버트로스 무리가 플라스틱과 비닐, 페트병 등 쓰레기 사이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그동안 무분별하게 버려온 일회용 쓰레기가 바다를 떠다니다 이들의 서식지까지 밀려들어 간 겁니다.


그렇게 쓰레기 더미에서 살게 된 앨버트로스는 이를 먹이로 착각하고 삼켰고, 사체 뱃속에서 해양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 아름다움 너머에는 직면해야 할 '현실'이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담고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업은 계속됐고 태평양에서 발견한 일회용 쓰레기들을 소재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붓질이 닿은 유화인 것 같지만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니 색색의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가 눈에 띕니다.

이 한 폭의 작품에 담긴 일회용 라이터는 모두 5만 개. 전 세계 대양 1 평방 마일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여의도 면적에 조금 못 미치는 넓이에 들어찬 플라스틱의 총량이 작품에 쓰인 겁니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작품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여기에는 미국에서 30초마다 소비되는 페트병 뚜껑 개수인 만 6천 개가 들어 있고요,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에는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비닐봉지 24만 개가 담겼습니다.

조던 작가는 특별히 이 작품을 패러디하면서 원작에는 없는 비너스의 눈물 한 방울을 더했습니다.


인류가 버린 쓰레기뿐 아니라 환경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된 화석 연료도 소재가 됐습니다.

화석 연료를 사용할 때 1초마다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추산값은 2백40만 파운드(lb)인데요, 작가는 이를 토대로 석탄 2백40만 개로 가득 채운 작품도 선보였습니다.


특별히 이 작품은 한 발짝 멀리서 바라봤을 때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의 모습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 오염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에 인간의 욕망으로 문명이 파괴됐다는 가설을 차용해 그 의미를 더한 이 작품. 모두에게 큰 울림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의 사진 기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고됩니다. 표류하고 있는 해양 쓰레기를 찍고 그 사진을 하나씩 이어붙입니다.

그림 같지만, 오롯이 사진으로만 표현된 작품.
우리가 쓰고 마구 버린 일회용 쓰레기와 그 폐기물의 통계치가 역설적으로 새 재료가 됐습니다.


■ "슬픔의 바다를 건너 저 너머로…"

망망대해에서 앨버트로스에게 활을 겨눠 쏴 죽인 선원은 자신의 과오를 괴로워하며 바다 생물들이 그렇듯 죽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신은 결국 그를 살려둡니다.

살아난 선원은 바다 생물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기도하고 신의 모든 창조물을 축복합니다. 저주는 그때 서야 비로소 풀립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 선원은 자신의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는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이야.

-'늙은 뱃사람의 노래' 中

뉴질랜드 환경보호부(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는 앨버트로스 둥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영상채널( ☞Live 앨버트로스 로얄 캠 연결)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태평양에서는 앨버트로스가 해양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고 있습니다.

일회용 쓰레기가 지금도 버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환경 위기를 제대로 알고 깊이 공감하고 그래서 변해야 한다는 경고. 지금의 모두가 한 번쯤 미래를 생각하고 작은 실천에 나설 수 있는지,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크리스 조던 작가의 영상과 사진 60여 점이 걸린 이번 전시는 전북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다음 달 11일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새 뱃속에 플라스틱…해양 쓰레기, 예술로 ‘경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1359&ref=A


촬영기자 김동균
  • 플라스틱을 먹었고, 죽었다…그렇게 찍혔다
    • 입력 2021-06-05 09:01:19
    취재K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中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中

■ 하늘을 나는 가장 큰 새 '앨버트로스'…사체에 쓰레기가

늙은 선원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게나….
악몽 같던 옛 항해.
눈발 섞인 안개를 헤치며 앨버트로스 한 마리가 배를 따라왔네.
그런데 한 선원이 활을 쏴 앨버트로스를 죽였다네.
그리고 저주가 이어졌지.
끔찍한 저주, 갈증이 시작되었어.
여기저기서 물, 물.
한 방울도 마실 물이 없었다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늙은 뱃사람의 노래' 中

영국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쓴 장시(長詩),
'늙은 뱃사람의 노래' 중 일부입니다.


태평양의 새, 앨버트로스는 비행이 가능한 조류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 나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데다 최장 수명이 70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불립니다.


어떤 사람을 높여 부르는 '옹(翁)'이라는 칭호까지 붙은 이 새.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사체 사진으로 더 익숙해졌습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포착한 이 사진, 죽은 앨버트로스 배 안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조각들이 가득 들어찬 게 발견됐죠.


크리스 조던은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을 제작했습니다. 1시간 37분여 되는 이 영상 안에서 우리는 앨버트로스 무리가 플라스틱과 비닐, 페트병 등 쓰레기 사이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그동안 무분별하게 버려온 일회용 쓰레기가 바다를 떠다니다 이들의 서식지까지 밀려들어 간 겁니다.


그렇게 쓰레기 더미에서 살게 된 앨버트로스는 이를 먹이로 착각하고 삼켰고, 사체 뱃속에서 해양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 아름다움 너머에는 직면해야 할 '현실'이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담고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업은 계속됐고 태평양에서 발견한 일회용 쓰레기들을 소재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붓질이 닿은 유화인 것 같지만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니 색색의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가 눈에 띕니다.

이 한 폭의 작품에 담긴 일회용 라이터는 모두 5만 개. 전 세계 대양 1 평방 마일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여의도 면적에 조금 못 미치는 넓이에 들어찬 플라스틱의 총량이 작품에 쓰인 겁니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작품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여기에는 미국에서 30초마다 소비되는 페트병 뚜껑 개수인 만 6천 개가 들어 있고요,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에는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비닐봉지 24만 개가 담겼습니다.

조던 작가는 특별히 이 작품을 패러디하면서 원작에는 없는 비너스의 눈물 한 방울을 더했습니다.


인류가 버린 쓰레기뿐 아니라 환경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된 화석 연료도 소재가 됐습니다.

화석 연료를 사용할 때 1초마다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추산값은 2백40만 파운드(lb)인데요, 작가는 이를 토대로 석탄 2백40만 개로 가득 채운 작품도 선보였습니다.


특별히 이 작품은 한 발짝 멀리서 바라봤을 때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의 모습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 오염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에 인간의 욕망으로 문명이 파괴됐다는 가설을 차용해 그 의미를 더한 이 작품. 모두에게 큰 울림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의 사진 기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고됩니다. 표류하고 있는 해양 쓰레기를 찍고 그 사진을 하나씩 이어붙입니다.

그림 같지만, 오롯이 사진으로만 표현된 작품.
우리가 쓰고 마구 버린 일회용 쓰레기와 그 폐기물의 통계치가 역설적으로 새 재료가 됐습니다.


■ "슬픔의 바다를 건너 저 너머로…"

망망대해에서 앨버트로스에게 활을 겨눠 쏴 죽인 선원은 자신의 과오를 괴로워하며 바다 생물들이 그렇듯 죽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신은 결국 그를 살려둡니다.

살아난 선원은 바다 생물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기도하고 신의 모든 창조물을 축복합니다. 저주는 그때 서야 비로소 풀립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 선원은 자신의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는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이야.

-'늙은 뱃사람의 노래' 中

뉴질랜드 환경보호부(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는 앨버트로스 둥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영상채널( ☞Live 앨버트로스 로얄 캠 연결)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태평양에서는 앨버트로스가 해양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고 있습니다.

일회용 쓰레기가 지금도 버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환경 위기를 제대로 알고 깊이 공감하고 그래서 변해야 한다는 경고. 지금의 모두가 한 번쯤 미래를 생각하고 작은 실천에 나설 수 있는지,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크리스 조던 작가의 영상과 사진 60여 점이 걸린 이번 전시는 전북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다음 달 11일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새 뱃속에 플라스틱…해양 쓰레기, 예술로 ‘경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1359&ref=A


촬영기자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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